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79
악녀는 두 번 산다 278화
콥은 신중하게 침실 안을 살폈다.
두 팔에는 새 침대 시트를 안고 있었다. 혹, 침실 안에 친황태자파의 기사나 시종이 있다면, 다른 조치를 취해야 했다.
시종장도 안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콥도 시종장을 적극적으로 의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종장이 로렌스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죽을 때까지 황제를 성심껏 보살폈다.
운이 좋았다. 시종장이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콥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을 위해서 총력을 동원했다.
콥 자신이 황궁 안팎에 가지고 있는 인맥, 다른 비밀 수사관들이 포섭한 정보원, 근위대원 개개인에 대해 갖고 있는 약점까지 모조리 사용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일을 위해서 브레넌 백작을 비롯하여 대귀족 가문에서도 황궁에 심어놓은 세작을 꺼냈다.
「수십 년에 걸쳐 겨우 만들어놓은 영향력일세. 반드시 성공해야 할 거야.」
늙은 너구리들은 그렇게 으쓱거렸다. 콥으로서는 코웃음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소리였다.
황태자가 즉위하면, 어차피 다 쓸려나갈 세작이었다. 로산 후작이 정권을 잡고서 그자들을 그대로 둘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큰 보탬이 되었다.
황제는 휘장 안에 몸을 일으켜 앉아 있었다.
얼굴이 심하게 부은 데다가 낯빛이 시커멨다. 그러나 주름진 눈매 안에 있는 눈동자에는 총기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콥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침대 시트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콥.”
황제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폐하, 아뢸 것이 있어 이렇게 남 몰래 찾아뵈었습니다.”
콥이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베르톨트는 어디 갔느냐?”
황제는 그것부터 물었다. 베르톨트는 오늘 오후부터 침실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었다.
시종장이 나가고 나서 보니 어느 틈에 나가고 없었다.
콥이 공손히 대답했다.
“문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황제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건재하던 때였다면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자신의 표정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놈이 누구에게 포섭되었었더냐?”
“황공합니다. 폐하. 베르톨트 경은 폐하의 충신입니다.”
“충신이 제 뜻대로 감히 짐의 침실에서 호위를 물리고, 허락받지 않는 자를 들였구나.”
황제는 아마 협박이 동원되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세드릭도 믿는 구석이 있기에 베르톨트를 이 침실의 호위로 세웠을 것이다.
그리고 황제가 아는 베르톨트는 차기 권력인 황태자에게 복종하는 것이면 모를까, 그 반대파에서 음모에 참여할 만한 인간은 못 되었다.
심정적으로도 군인이자 기사로서 세드릭에게 기울어 있을 터였다.
‘딸이 에이슨 백작가의 방계와 결혼했던가.’
자식. 항상 그놈의 자식이 문제였다.
황제는 흐릿한 눈으로 콥을 바라보았다. 콥이 말했다.
“황공합니다. 죄인 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황궁의 출입이 엄중히 제한되고, 지금까지 폐하께 중요한 일을 아뢰기 위한 길조차도 모두 막힌 상태에서, 중요한 일을 여쭈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
“에브론 대공이 폐하를 가두고 있습니다. 그자는 대역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을, 누가 모르느냐.”
황제가 쥐어 짜내듯이 말했다. 콥이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폐하. 과거 플로엘라 황녀와 레오프릭 에브론의 역모 사건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뭣……?”
“당시 역적들 중 도주하는 데에 성공한 일부와 마땅히 형벌을 받았어야 할 연루자를 숨겨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콥이 말했다.
“생길 당시에 대공 본인은 어렸다 해도, 그 마을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주모자를 복권시키기 전에도 그 마을에 드나들며 친분을 쌓아왔습니다. 측근 중 다수가 그 마을 출신입니다.”
“끅.”
황제가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가슴이 턱 막혔다.
그래도 콥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대공비가 총애하는 시녀 모르텐 소남작 또한 그렇습니다. 모르텐 남작가는 당시에 역모에 직접 연루되지는 않았으나 도주를 지원했고, 그 이후에는 대공의 명으로 마을의 관리와 외부 교류를 맡았습니다.”
황제는 그때까지도 아직 절반쯤 믿고 있었다.
퍼거슨이 배신하고, 황궁 시종이 해고되고, 감시자가 붙어 있는 이 모든 상황을 세드릭이 하나도 모르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황제는 이해하려고 하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보 조직을 포섭하는 것은 마땅히 가장 처음에 해야 할 일이었다.
쓰러지기 전에 세드릭을 견제하려 했으니, 그것이 불안하고 두려워 자신을 감시할 법했다.
그것은 현재의 권력다툼이다. 황제는 분노했으나 그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였지, 배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놈이 권력을 가져가더라도, 결국 자신의 황태자였다.
하지만 이것은 배신이었다.
속이 썰린 듯이 찌잉 하고 아팠다.
세드릭이 타협하고, 권력을 이해할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거의 원한 대신 현재의 힘을 택했다.
