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8
악녀는 두 번 산다 28화
5. 정략, 혹은 혼약
그로부터 한동안 제국은 크게 시끄러웠다.
시시각각 호외가 날아다녔다. 매일처럼 밝혀지는 소식에 살롱의 귀부인과 카페의 지식인들도 모여 앉았다 하면 그 이야기였고, 평민들도 쿠키 상자를 들고 서로의 집을 방문했다.
하나씩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은 크게 흥분했다.
도박장에서 이루어진 대부분의 인신매매 대상이 어린애라는 것이 밝혀지자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들이 아우성치며 치안청 앞으로 몰려들었다.
자식을 직접 팔아넘긴 부모도 있었다. 하지만 뒤늦게 소식을 듣고 멀리에서부터 생업을 중단하고 행방불명된 아이를 찾으러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 적지 않은 수가 성노예로 팔려갔다는 게 밝혀지자 분노의 불길이 수도를 휩쓸었다.
관련자들의 공개 처형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공원에서 단상에 뛰어올라 울분에 찬 연설을 하는 자도 있었다.
신문에서는 타락한 귀족들의 생활에 대한 비판글을 쏟아냈다.
에이슨 백작이 지속적으로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를 공급받아 살해한 후 암매장했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에는 시민들이 폭도로 돌변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치안청 건물 주위를 둘러 마른 장작이 쌓이고 기름을 가져다 부었다. 치안청장은 거기에 총사대를 불러 총구를 겨누는 것으로 응대했다.
결국 인망이 있는 재상 린이 직접 나와 사죄를 하고, 직접 수사를 지휘하여 죄인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도 시민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세드릭까지 나서서 간곡히 약속하고 나서야 집회는 해산되었다.
그 소식은 그레고르 황제가 있던 별궁에 하루도 되지 않아 닿았다.
황제는 처음 인신매매 사건에는 적절히 가장된 분노로 응대했다.
그러나 에이슨 백작건에 로렌스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로 책상을 뒤집어엎었다.
외부에 밝힌 정보는 에이슨 백작이 소아성애자로서 정기적으로 이츠 남작과 거래가 있었다는 것까지였다.
그러나 황제가 받아본 보고서에는 훨씬 상세한 소식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 적힌 것에 따르면, 에이슨 백작은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반년 정도의 간격으로 한꺼번에 30여 명의 아이를 사들여 사냥놀이에 이용했다.
그 사냥놀이는 젊고 방탕한 귀족들 사이에서 자극적이고 흥분되는 것으로 알음알음 이름난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로렌스가 그 놀이에 여러 차례 끼었다는 것이다.
“너 미쳤느냐!”
황제는 고함을 지르며 로렌스에게 잉크병을 집어던졌다. 측근 시종들이 벌벌 떨며 바닥에 엎드렸다.
감히 피할 수가 없었으므로 로렌스는 병을 고스란히 맞았다.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뚜껑이 열려 있었으므로 탐스러운 갈색 머리와 흰 얼굴이 흘러내린 잉크로 검게 물들었다.
“아바마마.”
“네가 방탕하게 놀러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젊은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했다. 다 한때의 일이라고, 그러니 네가 어떻게 난잡하게 놀아나는 그러려니 하고 이해했다. 하지만 사람을 사냥해서 암매장해? 그것도 어린애를 발가벗겨서 숲에 풀어놓은 놈과 놀아?”
“아바마마, 저는.”
“듣기 싫다!”
로렌스의 변명을 듣지 않고 황제는 이번에는 보고서를 그의 머리에 집어던졌다.
로렌스는 굴욕을 참느라 눈을 꽉 감았다.
“에이슨 백작이 네 녀석의 친구라는 걸 누가 몰라?”
“개인적인 관계는 아닙니다. 선대 에이슨 백작과의 인연을 아바마마께서 맺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자식놈이 어떤 놈인지 네 녀석 스스로는 판단할 능력도 없다는 게냐? 그렇게 덜떨어졌어? 아, 이건 들키면 큰일 나겠구나, 하고 생각해서 거리 둘 주변머리도 없을 만큼 무능해?”
