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70
악녀는 두 번 산다 269화
리시아는 독방에 갇혀 있었다.
감옥은 아니었다. 방에는 깔끔한 침대와 벽난로가 구비되어 있었고, 벽에는 태피스트리도 걸려 있었다.
티 테이블과 의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감옥이라는 데에는 차이가 없었다.
리시아는 의자를 끌어다놓고 올라서서 높이 뚫려 있는 작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창문은 고작해야 손바닥 두 개만 한 크기였다. 거기로는 다섯 살 난 아이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었다.
건물은 수도원이었다. 건물 전체가 돌로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고,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적과 몬스터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서부에는 이런 수도원이 아주 많았다.
아마도 담장 밖에는 인적 없는 벌판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수도원은 원래 세속에서 떨어져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용해서 역으로 버려진 수도원을 거점으로 삼은 모양이었다.
‘둘, 넷…….’
리시아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횃불의 개수를 세었다.
마흔 개도 넘었다. 세 개당 한 명의 감시병이 있더라도 17명은 된다는 뜻이었다.
‘나를 끌고 온 게 50명……, 거점을 지키고 있었던 게 적어도 30명은 될 텐데…….’
어젯밤에 왁자지껄하면서 몰려들던 자들을 생각해보면 아마 그 이상일 것이다.
탈출은 불가능했다.
리시아는 등허리에 꽂아놓은 권총을 의식했다. 에브론의 문장이 새겨진 세드릭의 권총이었다.
하지만 총알은 한 발뿐이었다.
애당초 무기로 쓰려고 갖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세드릭도 직접 쏘라고 준 것은 아닐 것이었다.
그 권총은 유사시에 에브론의 신하들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전과 달리 리시아가 성녀도, 대공의 약혼녀도 아니고 모르텐 소남작에 불과했으니까.
만약의 경우에 에브론 기사단을 움직이라고 준 것일 것이다. 리시아 자신을 위해서. 또 아르티제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서부로 온 뒤에는 쓸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르티제아가 그녀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고, 또 호위를 붙였기 때문이다.
리시아는 그것을 일종의 부적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간직했다.
하지만 지금은 차라리 갖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로렌스의 손에 넘기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모든 명령이 동시에 모든 지역에 내려질 수는 없다. 들키면 이 권총이 엉뚱한 곳에 쓰일 수도 있었다.
운이 좋아 몸수색을 당하지 않고 끌려왔다. 하지만 당장 오늘 밤에라도 들킬 것이다.
그러니 숨겨야 했다.
몸에 숨길 수는 없었다. 그 권총은 결투용도, 호신용도 아니라 전쟁용, 그것도 손이 큰 세드릭을 위해 따로 제작된 것이다.
‘창틀? 벽난로? 침대 매트 안?’
불안해서 방에 숨길 수는 없었다.
로렌스의 거점은 한 곳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정해진 거점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방에 숨길 수는 없다. 챙기지 못하고 끌려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래도 로렌스의 손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차라리 창밖으로 던져버릴까? 하지만 그랬다가 감시병이 주우면 어차피 마찬가지였다.
리시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미칠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이 한 발로 자결해 버릴까?
그것이 제일 깔끔한 결말이 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더 이상은 고통받지 않을 수 있도록.
‘그럴 수 없어. 그러면 안 되는 거 나도 알아.’
리시아는 빙글빙글 방 안에서 돌았다.
「괜찮아.」
알폰스가 그렇게 말했었다.
「괜찮아. 이게 내 역할이니까. 그리고 나는 네 생각보다 훨씬 강해.」
그러니, 목숨으로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달아나라고.
그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의 목숨을 두 번이나 바쳐서 살아남은 리시아는 결코 괜찮지 않았다.
알폰스만이 아니었다. 죽은 기사들은 모두 그녀와 어려서부터 알던 사이였다.
관리와 사제도 자발적으로 그녀를 따라 역병이 도는 곳만 찾아다닌다는 쉽지 않은 일을 함께 해주던 사람들이었다.
그녀를 지키고 죽은 기사들의 목숨과, 그녀 때문에 죽은 사제와 관리들의 목숨 또한 그녀의 생에 얹혀 있었다.
이 비극을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 겪고 싶지 않았다.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성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 않았고, 황궁을 바라보고 싶지도 않았다.
용서나 경애와는 별개로, 이번에는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서부로 달아났다.
북부로 달아났어야 했을까? 다하지 못한 일이라든가, 미련 따위는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 잊어버렸어야 했을까?
그깟 성녀라는 이름이 무엇이라고. 이제 그녀는 성녀도 아니었다.
성력은 남았으나 그녀에게 임했던 신의 목소리는 이미 사라졌다. 아르티제아가 신탁을 받았다고 했다.
리시아는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신은 처음에 사람을 잘못 골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돌이키기 위해 시간을 되돌린 것이 틀림없다고 리시아는 생각했다.
그러니 신의 뜻에 따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물러나는 게 옳았을지도 모른다.
리시아는 권총을 뽑아서 한 발밖에 뺨에 흘러내린 눈물을 소맷자락으로 닦았다.
