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92
악녀는 두 번 산다 291화
아르티제아의 명령을 받고 서부군 1개 군단이 급파되었다.
아바 강 유역은 몬스터 웨이브에 직격타를 맞는 지역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평소에 배치되어있는 군 병력이 없었다.
아직 역병이 방역을 위해서 행정력이 집중된 장소도 아니었다.
일단 군을 불러들이긴 했으나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르티제아에게도 확신이 없었다.
아바 강이 범람한 뒤에 사후 처리를 하는 일에는 보탬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아바 강의 제방을 방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넓은 평야를 샅샅이 훑어 수십 명의 마적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바 강의 제방은 중요한 것만 해도 9개였다. 제방 하나하나의 규모도 작지 않았다.
제방을 모두 수색한다고 해도 그때에는 이미 이동했을 것이다.
카데르 시를 소개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상주 인구만 9만이었다. 교통 요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유동 인구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었다.
게다가 카데르 시가 있는 지역은 전체적으로 지대가 낮았다.
우기의 범람을 막기 위해 세운 9번 제방이 터지면, 카데르 시만이 아니라 인근 광범위한 지역이 모두 물바다가 될 것이었다.
아바 강 유역은 서부에서도 최대의 곡창 중 하나였다. 그 곡창이 망가지며 생길 타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그 두 가지 문제보다도 더 큰 것은 역병이었다.
대규모 수해가 일어난다면, 으레 수인성 질병이 뒤따랐다.
기생 몬스터에 의한 역병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전염병까지 돈다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로렌스라면, 그 물 속에 기생 몬스터에 감염된 사람을 몇 명 던져 넣을 것이다.
그 기생 몬스터는 숙주가 없어도 습한 곳에서 보다 오래 살아 남는다.
지금처럼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몇 종류의 역병이 섞여서 서부 전역에 돌기 시작하면 방역은 불가능했다.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막는 게 최선이었다. 실패한다면, 무사한 지역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곳을 버린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아바 강의 주요 제방은 9개야.”
아르티제아는 지도에 위치를 표시해놓고 베냐를 바라보았다.
베냐는 머뭇거렸다. 아르티제아가 물었다.
“강을 타고 내려왔다고 했지? 달아나 오면서, 제방을 지나쳤니?”
“네. 아마 그런 것 같아요.”
베냐는 혼란스럽게 대답했다. 사실 달아나는 동안 오로지 숨을 곳만 생각했던 데다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기억이 불분명했다.
폭포처럼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여행 준비는 어땠니? 말에 여분이 있었니?”
“아, 네. 20마리 이상 말이 더 있었어요. 짐을 싣기도 했지만, 가벼운 짐이었어요.”
베냐는 그것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녀는 리시아의 하녀로 끌려간 것이었다. 하지만 노동력이 있는데 쓰지 않을 리 없었다.
말먹이를 주는 일을 도와야 했던 것이었다.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냐는 이상한 얼굴로 아르티제아를 쳐다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리시아는 그녀에게 축복을 내려주었다. 베냐는 리시아의 축복이 다리를 다친 말을 완치시켜 일어서게 하는 것을 보았다.
베냐는 그녀가 성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로렌스도 그녀를 성녀라고 불렀으며, 마적들에게도 그렇게 부르게 시켰다.
이제 사원에서 그렇게 크게 발표한 성녀가 아르티제아이며, 그녀가 황태자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냐는 리시아야말로 진짜 성녀라고 믿었다.
앨리스와 오웬이 그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티제아가 아무 말도 없이 받아들이고 있으니 꾸짖지 못했다.
베냐는 아직도 리시아와 아르티제아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로렌스가 그녀를 딱 집어 끌어갔던 이유도 몰랐다.
그리고 황태자비 같은 높은 사람이 뭔가 중요한 일을 하면서 자신을 곁에 놔두고 있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베냐만이 아니라 두 사람에게도 이상한 일이 한가득이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무조건 따라가고 있지만, 아르티제아가 대체 무슨 근거로 무슨 일을 하려고 움직이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르티제아가 리시아에게 경칭을 붙이고 있는 것도 그랬다. 그녀가 리시아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는 앨리스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바 강의 중요한 둑은 9개야. 이중 7, 8, 9번을 터뜨리면 확실히 카데르는 수몰돼.”
“어떻게 아세요?”
헤일리나 프레일이라면 결코 이런 식으로 반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베냐는 아무것도 몰랐으므로 무심코 물었다.
그 질문에 아르티제아가 베냐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마님……?”
베냐는 의아하게 그녀를 불렀다.
곧 아르티제아의 표정이 가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녀는 지도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과거에 카데르 시에 피해가 닿지 않도록 몇 번이나 계산했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그녀가 터뜨렸던 것은 6번 제방이었다.
제방이 붕괴하면서 쏟아진 물은 7번 제방을 넘어 그 인근까지 범람했다. 그러나 피해는 거기에서 멈추었다.
그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카데르 시를 수몰시키려면 8번 9번 제방을 확실하게 터뜨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남에게 할 수는 없었다.