“…….”
“다른 일도 아니라 인신매매야! 어린애를 죽이는 일이다! 너는 제국의 근간이 무엇인지도 모르느냐? 제국민의 인신은 황제의 보호 아래에 있으니 오로지 황법으로만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은 아느냐?”
황제가 보고서 중 편지 한 장을 꺼내어 흔들면서 고함을 쳤다.
“세드가 뇌물 건을 짐의 처분대로 해도 좋으니 인신매매 쪽만이라도 확실하게 처리하게 해달라더라.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그 벽창호 같은 놈이 이런 전방위 규모의 뇌물 사건을 덮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사건이 심각하단 뜻이야. 그리고 짐이 막으려 해도 그놈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네가 연루되어 있다니, 짐이 세드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구나!”
로렌스는 입을 다물었다. 무어라 말해도 황제는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울분은 있었기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였다. 문이 활짝 열리고 밀라이라가 안으로 들어왔다. 로렌스는 흘끗 그녀를 바라보았다.
밀라이라는 불안한 눈으로 그를 한 번 바라보고, 나긋한 걸음걸이로 황제에게 다가갔다.
황제는 오지 말라고 꾸짖지는 않았다. 그러자 밀라이라가 황제의 곁으로 다가가 가만히 목덜미를 손으로 쓸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또 아들 걱정해서 이렇게 달려왔어? 시종장 그놈은 대체 또 뭐야? 짐이 분명히 사람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시종장도 걱정이 되니까 그랬겠지요. 화내지 마세요, 응? 의사가 너무 흥분하면 심장에 좋지 않다고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밀라이라가 달콤한 목소리로 조르듯이 속삭였다.
“쯧쯧, 자네가 그렇게 싸고도니까 저놈이 저 나이 되도록 제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짐이 저놈 나이 때에는 짐의 손으로 황태자 자리를 움켜 쥐었어.”
“폐하께서 너무 탁월하셨던 게 아니고요?”
밀라이라가 조물조물 황제의 목덜미를 주무르다가 타이를 스르륵 풀어냈다.
그리고 옷깃을 젖히며 두 손으로 정성껏 뭉친 곳을 안마했다. 손에 미리 발라둔 향유가 황제의 주위에 꽃향기를 떠돌게 했다.
뻔한 수작이었으나 효과가 있었다. 황제가 한 차례 긴 한숨을 내쉬고 몸에서 긴장을 풀었다.
밀라이라는 안심하면서 본격적으로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절 너무 걱정시키지 마세요. 화가 쌓이면 건강에 좋지 않아요. 이것 봐요. 또 여기 이렇게 뭉쳤어.”
“됐어. 나중에 안마사한테 주무르라고 할 테니까. 아침마다 손가락 아프다면서.”
황제가 그녀의 손을 잡아서 손가락 관절에 키스하면서 말했다.
그리고 로렌스에게 손을 내저었다.
“에이슨은 빨리 잘라내라. 그러면 짐이 어떻게든 할 테니.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세드 그놈이 고지식하긴 해도 제 친·인척에게는 약한 놈이니, 티아를 생각해서라도 너까지 걸고넘어지진 않겠지!”
“그게 무슨 말씀…….”
밀라이라는 물으려다 말았다. 황제의 노기를 이 이상 부추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황제가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물러가. 그리고 돌아가서 어떻게 세드와 친해질 수 있을지 생각해봐라.”
“아바마마.”
“잘 생각해. 짐이 네 아비라 하나 무조건 널 후계자로 삼을 생각은 없다. 그러지도 못해. 세드는 에브론 대공이다. 그리고 네 녀석이 갖지 못한 인망을 가지고 있어. 세드만 수중에 넣어라. 그러면 나머지는 짐이 알아서 해주마.”
“…….”
로렌스가 굴욕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러가라. 짐은 피곤하다.”
