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78
악녀는 두 번 산다 277화
세드릭이 라이의 다리를 걷어차 바닥에 자빠뜨리고 바닥으로 몸을 낮추었다.
라이의 바로 옆에서 나무통이 부서지며 채소절임이 쏟아졌다. 라이는 부서진 건물 벽에 붙어서 기어갔다.
화약이 더 있을까? 모르겠다. 손발이 떨렸다.
라이도 폭력을 행사하며 살아온 인생이었지만, 전투 경험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이래서 세드릭이 사람을 흩으라고 했구나, 하고 이해한 게 전부였다.
세드릭이 바닥을 굴렀다.
그가 가까운 건물 그늘에 몸을 숨겼다. 세드릭을 보호하고 있던 에브론 기사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세드릭의 곁에 있는 것이 반대로 목표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밤이었다. 횃불이 있다지만, 이 밝기 속에서 사람을 쏘아 맞출 수 있는 실력자는 거의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비밀 조직이 동원할 수 있는 자는 아닐 것이다.
‘화선을 만들 정도의 숫자는 못 되는군.’
세드릭은 총격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의 옆에서 낡은 판잣집의 썩은 벽이 퍽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화약은 더 있을까?’
관건은 그것이었다. 중부 지역에서 화약은 엄중히 관리되는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으아악!”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놀라서 지르는 고함이었다.
“치안대가 쐈어!”
“치안대가 아니야, 어떤 놈이야!”
“황태자 전하를 쐈어!”
공포와 혼란에 가득한 외침이 여기저기에서 퍼졌다.
“황태자가 우리를 속였다!”
바람잡이인지 미친놈인지, 그런 말을 하는 작자도 있었다.
물론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만일에 폭동을 강경 진압하기로 했다면, 치안대가 그냥 무장하고 오면 될 일이었다.
굳이 직접 이런 곳까지 와서 기만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성적인 생각을 하는 자는 많지 않았다. 내려놓았던 몽둥이와 칼을 도로 집어 들었지만, 두려움과 분노의 방향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놀란 치안대가 쏟아져 들어왔다.
“데윈! 코너!”
세드릭이 소리쳤다.
명령을 들은 기사 둘이 골목 밖으로 뛰쳐나갔다. 치안대를 막기 위해서였다.
잠시 지나자 총격이 멈추었다. 장전된 총이 끝난 것이었다.
세드릭은 그러고도 잠시 기다렸다. 적측에 암살에 익숙한 자가 있다면, 장전된 총을 남겨 그가 몸을 드러내기를 기다릴 것이다.
숨을 죽이고 있는 사이에 남은 기사들이 사방으로 움직였다.
빈민가에는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폭동으로 부서진 건물이 많아서, 총을 쏜 자들이 숨어 있을 만한 건물은 뻔했다.
5분의 시간이 숨 막히게 길었다. 치안대가 무차별로 군중 사이로 진입했다. 울분에 가득한 자가 불을 지르려고 기름통을 뒤집어엎었다.
유도된 소요가 진짜 폭동이 되기까지는 한순간일 것이다.
세드릭은 아주 잠깐 망설였다. 그러나 곧 그늘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 빌어먹을……!”
라이는 욕설을 내뱉었다. 믿어서 그런지 어떤지는 몰라도 주인 옆에 철썩 붙어 있어야 할 기사 새끼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뭘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보조할 자가 하나도 없었다. 결국 라이는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세드릭이 방책으로 만들려고 쌓아 놓은 나무 상자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한 발로 시선이 모였다.
라이는 그의 얼굴이 보이도록 횃불을 높이 들어 올렸다.
검댕과 진흙이 묻은 세드릭의 얼굴은 아까보다 훨씬 사람 같았다.
“두려워하지 마라! 황실은 그대들을 보호할 것이다!”
우렁찬 외침이 거리 끝까지 퍼졌다.
“집으로 돌아가라!”
그것은 군중에게는 명령이었고, 치안대에게는 신호였다.
군중이 일시에 물을 맞은 개미떼처럼 흩어졌다. 치안대원들도 우왕좌왕했다. 징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치안대원들에게 물러나라고 명령하는 소리였다.
두 번째 총격이 있었다. 어디에서 난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라이는 횃불을 던져버리고 바닥에 엎드렸다.
세드릭이 그의 옆으로 뛰어내렸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폭도로 위장하고 있던 남자 넷이 덤벼들었다.
세드릭은 권총을 거꾸로 돌려 잡고 그립으로 상대의 얼굴을 찍어버렸다. 동시에 왼손으로 그놈을 잡아 방패로 썼다.
“끅!”
칼 두 개가 제일 처음 덤빈 자의 몸에 박혔다.
“악!”
그중 하나가 미처 칼을 놓지도 못하고 세드릭의 총에 맞았다.
세드릭은 잡고 있던 남자를 집어 던지듯 바닥에 내려놓고 황급히 검을 뽑았다.
팔뚝만 한 길이의 칼이 세드릭의 가슴을 향해 쏘아져 오고 있었다.
까앙!
세드릭은 어렵지 않게 그것을 튕겨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상대의 가슴을 베어버렸다.
“큭!”
가슴을 베인 남자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피를 쏟으며 절명했다.
마지막 하나가 겁에 질린 얼굴로 칼을 휘둘렀다. 세드릭은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총을 상대로라면 또 모를까, 도검을 든 상대와 일대일이라면 그는 절대 지지 않았다.
