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59
악녀는 두 번 산다 258화
황태자 책봉식 날에는 날씨가 매우 맑았다.
백성들은 이것조차 신의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적극적인 사람들은 새벽 일찍부터 나와 길을 쓸고 장식했다.
거리의 꽃 파는 소녀들은 아침이 채 오기도 전에 바구니를 모두 비웠다.
꽃을 살 수 없는 사람은 전날이나 이틀 전에 미리 산과 들의 꽃을 꺾어다가 물에 담가두었다.
곱게 키우던 화분의 꽃대를 자르는 이도 있었다.
그조차도 여의치 않은 가난한 이들은 종이꽃을 접었다.
사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갖가지 색종이를 나눠주었다. 축복을 내린 밀랍 양초와 흰 빵도 나눠주었다.
“성녀님의 축복을 받으십시오.”
복사들이 성호를 그으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가난한 집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여유가 있는 집은 양초를 받고, 값진 향초나 버터를 바쳤다.
부자는 그 양초의 무게만큼 은화나 금화를 헌금했다.
성녀 올가상의 이적을 되살린 성녀였다. 황후가 되리라는 신탁을 받은 성녀였다.
수확제의 제단에서 신의 은총을 받으며 제국의 별을 낳은 성녀였다.
신께서 제국을 특별히 택하여 사랑하신다는 것에 이 이상 가는 증거가 있을까?
지금까지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사건은 일거에 날아가 버렸다. 꽃향기가 수도를 가득 채웠다.
신실한 사람들은 집에서 모시던 성상을 창가나 현관 앞에 내놓고 그 앞에 축복받은 양초에 불을 붙였다.
그 축복을 자기 가족의 것이 아니라 오늘 책봉될 황태자에게, 또 제국에게 바치겠다는 뜻이었다.
“성녀님과 황태자 전하께 축복을!”
“제국에 영광을!”
성급한 자들은 책봉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외치고 있었다.
하늘에서 종이꽃이 휘날렸다.
에이멜 국왕은 침대에 누워 가만히 있었다.
그가 연금된 저택은 외진 곳이었는데도, 멀리에서 외치는 만세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언제까지 주무실 겁니까?”
카드리올이 휙 커튼을 걷었다.
국왕은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이제 일어나십시오. 황태자 책봉식에 참석하셔야지요. 에이멜 국왕으로서 나라를 위해 하실 수 있는 마지막 일입니다.”
“……너로구나, 왕비를 죽인 게.”
국왕이 맥락 없이 말을 뱉었다.
카드리올이 빙긋 웃었다.
“그게 중요합니까?”
“네놈……!”
국왕이 이를 갈며 내뱉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카드리올이 제 입으로 그랬다고 말할 리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카드리올을 자백하게 할 힘이 없었다.
“정 가기 싫으시다면야.”
카드리올은 어깨를 으쓱하고 혼자서 침실에서 나갔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냥 형식적인 예의를 차리기 위한 것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함성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분위기는 어때?”
“완전히 축제 분위기죠. 사원에서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성자나 성녀가 정치에 이렇게까지 관여한 적이 있었나?”
“제가 신학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없을 겁니다. 제국 건국 초창기에나 있었던 일 아닐까요?”
부관이 잠시 생각해보고 대답했다.
“그러니 사원에서 얼마나 신나겠어.”
카드리올은 대꾸하고 훌쩍 말 위에 올랐다.
시내로 갈수록 기쁨의 분위기가 몸으로 잘 느껴졌다.
황태자 책봉식 후에 있을 퍼레이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곳에서, 기쁜 나머지 자발적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골목골목에 있는 사원마다 예배를 올리고 있었다.
카드리올은 묘한 기분이 되었다.
로렌스가 황태자 책봉식을 할 때에도 그는 에이멜 왕국의 대표로 이곳에 와 있었다.
그때에도 승자의 동맹자였다. 이 환희의 밑바닥에서 움직이는 음험한 기류를 알고 있었다.
‘뭐, 결국 승자는 여전히 똑같고, 이 분위기를 만드는 자도 똑같지만.’
하지만 이번의 성녀는 이 환호에 괴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사원에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써서 조직을 장악하고 있을 테니까.
‘리시아 모르텐을 위해 사원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
카드리올은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킴 주교를 쳐냈다고 생각했다. 리시아에게 방해가 되니까.
“설마 하니 본인이 신탁을 받았을 줄은.”
신탁은 빤히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성력은 많은 사람이 목격했다고 하는 이상 거짓말일 수 없었다.
그러나 카드리올은 역시 믿기 어려웠다. 그 로산 후작이 성녀라니.
“글렀어, 글러.”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상이 글러먹었다고. 내 인생도 그렇고.”
카드리올은 투덜거렸다. 그리고 말에 박차를 가했다.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황자궁에까지 들려왔다. 보통이라면 절대 들릴 리 없는데 말았다.
황궁 밖 어디에서 이쪽을 향해 사람을 모아 외치게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세드릭이 물었다.
“이건 일부러 외치게 한 겁니까?”
“사원에서 과잉 충성하고 있어요.”
아르티제아가 대답했다.
“미간을 펴세요. 좋은 날이고, 좋은 일이에요.”
“압니다.”
세드릭은 짧게 대답했다.
