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89
악녀는 두 번 산다 288화
황제는 좀처럼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이번에 설령 눈을 뜨신다 해도, 여명이 길지는 않으실 겁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도 이제 상황을 받아들인 듯 전보다 침착해져 있었다. 아니면, 황제의 목숨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한 것일지도 몰랐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황태자파의 누군가가 손을 썼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는 입을 다물고 짐작하는 음모들에 대해 눈을 감을 것이다.
이미 얻은 명예와 재물에 만족하는 것이 오래 사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니까.
세드릭은 황명을 불태웠다. 불붙은 종이가 흩어져 마지막 재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는 재까지 흩어버렸다.
역도를 심문하고 처형하는 일은 조용히 이루어질 것이다.
굳이 일부러 고문당한 몸을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처형장을 공개하고, 효수하여 공포심을 부추길 필요가 없었다.
세드릭은 연좌제도 대폭 완화했다. 연좌제로 사형을 언도받은 자는 없었다.
귀족이라면 작위를 박탈하고 일가를 흩어 가문을 없앴다. 부유하다면 재산을 몰수했다. 명예를 없애고 벽지로 이주시키기도 했다.
열다섯 살 미만의 아이는 모두 용서되었다. 부모가 살아 있다면 함께 유배 지역으로 가거나 수도원에 맡겨 양육되게끔 결정되었다.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을 따르는 등의 단순 가담자에게는 아예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본인도 처형 대신 백의종군을 명했다.
염려하는 이들에게 세드릭은 말했다.
“복수를 하려고 한다면 그래도 좋다. 복수하려는 자가 황실을 뒤엎을 수 있을 정도로 중의를 모을 수 있다면, 그런 황실은 망해도 되겠지.”
그 말을 들은 프레일은 식겁해서 말렸다.
“공개적으로는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진짜 등골에 식은땀이 납니다.”
세드릭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지나치게 무르게 굴고 있다고 생각하나?”
“조금 더 냉혹해지시면, 제가 참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프레일이 한탄하며 말했다.
“뭐,”
군부에서는 크게 경계했지만, 행정 관료들은 환영했다.
특히 린 재상은 꾸준히 연좌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었던 터라, 말할 것 없이 기뻐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이것이 훗날 황태자 전하의 치세를 상징하는 중요한 결정이 되실 겁니다.”
그다음에는 대관식 준비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직 황제가 생존해 있었다. 불경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드릭 자신밖에.
황후가 물었다.
“대관식 준비를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아직 이릅니다.”
“이르지 않다. 설령 그레고르의 숨이 돌아온다고 해도, 얼마나 버티겠니?”
“굳이 서두를 필요 없으니까요.”
대리청정을 시작하면서 군권과 정보조직을 제외한 나머지를 이양받았다.
퍼거슨을 설득하면서 정보조직의 절반을 손에 넣었고, 비밀 수사 조직은 역모와 더불어 해체되었다.
군부에서 적극적 반황태자파 인사가 반역으로 갈려 나가고, 그 자리를 친황태자파 인사가 채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군부도 세드릭의 수중에 들어왔다.
중앙 권력은 전부 장악한 셈이었다.
황태자의 이름으로도 모든 문제를 처리할 수 있었다.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대관식을 서둘러 황제의 관을 머리에 썼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아르티제아가 부재중이었다.
“티아가 돌아오기 전에는 할 마음 없습니다.”
황후와 같은 권유를 했던 자들은 모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아르티제아를 아는 사람은 아는 사람대로 그녀가 공신 명부 제일 윗줄에 있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황태자비가 자리를 비우고 있는데 황태자 혼자 대관식을 치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물며 황태자비가 성녀인 마당에야 더 말할 것이 없었다.
황후는 거기에 다른 사람보다 한 가지 질문을 더 할 수 있었다.
“돌아오라는 연락은 보냈겠지?”
“……예.”
일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프레일이 그쪽으로 전서구를 날렸다.
연락하지 않았더라도, 아르티제아가 이곳 사정을 모르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지 한 장 없었다.
이제 자신이 손쓸 일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실제로도 이번에는 그녀의 지혜를 빌리지 않고도 그럭저럭 잘 끝났다.
그래도 세드릭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유벤 노자작이 변절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황제와는 무슨 대화를 하고 떠났는지.
자신에게 소식을 주고 싶지 않은 건지. 레티샤는 그리워하고 있는 건지.
자신이 잘해내고 있는지. 제게 돌아올 마음이 있긴 한 건지.
목표는 달성했다. 그는 이제 곧 황제가 될 것이었다.
아르티제아에게 무릎을 꿇었을 때에 영혼을 팔아서라도 이루고 싶었던 일이 손아귀에 쥐어져 있었다.
그러니 기뻐하지는 못하더라도 성취감 정도는 느끼는 것이 옳을 것이다.
희망을 품고 힘껏 걸음을 내디디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이제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펼칠 수 있었다.
한 번의 생애 동안, 또 새로 시작한 인생에서 줄곧 그것을 바라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세드릭은 전혀 그런 마음 상태가 아니었다.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음에서 모나고 기운 찬 부분은 이미 비바람에 깎여 나갔다.
간신히 지켜온 정순한 중심도 깨지고 금이 가서 전 같지 않은 모양이었다.
‘차라리 그녀가 진짜 악마이기라도 했다면 속 편히 영혼을 팔고 편해졌겠지.’
세드릭은 그런 생각까지도 했다.
아르티제아가 서부로 가고 없어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정치적 일을 의논할 사람도 있었고, 은밀한 일을 믿고 맡길 사람도 있었다.
