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55
악녀는 두 번 산다 254화
황자궁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아르티제아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세드릭의 손을 붙들고 있는 오른손이 벌벌 떨렸다. 그게 체력이 바닥난 탓인지, 나름대로 버티느라 손에 힘을 주고 있는 탓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시야가 침침하고 등이 젖어들었다.
“쓰러져요. 뒷일은 내가 정리하겠습니다.”
세드릭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르티제아에게는 이미 판단할 기력이 없었다. 그래서 세드릭이 시키는 대로 쓰러졌다.
긴장을 풀자마자 의식이 꺼졌다.
세드릭은 졸도한 그녀를 안정적으로 받아 안았다.
아르티제아는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오는 동안 이미 의사를 불렀다. 황자궁의 경계도 재정비시켰다.
세드릭은 이 일을 처음 겪는 것이 아니었다.
아르티제아는 당시의 리시아와 완전히 입장이 달랐다. 위조된 신탁에 대한 소문이 날벼락처럼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수도 사교계와 중앙 정계야말로 그녀의 영역이었다. 황궁을 잠식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원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조직적인 압박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탁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세드릭은 뒤따라오고 있던 대주교와 사제들을 돌아보았다.
대주교가 성호를 그었다.
“대주교님, 지금은 대화하기에 적절한 때가 아닌 듯합니다. 제 아내는 몹시 지친 모양이라서요.”
“이를 말씀입니까? 다만 깨어나실 때까지 곁을 지키고자 합니다.”
“사원의 초조한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그래서야 편안히 쉴 수 있겠습니까? 우선 돌아가십시오. 제가 보니 콜튼 수사께서 이 일에 대해 대주교님께 언질하신 모양이로군요.”
대주교가 대답하지 않고 살짝 미소만 지었다.
세드릭은 그것이 아르티제아의 뜻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으므로 이렇게만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두 분이 더 나누실 수 있는 말씀이 많이 있겠군요. 돌아가 사원을 단속하십시오.”
“그 말씀은…….”
“모든 사람이 신탁을 믿고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권세를 가진 사람은 종종 자기가 하늘이라고 믿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아르티제아가 성력을 끌어올렸을 때에 황제는 완전히 무표정한 얼굴이 되었다. 충격도, 당황도 없는 얼굴이었다.
그가 그 정도로 감정을 숨겼다는 것은 그만큼 분노했다는 뜻이었다.
대주교는 벌써 수십 년 동안 황제의 그런 얼굴을 보지 못했었다.
황제는 굳이 표정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없는 위치가 된 지 오래였으니까.
정치적인 이유로 과장된 분노를 보이거나,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일은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번에 황제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 중 어느 쪽을 내보일지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동요했다는 뜻이었다.
“아내가 깨어나면 소식을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이 일에 대해서 절대로 호들갑을 떨지 말고, 내부 단속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신탁을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에이슨 백작이 증인이라고 데려온 카람 혼혈을 사원에서 데려가 보살펴 주십시오. 그 증인 말고 다른 혼혈도 더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대주교는 거부감을 느끼는 듯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알현실에서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느냐 하는 것은 명백했다.
무엇보다도 훨씬 이전 시대에 주교 회의에서 결정된 일을 독단적으로 뒤집을 만큼 그는 단호한 성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카람 혼혈을 데려간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북부의 사제들에게 자비와 관용을 보여도 좋다고 허락하는 것은 간접적이고 관념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진짜로 보살피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주교 회의의 결과를 알고 있는 자신조차도 이렇게 역한 기분이 드는데.
그것을 알아챈 듯 세드릭이 말했다.
“제 쪽에서 보살펴줄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탁을 받은 것은 아내이지만, 황제가 될 것은 저입니다. 유념하십시오, 대주교님.”
너무 딱딱하게 말했나 싶어 세드릭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사원에서 데려가는 쪽이 이 일을 조용히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같은 시점에, 알현실에서 오간 이야기를 질질 끌 수는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대주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드릭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성녀가 황후가 되리라는 신탁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시기였다.
세드릭은 아르티제아를 안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뒤따르는 기사에게 말했다.
“네길을 확보해.”
“이미 지시해두었습니다. 다른 고발자들에게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별 볼 일 없는 작자들이니 내버려둬.”
세드릭은 그렇게 내뱉고 아르티제아의 침실까지 들어가 침대에 그녀를 내려놓았다.
얼굴이 창백했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헤일리가 말했다.
“쓰러지면 체력 문제이니, 푹 쉬면 나으실 거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넌 알고 있었나?”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몰랐습니다.”
“알았다.”
세드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아르티제아가 이런 일을 남에게 발설했을 리 없었다.
“성력이 없다더니.”
끝의 끝까지 혼자 비밀로 품으려고 했을 것이다. 이번처럼, 결정적일 때에 쓰기 위해서.
세드릭은 아르티제아의 이마를 한 번 쓰다듬었다.
성력을 쓰는 데에 체력의 제약이 있는 줄은 몰랐다. 리시아는 아무 지장을 받지 않는 듯이 보였지만, 본래 강건한 몸이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침대에 눕히고 나자 오래지 않아 아르티제아의숨소리가 편안해졌다. 정말로 다른 문제는 없이 지쳐서 쓰러진 듯했다.
