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80
악녀는 두 번 산다 279화
미엘르는 그래서 조금 더 불안해졌다. 뭔가 어수선했다.
젖어미 둘이 각자 제 자식을 다 데리고 옆방을 지키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왠지 소란하고……. 헤젤, 넌 또 무슨 일이야?”
헤젤은 미끈하게 빠진 가죽바지에 셔츠를 입고, 그 위에 늑대 모피로 만든 짧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나탈리아가 늑대 모피를 입고 황태자 책봉식에 나선 뒤로 유행한 스타일이었다.
“모르니? 오늘 황후궁에서 마르타 백작 부인의 살롱이 열려.”
마커스가 헤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입을 열어 말하지는 않았다.
조용히 이 밤을 넘길 수 있다면, 미엘르까지 놀라게 할 필요가 없었다.
미엘르는 미진한 기분을 느꼈다.
“폐하께서 편찮으신데?”
“이렇게 말하긴 그렇지만, 여기서니까 하는 말인데…….”
헤젤이 짐짓 뭐라도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둘러보고 미엘르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여는 거지, 오히려.”
“아…….”
미엘르도 바보가 아니었다. 자기가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황궁 안에서 각종 음모가 꾸며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황후의 사연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미엘르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어수선하구나.”
“넌 신경 쓰지 말고 레티샤 님이랑 잠이나 푹 자.”
“괜찮겠어? 가서 너 막 사고 치는 거 아냐?”
미엘르가 눈을 흘겼다. 마르타 백작 부인의 살롱이 궁중 예법에 비교적 구애받지 않는 곳이라도, 헤젤의 지금 옷차림은 너무 자유로웠다.
헤젤이 헤헤 웃었다.
“괜찮아. 나탈리아 전하와 함께 갈 거야.”
“그래도…….”
“내가 뭐 맨날 그렇게 사고 친다고 그래? 갔다 올게.”
“도로 올 거야?”
“요즘 황궁 분위기 영 그러니까. 너랑 레티샤 님 옆에 있어야지.”
그 말에 미엘르는 방긋 웃었다.
헤젤이 나갔다. 미엘르는 하품을 하고, 요람 안의 레티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레티샤 님.”
잠든 아기가 코끝을 찡그렸다. 미엘르는 그걸 보고 조금 웃었다.
그리고 안스가르에게 말했다.
“저도 여기서 자는 게 좋을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기사들의 수고가 줄어들 겁니다.”
“아, 황태자 전하께서 기사단을 이끌고 나가셨죠. 그쪽은 괜찮을까요? 난리가 났다던데.”
“염려 마십시오. 세드 님께서는 패배한 적이 없으십니다.”
안스가르가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미엘르는 안심했다.
“네. 그리고 저도 여기에서 잘게요.”
“고맙습니다.”
미엘르는 방긋 웃고, 아기 방 구석에 놓인 침대로 갔다. 보살피는 사람들이 틈틈이 쉴 수 있도록 마련해놓은 침대가 따로 놓여 있었다.
안스가르가 촛불을 불어 꺼주었다.
실내 한 곳만 불을 놔두어 은은하게 밝혔다. 미엘르는 누워서 눈을 감았다.
오래지 않아 안스가르가 나가면서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미엘르는 한참을 뒤척거렸다. 좀처럼 잠이 들지 못해 일어나 앉았을 때였다.
까앙! 까앙!
창문 밖으로 쇠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미엘르는 혹시나 레티샤가 깰까 봐 요람을 먼저 확인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횃불 무리가 황자궁 정문 근처에 모여 있었다. 아기 방에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군사인 것 같았다.
미엘르는 숨을 삼켰다. 진짜로 무슨 일이 난 모양이었다.
레티샤의 신병은 반황태자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반황태자파에서 로렌스를 생각하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로렌스는 수도에 있는 동안 몇몇 귀족에게 세드릭에 대한 불신과 북부인에 대한 차별 의식을 부추겼다.
에이슨 백작을 비롯한 옛 친구들을 통해, 세드릭이 즉위하고 나면 북부와 서부가 기득권층을 쓸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리라는 논리도 퍼뜨렸다.
그러나 구체적인 계획에 가담한 바는 전혀 없었다. 지금 당장 수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세드릭에 대해 적대적인 자들에게 그 감정을 노골적으로 할 기회를 준 것뿐이었다.
콥 또한 로렌스의 명대로 그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단 세드릭을 제거하고, 아르티제아를 무력화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일단 황태자 부부만 제거하고 나면, 그 뒤의 일은 도토리를 주머니에 집어넣듯이 성사될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반황태자파가 당장 세드릭의 대항마로 여긴 것은 레티샤였다.
세드릭을 대신할 황제 후보로서, 또, 에브론을 제압하기 위한 인질로서 반드시 확보해야 할 존재였다.
황명이 떨어지기 전부터 수도 경비군 부장 호손이 황자궁 인근에 자기 휘하의 부대를 집결시킨 것은 그 때문이었다.
병사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황궁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폭동이 일어났다던데.”
“대로에는 아무 일도 없던데?”
작은 소곤거림이 오가기는 했다. 그러나 그게 소란을 일으키거나 대오를 흐트러뜨리지는 않았다.
호손은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그다음에 도착한 것은 근위 기사 거스였다. 그의 뒤에는 오십여 명의 근위대원이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수도 경비군과 달리 곧바로 정문으로 향했다.
거스는 정문 앞에서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와 달리 문을 지키는 경비병이 없었다.
정원은 고요하여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뭔가 눈치챘나?’
하지만 호손 부대가 들통 난 것이라면 이렇게 조용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세드릭이 에브론 기사를 대부분 이끌고 나갔기에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거스는 빗장이 걸린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곧 늙은 집사 하나가 등불을 들고 정문까지 나왔다. 안스가르였다.
