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73
악녀는 두 번 산다 272화
24. 대리청정
황제가 의식을 되찾은 것은 열흘 후의 일이었다.
그는 눈을 떴지만, 정신을 바로 차리지는 못했다. 시야가 희끄무레했다.
가슴 졸이며 밤낮 없이 곁에 붙어 있었던 의사가 화들짝 놀라 그에게 달려들었다.
“폐하, 정신이 드십니까? 제가 보이십니까?”
피로로 도로 눈을 감으려던 황제는 그 부름에 도로 깨어났다.
하지만 시야는 여전히 흐리멍덩했다.
팔다리는 굳은 듯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날 때에 다리나 손가락이 저린 것은 수년 된 일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쌓인 피로가 한계에 도달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온몸이 아픈 것은 처음이었다.
젊었을 때에 부상당하거나 혹사한 곳이 아니라, 온몸이 아렸다. 전신의 피부에 통각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정도였다.
황제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의사가 눈치 빠르게 그의 입에 대롱으로 물을 조금 흘려 넣어 주었다. 그리고 적신 수건으로 입술을 축여주었다.
황제는 갈라진 목소리로 힘들게 말했다.
“짐이…… 어찌된 게냐?”
“쓰러지셨습니다.”
의사가 울상이 된 채로 말했다.
아무도 그를 책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만큼 지난 열흘 동안 두려움에 떨었던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행여 그간 쓴 처방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지병에 대한 진단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적어도 응급처치는 잘못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황제가 눈을 몇 번 더 깜박거렸다. 시야가 조금 돌아왔다.
‘쓰러졌다고…….’
언제 그랬는지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황제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
“짐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
“폐하…….”
“거짓을 고할 필요는 없다. 희망을 주려고 허튼 소리를 하여 짐의 판단을 그르쳐서는 아니 된다.”
의사는 머뭇머뭇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변 상태가 많이 좋지 않으십니다.”
황제는 벌써 몇 년에 걸쳐서 그 문제에 대해서 경고를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를 추궁하지 않았다.
“제법 조심했다고 생각했는데.”
“죄송합니다.”
의사가 납죽 엎드려 벌벌 떨며 말했다.
황제는 그를 꾸짖지 않았다. 대신 느리게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찌해야 하느냐?”
의사가 마른침을 삼켰다.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인해 몸이 상해가는 속도가 가속화될 것이다.
“식이 제한을 전보다 철저하게 하셔야 합니다. 기후가 좋고 한적한 곳에서…… 정양하셔야 합니다.”
“그것뿐이냐?”
황제의 물음에 의사는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기력이 나는 음식 대부분이 먹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까지 철저하게 관리하셔야 합니다.”
“…….”
“그러니 전처럼 하시면 아니 되십니다. 쉬셔야 합니다. 한 번이라도 더 쓰러지시면, 그때는 저승신과 성녀 올가가 살아와도 폐하를 구할 수 없을 겁니다.”
그 말은 황제의 머릿속에 퍼뜩 뭔가를 떠올리게 했다.
“황태자비는?”
“예?”
“아니다.”
의사는 황제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아니다.”
황제는 중얼거렸다. 자기가 허튼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시종장이 대신 대답했다.
“달리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수사관을 부를까요?”
그것은 물론 퍼거슨이 아니라 비밀 수사관을 말하는 것이었다.
황제가 황태자비를 중요하게 여기니, 수도를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행적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되었다.”
벌써 너무 피곤했다.
자신이 병석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는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평생 정력적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몇 마디 말을 했을 뿐인데도 기력이 없었다. 그 사실이 그를 더 지치게 했다.
“다시 주무시기 전에 수프라도 조금 드셔야 합니다.”
시종장이 부드럽게 말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 발치에 서 있던 근위 기사가 안절부절못했다. 황제가 깨어나기를 중신들이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시종이 바깥에 소식을 알리러 나갔다. 예민한 기사의 귀에는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초조한 발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시종장이 입을 열지 말라고 입술에 손가락을 대어 자제시켰다.
황제는 수프를 반 그릇쯤 마셨다. 그리고 조금 내려갈 때까지 기다리며 앉아 있다가, 문득 중얼거렸다.
“밀라이라가 보고 싶구나.”
그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드릭이 불려간 것은 황제가 다시 한 번 잠들었다가 깬 뒤의 일이었다.
황제는 한 번 더 식사를 하고, 시종을 시켜 얼굴에 화장을 했다.
조금이라도 건강해 보이기 위해서였다.
