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81
악녀는 두 번 산다 280화
폭발한 곳은 주방이었다. 폭음은 거기에서 난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는 쪽문에 불이 붙었다. 고용인들이 물통과 커튼을 들고 진화하려고 달려들었다.
쾅!
불붙은 문짝을 밖에서 병사들이 통나무로 후려쳤다.
로일은 시뻘게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이번에는 2층에서 고함이 들렸다.
“동편 응접실이 뚫렸습니다!”
“뭣?!”
로일은 기겁하여 그쪽으로 달려갔다. 로비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대가 그를 뒤따라 갔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창에는 모두 철판과 나무판을 덧대어 못질을 해두었다.
그 하나가 부서져 통나무가 창틀에 걸쳐져 있었다.
로일은 이를 악물었다. 이런 통나무로 한두 번 두들겨서 부서질 문이 아니었다.
누가 미리 못을 헐겁게 해둔 것이다.
통나무가 덜컹거렸다. 들어올 입구를 확보하기 위해 밖에서 병사들이 빼내려는 것이다.
2층에서 화살이 내리꽂혔다.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응접실 문을 잠가!”
기사들은 물러나면서 조금의 시간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응접실의 가구를 모조리 무너뜨렸다.
마지막으로 응접실 문을 닫고 밖에 있는 가구 하나를 쓰러뜨려 입구를 막았다.
“총집사장님께 가서 탈출 준비를 하시라고 해! 제1대, 제2대는 예정대로 황손님을, 제3대는 퇴로를 막는다.”
로일이 명령했다.
그는 용맹했으나 만용을 부리는 자는 아니었다.
주방에서 폭약이 터지고, 응접실 창문이 헐거워져 있었다. 틀림없이 배신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문은 열릴 것이다. 황자궁에서 피해야 했다.
“탈출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기사가 아기 방 문을 열고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밖으로 나갔다.
싸우는 손이 하나라도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안스가르는 마커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탈출 준비를 끝내놓고, 품에 큰 포대기에 싼 아기를 안고 있었다.
그는 황자궁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은 것이었다. 배신자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안스가르도 이번에는 크게 충격받지 않았다.
로운 제이든은 오브리 조르딘과는 또 달리 에브론에 충격을 주었다.
배신자는 또 나올 수 있었다. 오브리는 충동적으로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하지만 로운은 세드릭에게 배신감과 복수심을 품고 에브론을 위한다고 생각하며 배신했다.
그것은 로운 같은 자가 또 나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 에브론의 적대 세력에게 포섭되는 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었다.
하나인 에브론은 가혹하게 압박당하고 있을 때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이제 헤일리나 프레일 같은 젊은 자들만이 아니라 나이 든 가신들도 이해했다.
그렇기에 미리 황자궁이 열릴 때를 대비하여 계획을 짰다. 진짜로 실행하게 되었다.
안스가르도 묵묵히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가슴 쪽으로 묶어 안았다. 젖어미의 아들이다.
자신과 이 아기는 미끼였다.
부대는 둘로 나뉘어 도주할 것이다.
하나는 후버 장군이 관할하는 군 사령부로, 다른 하나는 대공저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포대기가 둘, 안은 것이 각각 총집사장과 보부라면, 상대는 어느 쪽이 진짜인지 분간하지 못할 것이었다.
낯선 사람의 품에 안긴 아기가 버둥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젖어미는 눈물을 삼키면서도 외면했다.
안스가르가 말했다.
“아마 저희가 탈출하고 나면, 수색대 몇 명이 남을 겁니다. 조용히 침실에 계시다가 보호를 요청하여 댁으로 돌아가십시오.”
거스는 키쇼어를 존경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미엘르는 육체적으로 완전히 무력하고, 정략가도 아니었다.
키쇼어도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키쇼어 가문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고, 인척인 벨몬드 가문도 정치에서 힘을 쓸 신분이 못 되었다.
그러니 설령 에브론이 뿌리째 뽑혀도, 미엘르는 무사할 것이다.
굳이 해칠 이유가 없었으니까.
몸 약한 어린 숙녀를 해쳤다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만약의 경우에……, 정말로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그때에 아기님 곁에 있어 주십시오.”
꼭 같은 일을 겪어본 사람의 말이었기에, 그 말은 몹시 무거웠다.
미엘르가 하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마커스를 바라보았다. 마커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걸고 레티샤 님을 지킬 거예요.”
“감사합니다.”
안스가르가 눈가에 주름을 잡고 미소를 띠었다.
밖에서 기사가 문을 두드렸다.
안스가르가 서둘러 먼저 나갔다. 습격자들은 벌써 황자궁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있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퇴로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서 에브론 기사단이 싸우고 있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로일이 외치는 소리가 아기 방까지 들려왔다.
안스가르가 밖으로 나가는 순간 마커스가 가슴에 안고 있던 포대기를 풀어 미엘르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벽의 장식 패널을 힘껏 열어젖혔다. 그 안에 벽장만 한 공간이 있었다.
“어서!”
미엘르는 그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무사하십시오.”
마커스가 간절히 말하고 패널을 닫았다. 그리고 아기 대신 인형을 싼 포대기를 품에 매고 나갔다.
“감사합니다.”
마커스가 낮게 말했다. 그리고 패널을 닫았다.
곧 다급한 발걸음들이 멀어졌다. 미끼가 된 아기가 목 놓아 우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려왔다.
“으응, 후응.”
레티샤가 투정을 부렸다. 곧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미라 미엘르는 좁은 공간 안에서 아기를 조심스레 토닥였다.
