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86
악녀는 두 번 산다 285화
“뭐?”
황제는 대번에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시종장은 황제가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쿠션을 등에 받쳐 주었다. 그리고 미지근한 물을 건네주었다.
황제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시종장이 변함없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폐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해주셨죠. 잊으셨을지도 모르지만.”
“테오도어가…….”
황제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건 그가 스무 살일 때의 일이었다.
선황후의 선택을 받기는 했으나 부황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고, 대귀족들에게는 천출 사생아라는 경멸을 샀던 그 무렵.
테오도르는 선황후의 친정인 오르카 공작가의 적장자였다.
곧, 당시의 그로서는 맞서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시종장이 말했다.
“오르카 공작 영식이 절 죽이려 할 때 구해주셨지요. 그때 제게 무어라 말씀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황제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테오도어와 맞섰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 일이 오르카 공작과 선황후에게 어떻게 비칠까 하는 것도.
그리고 나중에는 그 일로 인해 시종장을 거둔 것이 참으로 제게 우연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했다.
시종장이 목이 메이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제국민의 인신은 황법으로 다스리는 법인데, 제아무리 권세가 높다 한들 그 자리에서 주먹으로 때려죽이는 것이 가당키나 하느냐고요.”
“…….”
“그때에 이분을 평생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황궁 시종은 대부분 비참한 신세였다.
황족을 모시는 몸이니 신분이 낮아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측근과는 달리 권력은 없고 늘 몸을 굽혀야 했다.
육체적 고됨은 둘째 문제였다. 제대로 된 귀족이라면 시종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몰락한 귀족이 자식을 팔아서 시종으로 만드는 일이 가장 많았다.
혹은 가문 내의 상속에서 완전히 밀려나 물려받은 가산조차 없어 생계가 어려워진 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식을 측근으로 들여보낼 능력은 없지만, 황족의 총애를 기대하고 보내는 경우뿐이었다.
사생아를 양자로 삼아 시종으로 들여보내는 일도 종종 있었다.
총애를 받아 권세를 얻는 일도 있었다. 시종에서 측근이 되었다가, 능력을 인정받고 권신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황궁의 가구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백 년 이상 내려오는 오래된 가구는 귀물이라 조심조심 다루었지만, 시종의 뺨을 때리는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시종장은 그때 처음 들었다.
“저 같은 자가 정치를 무엇을 알겠습니까?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폐하의 먹을거리에 독이 들진 않았는지, 잠자리는 편안하신지, 중요한 일을 하고자 하시는 순간에 자잘한 방해가 있지나 않은지 보살펴 드리는 것 정도였지요.”
“윌리.”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폐하를 모시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충성은 개인적인 애정만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종장은 황제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오로지 그것을 갚기 위해서 평생을 바친 것이 아니었다.
“폐하께서는 노하시면 때때로 물건을 집어던지셨지요. 시종을 꾸짖는 일도 있으셨고, 음모의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더 많으셨지요.”
시종장은 느릿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랫사람을 손발로 직접 두들겨 패 짓밟거나 일부러 모멸하지는 않으셨지요.”
“…….”
“잔혹하셨고, 때때로는 폐하를 모시는 이 시종의 눈에마저 동정의 눈물이 돌게 하는 일도 하셨습니다.”
평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으니 그가 가장 잘 알았다.
“하지만 모두 뜻하시는 바가 있어서 하는 일이셨지요.”
즉위할 때까지 암살과 독수가 계속되었다. 정치적 보복도 쉴 틈 없이 이루어졌다.
한 해 걸러 한 번씩 숙청이 있었던 때도 있었다.
대역죄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연좌제로 죽어 나가는 이의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찢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자의 피도 강물처럼 흘렀다.
그래도 시종장은 결코 황제를 책망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 너머의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제국민의 인신은 황법으로만 다스린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권을 드높이기 위해서라도.
시종장도 어리석지 않았다. 황제가 오르카 공작 영식에게 맞선 것이 단순히 맞아 죽을 뻔한 자신이 불쌍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것까지 모두 포함해서, 그래도 황제에게 내려진 천명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저 같은 자도 폐하를 통하여 바라보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설령 폐하의 치세에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어쩌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제게도 소망하는 세상이 있었답니다, 폐하.”
당신의 손발을 주무르고 닦는 것이 제 꿈에 가까이 가는 길이라고 믿은 사람도 있었다.
시종장은 황제를 내려다보았다.
“로렌스 경이 처음 시종을 때린 게 아홉 살 때 일입니다.”
황제는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라, 시종장은 아예 묻지도 않았다.
“그 시종이 열세 살 난 아이였습니다. 황궁에 막 들어왔지만, 영민한 아이라 제가 일부러 따로 골라 로렌스 경에게 붙였지요.”
황제의 마음이 로렌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인연을 맺어, 자신이 황제를 모시듯 로렌스에게도 그런 시종이 생기기를 바라서.
로렌스는 그 시종을 매일 때렸다. 때리기 위해 자잘한 트집을 잡았다. 신발 끈을 잘못 묶었다거나, 책 모서리가 우그러졌다거나.
나중에는 트집을 잡지조차 않았다. 시종 아이는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채 참고 참다가 마음이 망가져 버렸다.