심각한 상황에서 혼자 생각해서 성녀임을 밝히기까지, 치열하게 고민했으리라.
그녀가 받은 진짜 신탁은 무엇이었을까?
성력을 보기 전에도 아르티제아를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세드릭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리시아는 성녀였다. 출산 중에 아르티제아를 살린 것이 리시아의 축복이었으니 그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성녀는 둘인가?
‘신탁과 성력은 함께 움직이는 게 아닌가? 아니면, 리시아의 신탁은 유지되는 채로 티아에게 신탁이 또다시 내려진 건가?’
세드릭은 원망을 느꼈다.
인간을 구하고자 한다면, 신은 스스로 육신을 입고 강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고작해야 힘없는 인간 하나에게 성력을 주어 세파에 던지는 대신에.
세상은 신이한 힘 하나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아르티제아가 성력을 숨긴 것도 의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성격에 실험을 해보지 않았을 리는 없고……. 성력을 쓸 때마다 쓰러질 정도라면, 없는 쪽이 낫지.’
무력한 기적보다는 아르티제아의 두뇌가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자신이 처신을 잘못해서 이런 무리한 수를 던지게 만들었는가 싶어 세드릭은 후회했다.
마른 손가락에 입을 맞추는데, 소피와 하녀들이 초조한 얼굴을 했다. 세드릭은 아르티제아를 그녀들에게 맡기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앨리스가 세드릭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조금 전에 본궁 쪽에서 소식이 왔어요. 황제 폐하께서는 침소에 드셨다고 합니다.”
노을 지는 시간이긴 했지만, 아직 침소에 들기는 일렀다. 황제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쉬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당장 오늘 안에 뭔가 일이 생기지는 않을 듯했다.
“수고했다. 무슨 소식이 들리면 바로 알려다오.”
“네.”
앨리스가 물러갔다. 시종과 고용인들의 인맥을 관리하고 있는 그녀는 오늘 아주 할 일이 많을 것이었다.
세드릭이 침실 밖으로 막 나섰을 때였다.
안색이 나쁜 기사가 다가왔다. 그는 절도 있게 군례를 올리고는 말했다.
“로운 제이든을 어떻게 처분하실지 여쭙고자 합니다.”
“…….”
세드릭은 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오브리가 그를 배신한 이후로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은 늘 생각하고 있었다. 기억이 돌아온 이후로는 더욱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쓰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에브론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 이상 뭔가를 할 필요는 없다. 능력 있는 자이니 누군가가 포섭해 가겠지.”
“그게…… 지금 황자궁 문 앞에 있습니다.”
기사가 난처한 듯이 말했다.
세드릭은 정문 쪽으로 향했다. 로운이 그냥 떠났다면 더 상관할 바가 아니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가 마무리를 해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로운은 황자궁의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어제까지 동료였던 자들이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꺼져, 새끼야!”
주먹을 휘두른 것은 그의 누나와 같은 해에 기사가 된 선배였다.
“네가 그러고도 에브론의 기사냐!”
“감히 대공 전하를 배신해?”
“에브론을 통째로 팔아먹으려 했으면서 무슨 낯짝으로 여기에 기어 들어오려 그래!”
“네 누나가 땅속에서 통곡하고 있을 거다!”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그를 둘러쌌다.
“잠깐만! 제가!”
“꺼져!”
선배 기사가 그의 멱살을 잡아 황자궁의 영역 밖으로 질질 끌어냈다.
그때였다. 소란이 잦아들었다. 기사들이 황급히 자세를 바로하며 길을 열어주었다.
세드릭이 나타났다.
로운은 피와 멍이 내려앉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세드릭은 그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몸을 구부리거나 피 터진 상처를 닦아주기 위해 손을 내밀거나 하지 않았다.
“대공 전하……. 잘못했습니다.”
로운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네길이, 세드릭은 에브론을 위해서라면 카람과도 손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을 때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다.
의문이 생기면 그냥 물어보아도 되었다. 세드릭을 진짜로 신뢰하고 충성을 다했다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진언할 수도 있었다.
그가 그런 것으로 자신을 내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면. 자신이 기밀을 지킬 수 있는 자라는 신뢰를 얻었더라면.
세드릭이 말했다.
“나는 널 이해한다.”
로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여 동의를 구할 수 없는 이상, 불신을 품는 자가 생기는 것도, 반대를 당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배신한 것은 세드릭 자신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이해한다고 해서 에브론이 널 용서할 이유는 못 된다.”
세드릭은 말했다.
“로운 제이든의 훈작을 박탈하고 에브론 대공령에서 추방한다. 다만 그가 개인적으로 벌인 일이니, 제이든 가문의 그간의 공적으로 보아 이 처벌은 오로지 로운 제이든 한 사람에 국한한다.”
“대공 전하!”
“너는 나를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으니, 네 갈 길을 가도록 해라.”
세드릭은 그렇게만 말하고 돌아섰다.
지금까지 로운을 욕하던 기사들이 일제히 돌아섰다. 경비병이 창을 교차시켜 로운을 가로막았다.
더 이상의 처벌도, 분노도 없었다. 마치 타인을 대하는 듯한 경계심만 남았다.
그는 완전히 에브론과 관계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황자궁의 정문 앞에 망연자실하게 서서 로운은 자신이 무엇을 내버렸는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