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76
악녀는 두 번 산다 275화
퍼거슨이 말했다.
“퀼레 장군의 말에 따르자면, 딘스키 콥이 조만간 황태자 전하를 역모로 토벌하라는 황제 폐하의 밀명이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동조자들은 그 밀명이 나오는 순간 거사를 일으킬 것이다.
“그렇군.”
세드릭이 대꾸했다. 퍼거슨은 초조하게 다시 물었다.
“지금 체포하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당장은 군을 움직이기가 조금 애매합니다. 명분이 없습니다.”
프레일이 대신 대답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퍼거슨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물론 황제의 수사관이었던 퍼거슨은 이 이상의 증거를 필요로 했던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희가.”
“서두르지 마십시오, 퍼거슨 경. 지금 황명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음…….”
퍼거슨이 신음했다.
프레일의 말이 옳았다. 그의 조직이 황명으로 움직일 때에는 감히 저항하는 자가 없었다.
수사 조직에 무력이 부족할 때에는 근위대와 중앙군이 뒤를 받쳐주었다.
하지만 바로 그 근위대와 중앙군 안에 제거 대상이 있었다.
프레일이 물었다.
“명단은 있습니까?”
“있습니다. 추정 명단이고,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퀼레 장군은 황명을 받으면 군을 일으킨다는 정도밖에 모르고 있었습니다.”
퍼거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평소 황태자 전하께 좋은 감정이 없는 자의 명단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겁니다.”
프레일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군부에는 친 황태자파가 많았다. 세드릭은 그 성향 상 원래부터 군부 인사들과 친했다.
물론 대부분은 황제의 충신이었다. 황제는 군권 장악에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 왔다.
통제력을 상실할 수도 있는 서부군과 남부군을 일부러 약화시켜서까지 중앙군에 군사력을 집중시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황명에 따라 세드릭을 공격할지는 몰라도, 먼저 황태자를 제거하기 위해 모략에 발을 담글 이유는 없었다.
달리 충성할 만한 다른 황제 후보가 없는 지금이라면 더욱 그랬다.
결국 세드릭이 황제가 되면 그 자신이 곤란해지는 입장이 아니고서야 이번 일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라면, 퀼레 장군처럼 북부로 가는 물자에 손을 댔거나, 용납 못 할 수준의 부패를 저질렀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었다.
“이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전하.”
프레일이 말했다.
퍼거슨에게는 서두르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이것은 확실히 쓸 만한 정보였다.
군사력을 장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중앙군에 반대파가 있는 것은 목에 비수를 들이댄 채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잘하면 이 한 번으로 반대파를 일소할 수도 있었다.
세드릭은 대답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채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해가 졌기에 창문은 어두운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기에 비치는 세드릭의 얼굴은 음울했다.
프레일은 그가 살이 좀 빠졌다고 생각했다. 뺨이 홀쭉해서 그늘이 져 보였다.
사람들은 그가 과로한 탓에 지쳐 있다고 생각했다. 항구 화재가 발생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세드릭에게 권한보다 무거운 책임이 지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좀 더 음험한 자들은 그가 일부러 기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살을 빼고 초췌한 안색을 꾸미고 있다고 의심했다.
그건 그가 정치꾼들의 잣대로 판단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프레일은 그가 아르티제아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드릭은 강건한 사람이다. 한 달 동안 군량을 씹으며 행군을 하고, 밤을 새우며 전투를 치러도 이토록 안색이 나빠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몇 날이나 잠들지 못했는지 프레일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긴 불면의 밤이 오로지 정치적인 고뇌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드릭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서글픈 일이지. 숙청은 없을 거라는 의사를 명백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는 말한 대로 듣는 사람보다,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사람이 더욱 많습니다, 황태자 전하.”
그 호칭은 낯설어서 입 안에서 엉뚱하게 굴렀다.
세드릭이 씁쓸하게 웃었다.
“알고 있네.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으니.”
그의 말은 무거웠다.
세드릭이 창문을 가볍게 쳐서 열었다. 서늘한 밤바람이 들어왔다.
프레일은 문득 옛날 생각을 했다.
올가의 심장을 찾기 위해 이츠 남작의 도박장을 찾아가던 그때 말이다.
그때에 프레일은 로렌스의 곁에 붙여두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르티제아와의 약혼을 반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3년도 다 채우지 않고 여기까지 와 버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세드릭도 변했다.
3년 전의 그였다면, 이런 목소리로 사람을 이해시키기 어렵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하나 단계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들이 쌓였을 뿐인데, 마치 30년이 흐른 것 같았다.
“기회라…….”
세드릭은 또다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르티제아라면 분명히 기회라고 여겼을 것이다.
아마도 일부러 자신에게는 알리지 않고 함정을 파서 대규모 숙청을 일으켰으리라.
하지만 프레일은 이렇게 의견을 말했다.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지금 대안도 없이 황태자 전하를 몰아내려는 자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나라를 망쳐도 좋다는 놈이고, 비밀 조직에 약점을 잡혀 반역까지 하는 자라면 부패가 극에 달한 놈입니다. 그런 놈들까지 안고 가시면 안 됩니다.”
세드릭이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이게 맞았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의견을 듣고 결정하는 것은 세드릭이어야 했다.
“자네 말도 틀리진 않군.”