그 뒤로 시종장은 어린 시종을 로렌스에게 붙이지 않았다.
로렌스는 사람을 때리며 웃었다. 그 폭력에는 목적이 없었다.
로렌스가 마침내 처음으로 사람을 제 손으로 직접 때려죽였을 때, 시종장은 황제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큰 처벌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가 또다시 저를 구했을 때처럼 말하기를 기대했다.
“제국민의 인신은 황법으로만 다스려야 한다. 너는 그것을 알기 전에는 자격이 없다.”
그에게도 소망하는 세상이 있어, 황제를 통해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아들을 사랑하여 용서하더라도, 소중한 제국에 손대지는 못하게 만들기를 바랐다.
황제는 그러지 않았다. 아직 철이 없으니까, 아직 혈기가 넘치니까, 화가 날 일이 있었으니까. 그러면서 덮어주었다.
「너무 걱정 말게. 그 녀석이 지나치게 오만하고, 잔인한 면이 있긴 하지만, 어리석지는 않으니까. 곁에 로산 후작과 황태자비도 있지 않은가?」
시종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어쩌면 아예 자신이 잘못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통치는 개인의 인간성과는 상관없는 일일지도 몰랐다.
황제도 잔인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가 꿈꾸게 해주지 않았던가.
분명히 그렇기에 로산 후작도, 성녀도 로렌스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녀는 죽었다. 로렌스는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는 그것을 모두 목격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눈을 떴을 때, 자신이 과거로 돌아와 있음을 알았다.
황제는 이번에는 로렌스가 아이를 사냥감으로 삼은 것을 덮어주었다.
그때 그가 신경 쓴 것은 로렌스가 저지른 죄가 여론을 악화시켰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황법을 어긴 것에 노한 것이 아니었다.
“저는 감히 폐하의 옥좌에 제 권리가 있다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앉으신 옥좌는 제가 꿈꾸던 그 옥좌가 아니더군요.”
황제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뜻하신 바를 이루지 못하신 적이 없으셨지요.”
시종장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서 제가 폐하를 죽였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조금씩.”
사십 년을 모셨다. 시종장의 기억에는 그보다 십 년 하고 이 년이 더 있었다.
시종장에게는 가족이라고 할 만한 이가 없다시피 했다. 부모는 이미 죽었다. 형제는 황제에게 폐가 될 것을 우려하여 그가 쳐냈다.
황제는 그가 평생 모든 것을 바쳐 소중히 닦고 보살펴온 기둥이고 그의 지붕이었다.
제국의 기둥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은 그의 긍지였다. 황제가 제게 신뢰를 줄 때 그는 폭우가 내리는 속에서도 지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든든하고 안심되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기둥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어찌해야 할까?
로산 후작의 행동이 그가 알던 것과 달라져 있었다. 시종장은 그녀도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기둥을 무너뜨리는 대신에 조금씩 갈아내기로 했다. 그녀가 새로운 기둥과 지붕을 세울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서.
그는 가장 먼저 황제의 식단을 바꾸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에게 꿀물에 재울 약초를 의사가 말한 것과 다르게 알려주었다.
의사가 달이라고 주는 약재에서 일부를 가감했다. 건강에 좋은 것이라며 다른 약재를 이용한 음식을 해서 올리기도 했다.
그는 20년, 그리고 사라진 미래에 10년을 더하여 30년 동안 황제의 병을 보살펴왔다.
황제가 붕어하기 전 마지막 1년 동안은 정말 필사적으로 목숨 줄을 붙들고 있었다.
의사보다도 황제의 건강 상태를 더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에 대해서도.
병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동시에 했다.
컨디션과 체력이 유지되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철저하게 상황을 통제했다. 혹시라도 갑자기 나빠지면, 의사가 알아채고 치료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망연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만났을 무렵에는 서로 홍안의 소년이었다. 사십 년을 보아왔다. 그들은 함께 늙었고, 제 얼굴보다도 상대의 얼굴이 더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종장의 늙은 얼굴은 모르는 사람의 그것처럼 보였다.
“자네가, 윌리, 자네가…….”
황제는 그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는 가슴에서 불덩이 같은 것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욱! 웩!”
그는 피를 토했다.
“제가 끝까지 곁에 있어 드릴 겁니다, 폐하.”
시종장이 말했다. 그는 황제가 토한 피를 손으로 받는 것을 거리끼지 않았다.
충실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 * *
황궁으로 돌아온 세드릭은 황자궁이 아니라 황후궁으로 직행했다. 가얀이 그 뒤로 따라붙으며 황궁 내의 상황을 보고했다.
“근위 기사 6명을 제외한 나머지 34명 전원 지금 황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근위대원 124명이 사상했으나 지금 황궁 안은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 34명 모두 신뢰할 만한가?”
“지켜봐야 할 자가 여럿 있습니다만, 볼 수 있는 위치에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황자궁은…….”
세드릭이 걸음을 멈추었다.
“나중에.”
“죄송합니다.”
가얀이 물러났다.
황후궁의 살롱에서는 아직 음악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세드릭은 피딱지가 말라붙은 장갑과 부츠를 벗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문을 쾅 열었다. 관자놀이에도 검붉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깜짝 놀란 악사들이 손을 멈추었다. 살롱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황태자가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는 명백했다.
그가 승리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