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90
악녀는 두 번 산다 289화
25. 해일
세드릭이 서부의 경계선을 넘을 즈음, 아르티제아는 이미 아바 강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떠나기 전, 헤일리의 반대는 보통이 아니었다.
“리시아가 염려되시는 마음은 알아요. 저도 걱정하고 있어요. 리시아는 제 사촌 동생이고, 저도 이 이상 가까운 사람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요!”
말해놓고 헤일리는 저도 충격 받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조르딘의 일은 그녀가 진짜 아르티제아의 심복이 된 뒤로 서로 입에 담은 일이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조용한 시선으로 헤일리를 바라보았다. 무정물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 자신이 무정물인 것처럼 감정이 일체 엿보이지 않았다.
“나는 네가 이해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아르티제아는 억양 없이 말했다. 그 말투에는 특별히 냉정함이나 차가움도 들어 있지 않아서 더욱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헤일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비 전하께서 직접 가신다 한들 무엇을 하실 수 있다는 건가요?”
그녀는 강경하게 말했다.
“기사단을 보내세요. 서부군에게 명령하세요. 비 전하의 능력은 저 벌판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실내에서 가치 있는 것이라고요!”
그 말에 아르티제아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비참했다. 골방의 음모가야말로 자신의 역할이며,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을 아르티제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 말하지 않았니. 사람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해버린다고.”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아
재능이 없고 효율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도, 그만큼 소중히 여겨야 할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나는 내 주변 사람이 다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만일에 영애가 나와 함께하려고 한다면, 그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겁니다.」
세드릭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함께 갈 때에 진짜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겁니다.」
세드릭은 이렇게도 말했다.
「그때에 나는 이미 당신이 하는 일의 책임을 내가 지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고독하게 하지 말아줘요.」
그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기를 잊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아르티제아는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리시아는 그녀에게 진짜로 선한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그전의 아르티제아는 윤리와 신학을 공부하고도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런 것은 위선이거나, 과거의 어느 권력자가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퍼뜨린 이념에 불과할 것이었다.
사람은 생래적으로 악하다. 아르티제아가 아는 세상은 괴물과 짐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그래서 짐승이 되기보다 괴물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리시아를 알고서 평생에 처음으로 사람답다는 게 무엇인지 알았다.
지키려고 애썼다. 비에 맞지 않게 지붕을 덮어 씌우고, 세찬 바람을 막고 싶었다.
세드릭이 저 멀리 있는 등대 같아서, 그것을 부수려고 방파제를 들이받고 들이받아도 닿지 않았던 존재였다면, 리시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울 비옥한 토양이었다.
하지만 그 토양은 호우에 쉽사리 쓸려내려갔다. 그녀가 씌운 지붕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아르티제아는 그녀를 지키겠다고 맹세했었다. 세드릭에게 약속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키지 못했다.
그게 그녀가 처음으로 알게 된 인간성이었을 텐데.
헤일리의 말이 옳았다. 세드릭도 말했었다. 자신이 서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리라고.
하지만 어떻게 남에게 맡기고 수도로 돌아가 세드릭의 얼굴을 마주 보고 웃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인간성을 구하지 못하면 인간으로 성립할 수조차 없을 텐데.
그래서 아르티제아는 헤일리를 설득하지 않고 명령했다.
“넌 이곳에 남아서 내가 서부 각지를 순례차 돌아다니고 있는 것으로 꾸며.”
“비 전하…….”
헤일리는 결국 그 명령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프레일에게 편지를 썼다.
『서부의 민심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성녀를 만나 은사를 받으려는 자는 숱하게 많은데, 역병을 이유로 여행은커녕 바로 이웃마을로도 가지 못하게 막고 있으니까요.
황태자 전하께서 과거에 에브론 기사단을 이끌고 서부군을 재건하러 가셨을 때에는 무척 화가 났었습니다.
그런 요구를 순순히 들어준 황태자 전하께도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고요.
북부에서 북부의 일을 해내고 있으니, 서부는 서부의 일을 알아서 해내라 싶었지요.
토지는 비옥하고, 기후도 살 만하지요. 몬스터 웨이브는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서부군의 장군들이 권력을 위해 중앙으로 떠나버리거나 성주가 되어 제 땅만 지키고 앉아 있지 않는다면요.
왜 그 부담을 북부가 져야 하는가, 왜 에브론 기사단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아마 프레일 경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아참, 경도 그때에 황태자 전하의 부관으로서 종군했었지요. 그렇다면 지도를 펼쳐놓고 기록을 읽는 저보다는 훨씬 먼저 아셨겠군요.
이곳에 와서, 지금이 되어서 그때 일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황태자 전하께서 서부에 인심을 사두시지 않았다면, 지금쯤 서부군이 방역과 치안에 협조하더라도 한두 건 이상의 난리가 터졌을 겁니다.
