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62
악녀는 두 번 산다 261화
세드릭은 입고 있던 편안한 셔츠와 바지 위에 예복 코트만 걸치고 서둘러 본궁으로 향했다.
“어찌 되었나?”
“엘던 제1 부두에서 가장 먼저 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 인근에 조만간 북부로 수송할 양곡이 보관되고 있었던 창고가 있어서…….”
세드릭의 안색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전령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해풍이 불어서 습할 텐데, 불이 크게 번졌단 말인가?”
“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두마다 종이꽃 장식을 하고 향초를 피워서 그렇다는 자도 있고…….”
그것은 틀림없이 유언비어이다.
황태자와 성녀를 축복한다고 했던 일이 잘못된 결과로 돌아왔다. 신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되도록.
적당한 때에 유언비어는 다른 말로 바뀌어 다시 퍼뜨려질 것이다.
새로 책봉된 황태자를 신이 원치 않으신다거나, 성녀가 가짜라거나.
아르티제아가 지속적으로 성력을 발휘하여 이적을 보이지 않는 이상,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인명피해는?”
“확인하도록 전령을 보냈습니다.”
내무부의 엠마가 대답했다.
“밤에 창고 쪽에서 시작된 불이니 많지 않을 겁니다.”
“경비대나 창고 길드 쪽에서는 축소시켜 보고할 것 같군.”
“창고 쪽의 인명피해는 경미할 겁니다. 본래 민간인 출입 금지 지역이니까요. 불이 번진 쪽에 대해서는 알아보겠습니다.”
황제가 그때가 되어서야 침소에서 나왔다.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치고, 그 위에 황실의 문장이 새겨진 망토를 대 충 둘러 입고 있었다.
얼굴은 혈압이 치솟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 붉으락푸르락했다.
시종장이 그를 끌어 우선 의자에 앉혔다. 황제가 날카롭게 물었다.
“항구에 화재가 났다고?”
“예.”
전령이 무릎을 꿇고 세드릭에게 했던 보고를 똑같이 아뢰었다.
황제가 팔걸이를 내리쳤다.
“제1 부두와 북부로 갈 곡량이 제일 먼저 불타다니! 그게 사고일 리가 있느냐!”
그러나 이 자리에 1차적인 책임자가 없었다.
황제는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선박은 어떠냐? 설마 타국의 사절들이 타고 온 배가 피해를 입지는 않았겠지?”
“모두 다른 부두에 정박해 있어서 아직 이상 없습니다.”
“거기까지 불이 번지기 전에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엠마가 말했다.
“지금 경이 말해봐야 위로의 말 이상이 되겠는가? 간단히 끝날 일이라면 이 밤중에 전령이 달려오진 않았겠지.”
황제의 말에 엠마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황제가 세드릭을 바라보고 말했다.
“네가 다녀와라.”
“제가, 말씀입니까?”
“북부로 보낼 곡량과 사절단 선박의 문제가 둘 다 걸린 문제다.”
“알겠습니다.”
세드릭은 순순히 긍정의 대답을 했다.
아르티제아와 대화를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이 일이 북부 문제와 외교 문제가 함께 걸린 일인 만큼, 그만큼의 책임자가 맡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수도에 유통되는 물자의 절반 가까이가 조운에 기대어 있었다. 기항지로서의 역할도 매우 컸다.
그것은 부두가 사용불가능해지면, 중부의 물류에 유의미한 수준의 타격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임이 위중하니, 그냥 항구의 시정 담당관에게 맡겨두면, 사태를 축소하여 보고하는 것에 힘을 기울일 것이 분명했다.
세드릭은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굽혀 황제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 절도 있는 걸음으로 돌아서서 뛰어나갔다.
“내 말을 대기시켜라.”
“예!”
부관이 외치고 달려갔다.
황자궁이 소란에 물들었다. 호위기사단이 임시로 편성되었다.
세드릭은 엠마에게 말했다.
“행정 지원이 필요할 거야. 해가 뜨면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게.”
“예, 황태자 전하.”
엠마가 대답하고 또 역시 제가 가야 할 방향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세드릭은 황자궁으로 돌아갔다. 아르티제아의 명으로 집사가 이미 간단한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티아, 제가.”
“알고 있어요. 상황이 급한 모양이지요?”
“예. 지금 가봐야 할 듯합니다.”
“옷만 갈아입고 가도록 하세요. 갈아입을 것은 내일 보내드리도록 할게요.”
“고마워요.”
세드릭은 가볍게 아르티제아의 뺨에 입맞추었다.
그리고 가려다가 한마디 더 했다.
“우리 이야기, 아직 안 끝났습니다. 혼자서 결정하면 안 됩니다.”
“알았어요.”
아르티제아가 순순히 대답했다. 세드릭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밖에서 호위대가 수행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다녀오겠습니다.”
세드릭이 인사를 남기고 황자궁을 떠났다.
본궁에서 호출이 온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 후의 일이었다. 이제 자정을 넘어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시종은 송구한 얼굴로 말을 전했다.
“주무시고 계신다면, 깨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폐하께서 부르시는데, 당연히 가야지.”
아르티제아의 대답에 시종이 살았다는 얼굴로 꾸벅 절을 하고 먼저 갔다.
