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66
악녀는 두 번 산다 265화
항구의 화재는 닷새째에야 진화되었다. 그것도 비의 도움을 빌려서야 가능했다.
북부로 갈 식량이 쌓여 있던 창고는 골조까지 무너졌다. 인근에 있는 중앙군의 임시창고도 절반 가까이 날아갔다.
그나마 무사했던 것은 항구 관리와 주둔 부대가 함께 목숨을 걸고 지켜낸 화약창고 정도였다.
부두 두 개가 잿더미가 되었다. 정박해 있던 국가 소유의 화물선과 군선들도 피해를 입었다.
피해가 국유 재산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바람에 날려간 불씨가 대형 곡물상과 포목상의 창고에도 불을 붙였다.
그쪽의 재산 피해도 말로 다할 수 없이 많았다.
“서부의 역병이 빨리 진화되지 않으면 기근이 들 겁니다.”
언제나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내무부 관리는 그렇게까지 말했다.
중부는 비옥했으나, 대규모 농장이 없었다. 그만한 재력이 있는 자는 벌써 상공업에 뛰어들었다.
빈 땅에는 건물을 짓고, 젖소와 돼지를 길렀다. 농장에는 귀족들이 소비하는 값비싼 기호품이나 쉽게 시들기에 가까이에서 수확해야만 하는 과채류를 심었다.
자연히 주식은 서부와 동부에 의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부에는 역병이 돌고, 동부에는 분쟁이 발생했다.
서부에서 역병이 빨리 잡히면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성물의 기적을 제외한 다른 치료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자칫하여 이 역병이 서부 전역에 돌기라도 하면, 내년의 농사는 망친다.
그리고 지금 당장도 농사가 문제가 아니었다. 원인도 모르는 병이 도는 곳에서 식량을 가져올 수는 없었다.
사람과 가축이 오가면서 역병도 가져오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중부는 물류의 중심이다. 역병이 중부에 감염되는 순간 제국 전체에 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지주들의 창고에는 곡식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역하여 달아난 자들이 그것을 순순히 내놓겠는가.
물론 그것을 지나치게 비관적인 견해라고 생각하는 자가 더 많았다.
“아직 역병은 그렇게 심각한 사태가 아닐세. 그리고 설령 지금보다 조금 더 심각한 상황이 된다고 해도, 서부는 충분히 버텨낼 수 있어.”
“멜번이라는 새로운 작물이 있으니까요. 그냥 심어두기만 하면 되고, 손이 거의 가지 않는 작물이니, 설령 밀 농사가 흉작이라고 하더라도 기근이 닥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 중부는 괜찮다고 말하는 자도 있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중부는 괜찮습니다. 문제는 북부죠.”
그 말에 관리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말을 꺼낸 자가 한탄했다.
“서부와 동부가 어찌 되든, 무조건 중부의 곡물가는 터무니없이 오를 겁니다. 하지만 시세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북부의 항구가 얼기 전에 출항해야 하니까.”
그러려면 가을이 되기 전에 새로 대량의 물자를 마련해야 했다.
전 같으면 곡물상에서 징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곡물상의 창고도 피해를 입었다.
피해를 입지 않은 수도와 중부지역의 창고에서 닥치는 대로 징발해 버리면 이번에는 중부의 민심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게다가 징발해야 할 것은 곡물만이 아니었다. 무기를 비롯하여 각종 다양한 군수품도 필요했다.
타버린 선박을 대신할 것도 필요했다.
황제가 중앙군의 군수품을 내주게 할 턱이 없었다. 결국 그것도 백성들에게 가중되는 부담이 될 것이었다.
“반역죄를 토벌하시면…….”
회의에 참석한 내무부와 재상부 관리들은 저희들끼리 그렇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면서 반대편에 앉은 군부의 장군들을 바라보았다.
황제는 한 해에 두 번이나 군사를 내면 민생이 도탄에 빠진다는 이유로 동부를 방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태가 이에 이르렀으니, 오히려 민생을 위해서라도 군을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똑같이 물가를 올리고 민생에 부담을 가중시키더라도, 반역자를 토벌하기 위해 군비를 쓰는 것 쪽이 북부를 위해 징발하는 것보다 반발을 덜 살 것이었다.
동부의 대지주 일부를 토벌하여 창고를 열고, 재산을 몰수하면 된다. 그러면 곡물도, 각종 필수적인 자원도, 선박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다.
북부를 방치하자는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카람의 남하는 몇 년에 한 번씩 있는 일이다.
재작년 말에 있었으니, 올해에는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올해 물자를 보급하지 않아도 별문제 없을 수도 있었다. 북부에서도 한 해 정도 버틸 비축은 쌓아두었으리라.
그러면 선박을 징발해야 하는 부담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감히 아무도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황태자가 에브론 대공이었다. 누가 나서서 북부를 방치하자고 말할 수 있겠는가.
린 재상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때를 맞춘 듯이 회의실 문이 열렸다.
“황태자 전하께서 드십니다.”
문을 여닫는 직책의 관리가 말했다.
회의에 참석하는 관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드릭은 황제의 자리로 마련된 상석의 오른편에 있는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관리들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린이 말했다.
“피곤해 보이십니다. 간밤에 귀궁하셨다고 들었는데, 잠은 좀 주무셨습니까?”
세드릭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말할 것도 없이 피곤했다.
