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74
악녀는 두 번 산다 273화
황제가 마지막으로 유언장을 작성했던 것은 밀라이라가 유배된 직후의 일이었다.
황제가 아니라 그레고르 개인이 소유한 재산이 적지 않았다.
생모가 그에게 남겨준 재물로 즉위 전까지 불렸던 것도 있었다. 선황후의 양자로서 양모의 재산도 상속했다.
황제는 유언장에 두 딸과 손자 손녀, 멀리 보내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 생모 쪽의 피붙이와 선황후의 친정 가문에 상속시킬 가산에 대해 썼다.
그리고 말년에 총애한 안마사와 악사, 오랫동안 그를 섬긴 마부와 충실한 시종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줄 돈과 물건에 대해서도 결정해 두었다.
로렌스에게는 상당한 양의 이권과 재산을 상속해 주고, 새로 일가를 세울 수 있도록 해줄 작정이었다.
세습 작위를 새로 만드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불가능할 것도 없었다.
로렌스가 실책을 저질러 실각했을 때에, 이미 마음으로 그렇게 결정하고 있었다.
할 일이 아주 많았다.
황제는 자신이 죽음 앞에 서면, 이런 일들을 이성적으로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년을 정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면서도, 황제는 하지 않았다. 이성의 명령을 손발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황제는 매일 저녁 비서를 따로 불러 국무회의에 참석하게 했다.
서기관이 그날 황태자 집무실에서 나간 명령을 모조리 정리하여 황제의 침실로 가져왔다.
물론 황제는 그것을 읽지 못했다. 기력이 없는 데다가 눈이 침침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종이 대신 읽어주었지만, 듣는 것만으로 내용을 온전히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그것은 그저 자신이 아직 완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고 발악하듯 알리는 것 이외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손님을 받지는 않았다. 쇠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니스 백작 부인만이 매일처럼 만나러 왔다.
“애들은 안 데려왔어요. 아바마마께서 피곤하실까 봐서요.”
“잘했다.”
황제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지 않을 사람처럼 행세하고 싶으면서도, 병석이 외로워지는 것이 싫었다.
“죄송해요.”
유니스 백작 부인은 황제의 손을 잡고 그렇게 말했다.
“뭐가 말이냐?”
“이렇게까지 악화되신 줄 알았으면, 꿀 같은 건 가져오지 않는 거였는데.”
“그게 어찌 네 탓이겠니?”
황제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아 흔들고 말했다.
“의사도 몰랐으니. 그거 몇 잔 때문에 짐이 이리 되었을까?”
황제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식으로 꾸짖고 한탄하며 보복하면 끝이 없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잠시 그대로 황제의 손을 잡고 있다가 말했다.
“그레이스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건 먼 지방 귀족과 결혼하고 싶다고 황제에게 청했던 또 하나의 딸 이야기였다.
황제는 그레이스를 조시아 백작과 결혼시켰다. 그는 야심이 없고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토지를 가꾸며 살아가고자 하는 자였다.
조시아 백작가가 있는 곳은 수도에서 꽤 멀었다. 부부는 수도에 올 이유가 없다며 장원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황제는 움푹 팬 눈으로 유니스 백작 부인을 바라보았다.
“괜한 일을 했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그레이스가 올라오면, 남들이 이렇게 저렇게 정치적으로 생각한다, 그런 말씀 하실 거 아니시죠?”
“그것도 중요하지.”
황제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나중에 그레이스에게 원망받으실 거예요.”
“글쎄다.”
“그레이스가 낳은 아이들도 보셔야죠.”
“그건, 그렇지.”
“막내는 한 번도 못 보셨죠?”
“초상화를 보내준 적이 있었지.”
“걔가 올해 다섯 살인데, 아바마마를 쏙 빼닮았어요. 성격은 제 엄마 아빠를 닮아서 책만 읽고 있는 게 판박이이지만요. 다섯 살인데 벌써 글을 다 읽을 줄 안답니다.”
“똑똑하구나.”
황제는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남편은 요즘 어떠냐? 하는 일은 잘되고?”
“네, 그럼요. 아바마마가 마음 써 주신 게 얼마나 많은데요.”
“세드가 혹독하게 굴거나 그러진 않고?”
“그런 일 없어요. 염려 마세요. 오히려 지난번 항구 화재 때문에 생긴 일을 그이가 이것저것 도와준 모양이에요. 그 뒤로 고맙다는 편지도 따로 왔어요.”
“그렇구나.”
유니스 백작 부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황태자비에게 빨리 돌아와 달라고 편지를 썼어요. 화내지 않으실 거죠?”
“티아에게?”
“네. 성녀잖아요. 모르텐 소남작이 황태자비가 맡긴 성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역병을 고쳤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
“서부가 큰일인 것은 알지만, 아바마마의 건강보다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요.”
“마음 써주어서 고맙구나.”
유니스 백작 부인이 일부러 활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렌스는 언제 돌아온다고 하던가요?”
“소식을 보내라고 하긴 했다.”
사실 황제가 로렌스의 소식을 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로이가르 대공의 일이 있은 직후에 한 번 연락을 보냈다.
그렇게 큰 사건이 터졌으니 로렌스의 실책은 묻힐 때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동부를 분열시키려는 상황에서 로렌스를 계속 거기에 있으라고 하는 것이 마음에 꺼려졌다.
당장 정계에 다시 입각시킬 생각은 없었다. 수도 인근에서 지내게 하면서 직접 살필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철이 들면, 작은 일 정도는 맡길 수 있게 되겠거니 했다.