그러니 타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그 본성의 곧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리라고 믿었다. 사람의 본성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어쩌면 그 판단 자체가 틀렸을지도 몰랐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운기가 세드릭에 가 닿았다고 믿은 일들도, 로렌스와 로이가르가 어리석은 일을 저질러 어부지리를 얻었다고 생각했던 일도.
여러 가지 문제를 맞닥뜨린 끝에 현실과 타협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제위를 노리고 수작을 부린 것인가?
복수하기 위해 곧은 천품을 계속해서 연기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원한의 해결을 위해 벌어진 일이 된다.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이 죽는 순간, 세드릭이 자신을 찬탈자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자신을 아예 황실의 적통 계보에서 빼버리고, 제 어미를 황제로 추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는 찬탈자가 아니었다.
그가 탐욕스러운 악인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배신자일지는 몰라도 황제의 관은 그의 것이었다.
목숨을 걸고 권력투쟁에 몸을 던졌다. 황제의 관은 노력과 행운, 피와 뼈로 쌓아올린 인생의 전리품이었다.
그런 자리를 단지 태어났을 뿐인 플로엘라가, 혈통을 이유로 넘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플로엘라가 죄인도, 경쟁자도 아니라는 것을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어린 여동생은 무구하고 유약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존재만으로도 그레고르가 그때까지 싸워 온 모든 것의 총체를 상징했다.
로렌스에게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상속시켜 주고 싶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신이 선택하여 새로 황실의 적통을 만들었을 때에야 그는 비로소 누대에 남는 진짜 황제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 황태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제 양자가 아니라 플로엘라의 아들이라니.
그 목적이 복수에 있다니.
황제의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폐하.”
콥이 허공을 노려보고 있는 황제를 불렀다.
그는 이 문제가 위독한 황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었다.
그가 섬기는 주인은 이미 황제가 아니었으니까.
이것이 황제를 분노하게 하리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폐하, 황명을 내려주십시오.”
콥은 강하게 말했다.
“폐하의 충신들이 황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명을 내리시는 순간 역적을 토벌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하.”
“아직 군의 충성심은 죽지 않았습니다. 로렌스 경도 간절히 폐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콥은 그렇게 말했다.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될 테니까.
로렌스야말로 황제에 어울리는 자였다.
황제는 그 말에 헛웃음을 지웠다. 미약한 기대로 갈증이 났다.
“로렌스가, 왔느냐?”
“예. 폐하의 부름은 닿지 않았으나 로렌스 경은 몇 달 전에 수도에 왔습니다.”
콥이 간절하게 말했다.
“로렌스 경은 달라졌습니다. 폐하. 철없던 때의 그 로렌스 경이 아닙니다.”
황제는 그 말을 다 믿지 않았다.
철이 들면 달라질 것이다. 그런 희망을 품고 줄곧 로렌스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었다.
“넌 로렌스를 섬기느냐?”
“저는 폐하의 시종입니다.”
“꾸짖으려 하는 말이 아니다. 짐이 로렌스를 쫓아 보낼 때에 가장 실망했던 것은, 그녀석이 제 사람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었느니라.”
황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짐의 수사관 하나를 포섭할 정도라면 충분하지.”
결코 충분하지 않았다.
아마도 밖에서 수작 부리는 자들 중 대부분은 로렌스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구심점이 필요한 것뿐이리라.
그러나 황제는 그 사실에는 눈을 감았다.
귀족이 정통성 없는 자를 앞세워 무력으로 정권을 뒤집는 경험을 주는 것은 결코 후대를 위해 좋지 않았다.
하물며 모인 것은 십중팔구 가장 탐욕스러운 자들일 것이다.
황제도 알고 있었다.
그가 그런 자를 썼던 것은 통제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황권이 이미 강성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
황제는 잠시 침대 지붕에 새겨진 조각을 노려보았다.
하늘의 중앙에 뜬 황금빛 태양의 부조는 만물을 내려다보듯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레고르는 철인도, 현인도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추악한 인간의 부류에 속했으며,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에 그가 다른 자보다 높은 곳에 올라서 있다면, 그것은 누구보다도 더 큰 욕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종이를 가져와라. 짐이 불러주는 것을 네가 받아 적으면, 수결하겠다.”
콥이 미리 준비해온 종이와 펜을 들고 황제가 부르는 것을 받아 적었다.
황제는 거기에 수결했다.
“가라.”
콥이 절을 올리고 뒷걸음질로 물러나갔다.
문이 닫히고, 곧 다시 조용해졌다.
황제는 잠시 다시 침대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눈을 감았다.
자신이 너무 어리석어 어지러웠다.
* * *
밤인데도 황자궁 온갖 곳에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기사들이 이상하게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엘르는 살기나 투기 같은 것은 몰랐으나, 궁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만은 느꼈다.
“무슨 일이 있나요?”
멀리서 횃불이 웅성웅성 움직였다. 안스가르가 말했다.
“큰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네…….”
“오늘 밤 미엘르 님과 헤젤 님은 이곳에서 주무시지요.”
그렇게 말하고 그가 커튼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