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65
악녀는 두 번 산다 264화
아르티제아의 앞에까지 운구된 시신은 스무 구였다.
에브론 기사가 열한 명. 서부의 행정 관리가 여섯 명. 사제가 세 명.
모두 리시아를 따라 움직이던 이들이었다.
그 외에도 여럿 있었지만, 시신이 깨끗하지 않아 보여줄 수 없다거나 신분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유로 여기까지 데려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을이 불탔다고.”
아르티제아는 중얼거렸다.
시신을 수습하여 운구한 자가 대답했다. 그는 자콥 휘하의 백부장이었다.
“자콥 성주님이 살해된 후 싸움이 크게 벌어졌습니다. 그 사이에 그만…….”
백부장은 분개하며 말했다.
“마적이라고 했지만, 진짜 마적이 화전민 마을도 아니고 성주가 지키는 마을을 주춧돌까지 꼼꼼하게 불태우고 사람을 끌어갈 리 있겠습니까?”
“…….”
“하물며 기사가 있는데. 다른 곳에서 온 관리와 사제들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할 리 있겠습니까? 이것은 찰턴이나 벡스터의 짓입니다.”
백부장이 경계선을 맞대고 있는 성주의 이름을 댔다.
아르티제아는 가만히 시신의 얼굴을 덮은 천을 걷어냈다. 알폰스의 얼굴은 검게 변해 있었다.
“목 아래로는……. 비 전하…….”
헤일리가 중얼거렸다. 시신을 단정하게 씻기고 새 옷을 입혔지만, 그래도 흔적을 다 가릴 수 없었다.
아르티제아가 중얼거렸다.
“알고 있어.”
이번에도 리시아를 지키고 죽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전에는 로렌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었고, 이번에는 리시아를 지켜달라고 부탁했으니까.
지켜내지 못할 줄 알면서도 싸웠을 것이다. 달아난 자 하나 없이 몰살당한 상황으로 보건대 절대적인 병력 차이가 있었다.
달아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가 자신의 부탁을 포기하고, 리시아를 버리고 달아날 리 없었다.
설령 리시아가 달아나 소식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더라도 로렌스가 알폰스를 살려두었을 리 없었다.
그는 알폰스를 몹시 미워했었으니까. 사실 이제 와 생각하면 리시아가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것을 미워했던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르티제아는 조심스럽게 천을 다시 머리끝까지 올렸다.
“하아.”
그녀는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눈 속 깊은 곳이 시큰거렸다. 코와 연결된 눈물길이 뜨거워서 좀처럼 말을 할 수 없었다.
참으려고 애쓰면서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잔뜩 쉰 목소리로 물었다.
“……널 보낸 건 누구냐?”
“…….”
“대답해라.”
투기를 억누르고 있는 에브론 기사 하나가 철커덩 검집 소리를 냈다.
백부장이 움찔했다.
“……없습니다.”
“마을이 그렇게 되고, 역병을 저지하기 위해 간 기사와 관리들이 죽었다. 게다가 내 시녀가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저희들끼리 권력 다툼을 하느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렷다?”
백부장이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털썩 두 무릎을 다 꿇었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중앙에 이 소식을 알릴 생각을 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시신을 수습해야만 했다. 백부장은 딱히 그 누구의 세력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에 도맡아 마을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왔던 것이었다.
“황태자비 전하, 청이 있습니다.”
에브론 기사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그가 말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허락할 수 없다.”
“고작해야 세 개 성일 뿐입니다.”
그가 건틀렛을 절그럭거렸다. 그 옆에 다른 기사도 나섰다.
“저희들만으로도 그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비 전하!”
“이대로 눈감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헤일리가 말주변 없는 그들을 대신에 명분을 세워주었다.
“황태자비 전하의 시녀를 납치하고, 그 호위 기사들을 죽였습니다. 방역을 위해 파견된 관리도 살해했습니다. 이게 역모가 아니면 무엇이 역모입니까? 황태자비 전하께서 책임을 물으셔도, 황제 폐하께서 꾸짖지 않으실 겁니다.”
아르티제아는 그래도 고개를 저었다.
“지금 성주 서넛을 제거하기 위해 병력을 빼낼 수는 없어.”
헤일리의 말처럼 명분은 있었다.
그리고 아마 기사들이 장담하는 것처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잉여 자원이 있다면, 역병 확산을 막는 데에 힘써야 했다.
지금 당장 역병에 시달리는 지역은 적다지만, 공포는 이미 확산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럴 때에 군벌을 공격하여 전쟁을 일으키면, 민심이 더 동요할 것이다.
오히려 냉정하게 말해서 저희들끼리 싸워 망해준다면 고마운 일이었다.
리시아를 납치하고 수행원들을 죽인 것은 찰턴과 벡스터가 아닐 것이다.
그들도 멍청이가 아닐 테니까.
아마 로렌스가 했겠지. 그리고 로렌스도 바보가 아니니,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붙잡아 고문한다고 해도 실익이 없었다.
목구멍으로 열덩어리를 삼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드릭 님이라도 복수를 명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아르티제아가 생각하는 일을 실행하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찰턴과 벡스터를 상호 이간질하고 그 주변 군벌을 충동하여 전쟁을 일으키거나, 암살하여 혼란을 일으킨 후에 세력을 격파해버리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아르티제아는 말했다.
