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53
악녀는 두 번 산다 252화
알현실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숨 쉬는 소리 하나 내는 사람이 없었다. 세드릭에게 위압된 탓이기도 했고, 그가 하는 말이 가슴을 찌르는 탓이기도 했다.
네길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은 상인이지만, 한때는 관료였다.
제국 중앙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세드릭보다도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응대하실 것이 아닙니다.”
네길은 침착하게 말했다. 한쪽 무릎을 고개를 깊이 숙인 채였다.
해야 할 말은 이미 모두 준비해왔다. 공연히 세드릭과 눈을 마주쳐 그 위엄에 짓눌리느니 준비한 말만 하는 게 나았다.
“에브론 대공령이 지금까지 카람에 맞서서 제국을 방어하는 큰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중앙에서도 그것을 알기에 에브론 대공령에 엄청난 규모의 지원을 해왔던 것이고요.”
세드릭은 입가를 비틀지 않으려 애썼다.
네길은 지금 면죄부를 주려 하고 있었다.
본토는 에브론의 핏값을 충분히 치르고 있다고.
신의 가르침이 어떻든, 윤리적으로 어떻든, 사람의 목숨 값은 비싸게 매겨졌던 적이 없었다.
북부인의 목숨이라면 더더욱.
어차피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방어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물자를 보급하여 도와주고 있는 것은 우리 쪽이다.
사실상 본토가 북부를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 아닌가.
그것이 본토의 인식이었다.
네길은 그 부분을 들춰낸 것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에브론의 죽어간 젊은이들을 위해서라도 투명하게 밝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길이 말했다.
“대공 전하께서 정말로 카람과 내통했다면, 그것은 황제 폐하를 배신하고 신을 등진 것만이 아니라 대공 전하께 충성스러운 에브론 인들까지 배신한 것이니까요.”
알현실에 동요가 일었다.
그때까지 황좌에 턱을 괴고 앉아 있던 황제가 말했다.
“증거와 증인을 가져오너라. 저 혼혈이 본성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다렸다는 듯이 네길이 사람을 불러들였다.
그때까지 밖에 대기하고 있던 새로운 증인이 머뭇머뭇 알현실 안으로 들어왔다.
“로운 경?”
“네가?!”
경악한 소리가 에브론 대공가의 가신들 사이에 터져 나왔다.
로운이라 불린 기사는 그쪽을 힐끔 보았다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신원을 밝혀라.”
“……저는 로운 제이든이라 합니다.”
로운이 거기까지만 말하고 머뭇거리며 더 이상 말할 줄을 모르자, 네길이 대신 말했다.
“제이든은 에브론 대공가에서 4대째 기사로 종사해온 가문입니다.”
“로운!”
세드릭의 뒤에 시립해 있던 기사 중 하나가 뛰쳐나가려 했다.
세드릭이 다시 손짓으로 그를 막았다. 뛰쳐나가려던 기사를 좌우에서 붙들었다.
황제가 로운을 내려다보았다.
“5대째 기사로 종사했다는 자가 주군을 고발하려 하느냐?”
“……있었던 사실을 없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로운이 머뭇머뭇 이번에도 자신 없는 태도로 말했다.
그의 조부모는 선대 에브론 대공 부부와 함께 죽었다. 아버지는 세드릭이 첫 출전했던 전투에서 카람에게 한쪽 팔을 잃었다.
누나는 세드릭을 따라 서부군 재건과 몬스터 웨이브 방어를 도우러 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가슴 속에 쌓인 한은 컸으나 로운은 그것을 온당히 풀어내는 방법을 몰랐다.
세드릭이 중앙 귀족인 로산 후작과 결혼한 것부터 카람에게 유화적인 정책을 취하는 것까지, 납득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혼혈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작물의 문제는 최근에 알았지만, 그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모두 에브론의 백성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카람과 교류를 도모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가난하고 굶주린 농민이 카람과 물물교환을 하는 것이나, 낙오한 카람을 불쌍히 여겨 살려주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로운은 그래도 참았다.
카람을 공격하여 몰살시킬 수 없다면, 아군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전쟁을 하지 않는 쪽이 낫다. 그 정도 판단은 로운도 할 수 있었다. .
그러나 황제의 양자가 된 순간 쌓인 분노가 폭발했다.
여태까지 에브론을 위하는 일이라고 믿고 참아왔던 것이 모조리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조부모는 무엇을 위해서 죽었던가. 아버지는 왜 한쪽 팔을 잃고도 자랑스러워했는가.
누나는 왜 시체조차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었는가.
신하가 충성을 바치면, 군주도 마땅히 그에 대해 보답해야 하는 법이다.
세드릭은 보답하는 대신에 자신의 권력과 에브론 인도 아닌 처자식을 위해 황제에게 굴복하고 아첨하는 것을 선택했다.
로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수도로 왔다. 조부모대로부터 배신당한 것을 모조리 되갚아 주겠다고.
“…….”
그러나 이 자리에, 저편에 동료들이 세드릭을 옹위해 서 있고, 자신은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모양새를 보니 오히려 자신이 배신자 같았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감이 사라지자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어째서 말하지 않느냐? 만일에 무고하려고 한 것이라면, 감히 황족을 모독한 죄를 물을 것이다!”
황제의 호통이 벼락처럼 귀에 내리꽂혔다.
로운은 당당하게 그 앞에 맞설 만한 기개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것은 동료들과 함께 무기를 뽑아 적진에 뛰어드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용기를 필요로 했다.
“말하시오. 당신은 이미 돌아설 수 없소.”
네길이 말했다.
로운은 침을 꼴깍 삼켰다.
