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58
악녀는 두 번 산다 257화
아이들은 리시아가 다가오자 깜짝 놀랐다. 초췌한 뺨이 홀쭉 말라 있었다.
손에는 진흙 묻은 당근을 들고 있었다. 심을 때에는 아픈 이가 없었는지, 넓은 밭에는 푸른 잎이 일렁이고 있었다.
“어른들은 모두 아프시니?”
“네.”
더 나이 많은 쪽의 아이가 대답했다.
“언제부터 아프셨니?”
“지난번 사원에서 예배드릴 때에 사제님께서 못 나오셨구…….”
아이가 손가락으로 꼽아보았다.
“그전번에는 병자를 위한 기도를 올렸어요. 근데 그땐 그렇게 아픈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의사선생님이 감기라고 했어요.”
“똑똑하구나.”
리시아는 다정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보름 정도 전에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리시아가 기억하는 진행속도와 거의 일치했다.
“너희 말고는 걸어 다닐 만큼 안 아픈 사람은 없니?”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핼쑥한 얼굴로 숨을 몇 번이나 크게 들이쉬었다.
리시아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 안에서 녹색 빛이 반짝 빛났다.
알폰스가 움찔했다. 그러나 그는 굳이 입을 열어 그게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다.
“아.”
갑자기 숨쉬기 편해져서 아이는 깜짝 놀랐다.
리시아는 작은 아이에게도 축복을 내렸다.
그리고 말했다.
“언니는 도시에 있는 큰 사원에서 온 사람이야. 저쪽에 사람들 보이지? 언니랑 같이 온 사람들이란다.”
“네.”
“저기 가서 기다리렴.”
아이가 머뭇거렸다. 작은 아이가 누나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누나……,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랬는데…….”
리시아가 물었다.
“너희 집 어디니? 제일 먼저 너희 엄마 아빠를 깨워줄게.”
“진짜요?”
아이가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 제일 끝에서 세 번째, 노란색 꽃이 있는 집이에요.”
“그러니 걱정 말고 가 있으렴.”
아이들은 오래 의심하지 않았다.
리시아는 아이들이 손을 잡고 일행 쪽으로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알폰스가 물었다.
“리시아, 괜찮겠니? 조금 전에 그건…….”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아주세요. 저는 우선…… 비 전하께 말씀드려야 해요.”
알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르티제아로부터 가서 리시아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니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리시아는 현명했다. 한 번 물어본 것은 그냥 개인적으로 리시아를 걱정해서 그런 것이었다.
리시아는 마을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알폰스가 반보 뒤에서 그녀를 따랐다.
마을 안의 풍경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수많은 고통스러운 그것들과 다르지 않았다.
바닥도, 벽도 질척거렸고, 마을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오물 냄새가 사방을 진동했다.
아마 아이들은 깨닫지 못했어도, 죽은 자가 많을 것이다.
약속한 대로 제일 먼저 아이들의 부모를 치유하고, 그다음은 사원에 가야겠다.
그래도 어느 정도 병이 진행될 때까지 사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면, 사원을 중심으로 환자를 모아 두었을 것이다.
다른 곳까지 많이 번지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황태자 책봉식에는 꼭 가려고 했는데.’
레티샤가 태어나는 날에도 가지 못했고, 명명식에도 가지 못했다.
그 뒤에라도 갔으면 좋을 텐데, 차일피일 마음을 정리한답시고 늦춘 것이 잘못이었다.
이제는 갈 만한 여유가 없어졌다. 이번에야말로 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그때였다.
펑!
어디선가 폭음이 들렸다. 알폰스가 순식간에 그녀를 잡아끌어 바닥에 쓰러뜨렸다.
리시아는 경악하여 눈을 크게 떴다. 새카만 나무 조각들이 머리 위로 비산했다.
알폰스가 몸을 일으켰다. 리시아는 발딱 일어섰다.
“지금, 화약이었죠?”
“이쪽으로!”
알폰스가 그녀의 팔꿈치를 잡았다.
리시아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다음 폭발이 터졌다.
콰아앙!
이번에는 좀 떨어진 곳에서 난 소리였다.
리시아는 사원의 높다란 지붕이 터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폭발의 여파가 여기까지 진동했다.
불길이 번졌다. 불에 약한 기생 몬스터 때문에 집과 풀을 삼키는 것만이 아니라 흙바닥에까지 불이 번졌다.
“리시아!”
알폰스가 소리를 질렀다. 리시아는 망설일 틈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성력으로 치유는 가능했으나 불을 끌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이라도 데리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쾅!
또다시 폭음이 터졌다.
리시아는 미친 듯이 뛰었다. 또다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는데, 그것이 화약인지 집이 무너지는 소리인지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이리저리 폭음을 피해 마을 밖으로 벗어났을 때에는 이미 마을 전체가 화마에 휩쓸려 있었다.
“저 끝까지 가요!”
리시아는 알폰스에게 소리쳤다. 질척한 바닥은 모두 타오를 것이다.
“모르텐 소남작님!”
일행들이 소리를 지르며 그녀에게 달려왔다. 리시아는 숨을 몰아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울부짖으며 아우성치는 아이들을 관리들이 붙잡고 있었다.
마을은 이미 불에 휩쓸려 있었다. 구조할 수 없다. 여기 있는 사람은 고작 이십여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리시아의 명을 따라 흩어졌던 것이다.
그러지 않았어도 기껏해야 이 일행으로 저 불길을 잡을 수는 없었다.
리시아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화약으로 폭발하는 마을에서 사람을 구조해오라고 명령할 수 없었다.
“아! 저걸 보십시오!”
