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68
악녀는 두 번 산다 267화
황제는 그대로 침소로 옮겨졌다.
근위 기사가 황제를 들쳐 업었다. 측근 시종들이 달려가며 미리 복도를 비우고 어의를 불렀다.
세드릭이 그 뒤를 따라갔다.
혼란은 어마어마했다. 린 재상은 새파랗게 변한 낯빛으로 회의실 문을 닫게 했다.
다행히 오늘 회의에 참석한 자는 모두 고위직뿐이었다.
“이 일은 비밀에 붙이도록.”
린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재상 각하.”
“지금 제국의 상황을 생각해보게. 폐하께서 쓰러지셨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무슨 혼란이 생길지.”
서부 군벌들이 들썩이고, 동부 반역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에 반해 군력의 상당 부분이 남부에 내려가 있다.
황태자 책봉식에 참석한 타국 사절 중에서도 아직 수도에 남아 있는 자들이 있었다.
사절만이 아니라도 교역을 위해 제국 수도에 머무르고 있는 타국인은 또 얼마나 많은가.
세드릭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고는 하나 이제 시작이었다. 결코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혼자 권력을 틀어쥐고 군림해왔다. 그의 부재는 곧 제국 정치를 공백 상태로 만들 것이다.
“곧 깨어나실 수도 있어. 공연히 소란 만들지 말고, 각자 자리로 돌아가 할 일에 충실하게.”
관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가 파했다. 린이 가장 먼저 황제의 침실 쪽으로 향했다.
관료들은 서류며 메모를 챙겨 각자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행여나 오해를 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가까운 사람과만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강건하셨던 분인데 어느 틈에 이렇게 되셨는지…….”
“연세가 있으시긴 하지만.”
“전 같지 않으시긴 했지. 계속해서 후사를 염려하셨고…….”
“그렇다 해도 이렇게 갑자기?”
“심중 상하실 일도 많으셨으니까.”
여러 가지 소곤거림이 오갔다.
“그러고 보니 주치의를 몇 번이나 바꾸셨지요.”
황제는 몇 년 전부터 몇 가지 지병을 달고 있었다. 고혈압을 걱정한 지 오래되었고, 당뇨도 있었다.
아마 그밖에도 사람들이 확실히 알지 못하는 자잘한 증상들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크게 염려하는 자는 없었다.
나이 들어 그런 병 하나둘 달고 살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잘 관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황제는 쾌락주의자였으나 자신의 건강을 희생하고 되는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며칠 사이에 더 힘들어 하시는 티가 나긴 났어요.”
내무부 관료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항구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도 그랬어요. 전 같으면 잠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서 나오셨을 텐데.”
정신을 차리고 판단력을 회복해서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 사이에 침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관료들은 그런 의문을 가졌다.
동시에 안심도 했다.
“국저를 세우신 후라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쉿. 말을 조심하시오.”
누군가가 주의를 주었다.
“다행이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압니다만, 잘못하면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 하루 이틀 안에 툭툭 털고 일어나실 수도 있는 일인데.”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는 자도 제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 가벼운 일이라고 하기에는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모두에게 있었던 것이다.
린 재상이 들어섰을 때에 황제의 침실은 기이할 정도로 적막에 잠겨 있었다.
어의가 황제를 진찰하고 있었다. 그 곁에 서 있는 것은 세드릭과 가얀이었다.
시종장이 황제의 양말을 벗기고 손수 발을 주무르고 있었다.
기밀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침실까지 들어와 있는 것은 그들뿐이었다.
침실 밖부터 복도까지는 시종과 근위병들이 물샐 틈 없이 지키고 있었다.
“황후 폐하께서 드십니다.”
곧 황후가 당도했다.
황후의 뒤에서 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세드릭이 그녀를 돌아보고 묵례했다. 린과 가얀도 말없이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황후는 세 사람에게 가볍게 시선을 주고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문가에 서 있었다.
황후는 오늘도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여전히 그녀는 일상의 대부분을 상복 같은 검은 옷으로 지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기이하게 보였다. 문가에 선 황후가 마치 사신처럼 보였다.
린은 그런 생각을 얼른 털어냈다. 생각은 언행을 지배하는 법이다. 위험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행동을 잘못하지 않는 비결이었다.
“그레고르의 상세는 어떠냐?”
황후가 딱히 충격받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기뻐하지도 않는 태도로 물었다.
물론 그녀의 태도를 있는 그대로 믿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었다.
어의가 진찰을 끝내고 일어섰다. 그의 안색은 두려움으로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당장의 위기는 넘겼습니다.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혈관이 좁아져 머리까지 피가 돌지 못하셨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그게 단가? 뭔가 음모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원래도 혈압이 높은 데다가 피가 끈적끈적해져 있었습니다. 소변도 달았고요.”
이런 지병은 낫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악화되어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이었다.
“그래도 약도 잘 챙겨 드시고 관리도 잘하셨습니다. 앞으로 적어도 십 년은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는데.”
“최근에, 여러 모로 심적으로 힘드신 일이 많아 운동을 게을리 하셨습니다. 술을 많이 드셨고요. 피곤하다고 자주 말씀하셨죠.”