“울면 안 돼요, 레티샤 님.”
이 벽장은 아르티제아가 만든 것이었다.
「황자궁에 비밀 통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옛 비밀 통로는 다 너무 잘 알려져 있고, 새로 뭔가를 만들려 해도 눈에 너무 띄어.」
대규모 공사를 하면 황제의 눈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아르티제아가 만든 것은 작은 벽장이었다.
「쓸 일이 없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 나중에 뭘 보관하는 데라도 쓸 수 있겠지.」
그 벽장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마커스와 미엘르뿐이었다. 마커스는 안스가르에게도 알리지 않기를 원했다.
미엘르는 오늘 밤 벌어진 일의 전말을 몰랐다. 그러나 기사단의 긴장이 차츰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커스에게 미리 말했다.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레티샤 님을 모시고 숨을게요.」
「미엘르 님…….」
「저와 레티샤 님만 있다면, 혹시 들키더라도 다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레티샤 님이 무사한 게 가장 중요해요. 그렇죠?」
마커스는 무거운 얼굴을 했다. 이것은 미엘르에게 너무 큰 부담이었다.
「정말로 하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지킬게요.」
미엘르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 작은 아기에게 사랑을 쏟아 부은 것은, 그녀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른으로서 한 일이었다.
미엘르는 자기 삶이 민들레 홀씨보다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곤 했다.
부모를 슬프게 하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팔다리를 휘저으며 힘차게 세상과 마주할 일도 없이,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침실에서 시들어 죽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레티샤를 만난 뒤에는 달랐다.
레티샤에게 쏟은 사랑은 자신이 죽은 뒤에도 가치 있게 남을 것이다.
자기가 낳은 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새 생명의 성장을 돕고, 보살피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이 어린 아기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조각 사이로 구멍이 있어서 빛이 희미하게 새어들었다. 미엘르는 숨을 죽이고 밖에 귀를 기울였다.
싸움 소리가 손에 닿을 듯이 가까웠다.
벽 안에 숨어 있으니, 그 소리가 밑에서 올라오는지 방 안으로 들어온 발소리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군홧발소리가 어지럽게 흩어졌다.
“아, 악!”
비명소리가 바로 앞에서 터졌다. 미엘르는 바닥 쪽으로 향해 난 조그만 구멍으로 융단이 피에 물드는 것을 보았다.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미엘르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 레티샤의 입에 쪽쪽이를 물려주었지만, 자꾸만 뱉으려 드는 게 곧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미엘르는 필사적으로 그 머리를 보듬어 품에 안았다.
‘소리 내면 안 돼요. 소리 내면 안 돼.’
그녀는 거의 마음속으로 빌듯이 속삭였다.
이때 나탈리아는 황자궁 3층에 마련된 자기 처소에 있었다.
근위 기사 알덴이 직접 그녀의 방을 수색하러 왔다. 근위대원 셋이 돌아다니며 방문을 일일이 열어 보았다.
나탈리아는 습격자가 있을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애당초 농성 준비를 하는데, 그녀가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거느리고 있던 시녀들은 적당한 핑계를 대어 미리 멀리 심부름을 보냈다.
그러나 프레일의 협조 요청은 짧게 거절했다.
「비 전하께 부탁받은 것은 황손님의 안위야.」
에브론 기사단과 함께 싸울 생각은 없었다. 나탈리아에게는 그럴 의무가 없을 뿐더러, 이언츠 왕국을 위해서도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니 황자궁을 비우지는 않았다.
‘총집사장과 보부는 탈출에 성공했나.’
나탈리아는 창밖을 슬쩍 내다보았다. 달빛이 어두웠지만, 다섯 갈래의 움직임이 있는 것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에브론 기사단 두 무리가 도주하고, 그 뒤를 근위대와 수도 경비대가 쫓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꼬리를 또다시 에브론 기사단 한 무리가 잡았다.
미엘르에게는 길고 긴 시간이었지만, 사실 뚫리고 나서부터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20분 정도에 불과했다.
황자궁에 남은 것은 소수의 수색대뿐이었다. 병사들은 고용인을 모조리 쫓아냈다.
“무례를 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탈리아의 처소 어디에도 아기가 없는 것을 확인한 알덴이 정중하게 말했다.
이언츠 왕국이 제국의 속국이라고는 하나 왕세자비의 침실을 뒤진다는 것이 허락되는 일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대 밑까지 들여다보았다. 황손이 이곳에 숨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고 있다면 됐소. 물러가시오.”
나탈리아는 딱딱하게 말했다. 알덴이 손을 내밀며 부드럽게 말했다.
“영빈관에 있는 이언츠 왕국의 처소까지 에스코트하겠습니다.”
“심부름 보낸 시녀들이 돌아오지 않았소.”
“흉한 일이 있었으니 여기 남아 계시면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하실 겁니다. 시녀들에게 긴요한 짐부터 챙겨서 왕세자비 전하를 뒤따르도록 전달하겠습니다.”
나탈리아는 미동도 하지 않는 알덴의 손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알덴의 손 위에 손을 내밀었다.
알덴은 안도했다. 예민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외교 문제가 발생하면 나중에 그의 책임이 될 것이었다.
그 순간 나탈리아가 알덴의 손을 힘껏 움켜잡고 왼손으로 제 허리띠를 뽑아들었다.
하얀 아게이트로 장식한 허리띠 속에서 연검이 쑥 하고 뽑혀 나왔다.
알덴은 경악하며 나탈리아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미처 그러기 전에 낭창한 검신이 채찍처럼 그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