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64
악녀는 두 번 산다 263화
자콥은 선선히 대꾸했다.
“황후가 되리라는 신탁을 받은 여자야. 관심이 없을 리 없지.”
“납치라도 해다가 아내로 삼으면 황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로렌스가 말했다.
특별히 빈정거리는 어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올해 쉰이었다. 로렌스에게 그런 뜻이 없어도, 이제 겨우 스물 남짓한 어린 여자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를 수치스럽게 했다.
실제로 그럴 의사가 있더라도 말이다.
“내겐 나이 찬 아들도 있으니까.”
그는 변명처럼 말했다.
로렌스가 술잔을 흔들었다.
“글쎄. 지름길이 있는데 굳이 돌아갈 필요가 있나? 어쩌면 훌륭한 자식을 또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동생의 일인데 너무 남처럼 구는 것 아닌가?”
자콥은 인상을 쓰고 그를 쳐다보았다.
자콥에게도 형제자매가 있었다. 별로 애틋한 사이는 아니었다. 사실 자콥은 그들에게도 폭군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가족이라는 인식은 확실히 갖고 있었다. 그들을 걸리적거리는 짐처럼 여겼으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돕거나 구해야 한다는 인식은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자에게는 그런 인식조차 없어 보였다.
로렌스가 푸훗 웃었다.
“네가 느끼는 건 형제자매에 대한 우애가 아니라 자존심이겠지.”
“…….”
“그런 의미로 말하면, 나도 네게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존심 상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겠지.”
자콥은 무슨 소리냐고 되물으려 했다.
그전에 로렌스의 손이 움직였다.
탕!
총성이 울렸다.
자콥은 한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르고 멍하게 있었다.
곧이어 배에서 끔찍한 통증이 올라왔다.
“끄, 끄으윽……!”
로렌스는 술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섰다.
자콥이 숨을 꺽꺽거리며 바닥을 굴렀다. 어찌된 일인지 총성과 비명이 들렸는데도 달려오는 자가 없었다.
“어떻……, 어…….”
어떻게 서재 밖을 지키고 있었을 호위 병력을 치웠는가.
어떻게 무기를 반입했나.
로렌스에게 많은 편의를 봐주었다. 그러나 서재에까지 무기를 가지고 들어오게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로렌스는 전혀 자기 손을 직접 더럽히는 일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얻을 게 없었으니까.
로렌스는 이 성에 이해관계가 없었다.
자콥은 로렌스에게 제법 많은 편의를 제공했다. 병력도 빌려주었다. 그 대신 재물과 정보를 받았다.
이건 제법 맞아떨어지는 거래 관계였다.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자콥은 그르륵거리며 피거품이 섞인 숨을 몰아쉬었다.
“‘왜?’ 쪽이 좀 더 흥미로운 문답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로렌스가 무덤덤하게 대꾸하며 총열이 식기를 기다렸다.
리볼버는 믿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시간이 있을 때라면 폭발할 위험성을 감수하느니 단발로 쓰는 게 나았다.
“어떻게, 냐고 묻는다면, 네가 너무 오래 왕처럼 군림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때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로렌스가 그쪽을 돌아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들어온 것은 자콥의 아들 올벤이었다.
“아직도 안 끝났어?”
로렌스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장전을 마친 권총으로 자콥의 머리를 겨냥했다.
탕!
그것이 끝이었다.
올벤이 흥분한 듯이 손을 떨었다. 얼굴은 시뻘겠고,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로렌스는 무덤덤하게 올벤을 바라보았다.
사람은 악하다. 그 점에서 그는 아르티제아와 생각이 완전히 같았다.
자제력은 상황이 만드는 것이다.
내면의 추악한 욕망을 드러낼 기회를 마련해주면, 사람은 언제든 인간다운 껍질을 벗어던졌다.
지긋지긋한 인생에서 그것만은 로렌스에게 제법 괜찮은 재밋거리였다.
“자, 그럼.”
로렌스는 리볼버의 실린더를 열어 총알을 확인했다.
배포도 없는 주제에 욕심만 많은 놈은 탐욕과 공포에 뒤섞인 시선으로 부친의 시신과 로렌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격렬한 번뇌가 돼지 같은 얼굴에 스쳤다.
로렌스는 피식 웃었다.
“왜? 나를 배신하고 이 죄를 뒤집어씌우면 무결한 피해자로서 권력을 이양받을 수 있을 것 같은가?”
“그,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 대, 대가는…….”
올벤이 더듬거렸다.
로렌스는 그를 향해 찰칵 공이치기를 잡아당겼다. 올벤이 눈을 부릅 떴다.
하지만 로렌스는 그것을 도로 풀어서 바닥에 집어던졌다.
“필요 없어.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유유히 서재를 빠져나왔다.
멍청한 올벤이 경비병을 미리 치워두었기에, 총성이 울려도 복도는 고요하기만 했다.
복도 끝에 중년 남자가 위병을 거느리고 서 있었다.
“성주 시해 시도가 일어났더군.”
“알려주셔서 고맙소.”
남자가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손짓했다. 신뢰할 수 있는 위병들이 시해범을 잡기 위해 재빨리 서재로 달려갔다.
로렌스는 유유히 성을 빠져나갔다.
