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99
악녀는 두 번 산다 298화
26. 돌아가는 길
눈을 뜨자, 한새벽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이불 안에서 발을 꼼지락거렸다. 발목이 시큰거렸다.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다음에는 손을 움직여 보았다.
검지에 통증이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엄지로 그 부분을 쓸어 보았다. 통증이 느껴지는 손가락 한 마디가 비어 있었다.
“꿈, 이 아니구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제대로 나왔다.
마지막 기억은 세드릭의 어깨 너머로 마법진의 빛이 녹색 빛의 기둥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달빛이 창으로 새어들어왔다. 창가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섰다.
“일어났어요?”
“……리시아 님.”
아르티제아는 마치 꿈속에서 부르듯이 그녀를 불렀다.
리시아의 머리칼에 달빛이 내려앉아 퇴색한 빛깔처럼 보였다. 적어도 15년은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이에요.”
리시아가 미소를 지었다.
아르티제아는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했다. 리시아가 떠난 것은 불과 작년의 일이었지만, 그들이 진짜로 만난 것은 십수년만의 일이었다.
서로 상대가 옛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싶어하는 소식을 골라 편지를 썼다. 이쪽은 좋다, 괜찮다는 말을 매번 적었다.
이곳의 일은 잘되어 가고 있다고 적을 때에 그 밑에는, 나는 살아 있다,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는 말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결국 편지는 편지다.
고쳐쓰고 단어를 고를 수 있었다. 옛일을 적당히 가리고 새 관계를 겉에 내세웠다.
다시 만날 날을 생각했다. 그러면 민낯을 어떻게 숨길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의 안에서 그 순간이 구체화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각은 언제나 “다시 만나면-.”이라는 것에서 멈추어 있었으니까.
아르티제아는 리시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녀는 그제야 침구에 흐트러진 자기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변해 있는 것을 보았다.
“몸을 일으키려고 애쓰지 말아요. 외상은 회복시켜 두었지만, 당신이 입은 부상은 그것만이 아니니까요.”
“네…….”
“손가락은 영영 잃어버렸어요. 아무리 치유력이라도 없는 것을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까.”
“네…….”
아르티제아는 얌전히 대답했다.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발목은 앞으로도 계속 좀 불편할 거예요. 마법진이 발목으로 파고든 거라서……. 육체적 문제가 아니더군요. 하지만, 그래도…….”
리시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모든 게 다 괜찮아요. 끝났어요.”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리시아가 괜찮다고 하는 말을 늘 다 믿은 것은 아니었다.
리시아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직 참을 수 있다, 더 노력할 수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을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지금 알 수 있었다.
리시아는 정말 괜찮았다. 그 모든 일을 겪고 나서도 괜찮았다.
지금 아르티제아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지칠 대로 지친 채 버티고 있는 성녀가 아니었다. 쇠약해 말라 죽어가는 여자도 아니었다.
아직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아르티제아가 잘 알지 못했던 젊고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모든 불행을 다 겪고도 살아남아, 이제 괜찮아진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아르티제아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흐, 흑…….”
“내가 말했잖아요. 난 괜찮다고. 그리고 당신을 용서했다고.”
리시아가 손을 뻗어서 아르티제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당신도 괜찮아질 거예요. 세드릭 님도 이제 괜찮고요. 이제 다 끝났어요.”
아르티제아는 그녀의 손을 잡고 흐느꼈다.
제방은 무사했다. 화재로 인한 부상자가 몇 명 있지만, 숫자가 많지 않았다.
들불도 번지지 않았다. 지금은 각 마을의 자경대와 카데르 시의 치안대, 서부군이 합심해서 다른 곳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폭약을 수색하고 있었다.
로렌스가 이끌던 마적은 대부분 붙잡혔다. 저희들끼리 내분이 일어나 싸우다가 죽고 다친 경우도 있었다.
수도 귀족 중 로렌스를 따라온 경우도 있었다. 몇은 붙잡혔고, 몇은 달아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그들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반역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추적에 쫓기며 살아가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리시아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자신을 귀하게 여기세요. 남은 시간 동안 조심스럽게, 목숨을 소중히 아끼면서 살아가세요.”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이는 동안 아르티제아는 이불 안에서 잔뜩 긴장한 손가락을 꿈질거렸다.
마법진 안에서 팔이 터진 기억이 생생했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꿈 같기도 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쿵 뛰었다.
“지금 당신의 목숨은 당신의 것이 아니에요.”
“네…….”
본래대로라면 아르티제아의 목숨을 대가로 받아 작동했어야 할 마법진이었다.
하지만 세드릭이 끼어들어 그 일부를 감당했다.
지금 아르티제아의 목숨은 세드릭의 생명력을 받아 살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리시아가 막대한 성력으로 폭주하는 마법진을 억눌러 닫았다.
“세드릭 님이 그러시더군요. 당신이 한 번 마법으로 시간을 돌렸다고.”
리시아는 달려 올라가 손을 댔을 때, 거기 있는 마법진은 분명히 두 개였다.
그 중 하나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고 아르티제아를 집요하게 노리고 있었다.
그 설명을 들은 아르티제아가 리시아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자구가…… 그렇군요.”
첫 번째 마법에는 목숨을 바쳤고, 두 번째 마법에는 성력을 바쳤다.