그때까지 아르티제아는 편안하지만, 그대로 산책을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그 위에 숄만 걸쳐 입고 본궁으로 향했다.
본궁의 바깥쪽은 시끄럽고 소란했다. 세드릭이 말한 행정적 지원을 하기 위해 불려온 관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황태자비가 지나가도 잠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는 정도였다.
아르티제아는 그럴 필요도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침소 쪽은 오히려 조용했다.
황태자에게 전권을 맡겨 보냈으니, 이제 황제가 직접 챙길 일은 없었다.
세드릭이 먼저 사건에 대처하고, 사후 보고를 확인한 후 사태에 변화가 생기면 그때에 다시 명을 내리면 된다.
그가 바라던, 짐을 나누어 질 후계자를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다시 잠들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르티제아는 거실 문 앞에서 공손히 무릎을 구부려 절을 올렸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들어와 앉아라.”
그가 복잡한 낯빛을 싹 거두고 말했다.
아르티제아의 뒤에서 시종이 문을 닫았다.
묘령의 여자를 이 시간에 불러내어 단둘이 만나는 것은 설령 시아버지라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황제였고, 이것은 독대였다.
아르티제아가 성녀임을 밝힌 후로 처음 대화하는 것이었다.
황제는 술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호박색 술이 바닥에서 찰랑거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건강에 좋지 않다고 굳이 자기까지 한 마디 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황제가 그녀의 시선을 보고 먼저 대꾸했다.
“마시면 안 된다는 충고는 이미 의사에게 들었다. 시종장에게도 들었고.”
“네. 황공합니다.”
황제가 술로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 피로한 한숨을 내쉬었다. 쉬고 싶었다.
그러나 신경이 곤두선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에 등을 적신 불쾌한 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만했다. 너무 많은 일이 연이어 일어났고, 최근에는 더욱 심했다.
로이가르 대공이 자결한 뒤로부터 그는 숙면한 기억이 그다지 없었다.
자스민과라벤더 꽃을 침실에 채워 향기를 채우고, 안마사가 잠들 때까지 욱신거리는 다리를 주물러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공백의 꿈을 꾸었다.
손 안에서 항상 무언가가 지워졌다. 그것은 낡은 찻잔 손잡이의 무늬일 때도 있고, 만년필의 금장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지문이 지워질 때도 있었다.
황제는 잠에서 깰 때마다 자신이 뭔가를 잊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되새겨 보아도 진짜로 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잃어버린 것이 있는 것 같았지만, 스스로 놓은 것은 있어도 아직 잃은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속적인 불쾌감과 손발 저림을 느꼈다.
지병은 악화될 뿐이지, 좀처럼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오랫동안 잘 관리해왔는데, 역시 스트레스가 지나친 탓인지도 몰랐다.
황제는 젊고 고운 아르티제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것이 너무 가까운 사실로 닥쳐왔기 때문이었다.
침묵하고 바라보는 그에게 아르티제아가 물었다.
“왜 그러시나요, 폐하?”
“짐은 너를 제법 귀여워했느니라.”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황제 자신이 실망했으며, 배신감을 느꼈고, 나아가 타격을 입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은 그 사실을 드러내봐야 조금도 좋을 게 없었다. 그런데도 황제는 내심을 내비치고 말았다.
그것조차도 심약한 노인 같다고 그는 스스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아르티제아는 변함없이 엷은 미소를 띤 화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는 변한 게 없습니다, 폐하.”
“……그래. 그렇겠지.”
“폐하께서 그이를 후사로 삼으셨던 이유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고요.”
권력을 탐하는 모략가에게는 그 어떤 감정도 이용하기 좋은 함정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르티제아는 그와 동종이었다.
알고 있었으면서, 황제는 언제부터인가 자기는 예외일 거라고 생각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네 말이 옳다. 짐이 세드릭을 택한 것은 그 인품 때문이었고, 그게 달라지지는 않았지.”
아마 이대로 있는 게 좋을 것이다.
황후가 말했던 것처럼 믿을 만한 조카에게 여생을 의탁하고, 딸과 손자들의 재롱을 보면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패배하고 살아갈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위에 그 누구도 둘 수 없었다.
원한이나 복수심 때문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그는 돌려 말하지 않고 아르티제아에게 말했다.
“서부로 가거라. 그리하면 네 남편과 딸은 제 지위에 두고 전과 마찬가지로 여기겠다.”
“그리하면 절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아르티제아가 변함없이 환한 낯빛으로 말했다. 황제의 안색이 노기로 물들었다.
“감히 네가 짐과 거래를 하려 해?”
“황언을 믿지 못하는 저를 용서하십시오. 허나 부모를 잃은 슬픔이 아무리 깊어도, 기억도 뚜렷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일과 지금의 일은 같지 않습니다. 삭히고 잊어 지운 일과 새로 생긴 일은 같지 않습니다.”
아르티제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폐하께서도 그것을 아시는데, 제가 어찌 온전히 폐하의 말씀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찌할 테냐? 성녀의 이름을 관처럼 쓴 채 역병을 외면하고 여기서 나와 체스 게임이나 계속할 테냐?”
황제가 내뱉듯이 말했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명하셨으니, 따를 수밖에요.”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