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7
악녀는 두 번 산다 27화
어제 이츠 남작의 도박장에서 인신매매의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 그는 아주 잠시 동안 갈등했었다.
그 일이 대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확대되면 다이아몬드를 되찾는 것이 언제가 될지 불확실해진다.
다이아몬드를 되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신매매와 뇌물수수에 관한 정보를 쥐고 카멜리아 후작 부인과 협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갈등은 아르티제아에게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없다는 죄책감을 누르기 위한 시간이지, 진짜로 고민을 한 시간은 아니었다.
“저는 이 문제를 협상 무기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영애와의 약속을 어기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요. 그리고 영애는 제가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전하는 언제나 저를 부끄럽게 만드시네요. 제가 성녀 올가의 심장을 달라고 말한 것이, 진짜로 그 보석을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이미 아셨을 텐데요.”
“압니다. 영애는 아마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제가 이 일에 관여하게 되기를 바라셨겠지요. 단순히 인신매매 사건을 처리하는 게 문제라면 키쇼어 경에게라도 말씀하셨으면 될 일이니까요.”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세드릭에게 직접 이츠 남작의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만일에 그랬다면 세드릭은 치안청에 맡겨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절차적인 문제부터 고민했을 것이다. 부패한 치안청이 사건을 축소하려고 시도할 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청혼 선물을 구하려고 보석상을 만났고, 죄 없는 보석상이 당한 일 때문에 강경하게 이츠 남작의 도박장을 압박했다. 그 결과 인신매매 현장을 목격하고 분노한 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 좀 더 그 분노를 앞세워 일에 직접 관여해도 되리라.
그리고 그는 단숨에 먼 국경의 영웅이 아니라 민중을 생각하는 진정한 귀족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 뜻을 세드릭은 어젯밤 사이에 이미 이해했다.
단순히 그녀가 갖고 싶은 보석을 찾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아르티제아가 다이아몬드를 찾지 못하리라는 것을 몰랐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하러 오고 싶었다.
청혼 선물이라는 단어에는 일종의 낭만적인 울림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것에 마음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그러자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숙였다.
“사죄드려야 할 건 제 쪽이에요.”
“예?”
“그 보석은 제가 이미 확보했습니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하고 침실에 다녀왔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세드릭의 앞에 보석 상자를 내려놓고 뚜껑을 열어 보였다.
“이 다이아몬드가 성녀 올가의 심장입니다.”
목걸이가 찬연한 빛을 뿌렸다.
중심 되는 보석인 성녀 올가의 심장도 훌륭했으나 주변을 장식한 보석들도 크기만 작을 뿐이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세드릭은 예술적 안목이 없었지만, 그 목걸이가 얼마나 신경 써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언제……?”
“새벽에 카멜리아 후작가에 다녀 왔어요.”
아르티제아가 대답했다. 세드릭은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상대로는 아무리 놀라도 모자람이 없었다.
“정보가 무척 빠르시군요. 어젯밤 10시 넘어서 제가 그 도박장에 갔던 것 같은데.”
“이츠 남작 같은 자를 진심으로 따르는 자는 없어요. 일하는 사람도, 동료들도, 모두 돈으로 연결된 사이일 뿐더러 고용인도 자주 바뀌지요. 몇 푼의 돈으로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은 아주 많아요.”
“그러니 간밤에 제가 그 도박장에 갔다는 것을 알고, 바로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찾아가신 거군요.”
아르티제아는 조심스럽게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실망하셨나요?”
아르티제아는 다시 시선을 들어 세드릭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로렌스에게 진언할 때에는 늘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야 그가 화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드릭과 대화할 때에는 눈을 맞춰야 한다.
세드릭은 이해를 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로렌스에게 말하는 것이 제비뽑기의 제비를 만들어 제시하는 것과 비슷하다면, 세드릭은 대화를 하려 한다.
그게 얼마나 자신을 가슴 떨리게 하는지 그는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세드릭은 되레 놀라며 되물었다.
“제가 어째서 실망을 하겠습니까?”
“전하를 기만했으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애는 처음부터 그 보석이 수단임을 분명히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영애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게 되리라고요.”
가슴 안쪽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화는 납니다. 영애가 그릇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저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하…….”
“영애가 제게 결혼을 청한 것을, 저는 손을 잡고 인생을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일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비록 남녀 문제로 시작하지는 않았으되 같은 목표로 갈 동반자가 아닙니까?”
“달라요.”
아르티제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음에 일어나는 파도를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략결혼을 말씀드렸으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합니다. 제가 스무 살이 넘었고, 로렌스의 누이동생이 아니었다면, 그런 청을 드리는 대신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더더욱 영애는 저를 믿었어야 합니다. 영애가 하는 모든 일이 저의 책임이 될 테니까요.”