“오웬 경, 9번 제방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마적에 대해 수소문해 보게.”
“예. 짐이 가벼웠다면, 보급은 약탈로 해결했을 겁니다.”
“할 수 있는 한 해보게.”
아르티제아의 말을 듣고 오웬이 군례를 올리고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나갔다.
아르티제아는 베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친 입술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그녀는 개개인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9만의 목숨 중 9명을 구해내고서 최선을 다했다고 용서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었다.
사람 하나하나를 건져내는 대신에 숫자를 줄여야 했다.
그러나 눈앞에 베냐가 있는데, 무시할 수가 없었다.
“베냐.”
“네.”
“사람을 붙여줄 테니 우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구나. 가족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가 있도록 해.”
속죄의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속죄를 하려면 한 사람에게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이것은 오히려 리시아에 대한 그녀의 충실함에 보답하는 것이었다.
베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편지를 보내면 안 될까요?”
“편지?”
“네. 마님은 성녀님을 구하실 거지요?”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희 마을도 구해주실 거지요?”
“서부군을 보낼 거다. 마적의 위협은 없어지겠지.”
“그렇다면, 저는 여기 있게 해주세요. 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려도 된다면요.”
베냐가 말했다. 가족이 걱정할 것은 염려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아마 자기 신분으로는 일이 어찌될지 알 일이 막막했다.
리시아가 무사한지 어떤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남아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돌아간다고 해서 가족을 자기 손으로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냐는 주머니에 들어 있던 총알을 만지작거렸다. 그게 특별히 베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리시아가 처음 숨기게 했던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마을에 엽총을 가진 사람이 두어 명 있었지만, 베냐는 그때에 총알을 처음 만져 보았다.
그 총알은 자신이 얼마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표시 같기도 했다.
콰르르 물이 쏟아졌다.
리시아는 제방 앞에 서 있었다.
더운 날씨였지만, 강바람이 세찬 탓인지 오히려 조금 추웠다. 바람에 미친 듯이 머리가 날렸다.
“묶어줄까?”
로렌스가 말했다. 손에 금실로 수놓은 리본을 들고 있었다.
“이리 줘요.”
“베냐를 살려주는 대신 순종하기로 했던 것 같은데.”
“당신이 진짜로 베냐를 살려주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죠?”
로렌스가 웃었다.
“변했네. 옛날 같으면 날 믿어주었을 텐데.”
“…….”
“적어도 한 번은 살려주었잖아. 당신을 끌고 오자마자 눈앞에서 죽여 버릴 수도 있었는데.”
리시아는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내기도 했고. 네가 내 품에 안겨 있는 동안에는, 보지 못한 척해 주겠다고.”
그랬다.
베냐가 달아난 것이 발각된 것은 두 시간 정도 후의 일이었다.
리시아는 로렌스와 거래를 했다. 그녀가 먼저 로렌스를 포옹하고 입맞추는 동안, 추살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로렌스는 베냐를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리시아는 그를 믿지 않았다. 다정하게 굴어서 로렌스를 막을 수 있었다면, 자신은 벌써 그를 변화시킬 수 있었을 테니까.
역시나 결국 추살령이 떨어졌다.
그녀를 보내기 위해 세드릭의 권총까지 쥐여 보냈다. 베냐가 무사히 도망쳤기를 리시아는 진심으로 빌었다.
로렌스가 즐겁게 웃으며 리시아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보드라운 입맞춤이 리시아의 입가에 닿았다. 리시아는 고개를 돌렸다.
입술은 뺨을 쓸고 내려가 기어이 리시아의 입술을 더듬었다.
“그만해요.”
리시아는 손으로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발버둥 치면서 저항하지는 않았다. 그래 봤자 힘이 빠질 뿐이었으니까.
“더 다정하게 굴어, 리시아.”
로렌스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넌 의무를 좋아하잖아. 안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어요?”
“내게 의무를 다하라고. 신이 네게 날 사랑으로 변화시키라는 의무를 내렸잖아.”
“……나는 이제 성녀가 아니에요. 악!”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로렌스가 그녀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고개를 젖혔다.
그리고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리시아의 입술 사이로 비릿한 피 맛이 흘러들었다. 로렌스는 탐닉하듯이 키스하다가 혀끝을 그 상처 자국에 쑤셔 넣었다.
리시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픈 티도 내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과거에는 계속 사랑하려고 애써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거부하는 것이었다.
기쁨도, 고통도.
로렌스는 이제 자신을 절망시킬 수 없었다.
“신의 명령 없어도, 남편을 사랑하는 건 아내의 의무잖아. 안 그래?”
로렌스가 매혹적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 날 사랑해야지.”
“당신이 사악한 것을 내 탓으로 돌리지 말아요.”
리시아가 내뱉었다. 그녀는 의무감을 가지고 로렌스와 결혼했었지만, 그 수많은 의무와 책임 속에서도 로렌스에게 한때 느꼈던 낭만적인 감정은 거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난 당신 때문에 사람이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으니까.”
그렇게 말해도 역시 로렌스는 개의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