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83
악녀는 두 번 산다 282화
끼이잉!
높아진 바이올린 소리가 고음에서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실수를 저지른 악사가 창백해져서 멈칫했다. 하지만 그를 꾸짖는 자는 없었다.
함께 연주하던 악사들은 바이올린 주자가 잘못을 저질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남의 연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악기 5개에 클라리넷과 플루트, 바순이 포함된 8중주는 실내악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그럼에도 멀리에서 울린 폭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살롱의 손님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런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저녁 바람을 쐬러 테라스에 나가지 않았다.
저 소리가 무엇이냐고 묻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다.
시웰 왕국의 파렌 공작은 눈두덩을 손으로 눌러 마사지했다. 눈 안쪽이 아팠다.
“파렌 공작님.”
이언츠 왕국의 베르나트 왕세자가 술잔 두 개를 들고 와 그의 건너편에 앉았다.
파렌 공작은 몸을 세워 바로 앉았다.
“베르나트 전하.”
“이건 어떠십니까?”
베르나트가 라임과 민트를 넣은 음료를 권했다. 파렌 공작은 미소를 지었지만, 내심으로는 괴로웠다.
이미 견딜 수 없을 만큼 피로했다. 내일 푹 쉴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술을 마시면 더 힘들 게 분명했다.
하지만 타국의 사절도 아니고 왕세자가 주는 것이다.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속내를 읽은 듯 베르나트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술이 아니라 차를 넣은 겁니다.”
“오.”
“저도 술을 마시면 금세 졸려지는 편이라, 이걸 들고 다니면서 거절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파렌 공작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웃었다. 피곤하게 뭉개지던 머릿속이 예리하게 곤두섰다.
베르나트가 아무 의도 없이 민트 차를 권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 밤은 명징한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까지 했다.
제국의 권력이 바뀌려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지켜보고, 변하는 정세에 맞추어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머물러 있어야 마땅했다.
‘성녀에, 책봉에, 이제는 군란이라니.’
옥좌의 주인이 바뀔 때에 내란 획책과 숙청이 발생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황궁에서 총성과 폭음을 울려 퍼지게 할 줄은 몰랐다.
이게 다 황제가 황태자를 견제하려는 기색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전적으로 황태자를 지지하고, 미리부터 권력 이양을 준비했다면, 누가 감히 범궐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다.
‘황후는 황태자편이야.’
외교 사절에게 거절할 수 없는 초대장을 보내어 살롱에 모아놓은 것은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심지어 황후가 직접 참석함으로써, 먼저 일어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곧, 이 군란은 숙청을 위해 황태자가 유도한 것이다.
사실 이것이 가장 파렌 공작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일이었다.
황제는 세드릭을 양자로 삼기 위해 황후에게 상당한 대가를 내주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둘이 한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세드릭의 정치력이 아득히 높다.
시웰 왕국을 비롯하여 타국으로서는 불안해하고 경계할 만한 일이었다.
베르나트가 말했다.
“전 황후궁에 처음 방문해 봅니다. 살롱이 무척 우아해서 놀랐습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장식을 바꾸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유서 깊은 건물은 벽지나 가구를 자주 바꾸지 않는 법이니까요.”
파렌 공작은 신중하게 대답했다.
베르나트가 황태자의 배를 탔다는 것은 분명했다. 처음에는 황태자비와 왕세자비의 친교라고 했으나, 황태자비가 수도를 떠난 지금도 나탈리아는 황자궁에 머무르고 있었다.
파렌 공작은 그것을 이언츠 왕국인이 황자궁에 수시로 방문하기 위한 핑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그나저나 나탈리아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녀에게도 초대장이 발송되었을 텐데, 살롱에 오지 않았다.
황자궁에 있었다면, 지금쯤 일에 휘말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르나트는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탈리아가 황자궁에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황자궁의 방어가 절대 뚫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인지 파렌 공작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혹은, 베르나트가 걱정을 하면서도 전혀 티를 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베르나트가 여유롭게 말했다.
“그래도 인테리어가 시대에 뒤처진 느낌이 전혀 없게끔 관리하기 위해서 마르타 백작 부인이 무척 신경을 썼어야 할 겁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파렌 공작은 동의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복잡해졌다.
베르나트가 말하는 것이 정말로 황후궁의 내장에 관한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저희 집도 그렇습니다. 늙은이들 사는 집이니 뭘 바꾸거나 하는 일은 흔치 않지요.”
파렌 공작은 느릿하게 말했다.
“하지만 제 아내도 늘 여러 가지를 신경 쓴답니다. 매일 꽃을 바꾸거나, 화병을 유행하는 새로운 옷감으로 묶는다거나 하는 식이지요. 이번에 늑대 모피를 몇 장 사갈까 합니다.”
“겨울에 벽에 걸면 따뜻해 보일 겁니다.”
베르나트가 미소를 지었다.
연주가 잠시 멈추었다. 두 사람은 악단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유니스 백작 부인의 장녀 피오나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수십 년 동안 외교 사절로 제국 황실을 지켜보아 온 파렌 공작은 기묘한 감상을 느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이제 황후가 두렵지 않은 모양이군.’
황후가 궁문을 닫고 칩거하기 이전, 유니스 백작 부인은 황후를 몹시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황후궁의 살롱에 참석해 있다. 심지어 피오나가 피아노까지 연주하고 있었다.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는 시웰 왕국의 외교 사절로서, 새로운 권력자에게 줄을 대야 마땅했다.
하지만 황제와 동 세대 사람으로서 어떤 서글픔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일출을 보러 처음 제국에 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종 하나가 베르나트에게 작은 쪽지를 건네주었다.
“실례.”
베르나트가 쪽지를 펼쳐보고 일어섰다.