이제 눈물 같은 것은 더는 흘리지 않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비탄이 견딜 만해지는 날은 결코 없었다.
하지만 살아야 했다. 살아만 있으면, 세드릭과 아르티제아가 언젠가는 구하러 올 것이다.
서부의 역병은 결국 그녀의 치유력이 있어야만 고칠 수 있다.
여기에서 로렌스의 비위를 사납게 만들어서 살해당하면, 역병은 결국 병자를 모두 죽여야만 끝날 것이다.
리시아는 권총을 뽑았다. 그리고 총알을 빼내서 옷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권총을 벽난로 안에 숨기려 했다.
그때였다.
똑똑.
소심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시아는 깜짝 놀라 재빨리 권총을 다시 등허리에 꽂았다. 그리고 물었다.
“누구세요?”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열여덟은 넘지 않았을 소녀가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 드레스를 들고 있었다.
“저어, 아, 안녕하세요……. 오,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시중을 들어드리라는 말을 듣고, 왔어요.”
강제로 끌려왔는지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리시아는 소녀의 얼굴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베냐.”
베냐가 깜짝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절 아세요?”
“…….”
리시아는 입술만 깨물었다.
그립지만, 결코 다시 만나기를 원치 않았던 얼굴이었다.
다시 만난다는 것은 그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불행이 닥쳤으리라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베냐에게는 그 슬픔과 불행이 닥쳐왔을 것이다. 로렌스가 무엇 때문에 그녀를 끌고 왔을지는 명백했으니까.
‘미안해.’
사과를 입 밖에 내어 말해도, 베냐는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할 것이었다.
“집에는……, 별일 없니?”
애써서 리시아는 그것을 물었다.
베냐가 겁먹은 얼굴을 숨기지 못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일 없다고 말하라고 강요당한 건 아니고?”
“아, 아직은, 아무 일 없어요.”
영리한 베냐는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가씨를 잘 모시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어요.”
리시아의 눈에 눈물이 고여 들었다. 닦아낸 뺨 위로 또다시 맑은 눈물이 구슬방울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렇구나.”
“아가씨, 괜찮으세요?”
베냐가 리시아의 얼굴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리시아는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괜찮았다. 자신이 괜찮지 않으면 베냐는 또다시 가족과 고향을 잃게 될 것이었다.
그럴 수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넌…… 무사히 돌아가게 될 거야.”
리시아는 애써 말했다. 말하면서도 몇 번이나 목이 메었다.
“갈아입을게. 도와줘.”
리시아는 이 이상 충격받을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냐가 가져온 드레스를 펼쳤을 때에, 아이보리색 실크 위에 같은 색 레이스를 씌우고, 가슴 아래에서 한 번 묶은 후에 하늘하늘하게 늘어뜨리는 그 드레스는 따뜻하고 성결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없는 스타일이었다. 과거에 리시아가 황태자비가 되었을 때에, 성녀의 결혼식을 위해 최고의 재단사들이 정성을 다해 디자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리시아와 무관하게, 사람들이 원하는 치유하는 성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 웨딩드레스가 그대로 유행이 되었다.
무채색 계열의 부드러운 실크와 얇은 레이스가 사교계를 점령했다. 리시아도 다시 이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었다.
어떻게 로렌스는 이것을 그녀에게 다시 입히려 할 수 있단 말인가?
고통스러웠던 과거가 현실이 되어서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과거로 돌아오면서 모두 사라졌을 터인데. 더 이상 자신은 성녀도 아니고 황후도 아닐 터인데.
세상도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역사를 밟아가게 될 텐데.
그런데도 자신에게는 모든 게 반복되는 것 같았다.
리시아는 비틀비틀 의자에 주저앉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베냐의 앞에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눈가를 손으로 덮었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리시아는 숨죽여 울었다.
베냐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러지 마세요. 아가씨가 우시면…….”
베냐는 가슴이 조여들 듯이 아픈 것을 느꼈다.
그녀는 스스로 동정심 많은 성격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심각한 문제에 빠져 있는 것은 마적에게 끌려온 베냐 자신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뭔가가 잘못되면, 습격당할 베냐의 마을이었다.
이런 본 적도 없는 고급 실크 드레스를 입게 될 숙녀가 아니라.
그런데도 슬프고 기가 막혔다. 이름도 모르는 이 사람이 우는 것이 가슴을 찢어놓을 것 같았다.
“그러지 마세요.”
베냐는 리시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리시아의 뺨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제 초라한 옷으로 그러는 게 꺼려졌다.
베냐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리시아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로렌스.”
리시아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마치 등 뒤에 베냐를 숨기려는 듯이 그녀의 앞으로 한 걸음을 나섰다.
베냐는 자신의 손을 힘껏 잡고 있는 리시아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고 뭘 하고 있어? 베냐에게 받지 못했어?”
로렌스가 평화롭게 말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로렌스 자신은 정말로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머리는 깔끔하게 넘겼고, 옷은 수수하지만 단정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본디 그는 그 이상의 장식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수도에서 무도회에 참석한 사랑스러운 청년이었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리시아는 괴물을 바라보듯 그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