“재작년 겨울에, 저는 톨드 관문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났다고 했으나 실제 전투가 벌어진 것은 6회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정찰대끼리 부딪쳐 발생한 일이거나 국지적인 마찰에 불과했습니다.”
로운은 더듬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카람이 사정거리에 들어와도 포격을 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전쟁은 없었습니다.”
“허어!”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신음했다.
“톨드 관문과 카람 진영의 중간쯤에 막사가 세워졌었습니다. 대공 전하께서 직접 거기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서 카람 부족장의 아들과 회담을 했습니다. 거기 있는 혼혈이 통역을 한 것으로 압니다.”
경악한 사람들이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세드릭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로운의 배신이 가슴 쓰렸으나 이것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렇게 큰 규모의 일이 기밀로서 완벽하게 보안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사전작업을 했다. 에브론 대공령에서 손수 보고서를 써서 황제에게 상신했다. 상경 후에도 군부 회의에서 다시 한 번 직접 보고했다.
다만, 그 내용을 아르티제아와 함께 손보았다. 말을 교묘하게 바꾸어 진실을 위장하되 완전히 거짓은 아니도록.
그러니 황제를 비롯하여 군부의 요직 인사라면, 그가 그 전쟁 중에 카람과 접촉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결국 황제가 심기 불편한 얼굴을 했다. 가얀이 대신 말했다.
“군사령관에게는 작전 상황 중에 전술적 목적으로 적장과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전권을 쥐고 있는 에브론 대공에게라면, 말할 필요도 없지. 경도 기사라면 알고 있을 텐데.”
“카람과 어떻게 협상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그것들은 악마의 씨앗입니다!”
에이슨 백작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의사소통이 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끔찍한 것들과 어떻게 대화를 하고 타협한단 말인가.
저 눈 셋 달린 괴물에 인간의 피가 반 섞여 있단 한들 어떻게 같은 인간으로 인정하겠는가?
그것이 북부인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의 생각이었다. 사실 북부인 중에도 상대적으로 남쪽 마을의 주민들은 이 같이 생각할 것이었다.
신심 깊은 늙은 블랑로 후작이 성호를 긋고 말했다.
“백성을 염려하는 대공 전하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자비심을 베푸는 데에도 기준이 있는 법입니다.”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폐하. 아무리 전쟁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고는 하나 상대는 카람입니다.”
“카람과 대화하기 위해 악마와 사통한 자와 그 씨앗을 살려두었다면, 이것이 배교가 아니라 무엇이겠습니까?”
그에 동의하는 자들이 하나둘 나왔다.
“차라리 노예로 부렸다면 납득하겠지만…….”
이렇게 중얼거리는 자도 있었다.
네길은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이 일을 위해서 네길도 모든 것을 걸었다. 귀족도 아닌 그가 황태자가 될 자를 고발했으니, 일이 완전히 잘못되는 날에는 목이 날아갈 것이다.
「배교 논쟁이 생기면, 아무리 날짜가 잡혀 있어도 책봉식을 치를 수 없지. 사원에서도 거부할 테니.」
「미룬다고 해결되겠습니까?」
「초조해할 것은 없네. 이런 일은 어차피 단 한 번에 찔러서 가시적인 성과를 볼 수 없어. 두려움과 혐오를 자극해.」
그에게 일을 시킨 자는 그것이 네길의 역할 전부라고 말했다.
「책봉식이 미루어지면, 네 목이 잘리진 않을 게다.」
「공녀가 신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사원에서 대공을 배교자로 몰겠습니까?」
「염려 마. 신의 은총을 받은 것은 공녀가 아니다. 그게 최종적인 목적도 아니고.」
네길은 그의 확신에 이끌렸다.
도박에 중독된 자는 판돈을 쓸어담을 것만 생각하는 법이다.
루덴 후작이 네길의 집에서 암살당하면서 그에게는 이제 정치권력과 결탁할 길이 사라졌다.
이대로 사업을 정리하고 남은 재산으로 조용히 은거하여 살면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길은 그럴 수 없는 인간이었다.
에이슨 백작의 선조가 안다면, 목숨을 건 도박판에 중독되었다고 할 것이다.
안분지족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루덴 후작의 주구가 되지 않았으리라.
그때였다. 호명관이 외쳤다.
“에브론 대공비가 당도하였습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똑바로 들고 알현실로 들어왔다. 얼핏 세드릭과 눈이 마주쳤으나, 그녀는 세드릭을 바라보지 않았다.
알현실 문 앞에서 안에서 오간 대화의 전말을 간략하게 들었다.
기시감이 있었다.
과거에 그녀는 카람 문제로 세드릭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부를 제국에서 갈라 소외시키고, 세드릭이 북부인이라는 인상을 심었다. 본토에 기반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려고 말이다.
‘리시아 님이 막았지만……, 그래도 절반은 성공했었지.’
이번에도 결국 카람과 협상을 했다는 것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세드릭이 북부인이며, 북부를 위해서 행동하고 분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배교자로 모는 것에 성공하지 못해도, 북부인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도록.
어느 쪽으로든 낙인이 찍히면, 고지식한 신앙인은 물론이고, 북부인을 머리 위에 모시고 싶지 않은 자도, 그를 미리 흠잡아 황권을 깎아내리고 싶은 자도 만만하게 생각하고 달려들 것이다.
‘역시 오라버니인가.’
아르티제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단번에 최종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대신 사람의 악한 면을 부추기는 이 방식은 분명히 자신의 것을 닮았다.
아마 세드릭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녀는 세드릭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모르는 척하고 황제의 앞, 네길과 로운이 서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 무릎을 구부려 공손히 인사했다.
“에브론의 아르티제아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황제가 허리를 펴라고 손짓했다. 얼굴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