성주들도 비록 내심으로는 반발하고 있겠지만, 역병 때문에 모든 곳에 서부군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지금, 섣불리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몬스터 웨이브가 터지면 큰일 나겠더군요. 서부 국경 너머에 나라가 있는 게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어요. 서부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성녀보다 다른 희망이 필요합니다.』
헤일리는 거기까지 썼다가 펜을 놓았다.
마주 앉아 있다면 무슨 이야기라도 했을 것이나, 편지로 남기는 것은 꺼려졌다.
‘불태우라고 해도 분명히 화로에 찌꺼기를 남기겠지.’
여름이라고 불도 빨리 끌 게 틀림없었다.
콩콩.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와요.”
헤일리는 편지를 반으로 접으며 말했다.
소피가 문을 빼꼼 열었다.
“헤일리 님, 바쁘세요?”
“아냐. 무슨 일 있니?”
“아뇨……. 그냥, 혹시 다른 연락 없는가 궁금해서요.”
헤일리의 책상 위에는 여러 가지 편지와 급한 전갈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소피가 궁금해하는 것은 없었다.
헤일리가 미안한 얼굴을 하자 소피가 멋쩍게 웃었다.
“저 그냥 좀 궁금해서 여쭤본 거였어요. 죄송해요.”
“답답하지? 이건 비 전하가 잘못하신 거야.”
헤일리가 짐짓 입을 삐죽거렸다.
다른 사람이 아르티제아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다면, 소피는 서운해하고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헤일리는 괜찮았다. 그래도 되었다.
“네, 솔직히 제 생각에도 마님이 너무 잘못하셨어요!”
소피가 웃으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아르티제아는 떠날 때에 앨리스 하나만 데리고 떠났다.
자신의 부재를 최대한 숨기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옷방을 관리하는 소피는 필요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었다.
“너무 걱정 마. 비 전하이시잖니? 아마 위험한 일도 다 꿰고 계실 거야.”
헤일리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널린 전갈들을 흘끔 바라보았다. 믿고 있으면서도 믿지 못했다.
이 이상 희생이 없기를 바랐다.
* * *
아르티제아의 마차는 아바 강 인근에서 가장 크고 번성한 도시를 그냥 지나쳤다.
마차 안에서 앨리스는 의아하게 물었다.
“카데르 시로 들어가지 않으실 건가요?”
앨리스가 생각하기에 카데르 시는 이 인근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다.
사실 카데르 시 말고는 아르티제아가 머물 만한 곳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바 강 유역의 땅은 대부분 지대가 낮고 비옥했다.
경작할 수 있는 토지는 넓고, 그런 데에 반해 강이 범람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탓에 예로부터 도시가 형성되지 못하고 규모가 작은 마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축제 기술이 발달하면서 수해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급격하게 도시가 발달하지는 않았다.
강에 기댄 작은 농촌만으로도 살 만했던 탓이다.
‘카데르 시는 그중에서 제일 발달한 도시이지.’
카데르 시는 조창으로 발달한 도시였다. 인근의 곡물이 모두 카데르 시에 모였다가 수운으로 다른 지역으로 실려나간다.
아르티제아는 그곳에 들를 작정이 없었다.
소문 수집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아르티제아는 지대가 높은 지역으로 올라갈 작정이었다.
한눈에 아바 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로.
멀찍이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마적이다!”
호위 중 하나가 소리쳤다.
마차가 멈추었다. 아르티제아는 얌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도시가 없고 작은 농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마적이 날뛰기 딱 좋은 지역이었다.
“별일이네요. 다들 기사단을 보면 피해갔는데.”
아르티제아의 호위대는 1백 명에 달했다. 전원 기사였다. 헤일리가 이것만은 양보하지 않은 탓이었다.
기껏해야 십여 명의 마적이 감히 덤빌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예상대로 흙먼지가 멈췄다. 말 한 마리만이 미친 듯이 기사들 쪽으로 다가왔다.
“경계!”
오웬 경의 명령에 따라 전열의 기사 열 명이 총을 겨누었다.
마적은 멀찍이에서 서성이다가 돌아갔다. 그들을 피해 달아나 오던 말 한 마리만이 아르티제아의 행렬에까지 다가왔다.
타고 있는 것은 먼지로 뒤덮인 옷을 입은 젊은 여자였다.
“거기서 멈추어라.”
오웬은 여자를 중간에 정지시켰다. 여자가 헐떡거리면서 말에서 굴러떨 어졌다. 힘이 다한 모양이었다.
기사 하나가 황급히 그녀를 붙들었다. 여자가 기사의 팔을 붙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서부군이신가요?”
“그렇다.”
기사는 북부인이었지만, 거짓으로 대답했다. 아르티제아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여자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기사는 당황했다.
오웬이 아르티제아의 마차로 다가갔다. 마적에게 쫓기던 여자를 보살펴주기 위해 잠시 쉬어도 괜찮겠느냐고 묻기 위해서였다.
아르티제아는 이미 마차 문을 열고 있었다.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알폰스의 시신이 돌아왔을 때보다도 더 경악한 얼굴로 아르티제아가 소리를 질렀다.
“베냐!”
여자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