그가 아르티제아로부터 배운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상대를 믿기보다 상황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성에서 권력을 노리던 자는 올벤 하나가 아니다. 올벤과 올벤을 허수아비로 세워두고 실권을 장악하려는 자와 그를 시해범으로 몰아 자기가 성주가 되려는 자가 서로 싸울 것이다.
진정으로 자콥에게 충성하는 얼간이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경쟁자인 이웃 백작들과 마적이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로렌스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 혼란이었다.
수하가 다가왔다.
“저쪽은?”
“정보는 알렸습니다. 이제 곧 시작될 겁니다.”
“가자.”
그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 * *
리시아는 사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력 없이 역병에 대처할 수는 없었다.
땅을 정화하는 것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리시아는 자신의 성력을 숨기기를 원했다.
아르티제아가 성녀임을 공표하고 난 뒤에는 더욱더 숨겨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리시아는 사원에서 오래된 성물을 빌렸다. 아르티제아가 미엘르를 구하고서 그것을 성녀 올가상의 은총이라고 위장했던 것을 본뜬 것이었다.
사원의 위세가 너무 커지는 것이 염려스러웠다. 리시아 자신이 성녀로서 겪은 일이 있었던 만큼, 사원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자가 의사 대신 신앙에 의지하게 되는 것도 미래를 위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간도 너무 오래 걸렸다. 손으로 만져 정화하면 병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몇 시간 만에 끝낼 수도 있는 일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성물에 예를 갖추게 해야 했으니까.
그러는 사이에 병세가 심해져 죽는 자도 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시아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성녀로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생겨날 혼란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으니까.
성녀인 자신이 필요해질 때가 오면, 아르티제아가 연락을 줄 것이다.
그때까지는 참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환자가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리시아는 신께 감사드리라는 말로만 대답하고, 그를 내보냈다.
그리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물러가세요.”
리시아는 극도로 지친 채로 말했다.
이제 익숙해진 일이기 때문에, 사제와 호위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물러갔다.
아무도 치유력의 정체를 묻지 않았고, 리시아를 의심하지도 않았다.
서부를 헤매며 역병에 대처하는 사이에, 그녀의 진정성을 믿는 사람만이 남은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알폰스가 나가며 문을 닫았다.
리시아는 눈을 감은 채로 성력을 쏘아 올리듯 터뜨렸다.
그녀의 발밑에서 시작한 정화력의 빛이 마치 폭발하듯이 주르륵 밖으로 밀려 나가며 퍼졌다.
리시아는 자신의 정화력이 마을 바깥까지 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방역선을 조금 넘은 지역에서 멈추었다.
‘이 인근에서 가야 할 곳은 이제 안 남았었지? 잔인하게 통제한 탓이겠지만…….’
이제 돌아가 쉬어야겠다.
새벽 일찍, 해가 뜨면 일어나 다음 장소로 이동할 것이다. 방역선을 유지한 채로 폐쇄된 채 기다리고 있는 마을이 열 곳도 넘었다.
리시아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을 때였다.
땅이 두두두두 진동했다.
리시아는 깜짝 놀라 튀어 나갔다. 알폰스가 달려 들어오려다가 그녀와 마주쳤다.
“무슨 일이에요? 지진인가요? 몬스터인가요?”
“아니야. 마적이다!”
알폰스가 소리쳤다.
리시아는 멍하게 알폰스의 어깨너머를 바라보았다. 기마가 일으키는 먼지구름이 폭풍처럼 다가왔다.
마을에서 공포에 질린 자들이 고함을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리시아!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떻게 된 거죠? 백작의 군대는요?”
이 인근에 자콥에게 맞설 자는 없을 것이다.
마적이 있다 한들, 자콥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공격해올 리 없다.
리시아와 알폰스는 알지 못했다.
자콥이 급살당하고 본성에서 내분이 일어날 예정이니 보복할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그 정보를 들은 자들이 마적으로 위장하여 군대를 보낸 것이었다.
목표는 약탈이다. 재산과 사람을 강탈하고, 마을을 불태운다.
그것은 자신이 세력을 늘리는 일인 동시에 자콥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알폰스가 말했다.
“자콥 백작이 어찌하든 지금은 몸을 피해야 한다!”
“이대로 마을을 버리고요?”
리시아가 이를 악물었다.
“저자들이 진짜 마적이 아니라면, 저희가 남아서 협상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네 목숨은 ‘만약’으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냐!”
“에브론 기사단과 제국의 관료가 백성을 버리고 달아난 게 돼요. 게다가 이 평야에서 저희끼리 달아난다고 해봤자 저 마적떼를 피할 수는 있는 건가요?”
“피해야지!”
알폰스는 리시아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 그녀를 의미도 없이 희생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리시아의 말이 옳았다. 마을에서 벗어나는 것에는 간신히 성공했다. 하지만 퇴로는 이미 막혀 있었다.
철컥!
오십여 개의 총부리가 햇빛을 받아 싸늘하게 번득였다.
최측근에 있었던 열 명의 기사가 리시아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녀는 정신없이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폐부가 찢어지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리시아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로렌스가 다정스레 웃었다.
“오랜만이군, 리시아.”
“당신, 미쳤어요?”
“데리러 왔어.”
그가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