하지만 로렌스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감시 겸 호위로 딸려 보낸 자에게서 별일 없다는 보고만 정기적으로 보내져 왔다.
자존심 강한 놈이 분하기도 했을 것이다. 황제는 그렇게 생각하고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오래 보지 않았더니 오히려 애틋했다.
황제는 밀라이라도 조용히 불러들이라고 명령했다. 유배를 풀어줄 수는 없지만, 로렌스와 함께 안정된 곳에서 조용히 생활하게 해줄 작정이었다.
“곧 연락 오겠죠.”
유니스 백작 부인이 위로하듯이 황제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때까진 저 하나로 만족하세요.”
황제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소식이 오지 않았다.
올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그렇다는 연락이라도 와야 했다. 하지만 로렌스는 위독하다는 전언에도 편지 한 장 보내지 않았다.
밀라이라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 드넓은 서부를 빠르게 가로질러 달려올 수는 없어도, 전령이 미리 소식 정도는 알리는 게 당연했다.
“혹시 동부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냐?”
시종장이 송구한 얼굴로 대답했다.
“황공합니다, 폐하. 조금 더 기다려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로렌스 경이 있는 곳이 그리 가까운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음…….”
“걱정하시다가 몸이 상하실까 두렵습니다.”
황제는 그 말도 옳다고 생각하여 그날은 넘어갔다.
먼 곳의 소식은 기다릴수록 오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틀 후에 황제는 퍼거슨을 불렀다.
“혹, 동부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느냐?”
“최근에 새로 생긴 일이라면 파엘란 백작가과 하멜턴 자작가 사이에 일어난 분쟁뿐입니다. 어린 레스는 백작의 후견인 자리를 놓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 대답은 너무 뻔하고, 성의가 없었다. 황제가 필요한 것은 좀 더 자세한 정보였다.
“그런 것 말고 군사 행동으로 나선 자가 있느냐는 뜻이다. 로렌스에게 보낸 전령이 당도하지 못할 만한 이유가 있느냐?”
“제가 군정에 대해 무엇을 알겠습니까?”
퍼거슨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황제는 눈을 깜박거렸다.
퍼거슨이 동부의 동향을 보고받고 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역모에 얽혀 도주한 자들에 대한 일이 아닌가.
당장 군을 일으켜 토벌하지는 못해도, 퍼거슨이 관리하는 수사 조직은 당연히 빈틈없이 동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꼭 그래서만이 아니었다.
설령 전 같으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해도, 무조건 알아온다고 말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정보를 잡기 위해 뛰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태연하게 모른다고 하는 게 아니라.
이것이 황제가 확실하게 알아챈 첫 번째 균열이었다.
“물러가라.”
황제는 무표정한 채로 명령했다.
퍼거슨은 변명하지도 않고 송구한 얼굴인 채로 물러갔다.
황제는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벌써부터 피곤하고 눈이 감겼다. 그러나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퍼거슨은 기회주의자였다. 본디 그런 자가 권력의 향방에 따라 가장 먼저 태도를 바꾸는 법이다.
자신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절대로 그 자리에 퍼거슨을 유임해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황제는 시종을 불러 말했다.
“시종 콥을 불러와라.”
비밀수사관은 좀 더 은밀하게 불러들여야 했다. 그러나 황제는 혼자서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호출했다.
시종은 두 시간이나 지나서야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돌아와 납죽 엎 드렸다.
“화, 황공합니다, 폐하. 시종 딘스키 콥은 지난달에 해고되었습니다.”
“뭣?”
“폐하의 병환을 숨기기 위해서 본궁의 시종과 하인 여럿을 내보냈습니다. 그때 퇴출된 명단에 있습니다.”
황제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이냐?”
“내가 했어요.”
대답은 문간에서 들려왔다.
황제는 분기탱천하여 고개를 들었다. 검은 옷을 입은 황후가 거기 서 있었다.
머리에는 검은 망사 장식이 달린 검은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그 옷은 분명히 상복이었다.
“외출하려다가, 당신이 해고된 시종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명해주러 왔어요. 애꿎은 심부름꾼만 꾸중을 들을 테니까.”
“당신, 당신이…….”
“내가 본궁의 시종과 하인을 몇 명 갈아치우는 게 문제가 되나요?”
당연히 아무 문제도 없었다. 본디 황궁의 안살림은 황후가 하는 법이었으니까.
황후가 그중에 비밀수사관이 섞여 있는 줄 알고 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확실히 비밀수사관 하나의 이름을 황후에게 알려준 셈이 되었다.
“화내지 말아요. 그러다가 또 쓰러지면, 의사가 울면서 죽자사자 매달려도 깨어나지 못할 테니.”
“카트린……!”
“이 나이 되어서 몸까지 아픈데 공연히 엉뚱한 생각 하지 말고, 여생을 됨됨이 좋은 조카에게 의탁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하세요.”
황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제를 내려다보았다.
“애정도, 충성도, 혈통도…… 권력도, 증오조차도 모두 부질없죠. 안 그런가요?”
“큭……!”
황제가 짐승처럼 신음했다.
의사와 시종들이 달려들어 황제를 침대에 눕혔다.
“잘 모시려무나. 몸이 불편하신 듯하니.”
황후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녀의 뒤에서 문이 닫혔다. 이제 문 안에 있는 것은 황제였고, 문밖에 있는 것은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