“짐이 이미 맡긴 일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고?”
“폐하께서 건재하시는데, 제가 국정을 어떻게 임의로 처결하겠습니까?”
“짐이 부재중이라면 마땅히 황태자가 짐을 대신하여 정무를 보아야 하는 법이다.”
“통상적인 정무나 조사 활동에 대해서는 제가 임의로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결단이 필요한 일에 대해서는 폐하의 재가를 얻는 것이 마땅하니까요.”
그러니까 황제가 깨어나면 언제든 결정할 수 있도록 준비만 해두었다고 세드릭이 말했다.
황제는 먹먹한 기분으로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답답하고 짜증스러웠다. 이 충실함이 진심인지, 아니면 아직 군권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아니면, 어차피 죽을 몸이라 생각하여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인가.
의사는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세드릭에게 가장 먼저 보고했을 테니까.
세드릭은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었다. 아르티제아의 말처럼.
세드릭은 아내와 자식을 위해 잃어버린 부모에 대한 원한을 땅에 묻었다.
그 아내를 죽으라고 서부로 떠밀어 보냈다.
원한을 품지 않는 쪽이 이상했다. 만일에 자신이었다면,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은 자에게는 복수할 수 없는 법이다.
“짐에게 병이 있음을 의사에게 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밀린 국정을 돌볼 만한 기력은 없다. 그것을 알고 있을 터인데, 충분한 권한을 가지고서도 짐의 재가를 기다리다니. 이는 오히려 짐을 기롱하는 일이 아니냐?”
“임의로 처결했다가 폐하께서 처결을 취소하시면 국력이 낭비될 따름이라, 그것을 염려했을 따름입니다.”
황제는 세드릭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세드릭은, 자신이 무엇을 했든 간에 황제가 깨어나면 모두 취소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후우…….”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나서 황제는 목을 젖혀 쿠션에 몸을 푹 기대었다.
아직 잘 관리하라는 단계까지 오지도 못했다. 국정을 팽개쳐 놓을 수 없어서 오늘 하루만 사람을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아직 그는 마음으로 현실을 다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린.”
“예, 폐하.”
“경이 황태자를 보좌하여 국정 전반을 보살피게.”
“예, 폐하. 신명을 다하여 받들겠습니다.”
린이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드릭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그렇게만 답했다.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적어도 권력 이양에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황제는 세드릭이 이제 자기 감정을 숨기는 것을 넘어서서 위장할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자기가 아르티제아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세드릭이 우울한 얼굴인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몸이 아프니 도무지 생각이 하나로 연결되어 이어지지 않았다.
“처의 일로 짐을 원망하고 있느냐?”
“……티아는 폐하께서 보내지 않으셨어도 서부로 갔을 겁니다.”
세드릭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식은 받아 보고 있고?”
“……시녀가 보내고 있습니다.”
황제는 어두운 눈으로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돌아오라고 일러라.”
“폐하.”
“짐은 이제 병들었고, 너와 네 아내를 해칠 힘이 없다. 그러니 돌아오라고 해라.”
현실적으로 그랬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까지 아르티제아를 해치울 이유가 있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레티샤를 후계자로 삼고 싶어도 이런 몸 상태로는 이미 늦었다.
어차피 세드릭에게 계위할 수밖에 없다면, 아르티제아와 화해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성녀였다.
황제는 아르티제아의 성력이 성물의 기적을 되돌려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었다.
미엘르가 회복될 때에 성녀 올가 상이 있었다. 서부에서 리시아가 성녀의 대리인으로서 성물을 가지고 다니며 역병을 치유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었다.
주교회의도 같은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짐이 너희 부부에게 여생을 의탁할 것이다.”
황제가 말했다.
아르티제아에게 목숨을 맡길 수 있는가? 그럴 수 없었다. 불안해서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그랬다.
세드릭은 국정이라든가 계위 과정에서 일어나는 잡음이 정국에 영향에 미칠 것을 고려하겠지만, 아르티제아는 아니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믿지 않았던 신에게 수십 년 만에 기도하고 싶어졌다. 그러면서도 의심과 초조가 가슴 속을 긁었다.
‘늙는다는 게 추하군.’
황제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목숨을 걸고 뛰어 들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망극합니다.”
세드릭이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그 정수리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고 눈을 감았다.
“물러가 책무를 다해라, 황태자.”
“예.”
세드릭이 대답하고, 물러났다.
황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종장이 그를 다시 눕혀주었다. 황제는 곧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