“자콥 백작에 대한 이야기만 하도록 하지. 그가 받은 작위는 세습되지 않는 것이며, 독립사령관의 직책은 작위가 아니라 폐하께서 맡기신 권한에 불과하다.”
“예.”
“군사령관이 죽었으니 군병을 다스릴 지휘관을 다시 폐하께서 임명해서 보내는 것이 당연한데, 그 아들이니 천부장이니 하는 자가 성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군.”
백부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서부의 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아르티제아가 머무르고 있는 도시의 시장마저도 놀라서 말했다.
“성주의 권한은 관습적인 것입니다, 황태자비 전하.”
“성주라는 작위는 없네.”
아르티제아가 대꾸했다. 그리고 왼쪽을 돌아보았다.
“하퍼 경, 어떻게 생각하나?”
아말리에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황제의 미움을 사 쫓겨난 후에 사직을 했다.
작위도, 명예도, 재산도 잃지 않았지만, 계속 남아 있기 껄끄럽다는 이유로 수도를 떠났다.
그리고 한적한 휴양지의 큰 저택을 사서 가족과 친인척을 그곳으로 보냈다.
하지만 아말리에 자신은 그곳으로 가지 않고 남몰래 서부로 향했다.
그리고 옛 친구들을 만나며 여행을 하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이 올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독립사령관이 사망했으니 작전권은 우선 서부군이 회수해야 합니다. 행정은 행정관이 들어가야죠.”
“원칙적으로는 그 말씀이 옳습니다만, 성주가 지배하고 있는 성을 내놓은 예는 거의 없습니다. 관리를 보내는 데에 성공한 적도 없고요.”
“당연히 그냥 내놓지는 않겠죠. 서부군에서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행정관은 제압이 끝난 다음에 들어가면 됩니다.”
그게 될까. 그런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관리가 아말리에를 쳐다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문제에만은 군벌 전부가 똘똘 뭉쳐 대항할 겁니다. 진짜 전쟁을 하시려는 겁니까?”
“황제 폐하께서 임명하신 독립사령관을 살해한 자들을 처벌하고 작전권을 회수하는 겁니다. 명분은 충분합니다.”
아말리에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불확실한 증거로 성주에게 성을 열어 보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죠.”
성주가 멀쩡히 있는 성을 공격하면 전쟁이 된다. 그러나 사분오열하고 있는 자콥의 성은 별개의 문제였다.
간단히 제압할 수 있는 것을 그냥 놓아둘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 딱 자콥의 성 하나만 제압하실 겁니까?”
“전례를 만든다는 것은 중요하니까요.”
헤일리가 말했다.
황태자비의 시녀가 사라진 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전에 없이 강력한 민심의 지지를 받고 있는 황태자비를 등에 업고 있었다. 그것도 역병이 도는 시기였다. 성녀가 직접 보낸 대리인이 사라졌다.
이웃 성주들은 가능하다면 그 일에 얽히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는 무표정한 얼굴을 했다.
“하퍼 경에게 비록 직책은 없지만, 서부군과 친분이 있으니 내 대신 적절한 사람을 골라 이 일을 맡겨 주게.”
“염려 마십시오.”
아말리에가 대답했다.
아르티제아는 다시 한 번 관들을 바라보았다.
“장례는 어떻게 치르시겠습니까? 이미 더워서…… 에브론까지 보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헤일리가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고향이 서부에 있는 이들은 고향으로 시신을 보내주도록 하자. 장례비와 위로금을 주고……. 나를 대신해서 장례식에 참석할 이가 한 사람씩 갔으면 좋겠군.”
“네. 알겠습니다.”
“에브론 기사들은 이곳에서 장례를 치를 수밖에……. 유골만 수습하여 보내도록 하자.”
“네, 비 전하.”
아르티제아는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섰다.
헤일리가 그녀에게 은화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아르티제아는 손수 죽은 이들에 이마에 은화를 하나씩 놓았다.
그리고 알폰스의 이마에는 은화를 놓는 대신에 차고 있던 브로치를 빼서 그의 가슴에 내려놓았다.
마음을 터놓고 지낸 이도 아닌데,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고 해서 이토록 마음이 울렁거리다니.
‘지킬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아르티제아는 긴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비탄하는 것은 사치였다.
그보다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허드슨이라고 했나?”
“옛.”
백부장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성주의 손님이 마적떼의 수장이라고 했었지? 그 마적떼가 어디를 근거로 삼고 있었는지 알고 있나?”
“확실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성 인근의 마적들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었나?”
“예, 어느 정도는.”
“좋아. 그것을 파악해보면, 어디를 근거로 삼은 놈들인지 알 수 있겠군.”
그러면 어디에서 보급을 받고, 주로 어떤 경로를 이용하는 자들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로렌스가 무슨 수단으로 그자들을 포섭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보급이나 이동계획 같은 것을 직접 짰을 리는 없었다.
“오웬 경.”
아르티제아는 가장 먼저 복수를 청한 기사를 지목했다.
“복수를 위해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으나, 잃어버린 사람은 찾아야지. 경이 주도하여 자콥 성 인근의 마적을 토벌하고 확인도록 하게. 서두르지는 말고, 어느 무리가 사라졌는지를 확인하도록 해. 진범들이 지레 놀라 달아나지 않도록 조심하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가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에브론 기사들이 뒤이어 일제히 군례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