화재는 닷새였지만, 후속 조치에 2주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동안 거의 한잠도 자지 못했다.
황태자로서도, 에브론 대공으로서도 그는 이 일을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돌아오자 황자궁에는 아르티제아의 편지만 남아 있었다.
“괜찮네. 회의하다가 잠이 들 정도는 아니니까.”
세드릭은 피로에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린이 안쓰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세드릭이 한 차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아직 회의록에 올리지는 않았습니다만, 곡물가 문제에 대해 각자 사견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다가 해결책이 나오기도 하는지라…….”
내무부 관리가 발언했다.
“곡물상들이 벌써 창고를 꽁꽁 묶어두었습니다, 전하. 강제 징발을 하려면 군력에 기대어야 할 것입니다.”
그에 이어 재무부 관리가 말했다.
“이럴 때에 가격 폭등을 기대하고 사재기하는 자가 나타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전하. 제값을 다 주려 하면 국고금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치안청 관리가 말했다.
“정도가 심한 상인 몇몇을 잡아 본보기로 목을 치고 재산을 몰수하시죠.”
마지막으로 린 재상이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어느 쪽도 민심을 잃는 일이었다. 때로는 그것을 감수해야만 했으나, 세드릭이 황태자 책봉식을 치르자마자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꺼려졌다.
이것이 하필 북부의 일에 연관되기 때문에 그러했다.
이 일에 배후가 있다면, 유언비어를 함께 틀림없이 나포할 것이다.
황태자는 오로지 북부만 아끼고 사랑하며, 북부를 위해서 다른 지역을 모두 쥐어짤 작정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황제에게 좋은 핑계가 되어줄 것이었다.
세드릭이 얼굴을 한 번 더 쓸어내렸다.
“다행히 내게 그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네.”
“무엇입니까?”
“황태자비가, 작년의 환곡을 올해 봄에…… 같은 가치의 멜번으로 돌려받았다네. 여름이 되기 전에 대부분 중부와 접한 지역의 창고에 들였다고.”
멜번이 무엇인지 아는 자가 많지는 않았다. 내무부 관리들 중에서도 몇 명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환한 얼굴이 되었다.
“밀과 멜번의 가치를 생각하면, 양이 엄청나겠습니다.”
“그렇지요. 멜번은 한겨울에도 자라니, 봄에도 수확량이 적지 않았겠군요.”
“미리 모아두었다면, 징발하는 수고도 덜어지고 역병을 끌어들일 우려도 적겠습니다.”
세드릭이 한숨을 숨기고 말했다.
“비축된 양곡과 멜번을 적당히 섞어서 푼다면, 한 해 정도는 어렵지 않게 날 수 있겠지. 굳이 곡량의 품질을 따질 만한 지역도 아니니.”
“황태자비 전하의 헤아리심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찬탄이 쏟아졌다.
세드릭은 우울한 얼굴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티제아가 멜번을 미리 모은 것은 서부에 밀을 남겨두어 경제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하나, 북부에 멜번을 보급하고자 하는 목적이 또 하나 있었다.
가능하다면 빨리 퍼뜨리고 싶었다. 그러나 북부에서는 단시간에 모든 지역에 멜번을 종자로 보급할 수 있을 정도로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 어려웠다.
아르티제아와 그 의논을 한 것은 겨울의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수량 파악을 해봐야 알 일이긴 하겠으나, 일단 식량 문제는 다급하지 않다고 봐도 되겠군요. 문제는 수송선 쪽인데.”
“그것도 일부 해결되었네. 이언츠 왕국에서 수송선을 무상으로 대여받기로 했네.”
세드릭이 말했다. 그것도 아르티제아가 안배한 것이었다.
『베르나트 왕세자 전하에게 간단히 운을 띄워두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이언츠를 이용하는 것을 망설이지 마십시오.』
아르티제아의 편지에서 그런 문장을 읽고, 그는 베르나트 왕세자를 만났다.
베르나트는 곧바로 수송선 대여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르티제아는 운만 띄워두었다고 했지만, 상당한 부분까지 이야기가 된 모양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온갖 것에 대해서 배려해두었다. 편지에는 그녀가 조언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가 다 남아 있었다.
다만, 그녀 자신에 대한 이야기만 제외하고.
『항구의 화재가 우연일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여기에 적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배후가 ‘그 사람’이라면, 제가 했던 일만이 아니라 폐기했던 일, 포석으로 두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계획들까지 전부 알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십시오.
이것은 틀림없이 동일한 목적을 다른 방식으로 실행한 것입니다. 결코 보급물자를 불태우는 선에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우선될 일은 북부를 단속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문장은 아내가 남편에게 쓰는 것이 아니었다. 책사가 주군에게 쓰는 것이었다.
『폐하께 저항하지 마십시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미래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의 자리를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을 당신께서 더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황자궁에 나탈리아 전하를 계속 머무르게 해주십시오. 레티샤에게서 시선을 떼지 마십시오. 후사를 보호하는 것은 모든 일에 우선해야 합니다.
이 또한 당신께서 황태자의 지위를 지키는 것과도 연관된 일입니다.』
심지어 그녀는 딸에 대한 부탁조차도 그런 식으로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은 한 문장은 죄인이 쓰는 것이었다.
『이것은 모두 저의 책임입니다.』
아르티제아는 자신이 제게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