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96
악녀는 두 번 산다 295화
앨윈은 소심한 모리배였고, 정치에 직접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수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서부가 세드릭의 중요한 지지기반이니, 그것을 붕괴시키면 세드릭에게 손해가 된다는 정도의 개념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가 보기에도 아바 강의 제방 붕괴는 도가 지나쳤다. 마을이 수몰되고 인명 피해가 날 것을 우려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도 이것은 그레고르 황제가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래도 사나흘 전까지만 해도 앨윈은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지 않았다.
로렌스에게 무슨 생각이 있었겠지, 싶었다.
게다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르티제아는 찾고 있는 것을 기밀로 취급했다. 거주민 사이에 동요가 퍼져 일대가 혼란에 휩쓸리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병사라면 일단 두려움과 거부감을 갖고 있던 인근 주민들이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틀 전부터 추적병의 움직임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보다 과감하고 유기적이 된 것은 물론이고, 주민이 전면적으로 협조하면서부터 빠져나갈 방법이 요원해졌다.
붙잡히면 어떻게 되는 건가. 세드릭은 황태자였다. 앨윈은 이제야 그것을 실감했다.
“로렌스, 로렌스, 자네는 황제가 될 마음이 있긴 한 건가?”
앨윈이 헐떡거리며 물었다. 로렌스가 입가에 걸고 있던 웃음기를 싹 지웠다.
그랬다가 피식 다시 웃었다.
“멍청한.”
“로렌스!”
“그런 자네는 날 황제로 만들고 싶었던 건가? 진짜로?”
로렌스가 조롱조로 물었다. 앨윈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황제로 만들 사람에게 자네는 그렇게 반토막으로 말하나? 대체 황제가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앨윈의 얼굴이 굳어졌다.
로렌스는 빈정거렸다.
“권력이 사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인가? 그렇다 해도 결국 황궁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일 따름이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제국 저 끝의 사람을 처형하라고 명령해서, 실행되면, 그게 무어 즐거운 일이기라도 하던가?”
“로렌스…….”
“어차피 자네도 자네 저택 안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을 텐데.”
앨윈은 식은땀을 흘렸다. 로렌스가 흥얼거리듯이 말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되어도 황제의 명령 한 방에 날아가는 목. 하지만 황제가 된다 해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는 없지.”
아이러니하게도 충언이니 뭐니 하며 잔소리하는 자들이 사라지고 나자 뭘 해도 재미가 없어졌다.
로렌스는 고개를 숙여 리시아의 목덜미에 입맞추며 말했다.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뭐, 그랬다면 세상이 더 재미없었겠지만.”
사방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추적은 바로 뒤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달려가서 놈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라도 해보지그래, 앨윈. 무른 놈이니 살려줄지도 모르는데.”
앨윈은 창백해진 채 대답하지 않았다.
20분쯤 지났을 때에 앨윈은 대열에서 이탈해 사라져 있었다. 로렌스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 아바 강 지역으로 들어올 때에 그가 끌고 온 마적은 세자릿수였다.
이런저런 일에 쓰느라 갈라 보냈어도 사흘 전에는 오십을 헤아렸다.
그러나 지금은 불과 십여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제때 빠져나가지 못한 얼간이들이었다.
로렌스가 옆을 돌아보자 시선이 마주친 마적이 움찔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랬다가 로렌스의 손에 살해당할까 봐 겁이 났다.
로렌스가 킥 웃었다.
“운이 좋은 거야.”
“예?”
“도망을 가는 것도 뭘 알 때에 제대로 갈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말하고 로렌스는 허리춤에 달고 있던 화약 주머니 하나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권총으로 그것을 쏘아 맞췄다.
화약이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곧 화악 풀숲에 불이 붙어 올랐다.
미리 기름을 뿌려두었던 것이다.
전날 비가 온 탓에 불이 붙는 속도는 느렸다. 그러나 여기저기 대강 부어놓은 기름이 빗물을 타고 흐른 탓에 그 불길이 어떻게 퍼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마적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걱정할 것 없어. 어젯밤에 폭풍이 친 것도 아닌데, 물이 높은 곳으로 올라갔을 리는 없잖나.”
그렇게 말하고 로렌스는 느긋하게 구릉 쪽으로 말머리를 향했다.
아르티제아는 제방에 신경을 쓰고 사람을 추적하는 것에 집중했다. 세드릭도 기본적으로 그랬다.
넓은 지역을 수색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만이 아니었다.
화약을 숨겼다면, 그것을 관리하고 불을 붙일 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둘 모두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로렌스가 효율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로렌스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뭐하러 자신이 굳이 최대한 많은 수를 죽이려고 하겠는가? 그러지 않아도 리시아와 세드릭의 마음을 충분히 부술 수 있는데.
그는 굳이 화약을 터뜨리러 사람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 불길이 거기까지 번지면 화약은 폭발할 것이다.
“뭐, 제방까지 불이 퍼지기 전에 진화 작업이 될 수도 있겠지.”
운이 좋다면, 들불만 일고 말 것이다.
더 운이 좋다면, 비가 내릴 수도 있겠고.
로렌스는 리시아에게 말했다.
“치유력 말고 다른 성력을 쓰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어보았어?”
리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로렌스가 빙글빙글 웃었다.
“하긴, 당신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은 치유력이었지. 고치고 싶은 것은, 내 마음이었던가?”