세드릭은 조용하게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저었다.
“전하께서 권도와 모략을 싫어하신다는 걸 알고 있어요. 아마도 이번 일도, 이해는 하실지언정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는 인신매매의 피해자를 두고 권력을 위한 술수를 부린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시겠지요.”
“호오는 호오에 불과합니다. 영애가 제게 부족한 부분을 대신하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드릭이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영애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제게 한 가지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스스로 깨닫지 못하셨습니까?”
“네?”
아르티제아가 그를 돌아보았다.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의 명예와 지금 당장의 정의를 포기하고, 오욕을 뒤집어쓰라고 말씀하고 계시지요. 처음 만난 날 했던 이야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애의 ‘방식’을 저는 이해했습니다.”
“전하…….”
“똑바로 뻗은 바른 길은 아니죠. 그러나 옳은 결과를 내었습니다.”
세드릭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 부관 중에 프레일이라고 하는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이 그러더군요. 옳은 일을 위해서 잠시간 절차적 정당성은 포기해달라고, 저 역시 화이트의 복수를 해주려고 이츠 남작의 도박장에 기사대를 이끌고 간 시점에서 완전히 옳은 사람은 못 됩니다.”
“네…….”
“반듯한 길만으로는 권좌에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러니 제게 모두 말씀하십시오. 아니, 제가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니 필요하다면 다 끝난 후에 말씀하셔도 됩니다. 다만, 이 모든 일을 저의 책임으로 짐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르티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드릭이 조금 강하게 말했다.
“대답하십시오.”
“……네. 전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그는 아르티제아를 받아들이기로 했어도 여전히 한없이 흰색에 가깝다. 어떻게 감히 아르티제아가 그럴 수 없노라고 고개를 젓겠는가.
하지만 대답을 했어도 아르티제아는 그 말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아직까지는 그가 알아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공개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책임지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로렌스가 그랬던 것처럼, 언제든 그녀 하나만 잘라내면 그는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도 그 말이, 마음이, 무척 고마웠다.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전하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예?”
갑작스러운 말에 세드릭은 움찔 몸을 굳혔다.
“전하는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 고난을 겪으셨지요. 아랫사람을 무시하거나 사람으로도 여기지 않을 수 있는 처지이셨고, 혹은 스스로를 동정하고 연민하여 자기만의 세계에 파묻히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하의 마음은 언제나 민의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시지요.”
“아…….”
세드릭이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 긴장시켰던 폐부에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이야기였나.
괜스레 어색해져서 세드릭은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아르티제아가 자신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만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사이이다.
그러나 아르티제아의 말에는 이상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세드릭이 세상을 더 낫게 바꿀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은 잠시 동안 말없이 차를 마셨다. 찻주전자가 빌 무렵에 세드릭이 말했다.
“여기를 나서면 바로 린 재상에게 가볼 생각입니다.”
“네. 린 재상님은 공정하고 훌륭한 분이시죠. 좋은 결정을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정치와 상관없는 군부의 인물이고 아직은 그 이미지를 포기하실 필요가 없으니까요. 가끔 한 번씩 일이 되어가는 과정을 확인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세드릭이 물었다.
“성녀 올가의 심장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황후 폐하께 바칠 거예요. 소중한 친구의 유품이니 그분께서 보관하시는 게 옳겠지요.”
“알겠습니다.”
아르티제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운하신 것은 아니시지요?”
“페셔 자작가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그럴 계획이실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서운할 일이 무어 있겠습니까?”
사실은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세드릭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선물이 없어졌으니 화려한 청혼은 어렵겠군요.”
아르티제아는 뭐라고 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
세드릭이 품에서 작은 벨벳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그 주머니를 열어 자신의 손바닥 위에 다이아몬드 팔찌를 털어냈다.
“손을 주십시오.”
아르티제아는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가 성녀 올가의 심장만큼 큰 보석을 귀한 상자에 담아 가지고 왔더라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이아몬드 팔찌에는 역사도, 정치적인 가치도, 남들이 유심히 볼 만한 특징도 없었다.
에브론 대공의 청혼 선물로 쓰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했다.
그래서 아르티제아를 더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그 팔찌를, 자신을 위해 사 온 것일까?
세드릭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목에 그 팔찌를 채웠다.
“청혼 선물은 이것으로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이것은 형식에 불과하다. 세드릭은 비슷비슷한 청혼의 말 중 하나를 골라 말한 것이다.
진짜 뜻을 표현하자면, “당신을 동료이자 신하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드릭의 생각은 달랐다. 성녀 올가의 심장이 아니라 이 다이아몬드 팔찌는 그가 아르티제아를 생각해서 고른 것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그에게는 더 의미 깊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