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63
악녀는 두 번 산다 262화
23. 서부
불길이 밭을 활활 태웠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재가 날려 눈이 매웠다. 리시아의 눈매와 코끝이 빨간 것은 그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밭이나 목장은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상황이 항상 좋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리시아는 한 사람이었고, 역병은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그리고 서부는 아주 넓었다.
서부의 행정 관료들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원과 군도 협력했다.
그러나 역병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염되는 대신에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생겨났다.
알게 되자마자 방역선을 치고, 중앙에 소식을 알렸다. 전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리시아가 미리 소상히 알려주었으므로, 대처는 결코 늦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소식이 다른 곳에서 치료 활동을 하고 있는 리시아에게 가닿을 때쯤에는 이미 전멸하는 마을도 있었다.
방역선을 빠져나와 탈출하는 사람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기도 했다.
리시아는 이번에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병의 원인도, 방역 방법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라도, 사원도 이번에는 그녀의 편이었다.
하지만 생각한 것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아르티제아가 할 때에는 당연한 것처럼 매끄럽게 진행되던 일들이 그녀의 손 안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특히나 이번처럼 땅에 실질적인 지배자가 따로 있을 때에는 더 그랬다.
“리시아 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갈색 수사복을 뒤집어쓴 남자가 달려와 말했다.
리시아는 주먹을 쥐고 엄지로 코끝을 문질렀다. 손수건을 꺼냈다가 괜히 세탁물만 늘릴 것 같았다.
“가요.”
리시아는 그렇게 말하고 앞장서서 마을 쪽으로 향했다.
알폰스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 정도는 혼자 다니는 쪽이 편하다고 몇 번 말했지만, 알폰스는 듣지 않았다.
「비 전하께서 특별히 명하신 거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다. 리시아는 그가 어떤 식으로 충성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아르티제아에게 죄지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그러니 이번에 그가 따르는 것이 ‘성녀 리시아’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 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고 있다 보면 옛일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로 넘어가는 경계선 앞에 한 무리의 무장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일부는 리시아를 호위하여 움직이는 서부군이었다.
나머지는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자콥의 군대였다.
심지어 자콥 본인이 나와 있었다.
“성녀님께서 오셨군.”
그가 느물거리며 말했다.
리시아는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대리인에 불과하다고 몇 번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자콥 경.”
“백작이야.”
“네, 백작님.”
리시아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자콥이 황제에게서 백작의 작위를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고 계시죠?”
리시아는 주위를 둘러보고 물었다. 마치 자신의 수행원과 자콥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전령이 왔네.”
자콥이 남자 하나를 눈짓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경무장한 남자는 땀과 피로에 전 얼굴로 리시아를 바라보았다.
“모르텐 소남작님이십니까?”
“그래요.”
그러자 전령이 품에 손을 넣었다.
자콥이 즉 몸을 움직여 전령과 리시아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리시아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저자가 내게는 편지를 보여줄 수 없다는군.”
“제게 온 편지라면 당연히 그렇겠지요.”
“이 땅의 주인은 나야, 성녀. 제국 정부에서 오는 소식이라면 당연히 내가 볼 권리가 있어.”
“저는 성녀가 아니에요. 제가 진짜 성녀라면 백작님께서 제게 이렇게 대하시지는 못할 텐데요.”
리시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녀가 받은 신탁은 시간을 돌아오며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다만, 성력을 사용하는 방법만 몸에 기억으로 남았을 따름이다.
자콥이 흐, 하고 웃었다.
“성녀가 아니라면, 무슨 힘으로 나와 감히 이렇게 대거리하고 있겠나? 으응? 안 그런가?”
그가 손을 쓱 뻗었다.
그 손이 리시아의 얼굴에 닿기 전에 알폰스가 손목을 움켜잡았다.
자콥의 낯빛이 시뻘게졌다. 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을 주었지만, 그는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놓아주세요.”
리시아가 말했다.
알폰스가 자콥의 손목을 내던지듯 팽개쳤다.
“대리인으로 보낸 시녀를 모욕하는 일은, 그 주인인 귀부인을 모욕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리시아를 따르는 관료가 말했다.
자콥이 사나운 얼굴을 했다. 그는 스스로를 창업군주처럼 여겼고, 황실을 존중하지 않았다.
세드릭에게는 악감정까지 있었다.
자콥은 아말리에와 같은 해에 공적을 세운 자였다.
아말리에가 휘하 병력을 황제에게 반납하고 중앙의 권력다툼에 참전했을 때에, 그는 그 병력을 자기 수중에 두는 것을 선택했다.
서부는 넓고, 황제는 자콥 같은 자들과 일일이 싸울 수 없었다.
정 격파하려 한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코끼리가 쥐떼와 싸우는 것 같은 일이었다.
한 마리는 수월하게 밟아 죽일 수는 있다. 그러나 발밑에 수십 마리가 서성대면, 일일이 그것을 밟아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군비를 쓴다고 해서 박멸된다는 법도 없었다.
그리하여 황제는 자콥 같은 자들에게 단승 백작의 작위를 내렸다. 그리고 서부군 독립사령관이라는 직함을 주었다.
그것이 전통적으로 제국이 통제 불가능한 지역을 관리하는 방법이었다.
자콥은 성 하나와 그 인근 마을을 다스릴 권한을 얻었다.