그가 놀리듯 말했다.
그때였다.
개 짖는 소리에 섞여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리시아는 그 소리를 알아들었다. 겨울 눈바람 소리 같은 그것은 에브론에서 늑대 몰이를 할 때에 쓰는 신호용 화살소리였다.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리시아의 머리 위에서 로렌스가 혀를 찼다.
리시아는 곁눈질로 주변 상황을 살폈다.
남은 것은 9명이었다.
9명을 떨쳐내거나 시간을 끌 수 있을까? 손목이 묶인 상태로? 로렌스가 정말로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로렌스의 팔이 그녀의 눈가를 부드럽게 가렸다.
“허튼 생각하지 마, 리시아.”
리시아는 그 순간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등자에 걸쳐진 로렌스의 발을 힘껏 밟으며 몸을 솟구쳤다.
로렌스는 한팔로 리시아의 허리를 꽉 잡아 안았으나 한발 늦었다.
리시아의 뒤통수가 로렌스의 턱을 가격했다. 로렌스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지만, 리시아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리시아의 몸이 말 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로렌스까지 끌고내려갔다.
등자에 걸린 발을 허공에 걷어차 로렌스는 말에서 아에 굴러떨어지며 리시아를 껴안았다.
뒤따르던 마적들은 멈칫했다.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크, 악!”
위협사격이었는데, 운이 나쁜 놈 하나가 총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다.
리시아는 몸을 낮춰 바닥에 엎드렸다. 로렌스가 그녀를 몸으로 덮었다.
리시아는 그 밑에서 손을 풀어내려고 발버둥쳤다. 손에 뒤집어씌운 주머니라도 풀어내고 싶었다.
“리시아!”
세드릭이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로렌스가 리시아를 홱 잡아당기며 그 목에 칼을 들이댔다. 리시아는 숨을 멈췄다.
세드릭이 말고삐를 당겼다. 그의 뒤를 따라온 기사들이 황급히 멈춰 섰다.
진흙탕 위에 다그닥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어지러이 흩어졌다.
로렌스가 한숨을 내쉬며 리시아의 뒷목을 움켜쥐었다.
“하아. 하아.”
리시아는 헐떡였다.
세드릭이 말에서 내렸다. 로렌스가 말했다.
“네 부하들을 치워.”
“리시아를 놔줘, 로렌스.”
세드릭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 무사히 벗어나게 해주지.”
“뭘 좀 착각하나본데.”
그렇게 말하면서 로렌스가 리시아의 목을 젖혔다. 하얀 목에 얇게 붉은 선이 그어졌다.
“난 여기서 리시아를 죽여도 상관없어. 도로 너에게 주느니 그냥 죽일 거야.”
“미친놈. 네 아내였어.”
“맞아. 그러니까 네놈에게 주느니 죽이겠다는 거지.”
세드릭이 이를 악물고 로렌스를 노려보았다. 로렌스가 비죽이 웃었다.
“뭐, 난 괜찮아. 다 같이 이러고 여기 서서 아바 강이 범람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흥취가 있겠지. 아니면, 리시아째로 날 쏴죽이거나.”
로렌스가 이죽거렸다. 그는 세드릭이 그러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실익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만일에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로렌스에게는 꽤 재미난 일이 될 것 같았다.
세드릭이 망설였다. 리시아는 고통스러운 기분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쾅!
폭음이 귀청을 찢었다. 진동이 지축을 흔들었다.
세드릭도, 리시아도, 다른 이들도 모두 반사적으로 그쪽을 돌아보았다.
구릉 중간에서도 제방이 붕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들불이 번져가 마침내 화약에 불을 댕긴 것이었다.
“하, 하하하!”
로렌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얼었군, 리시아. 저게 뭐 별거라고 그래? 세드릭이 일처리를 잘했다면, 저거 하나로 끝날지도 모르잖아?”
“로렌스!”
세드릭이 울분을 터뜨리며 로렌스에게 달려들었다.
리시아가 소리쳤다.
“아직 안 끝났어요!”
제방을 넘어 폭발과 함께 솟구친 물이 아래로 쏟아지지 않았다.
새하얀 빛의 장벽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신탁을 받은 날에 콜튼 수사가 말했다.
「지금은 신탁의 의미를 아실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따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르티제아는 그날의 대화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귀하를 위해 무엇이 안배되어 있는지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알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되돌려라!》
그 신탁은 너무 추상적이었다.
되돌려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반대로 되돌린 것도 너무 많았다.
그중에 신이 ‘되돌릴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
시간인가? 아니면, 아르티제아가 한 번 뒤집은 역사인가?
혹은, 정당성인가? 성녀의 미래인가? 자신이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인가?
하지만 그 언덕에 올라서서 제방을 내려다보다가 아르티제아는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자신이 되돌려야 할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녀가 불완전한 대마법을 실행함으로서 발생한 오류.
신의 말로는 다를 테지만, 아르티제아는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을 그렇게 이해했다.
본래대로라면 대마법의 실행과 동시에 존재 자체가 소멸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가 과거에 남긴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기억을 가진 자가 스스로는 하지 않았을, 혹은 하지 못했을 일을 했다.
곧 자신의 악행이다.
아르티제아의 손 아래에서 피로 그린 마법진이 미친 듯이 돌아가며 빛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