관리 중 하나가 미친 듯이 팔을 흔들었다.
전혀 다른 곳에서 새로운 불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불똥이 튀어 들불로 번진 것인가 싶었는데, 그 불길은 마을을 둘러싸고 둥글게 번져나갔다.
방화선이었다.
기사들이 아이들을 들쳐 멨다. 그리고 방화선 안에 갇히기 전에 일행은 미친 듯이 달려 거기를 벗어났다.
“더, 멀리 벗어나야 합니다.”
관리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화재의 열기로 날숨까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알폰스가 권총을 뽑았다. 그 뒤를 따라 기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치켜들었다.
관리들이 뒤로 물러나며 아이와 리시아를 둘러쌌다.
하지만 달려온 것은 누가 봐도 시골 남자였다. 비루먹은 말을 타고 있었다. 물론 무장도 하고 있지 않았다.
남자는 불을 보고 경악하고, 기사들을 보고 경악했다.
“아, 죄, 죄송합니다. 그, 그게, 펴, 편지를…….”
“편지?”
알폰스가 물었다.
“예, 예. 어, 어떤 신사분이 제게, 편지를 맡기면서 이 마을에, 그게, 어떤 숙녀분께 전해드리라고.”
남자가 당황하여 더듬거리면서 겨우 말을 이었다.
“가보면, 어, 알 거라고……, 그러시던데.”
남자의 시선이 혼란스럽게 마을 쪽을 향했다. 마을 쪽에 묻어놓은 화약이 더 있었는지, 폭음이 아직도 터지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리시아가 빠르게 말했다.
“그 편지는 이리 주고, 당신은 이들을 데리고 당신 마을로 가요. 가깝겠죠?”
“아, 예. 말로 가면, 하, 한 시간 안 걸립니다요.”
“가서 사람들을 불러와요. 이웃에도 소식을 전하게 해요. 누가 저 사람의 말을 바꿔줘요!”
관리 하나가 말에서 내렸다. 남자는 얼떨떨해 하며 그 말에 올랐다.
“누가 방화선을 치고 있지만, 미비한 부분이 있을 거예요. 잘못하면 불똥이 날려서 들불로 번질 거예요. 어서!”
리시아가 그 남자를 따라갈 사람을 지정해주었다. 남자가 기겁하여 말에 박차를 가했다. 지정받은 관리가 그를 따라갔다.
기사가 품에서 신호탄을 꺼내 쏘았다.
평화로운 시기에, 평화로운 지역이다. 얼마나 이것으로 잘 연락될지 알 수 없었다.
서부의 행정력은 아직 구석구석에 미치지 못했다.
리시아는 편지봉투를 뜯었다.
『리시아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자니 기분이 이상하군.
내 인사는 잘 받았나? 공연한 수고를 끼치지 않고자 뒷정리까지 마무리해 두었어. 아마 역병으로 번지는 일은 없을 거야.
방화선은 내 선물이야. 부디 크게 번지지 않았으면 좋겠군.
빨리 데리러 가야 마땅하지만, 아직은 준비가 여의치 않아. 그대에게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지.
대면할 날을 고대하고 있겠어.
그대를 충실히 사랑하는
로렌스로부터.』
리시아는 그 편지를 구겼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손등에 이마를 대었다.
* * *
아르티제아가 일어나 앉은 것은 쓰러진 날로부터 이틀 후의 일이었다.
나탈리아와 대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나탈리아는 약속을 지켜 그간 황자궁에 머무르고 있었다.
자잘한 외교적인 문제가 수반되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황자궁의 문제는 아니었다.
성녀가 황태자비가 된다. 이 폭탄 같은 소식에 각자 자국과 연락을 보내느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황자궁의 앞에 선물이 그득그득 쌓였다.
매일 아침 새로 꺾은 꽃을 황궁의 거대한 정문 앞에 두고 가는 이도 많았다. 선물을 보낼 수 없는 신자들이 하는 일이었다.
리시아가 황태자비가 되었을 때에도 이 같은 일이 있었다.
나탈리아는 그런 것은 베르나트에게 맡겨두었으므로 마음 편히 아르티제아와 마주볼 수 있었다.
“많이 걱정했어요.”
나탈리아는 창백한 아르티제아의 안색을 보고 말했다. 그래도 이제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베르나트 전하께서는 안심하셨겠지요.”
“네?”
“제가 신탁을 받았다는 것을 밝히기 전에 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셨으니까요.”
나탈리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아르티제아가 이마를 잠시 짚었다. 이런 식으로 시니컬하게 말해서는 안 되었다.
“죄송해요. 베르나트 전하를 비난하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마땅히 이언츠 왕국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시는 거고, 두 분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 헤젤이 다가와 편지를 내밀었다.
“비 전하, 기다리시던 소식이라.”
“아, 고마워.”
아르티제아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리고 봉투를 보고 숨을 멈췄다.
리시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봉인이 세 겹으로 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에브론 대공가의 문장이 찍혀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세드릭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었을 터였다.
아르티제아는 그게 권총의 그립에 새겨진 것이라는 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서둘러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그것을 쭈욱 읽어내려갔다.
“안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요?”
나탈리아가 염려스럽게 물었다.
“아뇨. 아니, 네. 중요한 일이에요. 서부에 화재가 나서 마을 하나가 전소되었다는군요.”
“괜찮아요?”
“다행히…… 들불로 번지지 않았다고 해요. 그 뒤에 이틀간 비도 왔고.”
아르티제아는 말할 수 있는 부분만 말했다.
문제는 역병과 로렌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지금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황태자 책봉식은 당장 이틀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