전에는 저 때문에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서 그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
정치적 상황이 갈려서 적이 되었었던 이들이 지금은 그의 충신이었다.
사랑할 아기도 있었다. 자식을 얻는다는 것은 그가 일찍이 얻어보지 못한 기쁨이었다.
아침에 면도하지 않은 채로 안아 올리면 레티샤가 제 뺨을 고사리손으로 밀어댔다. 그게 어찌나 마음에 간지러운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의 마음은 돌아오기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고독했다.
한 사람이 완전한 이해와 몰이해로 내부를 난도질하여, 세드릭은 그 폐부의 상처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때로는 증오를 짓씹느라고, 때로는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보낸 긴 시간들이 있었다.
때로는 가련히 여기고, 때로는 경탄하면서 쏟아부은 감정들이 있었다.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아르티제아만큼 자신을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자신만큼 아르티제아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조금도 마음이 통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터인데도. 틀림없이 그럴 텐데.
그리고 서부에서 온 것은 돌아오겠다는 전갈이 아니라 알폰스의 유해였다.
리시아 모르텐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이때의 일이다.
“저는 서부로 가야겠습니다.”
세드릭이 황후에게 말했다. 황후는 처음에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멍한 얼굴을 했다.
그다음에는 입을 벌렸다. 황후는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다. 하지만 한 순간 어이없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일이냐?”
아직 대관식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세드릭은 이미 제국의 대권을 쥐고 있었다.
그냥 황태자의 신분이어도 가벼이 나다닐 수 없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게 허용될 리 만무했다.
게다가 군란이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정식으로 행차를 갖추어 순행을 한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었다.
그런데 세드릭이 말하는 것은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대공 때처럼 수하 몇 명을 거느리고 가벼운 몸으로 가겠다는 것이 분명했다.
“황태자비가 걱정되는 심정은 이해한다. 시녀가 해를 입었다면서?”
황후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전한 행정도시에 있다고 들었다. 네가 딸려보낸 호위들도 있고, 정 급하면 서부군을 동원할 수도 있지 않니?”
군란이 끝나자마자 군부에서 동요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각지의 지방군에게 보냈다.
군벌 중에서도 소식이 빠른 자는 슬슬 상황 파악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황제의 은밀한 허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성녀인 황태자비를 직접 위협할 자가 있을 리 없었다.
“빨리 돌아오라고 하려무나. 대관식도 대관식이지만, 역병이 도는 지역이라서 더 염려가 되는구나.”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수도 사정을 알리고 돌아오라고 보낸 전갈에 헤일리가 답장을 했다.
『비 전하께서 원치 않으셨기에 지금껏 소식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비 전하께서는 아바 강 유역으로 향하셨습니다.』
전서구에 매달린 편지는 짧았다.
세드릭은 그것만으로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알폰스가 죽고, 리시아가 사라졌다. 역병의 전염 속도는 느렸지만, 감염된 마을이 전멸되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본래대로라면 비밀 수사관 따위를 세드릭이 직접 심문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콥을 만나보았다.
쓸모 있는 정보가 나오지는 않았다. 세드릭이 알 수 있었던 것은 콥에게 과거의 기억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로렌스가 기억이 돌아왔다는 것도.
이 일의 진짜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마도 벌이고 있는 로렌스를 제외하면 리시아와 아르티제아, 그리고 자신밖에 없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바 강 재해는 그가 결정적으로 황제에게 미움과 의심을 받게 된 계기였다.
군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진심이 어떠했든, 부절을 반납하지 않고 군을 움직인 것은 용서 못 할 일이었다.
그때에 그는 인맥도 상실했다.
그는 수도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완전히 잃음으로써 더 이상 리시아를 지켜줄 수 없게 되었다.
서부의 백성들은 그를 칭송했다. 북부의 가신들을 그를 이해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 했다. 또다시 같은 일이 발생한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잃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모두 없어진 일이다. 세드릭은 부절의 주인이 되었다.
몸을 황궁에 둔 채 중앙군과 서부군을 풀고 옛 감정들은 무시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리시아에게 빚이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로 용서 받은 것은 아르티제아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르티제아를 그 안에 혼자 던져 넣을 수 없었다.
그녀의 책임은 자신의 책임이다. 아르티제아의 죄는 자신이 같이 갚아야 했다.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을 때에, 책임을 자신이 지려고 했다. 그녀의 팔에 팔찌를 채울 때에, 그녀가 저지른 모든 일을 같이 감당하기로 했다.
“임시로 린 재상에게 섭정을 맡길 생각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네 위치를 자각해! 너는 이제 혼자 몸이 아니다! 널 그 자리에 세워놓은 것은 네 혼자서 한 일이 아니란 말이다!”
황후가 언성을 높였다.
“저는…… 사람입니다, 황후 폐하.”
세드릭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 몸이 아니었던 것은 언제나 그랬지요. 제 목숨에는 에브론의 목숨이 얹혀 있었고, 지금은 제국의 현재와 미래를 얹었습니다.”
“세드릭.”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사람입니다. 사람의 염원과 절망을 새겨 옥좌에 앉혀 놓을 조각상이 아니라.”
세드릭이 일어섰다.
아르티제아는 말했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행하는 법이라고.
그리고 그는 지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딱 한 번만, 저 자신으로 살겠습니다.”
황후는 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황망한 목소리로 물었다.
“레티샤는 어쩌려고?”
“황후 폐하께서 보살펴 주실 테니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전 어디서든 살아 돌아올 자신이 있습니다.”
설령 혼자가 된다고 해도.
세드릭은 그렇게 말하고 방에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