그렇기에 제방을 막은 두 번째 마법은 아르티제아와 세드릭의 목숨을 일부 잡아먹고 나서 기능을 다하고 종결되었다.
하지만 시간을 돌린 첫 번째 마법이 종결되려면 아르티제아가 죽었어야 했다.
성력과 생명력은 동질적인 힘이다. 그래서 아르티제아는 목숨을 바쳤다는 말과 성력을 바쳤다는 말을 비슷한 것으로 치부했다.
성력으로 목숨을 잘라내어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죽여서 인신공양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마법이 그렇게 단순한 것일 리 없었다. 첫 번째 마법은 무조건 그녀가 죽어야 완결되는 것이 맞았다.
그 탓에 마법진은 닫히지 않고 남아 있었다. 마법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사라진 시공을 관통하여 현재에 이어 놓았다.
돌아오는 자가 계속 생겨난 것은 그 탓이었으리라.
아르티제아는 신이 제게 내린 신탁이 또 다른 의미를 띠는 것을 느꼈다.
“리시아 님이 그 마법을 성력으로 강제 종료시킬 때까지, 남아 있었군요.”
“그래요.”
리시아가 말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의 백발과 야윈 얼굴을 보며 밝은 목소리로 말하기 위해 애썼다.
“부상을 치유하고 손상된 생기를 성력으로 보충했으니, 시간이 지나면 신체는 조금씩 회복될 거예요. 세드릭 님처럼 강건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안 죽잖아요, 세드릭 님. 절대.”
아마 반년이 지나가기도 전에 머리가 다 도로 검어질 거라고 리시아는 마치 흉보듯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저도 모르게 엷게 웃었다. 리시아가 그녀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하지만 마법이 대가로 가져간 생명이 얼마나 되는지, 그 중 몇 년 정도를 세드릭 님이 대신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애당초 사람의 수명이 몇 년인지는 알 수 없으니까.”
어쩌면 아르티제아는 오래도록 살지도 몰랐고, 어쩌면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쩌면 일주일 후에 세드릭이 죽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건강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세드릭은 이 말을 아르티제아에게 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리시아는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자신을 아끼게 하기 위해서도.
아르티제아가 헛웃음을 머금었다.
“그것도…… 확률 놀음이네요.”
“그래요.”
“세드릭 님이 괜찮다면, 그걸로 됐어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고작해야 골방의 음모가 때문에 제국을 위해 간신히 세운 황제가 요절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가 그 귀한 목숨을 나눠 주었다.
그가 흘리는 눈물 앞에서 아르티제아는 이제 “그러면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 그녀는 자기 혼자 책임지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세드릭은 자신과 함께 모든 것을 감내해버렸다.
그런데 그 목숨을 어떻게 낭비할 수 있겠는가?
아르티제아는 한참이나 제 가슴 안에서 뛰는 심장을 의식하며 목숨에 대해 곱씹었다.
그녀가 그 이야기를 모두 받아들이기를 기다렸다가 리시아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리시아가 그렇게 말하고 아르티제아의 손을 잡았다.
“티아, 성력은요, 믿는 힘이에요. 이 일이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때에, 그 힘이 발현되지요.”
대부분 성력의 형상이 한정된 것은 최초로 가장 강하게 빌었던 힘을 발현하고서 그것이 자신의 성력이라고 믿는 탓이다.
리시아도 되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마음을 좀먹는 것에 지쳐 마침내 변해 버리지 않았다면, 자신은 신에게 치유의 힘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성력을 쓰는 방법을 자연히 익혔으되 아무런 힘도 발현하지 못했죠. 아무것도 믿지 않았으니까.”
아르티제아는 자신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녀가 믿은 것은 힘에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제 몸을 대가로 치러 생명을 뽑아 쓸 수 있게 된 것이리라.
리시아도 그랬다. 그녀의 성력은 처음에 치유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니 치유력이 세상을 구할 방법이 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 힘만 작용하고, 다른 방식의 힘은 쓰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로렌스가 아바 강에 폭약을 설치하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녀는 불현듯 성력의 진짜 사용법을 알아챘다.
제 목숨과 로렌스의 목숨을 묶어서 전부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지자, 다른 방향의 힘이 생겨 났다.
그래도 리시아는 참았다.
로렌스가 자신을 파괴하게 두지 않을 것이었다. 한때는 같이 죽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갇혀 있는 동안 성력을 연구하고 사용법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것은 신이 원하는 방향의 힘은 아니었다. 세상을 바르게 만들기 위한 힘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위한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력이 아니라 생명력을 끌어 썼어야 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반대였다.
“나는 당신의 성력이 발현하는 것을 보았어요.”
리시아가 말했다.
그녀는 분명히 보았다.
구릉 위에서 솟은 빛이 흰색에서 녹색으로 변했던 것을.
그것은 아르티제아가 옳은 마음을 가지고 옳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익을 계산해서 은혜를 입히거나 원한을 제거하려 하거나, 권력다툼을 위해 확률 일부를 실행시킨 것이 아니었죠. 그게 올바르다고 생각하기에 행한 일이었어요.”
“리시아 님…….”
“그러니…… 당신은 신의 뜻을 받든 거예요.”
리시아가 다정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