시종장이 아주 느릿하게 말했다.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어의가 제일 망연자실해 했다.
최근에 증세가 원인 모르게 들쭉날쭉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가얀이 그늘진 얼굴로 어의에게 말했다.
“원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을까 하는 것이네.”
“아…….”
어의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황제가 언제 일어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 일을 언제까지 기밀로 다루어야 하느냐의 문제가 걸려 있으니까.
어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약이 제때 들었는지 아닌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내일까지 깨어나신다면 회복하실 겁니다. 하지만 회복하신다 해도 전처럼 건강하게 일어나시기는 어려울 겁니다.”
“깨어나시긴 할 거란 말이지?”
“아마도…….”
린은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세드릭도 눈가를 손으로 덮었다.
“이 일은 한동안 숨기는 게 좋겠네.”
“예. 편찮으시다는 것까진 몰라도, 쓰러지셨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은 곤란할 듯합니다.”
세드릭의 말에 린 재상이 대답했다.
가얀이 물었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른 이?”
“멀리 사시는 분은 어쩔 수 없지만, 유니스 백작 부인에게는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세가 변할 때까지는 알리지 않는 게 좋겠네. 들은 귀가 많아지면 말하는 입도 많아지는 법이니.”
린은 말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몇 년 전이었다면, 밀라이라가 머리맡에 앉아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자식으로서 로렌스가 와 있었으리라.
그때에는 유니스 백작 부인과 그녀의 딸들도 불려올 것이다. 멀리 사는 딸에게도 소식을 전했을 것이다.
감정이 어떻든 간에 로이가르 대공도 동생으로서 침실 한쪽에 서 있었을 것이다. 대공비도 침대 곁까지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넸으리라.
하지만 이 자리에는 황후와 세드릭밖에 없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껍데기만 남겨놓은 황후와, 정치적으로 필요하여 아들로 삼고서 또다시 견제하려던 황태자뿐이다.
황제 그레고르는 아직 건재했으나 인간 그레고르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틀어쥐고자 했던 제국조차도 손에서 흘러나가고 있다. 제국이 안태했다면, 황제의 병을 극비로 다룰 이유가 없으니까.
그에게는 딸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들은 기밀을 공유하기는커녕 중대한 일을 결정하는 자리에 들어오지도 못할 것이다.
적법한 상속권이란 그런 것이다.
“황태자 전하.”
린은 의식이 없는 황제를 내려다보고 있는 세드릭을 불렀다.
세드릭이 고개를 들었다.
황후가 말했다.
“어찌 그리 심약한 얼굴을 하고 있느냐?”
“황후 폐하…….”
“황제가 쓰러졌다. 하루 이틀 사이에 눈을 뜬다면 좋겠으나, 그러지 않는다면 마땅히 네가 대신해야 할 것이다.”
“…….”
세드릭은 형언할 수 없는 기분으로 황후를 바라보았다.
린 재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 폐하의 말씀이 그르지 않습니다.”
“알고 있네.”
하필 이처럼 나라가 사방팔방으로 위태로운 시기에 황제가 쓰러지다니.
세드릭이 아무리 애써도, 당장 황제의 부재를 완벽하게 지우고 그를 대신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또 어찌 생각하면 천운이 있는 것처럼 적절한 시기이기도 했다.
황태자 책봉식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지만, 황제는 그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더 시간이 있다면, 황제가 키운 적대 세력이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면, 즉위하더라도 치세 전반 동안 골칫거리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황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설마 각오가 모자란 것이냐?”
“아닙니다.”
세드릭은 짧게 대답했다.
각오는 세운 지 오래되었다. 돌아와 아르티제아를 다시 만났을 때가 아니라 그 이전에.
비열한 인간이 되어도, 누대에 악인으로 남아도 좋으니, 로렌스를 끌어내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때에 말이다.
린이 끼어들었다.
“조금 더 지켜보시지요. 폐하께서 당장 몇 시간 후에라도 눈을 뜨실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신중한 그가 생각하기에, 아직 그런 말이 오가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세드릭을 보호하려면, 확신이 들었을 때에 그가 귀족과 관리들과 연명하여 대리청정을 청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마땅했다.
린의 말에 어의가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드릭이 말했다.
“경의 말이 옳다. 폐하께서 눈을 뜨실 때까지 일단 회의에서 결정한 사안들도 보류하도록 하지. 매년 전례대로 해오던 일이나 시일이 아주 급한 문제만 내가 보겠네.”
“예, 전하.”
“가얀 경, 근위대에도 될 수 있으면 이 사실이 퍼뜨려지지 않도록 주의하게.”
“근위 기사들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고 침실을 직접 지키겠습니다.”
“호위에도 신경을 써야 할 걸세.”
“예. 오늘 이미 상황을 알게 된 자를 위주로 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게.”
가산이 근위 기사들을 소집해야겠다며 침실 밖으로 물러갔다.
린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소곤거림에 가까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관리들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단속하겠습니다. 하지만 황궁 안에는 손 쓸 수 없습니다. 특히 폐하의 수사 조직은…….”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비밀조직은 분명히 자신을 적대하여 움직일 것이다.
‘알고서도 떠난 건지, 몰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지금이 바로 당신이 필요한 때인데.’
세드릭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