정말 좋은 일이었다. 리시아가 성녀임을 밝혀지고 나서 겪었던 온갖 일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러나 복잡한 심경이 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로렌스가 황태자 책봉식을 치렀을 때에.
로렌스가 즉위식을 했을 때에.
피하는 대신에 그와 맞서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에도.
아르티제아를 지하 감옥에서 빼돌릴 때에도, 그녀에게 계책을 달라 청할 때에도.
그녀가 찾아와 황제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을 때에도.
심지어 황자궁에 들어올 때조차도.
진짜로 이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생각을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안스가르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허리띠를 둘렀다. 그리고 바짓단까지 각을 잡아 매무새를 다듬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줄 다른 시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날이니, 직접 나선 것이었다.
어깨에 황금색 견장을 매달고, 붉은 띠를 두르는 동안 투왈렛 룸에 침묵이 흘렀다.
그가 황태자가 된 것을 기뻐하는 사람도, 싫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에브론 인이라면 모두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되는 게 당연했다.
“어디 봐요.”
아르티제아가 차림을 마친 세드릭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어디 하나 흠 없이 완벽했다.
“당신은, 준비가 끝났습니까?”
“네.”
아르티제아는 아주 작은 보석조각을 치맛자락에 일일이 꿰맨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드레스가 빛을 받아 빛났다. 적당한 길이로 땋아 느슨하게 올린 머리에는 금가루를 뿌렸다.
아마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은 순백의 성녀일 터이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런 모습으로 치장하지 않았다.
주목을 모아야 하는 것은 세드릭이었다.
이 한 번의 장엄함으로 누가 주인지 보여주기를 바랐다. 황태자는 성녀가 택했기 때문에 황태자인 것이 아니라, 그가 제국의 정점에 앉을 이이기 때문에 황태자인 것이다.
의전관이 문을 두드렸다.
“대공 전하, 출발하실 시각입니다.”
세드릭이 아르티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문밖에 흰 융단이 깔려 있었다.
가장자리에 온갖 상징과 문장이 수 놓여 있었다. 해와 달, 땅과 강, 그것을 상징으로 삼았던 집단들, 곡식과 양, 맹수와 말, 칼과 창, 처음 제국을 만들고 충성을 바친 가문의 문장들도 새겨져 있었다.
그 마지막에는 고대어로 쓰여 있었다.
『신께서 영원히 크라테스를 축복하시리라.』
그 문장은 세드릭의 망토 안에도 금실로 새겨져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신이 크라테스를 축복했다면, 그것은 황실의 피를 축복한 것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 땅을 축복한 것일 터였다.
둘은 곧바로 앞을 바라보고 걸었다.
융단은 황궁 밖까지 길게 깔려 있었다. 기사들이 좌우에 늘어서서 은빛으로 번득이는 예검을 뽑아들어 예를 취했다.
기사들의 대열 밖에서 군중이 외쳤다.
“황태자 전하께 영광을!”
“성녀님께 축복을!”
그 외침은 곧 하나로 통일되었다.
“제국 만세!”
마치 이 순간만은, 그 온갖 이해 관계로 뒤엉킨 군집이 하나의 전체 같았다.
루미너스 홀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거기서부터는 사제들이 향불을 붙인 등을 들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귀족과 관리들이 하나하나 무릎 꿇었다. 사제들도 등을 올려 들고 무릎을 꿇었다.
대주교도 무릎을 꿇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허리를 숙여 현세의 권위에 경의를 표했다.
그리하여 옥좌 앞에 당도했을 때에는 황제와 황후만이 그들보다 높이 있었다.
세드릭은 황제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곁에서 아르티제아가 함께 무릎을 꿇었다.
먼저 황후가 둘의 손에 각각 인장이 새겨진 반지를 끼워 주었다.
그다음 황제가 작은 금관을 세드릭의 머리에 올렸다.
세드릭은 눈을 꽉 감았다.
머리에 얹힌 무게는 그리 대단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세드릭에게 마치 형구와 같은 느낌이었다.
“일어서라, 황태자.”
황제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제 제국의 국저가 되었으니, 결코 무릎 꿇지 않고, 꺾이지 않으며, 굳건하게 버텨 서서 해와 달을 받치는 기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리신 교명, 황감히 받들어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세드릭은 공손하게 대답하고 일어서서 무릎을 폈다.
뒤로 돌아서자 제일 먼저 제식을 주관한 대주교가 말했다.
“경하드립니다.”
뒤이어 가까이에 있던 린 재상을 비롯하여 고위 귀족과 관료들도 황제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경하드립니다!”
가까이 다가올 수 없는 신분인 자들이 멀찍이에서 외쳤다.
축하의 말은 금세 루미너스 홀 바깥까지 퍼졌다. 의전관이 책봉식이 끝났음을 밖에 알린 것이었다.
우렁찬 만세 소리가 루미너스 홀까지 들려왔다.
세드릭은 아르티제아의 손을 잡고 온 길을 돌아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퍼레이드였다.
수도의 주요 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고 루미너스 홀로 돌아오면, 축하 연회가 시작될 것이다.
그 연회는 사흘 동안 계속될 예정이었다.
와-!
두 사람이 밖으로 나서는 순간 루미너스 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군중이 지르는 고함이 한 덩어리의 소리가 되어 푸른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는 세드릭의 뱃속과 가슴을 고통스럽게 찔러 두렵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