그가 가진 평시의 권한은 황제를 대신하여 조세를 걷고, 그 일부로 군수를 보급하거나 모병하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애당초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만들어진 작위와 지위였다.
자콥의 성은 그의 영지나 다름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그에게는 사법권도, 징병권도 없었지만, 영지 안에서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자콥은 늘 불만에 시달렸다.
백작이 되었을 때에는 곧 세력이 커질 것만 같았다. 서부를 휩쓸고 제국 중앙까지 위협하여 왕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닐 듯이 여겨졌다.
그러나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자콥의 영역은 한 뼘도 늘지 않았다.
제국은 너무 강대했으며, 인근에 자콥처럼 백작의 칭호를 받은 군벌이 널려 있었다.
자콥은 그들 중 빼어나게 잔혹한 자였다. 악명 높고 세력도 강성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 인근에서 그러했다는 의미였다.
자콥은 이제 나이가 들었다. 자식들은 시원치 않았다.
장남은 먹고 마시고 색을 밝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쓰레기였다.
장녀는 자콥의 잔혹성을 비난하고 동생들을 데리고 달아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다 최고의 가문을 만들어 저희들에게 물려주려고 그러는 것인데 말이다.
그가 세드릭에게 분노를 품은 것에는 그런 연유도 있었다.
대공가를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콥이 아무리 애써도 얻지 못할 위광을 두르고 대군을 지휘했다.
적지 않은 군벌이 지난번의 몬스터 웨이브에서 세력을 잃었다. 서부군에 흡수된 자도 적지 않았다.
그 사건은 자콥에게도 고스란히 타격을 입혔다. 그가 징병한 병사 상당수가 서부군에 남았다.
그의 영역에 서부군이 침습해왔다. 사원을 통해 에브론 대공비의 환곡 사업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주민에 대한 그의 지배력도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막을 방법이 없었다. 명분상으로 그는 황제의 신하였으며, 그를 대리하여 군권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니까.
자콥이 흐, 하고 웃었다. 이만 하면 그로서는 충분히 대접해준 셈이었다.
황태자비 본인도 아니고 어차피 그 시녀 하나였다.
게다가.
‘조만간에 쓱싹될 계집.’
자콥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웃으며 넘어갈 수 없는 것이 그의 무의미한 자존심이었다.
전령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리시아가 손을 내밀었다.
전령은 주춤주춤 알폰스의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품에서 편지를 꺼내어 리시아에게 건네주었다.
리시아는 그것을 빠르게 읽고, 자기 품에 넣었다. 자콥이 빼앗아갈 수 없도록.
“무어라고 쓰여 있습니까?”
수행원이 물었다.
리시아는 자콥에게서 경계의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황태자비 전하께서 서부로 오실 겁니다.”
술렁거림이 퍼졌다. 황태자비가 역병이 도는 이 시기에 서부에 온다고?
자콥의 병사들마저도 불안감과 설렘이 공존하는 얼굴을 했다.
사원에서 황태자비가 받은 신탁을 명언했다. 이 서부에서도, 어려운 시기임에도 황태자 책봉식 날에 따로 감사와 축복을 바치는 예배를 올렸다.
대리인인 리시아가 한 일이 이미 작지 않았다. 그녀는 환곡 사업의 얼굴이 되었다. 역병을 치유하면서, 그녀를 성녀로 믿는 이가 많아졌다.
그런데 그 주인이 온다. 사원에서 말한 진짜 성녀였다.
서부는 구원받을 것이다.
자콥만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신 따위는 믿지 않았으며, 설령 신이 있다 하더라도 신탁으로 인간을 구원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리시아가 말했다.
“이제 좀 비켜주시겠어요? 준비가 끝났으니, 늦기 전에 마을을 정화해야겠어요.”
“흠.”
자콥이 물러섰다.
이웃 세력의 마을이라면, 리시아가 나대게 하지 않고 기꺼이 불태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그의 영역이었다. 마을은 기껏해야 네 개였다. 없애버리면 타격이 컸다.
그가 역병을 핑계 삼아 태워버린 마을 때문에 망해가는 세력이 벌써 두 개였다.
그는 리시아가 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리시아의 수행원 들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알폰스가 그에게 경계하는 시선을 던지고 리시아를 따라갔다.
자콥은 역병이 도는 마을로 따라 들어갈 마음은 없었다.
그는 발을 돌려 말에 훌쩍 올라탔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리시아를 진짜로 어쩔 작정은 없었다.
그녀에게 보내지는 수도의 소식이 궁금했을 따름이다.
본성으로 돌아가자 자콥에게도 밀서가 와 있었다.
그 편지에는 서명이 없었다. 황태자비의 일정 예측만 건조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누구인지 몰라도 목적은 명확했다. 자콥이 이 정보를 알면 그녀를 습격하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자콥은 아직 그럴 작정이 없었다. 비슷한 밀서를 받은 다른 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결정해도 늦지 않았다.
“네 동생도 꽤나 원한을 많이 샀나 보군.”
자콥은 서재의 소파에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청년을 보고 말했다.
그 손에는 술이 들려 있었다. 취한 기색은 없었지만, 독주가 들어 있던 병이 적지 않게 비어 있었다.
“관심 있나?”
로렌스가 조소하듯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