“야심한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거스 경?”
거스는 힐끗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찌 지키는 자가 하나도 없소?”
“거스 경께서 관심 가지실 만한 일이 아닙니다.”
안스가르가 정중하게 대답했다.
거스는 자기가 그 대답의 뒤를 읽어냈다고 생각했다. 안스가르는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에브론 대공이 에브론 기사들을 데리고 나갔으니 지키는 자의 숫자가 모자란 것일지도 몰랐다.
거스는 일단 예의 바르게 말했다.
“황명이오. 폐하의 명으로, 황손님을 본궁으로 모셔가려고 하오.”
“이제 밤이 늦었으니, 내일 알현하겠습니다. 레티샤 님은 이미 주무십니다.”
“밤늦은 시간인 줄 폐하께서 모르시겠소? 그러신데도 황손님을 찾으실 만한 상황이라는 뜻이오.”
“아기님이 외출하기에는 밤바람이 너무 찹니다.”
“어쩌면 유조가 내려질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기침 몇 번을 걱정하는 거요?”
거스가 압박적인 태도로 말했다.
상대가 오늘 밤에 벌어지는 일을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레티샤를 데리고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안스가르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레티샤 님은 아직 폐하의 말씀을 받들기는커녕 이해하실 만한 연령도 못 되십니다. 내일 아침 일찍 찾아 뵙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가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
어쩔 수 없었다.
거스는 손을 들었다.
“황명을 거역한 역도를 물리치고 황손을 구해라!”
그가 우렁차게 외쳤다.
이것은 병사들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호손 부대가 우르르 뛰쳐나왔다. 병사들이 앞머리에 앞머리에 강철을 두른 통나무를 가져와 문을 후려쳤다.
깡!
강철끼리 부딪치며 밤하늘을 찢는 소음이 울려퍼졌다.
미엘르가 들은 소리는 이것이었다.
애당초 황궁은 방어를 위한 시설이 아니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비밀통로는 있었지만, 수성을 위한 시설은 아예 없었다.
위엄 있게 생긴 철문도 실제로는 약했다. 안에서 빗장을 질러두었지만, 몇 번 만에 박살 났다.
근위대원들이 앞서서 우루루 밀고 들어갔다.
거스는 정원에 매복이 있을까 봐 정찰을 미리 보냈다. 하지만 텅 비어 있었다.
황자궁 건물은 제법 높은 편이었지만, 화기가 배치된 망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수의 에브론 기사로는 전부 방어해낼 수 없었다.
에브론 기사들이 정원까지 미리 포기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거스는 매복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우르르 본채의 정문쪽으로 달려갔다.
그의 손짓에 따라 근위대원들이 흩어졌다. 탈출로를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호손 부대가 다시 통나무로 문을 후려치려 할 때였다.
타탕!
일제사격이 호손 부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워낙 가까운 거리였기에, 30여 명이 한 번에 피를 뿜었다.
“2층!”
거스가 외쳤다. 그러기가 무섭게 화살이 쏟아져, 거스도 바닥을 구르며 피했다.
첫 번째 발포는 경고성이었다. 어차피 근거리인 데다가 갑옷으로 무장한 것도 아닌 상대였다. 양측 모두 숫자가 적었다. 장전 속도가 느린 총기류로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부대가 나타났다. 황명이 내려진다면 호손 부대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수도 경비군의 다른 부대였다.
이번에는 역으로 지원군 쪽에서 발포했다.
황자궁 2층에서 고개를 내밀고 쏘았던 기사들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빨리 부숴라!”
호손이 고함을 질렀다.
쉽게 되지 않았다. 본채의 문은 안쪽에서 강철판을 몇 겹이나 대어 보강하고 있었다. 빗장도 따로 만들어 달았다.
그래도 문이 흔들렸다.
에브론 기사단의 부장 로일은 안스가르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설령 문이 뚫린다 해도, 저 숫자로는 로비도 넘어서지 못할 겁니다.”
“믿고 있습니다.”
안스가르가 대답했다.
그것 말고도 곳곳에 폭약을 설치해 두었다. 저들이 아기 방이 있는 곳까지 들어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시간을 끌면 되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진짜로 공격할 줄은 몰랐는데.’
포위 정도로 끝날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전투 준비를 한 것은 정말로 만에 하나를 위해서였다.
황자궁도 황궁의 일부였다. 아무리 황명을 핑계로 삼는다 해도,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로일은 혀를 찼다.
대공저로 돌아갔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농성을 위한 준비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뒤늦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에브론 기사단 전원이 함께 모조리 대공저로 옮겨가면서 그 사실을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랬다가는 계획이 유출되었다고 반황태자파에게 알려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나눌 만큼 전력이 충분하지도 않았다.
기사단은 여기에 두고 레티샤만 남몰래 옮기는 것도 꺼려졌다.
결국 온 힘을 다해 직접 지키기로 했다. 그리고 그럴 자신도 있었다.
“불화살!”
로일이 2층을 향해 소리쳤다. 에브론에서도 가장 궁술에 자신 있는 기사 하나가 대궁을 들었다.
호선을 그리며 날아간 불화살이 정확하게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쾅!
정원 바닥에 미리 깔아놓은 폭약이 터졌다. 사정거리 끝에서 총을 겨누었던 지원 부대가 그 폭발에 휩쓸렸다.
그때였다. 하인 하나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총집사장님! 불이 났습니다!”
“뭣? 지금?”
단순 화재가 아니었다. 로일이 경악한 순간 폭음이 났다.
로비에서 무기를 뽑아든 채 대기하고 있던 기사 일부가 우르르 그쪽으로 향했다.
안스가르는 다리가 아픈 것도 잊고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