“아내가 도착했다는군요.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아, 예.”
파렌 공작은 일어서서 그를 배웅했다. 나탈리아 왕세자비가 왔다고? 지금?
그러고 보니 어느 틈에 총성이 몇어 있었다.
“으애앵! 후애앵, 힉, 끅!”
레티샤가 쉬지 않고 울었다. 나탈리아와는 이미 면이 익은 사이였는데도 소용없었다.
제 보호자들과는 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간 참았던 울음을 한꺼번에 울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이 쉬도록 통곡했다.
능숙한 하녀들이 돌아가며 안아보아도 소용없었다. 평소에 많이 울지 않던 아기라 더 가엾었다.
“나탈리아 왕세자비 전하.”
하녀 하나가 쭈뼛거리며 그녀를 불렀다. 따뜻한 물이 담긴 세숫대야와 물수건이 준비되었다.
나탈리아는 장갑을 벗고 거기에 손을 씻었다. 장갑에 피가 굳어 있어, 하녀가 그것을 치우려다가 소스라쳐 놀랐다.
나탈리아는 수건을 물에 적셔 얼굴을 닦았다. 붉은 것이 묻어났다.
왜 하녀들이 두려워하는지 나탈리아는 그제야 이해했다.
“갈아입으실 옷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황후 폐하를 먼저 뵙겠다.”
나탈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황자궁도 뚫렸는데, 황후궁 하녀를 믿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먼저 도착한 것은 베르나트 쪽이었다.
그는 애써 침착한 걸음으로 살롱을 떠났다. 하지만 복도는 달리다시피 하여, 노크하는 것도 잊고 문을 콰당 열었다.
“나탈리아!”
베르나트가 소리쳤다. 그가 쳐다보는 시선 덕에 나탈리아는 자기 귓가에도 피가 묻어 있는 것을 알았다.
“다쳤어?”
“괜찮아요. 다친 곳 없어요.”
베르나트가 다가와 그녀를 살폈다.
나탈리아는 피식 웃고 그의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아무 일 없을 거라는 거 알잖아요. 약속도 지켰고.”
베르나트가 고개를 끄덕이고 긴 숨을 내뱉었다.
“당신이 무사하면 됐어.”
쾅!
이번에도 문이 부서져라 양 옆으로 활짝 열렸다.
황후가 창백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마르타 백작 부인과 유벤 노자작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지친 듯 히끅거리던 레티샤가 놀라서 또다시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황후는 레티샤를 안고 있는 하녀에게 다가가 팔을 내밀었다. 하녀가 황후에게 아기를 안겨 주었다.
“놀랐구나. 불쌍한 것.”
레티샤의 등을 토닥이며 황후가 나탈리아를 돌아보았다.
“제국이 왕세자비에게 은혜를 입었군.”
“황공합니다, 황후 폐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고맙네.”
황후가 고개까지 숙였다. 나탈리아와 베르나트는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
“왕세자비가 쉴 방을 준비시키도록 하겠네.”
“아뇨. 황송합니다만, 돌아가 보려고 합니다. 키쇼어 영애와 벨몬드 영애가 아직 황자궁에 있어서요.”
미엘르는 목숨을 걸었다. 미리 언질을 받긴 했지만, 나탈리아는 미엘르가 진짜로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 마음은 마땅히 보답받아야 했다. 나탈리아는 그녀가 살기를 바랐다.
황후가 조치를 취하는 것보다 자신이 혼자 움직이는 것이 빨랐다.
황후는 잠시 나탈리아를 바라보았다. 거절해야 마땅했다. 타국의 왕세자비가 다시 무기를 들고 궁 안을 활보하겠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황후는 그럴 수 없었다. 황자궁은 뚫렸고, 나탈리아가 아니었다면 레티샤는 무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경비대에 이야기해서 필요한 것을 모두 가져가도록 하게.”
베르나트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다치면 안 됩니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탈리아가 베르나트의 손등에 키스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베르나트는 초조함을 억누르기 위해 애썼다.
“베르톨트 경과 가얀 경에게 내가 보잔다고 전해.”
황후가 명하자 시종 하나가 뛰어 나갔다.
그리고 황후는 땀과 눈물에 젖은 레티샤의 얼굴과 머리를 손수 물수건으로 닦았다. 기저귀를 갈고, 포대기도 바꾸었다.
순백색에 황금으로 황실의 문장을 수놓은 것이었다.
레티샤가 좀 더 자라면, 예복을 만들거나 하게 하려고 미리 준비하던 옷감이었다.
“흑, 흐앵…….”
레티샤의 울음소리는 조금 잦아졌다. 마음이 진정된 것이 아니라, 아무리 울어도 보부나 젖어미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탓인 듯했다.
황후는 레티샤를 안고 내실 밖으로 나섰다.
“팔이 편치 않으신데, 제가 모시겠습니다.”
유벤 노자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되었네.”
황후는 짧게 잘라 끊었다.
그녀는 황자궁 사람들처럼 레티샤를 내실에 숨겨 지킬 생각은 없었다.
황자궁이 뚫린 마당에 황후궁이라고 안전할까? 결국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인의 장막뿐이다.
그리고 사람을 믿을 수 없다면, 아무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
황후궁의 넓은 알현실에 근위 기사 넷과 근위대원 삼백이 모여 있었다.
부복하는 소리가 땅을 울렸다.
황후는 레티샤를 안은 채로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황궁 안에서 황자궁이 적습을 받았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근위대는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건가?”
“황공합니다.”
근위 기사 사무엘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대답했다.
“황손을 해치려 했으니, 이는 틀림없는 대역죄야. 하나도 남김없이 잡아들이게.”
황후가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