하물며 이렇게 겁먹은 자 상대라면 더욱더.
“악!”
일검에 칼이 튕겨져 나가고 팔과 허벅지가 한꺼번에 베였다.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흐아아!”
가까이에 있다가 이 광경을 본 자가 겁에 질려 주저앉았다.
세드릭이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총구를 향했다가, 아닌 것을 알고는 팔을 내려뜨렸다.
군중 속에 숨은 것이 고작 네 명일 리 없었다. 조금 전에 얼굴을 내밀었으니 이쪽으로 몰려올 것이다.
사실 그러라고 한 일이기도 했다.
세드릭은 권총을 새로 장전하면서 라이에게 말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묶어서 가둬놔. 쓸 일 있을지도 모르니.”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그때 기사 둘이 돌아왔다.
“높은 위치에서 발포한 자는 모조리 제압했습니다. 머스킷 60정을 회수했습니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간다.”
세드릭이 낮게 말했다.
총은 관리가 엄중하게 되는 무기였다. 세자릿수까지 빼돌렸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시 화선을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 소수로 인적 드문 곳으로 움직여도 괜찮았다.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인명 피해가 생길 수도 있었다.
미끼를 깊이 물어야 고기를 놓치지 않는 법이기도 하고.
“사람을 흩어. 곧 근위대가 올 걸세.”
세드릭이 라이에게 말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까이에 있던 군중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
그 뒤로 일을 마친 기사들이 무리 지어 따랐다. 모두 무기를 뽑은 채였다.
그 뒷모습을 보고 라이는 이를 악물었다.
사람 쓰는 게 제멋대로에,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게 아주 부부가 똑같았다.
“팔자라도 고쳐주든가……!”
라이는 근위대가 온다는 게 지원군으로 온다는 건지 토벌군으로 온다는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어쨌든 시킨 일은 하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했다. 라이는 제 동료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 * *
황제는 침실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황궁 깊은 곳은 조용했다. 아무도 황제에게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는 공기의 밀도가 평소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침실을 지키고 있는 근위대원의 수도 평소보다 적은 듯한 느낌이었다.
“윌리.”
그는 낮은 목소리로 시종장을 불렀다.
“무슨 일 있나?”
그는 시종장이 완전한 정보를 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근위대이든, 시종 중의 누군가이든, 감시자가 있는 것은 명백했다.
시종장의 힘은 모두 황제 자신이 부여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앓아누워 있으니 시종장이 눈에 보이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괜한 말을 입에 담게 해서 시종장이 떨려나기라도 하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시종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레브 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황제가 생각하기에도 숨길 필요가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빈민가에서 폭도가 일어나 거리를 휩쓰는 것은 때때로 있었다.
시종장이 대답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몸소 그쪽으로 가신 모양입니다.”
“……어리석은.”
황제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빈민가의 폭도는 신경 쓸 만한 여론이 아니었다. 그곳은 수도의 쓰레기장이었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폭동은 대개 저희들끼리의 패싸움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간혹 나라를 향해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긴 했다.
그러나 어차피 가난하고 비참한 것들이 하는 말이었다. 귀족이나 관료는 물론이고, 평민들 중에서도 귀담아듣는 자가 거의 없었다.
치안청이 사태를 진정시키고 난 뒤에 적당히 식량을 하사해서 다독여주면 끝날 일이었다.
경계해야 하는 것은 그 반발이 빈민가 밖으로 퍼져 나왔을 때의 일이다.
“성녀를 돌려달라면서 사원을 부수는 바람에, 황태자 전하께서 그 말씀을 듣고 나가신 모양입니다.”
“…….”
황제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도로 눈을 감았다.
신경 쓸 만한 일이 아니었다.
“여전하군.”
황제가 중얼거렸다. 시종장이 조심스럽게 물수건으로 그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폐하…….”
“자네도 가서 좀 쉬게. 어차피 잠 잘 사람 옆에 붙어 있어봐야 뭐하겠는가?”
“하오나, 폐하…….”
“자네라도 오래 짐의 옆에 남아 있어야지.”
황제는 타이르듯이 말했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기도 했다.
시종장이 “예.”하고 대답하고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쳤다.
조용히 있고 싶은 황제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근위 기사 두 명을 제외하고 다른 자들도 모두 데리고 물러났다.
침실이 조용해졌다.
황제는 눈을 감은 채로 무력감에 몸을 맡겼다.
그는 아직 이 일이 황후의 복수인지, 세드릭의 찬탈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찌 생각하면, 소극적인 찬탈일 수도 있었다. 이대로 자신이 대리청정 명령을 거두지 못하게 만든 채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괘씸했다.
그러나 그는 제국의 주인이었다. 제국은 그의 소유였다. 그는 그 문장을 사실을 만드는 것에 평생을 바쳤다.
이 시점에서 대안도 없이 황태자를 망치면, 제국이 멸망하는 길을 가져올 뿐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참아야 할까.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소식을 보냈다 하니, 조시아 백작 부인이 돌아올 것이다.
이대로 딸들의 문안을 받으며 조용히 죽으면, 사후에 험한 꼴을 보지 않을 것이다.
세드릭은 여전히 그의 양자였다. 계보는 그에게서 이어질 것이며, 그의 이름은 제국 황실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이 끓어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곤 했다.
그때였다.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