황제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로렌스가 뒷걸음질로 물러나가며 앞머리에서 흘러내리는 잉크를 아무렇게나 소맷자락으로 눌렀다.
그다음 황제는 로이가르 대공에게 뇌물장부의 사본을 보내도록 명했다.
밀라이라는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황제의 어깨를 주물렀다.
황제는 수도의 린 재상에게 보낼 황명까지 모두 작성하고 나서 밀라이라를 끌어당겨 팔걸이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보드라운 몸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수도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어.”
“네. 폐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밀라이라는 조심스럽게 손을 그의 가슴 언저리까지 미끄러뜨리며 고개를 숙여 이마에 키스했다.
“자네가 그렇게 걱정할 것 없어. 하지만 로렌스 저놈은 정신을 차려야 해.”
“호부 밑에 견자 없다고 하지 않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내애는 사고를 많이 치면서 자라는 법이잖아요. 고귀한 혈통이다 보니 달라 붙는 벌레가 또 많아서 그래요. 폐하께서 조금만 마음 써주시면, 금방 반성하고 달라질 거예요.”
“로렌스가 자네 절반만 됐으면 좋겠어.”
황제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황후에게 예쁨받으려고 노력이라도 했다면, 진즉에 황태자가 되고도 남았지.”
밀라이라의 손이 잠깐 멈칫했다. 황제가 한쪽 눈꺼풀을 들어 그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왜? 또 질투하려고?”
“하면 들어주시기나 할 건가요?”
밀라이라가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짐이 어쩔 수 없는 일인 거 알잖나. 로렌스도 말이야, 뻣뻣하게 굴 거면 아예 세드처럼 제 공적, 제 세력이라도 확실하게 세웠어야지.”
“……그래도 폐하의 아들이에요.”
“그래. 짐의 하나뿐인 아들이지.”
황제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지친 태도로 밀라이라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 * *
전령이 황명이 적힌 봉서를 가지고 달려온 것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폐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봉서를 뜯어보고 린 재상이 그렇게 말했다.
곧, 뇌물 사건을 덮고 에이슨 백작의 사건은 철저하게 파헤치라는 뜻이었다.
세드릭은 “그렇군요.”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될 줄 알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씁쓸했다.
“마음이 안 좋으십니까?”
“예. 돈을 받고 눈감아 준 자는 사실 주범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박장을 순찰한 하급 관리라면 모를까, 고위직은 대부분 다 알고 있었을 테지요. 이런 자들은 주범 이상으로 해악이 아닙니까?”
“그래도 지금 당장은 손댈 수 없습니다. 뇌물 받은 자가 너무 많아요. 귀족과 관리들이 똘똘 뭉쳐 서로 덮어주고 저항하다가 사건 처리 자체가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큽니다.”
“예.”
“폐하께서 강력한 결단이라도 내리신다면 또 모를까, 역모가 엮인 것도 아니고 단순 범죄 사건이니 그 정도의 정치적 부담을 지고 싶어 하지 않으실 테지요.”
“그 이츠 남작이라는 자가 꽤 머리가 좋은 것 같습니다. 고위 귀족만이 아니라 재무부와 세무부, 치안 청의 말단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엮여있으니, 제국 정부 자체를 도려낼 각오를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손댈 수 있겠습니까?”
세드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당초 폐하께서는 이 일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시지도 않으시고요. 뇌물 장부도 쥐고만 계실 생각이시겠지요. 약점이란 숨겨져 있을 때에 가장 강력한 법이라고 제 약혼녀가 그러더군요.”
총은 겨누었을 때에 무서운 것이고, 새로 갈아둔 칼은 쓰기 전에 제일 날카로운 법이다.
「폐하는 냉혹한 분입니다. 발밑에서 사람이 백만이 죽든 천만이 죽든, 왕좌가 기울어지지 않는 한 그 분에게는 창고에서 밀알을 훔치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화는 나시겠지만, 폐하 자신이 뭔가를 감당하면서까지 결단할 만한 큰일은 아닙니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