상대는 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함정을 파서 끌어들이는 것쯤은 당연한 일이었다.
국내 정치라고 생각하면 정쟁도, 음모도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황제의 앞에서 비방하고, 중상모략으로 사회적 말살을 꾀하고,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일 같은 것은 선악의 문제 이전에 세드릭의 천성에 맞지 않았다.
그 목적이 권력다툼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상대가 군 조직이라고 생각하면 또 달랐다.
상대는 실제적인 무력을 손에 쥐고 공격해올 작정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세드릭이 평생 다루어온 전술의 영역이었다.
한 번에 격파하여 끝내는 게 피해를 가장 줄이는 방법이었다.
세드릭이 결단을 내린 것을 알고 퍼거슨이 밝은 얼굴을 했다. 자기가 가져온 정보가 휴지 조각이 될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퍼거슨 경, 황궁 안의 간자를 파악하고 있겠지?”
“예.”
“주시하고 있게. 퀼레 장군이 밀명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폐하께 접근할 거라는 뜻이니. 미리 잡아들일 필요는 없어.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게 될 테니.”
“예, 전하.”
세드릭은 퍼거슨에게 나가보라고 눈짓했다. 퍼거슨이 절을 하고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세드릭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렇게 되었군.’
정권 교체기의 정치적 혼란을 줄이고 싶었다. 숙청과 정치적 보복으로 치세를 열기를 원하지 않았다.
개개인의 죄를 들추어 약점을 잡거나 제거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황제 개인이 자신의 정의를 펼치는 일일 뿐이다.
그런 정의는 젊은 날의 그레고르 황제에게도 있었다.
세드릭은 자신이 영원히 타락하지 않으리라고 믿지 않았다.
마음은 선하고자 하더라도 눈과 귀가 어두워지거나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식으로 황제 개인이 세워놓은 절대 권력이 자격 없는 자의 손에 넘어갔을 때에 나라가 어떻게 되었는지 직접 목격했다.
그러니 그가 치세 동안 해야 할 일은 혼자 정의롭게 행동하는 게 아니었다.
체제와 법을 온전히 하고, 그것이 제대로 움직이게끔 하는 것이다.
하긴,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는 이미 깨끗하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보겠노라고 마음먹고 있을 뿐이었다.
프레일이 그를 위로하듯이 말했다.
“전하께서는 이미 하실 수 있는 만큼 하셨습니다. 폐하의 양자가 되어 폐하께 책봉을 받으셨지요.”
“…….”
“화해의 제스처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전하를 의심하는 자들은, 전하께서 무엇을 어떻게 하셔도 부모님의 원수를 갚고 있다고 말할 겁니다.”
“그 말도 옳군. 결국은 정면으로 맞서서 믿음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일관되게 다스리는 수밖에 없겠지.”
세드릭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도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새벽의 황궁은 고요했다. 정원의 수풀 너머로 황자궁의 지붕이 달빛에 비쳐 희게 보였다.
“주도권을 가져와야 해. 적어도 개전 시기는 이쪽에서 통제해야 상황을 원하는 대로 유도할 수 있을 걸세.”
프레일이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마침 적절한 건수가 있습니다.”
“말해보게.”
“빈민가에 최근 유언비어가 나포되고 있습니다. 요즘 빈민가 중심으로 도는 돌림병이 서부 역병이라는 내용입니다.”
“음…….”
세드릭은 짧게 신음했다. 그 돌림병은 그도 인지하고 있었다.
매년 날이 더워지면 생기는 설사병이었다. 하수도 정비가 완비되지 않은 탓에 생기는 일이었다.
“다른 때보다 민심이 흉흉합니다. 아무튼 빈민가 환자의 대부분은 의사를 만날 기회가 없으니까요.”
단순히 소문만 퍼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오염된 우물이 몇 개 발견되었다.
병의 확산 속도를 높여 혼란을 키우기 위해서일 것이었다.
프레일이 말했다.
“그러니 그쪽에서 소요를 일으키면 어떨까 합니다. 저들이 먼저 시작한 일이니, 이쪽에서 방아쇠를 당겼다는 의심은 하지 않겠지요.”
“그리고 내가 소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쪽으로 나가면 되겠군.”
“예. 전하를 미끼로 쓰는 일이 됩니다만…….”
“그게 제일 확실하지. 어차피 저들의 목적은 나를 제거하는 것일 테니.”
그렇다면, 그럴 만한 기회를 준다. 저쪽이 미끼를 물면, 그때부터 상황에 대한 통제력은 이쪽으로 넘어온다.
걱정은 하지 않았다. 황명을 받은 근위대나 중앙군이 몰려와 포위한다면 모를까, 비밀 조직이 동원할 수 있는 무력 수준이야 뻔한 것이었다.
“사태가 너무 커져서 인명 피해가 나거나 하진 않겠지?”
“장담은 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만들어낸 소요라도, 사태가 확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쪽에 제법 영향력 있는 조직의 우두머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
세드릭이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 인맥이 아르티제아의 정보원이리라는 것은 용이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프레일이 단독으로 빈민가의 조직과 연을 만들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세드릭은 굳이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날에 베인 것 같은 통증이 가슴 언저리에 퍼졌다.
“진행하게.”
그는 이내 표정을 엷은 미소로 감추었다.
프레일이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