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00
악녀는 두 번 산다 299화
베냐는 만 하루 동안 독방에 갇혀 있었다.
리시아는 그녀를 보호하려 했지만, 오웬이 용납하지 않았다.
“황태자비 전하를 해치려 한 죄인이야. 그 애가 널 도와줬다는 건 알겠지만, 이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구릉 위에서 일어난 일의 전모를 다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가 뭔가 이적을 일으켜 제방의 붕괴를 막아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는 아르티제아를 성녀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 베냐는 황태자비 시해 미수범인 동시에 성녀를 죽여 제방을 붕괴시키려 한 범인이었다.
그 모든 일에서 오웬이 가장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리시아도 성녀라는 점이었다.
세드릭도, 아르티제아도, 아직 쓰러져 누워 있었던 시점이었다.
세드릭의 권총을 가지고 있는 리시아가 가장 강한 명령권자였지만, 오웬을 강제하지는 못했다.
둘은 세드릭이 일어날 때까지만, 깨끗한 방에 가둬두기만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리시아는 그게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앨리스의 분노가 보통이 아니었다.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역으로 베냐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미안해. 널 또 말려들게 하고 말았어.”
리시아는 베냐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베냐를 도망 보낸 것은 그 시점에서 베냐의 목숨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데르 시의 제방에 관한 소식을 알리는 것과 세드릭의 권총을 빼돌리고자 했던 이유도 있었다.
“의지할 곳이 없다고 해도, 네게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베냐만 생각한다면,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냥 달아나 가까운 도시의 치안대나 서부군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어야 했다.
베냐는 고개를 저었다.
“제게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리시아 님이 진심으로 절 위하시는 걸 알아요.”
“베냐…….”
“하지만 제게 그 작자들을 용서하라고 하지는 마세요.”
베냐는 증오에 찬 얼굴을 억눌렀다. 그리고 애써 리시아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리시아 님이 그놈을 버리실 수 있었으니 다행이에요.”
할 수 있다면, 베냐는 자기 손으로 로렌스를 죽여 버렸을 것이다. 자기가 하지 못해서 리시아의 손에 피가 묻은 것이 죄스러웠다.
이미 죽었다면, 그 시체에 침을 뱉고 칼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리시아의 앞에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증오에 찬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세드릭의 앞에서 그녀는 그 증오를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까지 황제가 되니 이제 만족스러워요?”
하루 사이에 이십 년 세월을 흘려 보낸 세드릭의 얼굴은 베냐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간질간질 뇌리 어딘가를 간질이던 기억이 돌아온 것은 제방에 설치된 화약이 터지는 그 순간의 일이었다.
베냐는 과거에 마을이 수몰되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
하지만 꿈 속에서 수천 번을 보았다. 제방이 붕괴하고, 물이 솟구쳐 조그만 집들의 지붕으로 쏟아지는 것을.
제방의 관리에 열심이었던 할아버지와 오빠가 가장 먼저 그 물에 쓸려내려갔을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밀밭으로 달려가던 어머니와 아버지도 물에 잠겼을 것이다.
베냐가 열 살이 되었을 때에 만들었던 마구간 지붕이 부서지고, 그녀가 이름을 지어준 망아지도 떠내려 갔으리라.
온갖 기억이 한순간에 베냐의 안에서 휘몰아쳤다.
아르티제아는 원수였다.
온갖 사악한 짓이 아르티제아의 머릿속에서 나왔고, 로렌스가 그것을 실행했다.
찢어죽여 마땅한 남매였다. 아르티제아가 그 후에 리시아에게 다정하게 굴었다는 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새처럼 자유로운 사람을 황궁의 화려하게 치장한 침실에 가두어 시들어 죽게 했는데.
그녀가 진짜로 리시아를 위했다면, 그때 로렌스의 황궁을 부쉈어야 했다.
리시아를 사랑했다면, 그녀가 죽은 후에 복수라도 해야 했다.
아르티제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음모의 주모자이고, 파멸의 공범이었으며, 나중에는 제 죄악으로 만들어진 황제를 방관함으로써 외면했다.
그런 아르티제아가 제방을 막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뒤섞이면서 혼란이 왔다.
아르티제아가 에브론 대공비로서 황태자비라니,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성녀라니, 용납할 수 없었다.
제방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성력이 아니었다.
다른 어느 누구도 그것이 마법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성녀가 이적을 일으키는데, 그것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하지만 베냐는 의심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가 마법진 안에 몸을 던지기를 망설이는 순간 결단을 내렸다.
그게 최적의 순간이었다. 죽어 마땅한 자의 목숨으로 마을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 순간에 뒷일은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살인마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베냐의 손은 오래 전에 피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르티제아였고, 황궁이었다.
그녀의 멱살을 잡고 지옥까지 끌고 갈 수 있다면, 그것보다 바라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자가 가장 추악했다.
“퉤.”
베냐는 세드릭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세드릭은 그것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맞았다. 베냐는 자기가 기사가 아닌 것을 원망했다.
기사였다면 세드릭의 뺨에 장갑을 던졌을 것이다.
“그 악귀년을 꺼내서 하려는 일이 황제가 되는 것인 줄 알았다면, 난 절대 그년을 감옥에서 꺼내지 않았어.”
“베냐…….”
“더러운 위선자 새끼. 그딴 것 때문에 리시아 님을 배신해? 결국 그년의 손으로 황제의 관을 쓰게 된 네가 로렌스랑 다를 게 뭐야?”
베냐는 거침없이 내뱉었다.
“아직 우리 마을이 수몰되지 않고, 리시아 님도 무사하다고 뭐가 달라져? 그래봤자 어디에선가 그년의 손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텐데 이번엔 실행한 손이 달라진 것뿐이겠지.”
세드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베냐를 바라보았다.
베냐를 좀먹은 증오는 너무 커서, 도무지 천진하던 열일곱 살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세드릭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네 말이 맞다. 내 주제에 너한테 이제 그만 잊고, 네 행복을 찾아가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
“…….”
“널 속였던 것도 맞다. 그녀를 빼내서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고 말하면, 네가 날 돕지 않을 줄을 알아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베냐를 그 황궁에서 빼내고 싶었던 것도 맞지만,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베냐가 혐오 가득한 얼굴로 세드릭을 쳐다보았다.
“미안하구나.”
베냐가 또다시 침을 뱉었다. 말로 하는 사과 따위로 마음이 풀어지기에, 베냐는 이미 너무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세드릭도 어쩔 수 없었다. 알면서도 아르티제아를 포기할 수 없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모든 일을 불문에 붙일 거다. 네 이름이 어딘가에 남는 일은 없을 거란다.”
당연히 앨리스나 오웬은 이해하지 못했다. 세드릭은 그들의 항의를 묵살했다.
다행히 아르티제아가 베냐의 신원 조사를 시키지 않았던 덕에 이대로 떠나기만 하면 묻힐 수 있었다.
“돌아가고 싶다면 당연히 돌아갈 수 있고, 리시아와 함께 가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하려무나.”
리시아는 이곳에서의 일이 간단히 마무리되면 역병의 치유를 위해 서부를 순회할 예정이었다.
베냐는 세드릭을 노려보았다.
“그것도, 어차피 나 따위 평민 여자가 뭘 어떻게 하는 황궁에 손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베푸는 자비일 텐데.”
“그래.”
세드릭은 이 결정을 내릴 때에 잠깐 레티샤를 떠올렸었다. 베냐가 자신보다도 황궁에 더 익숙하리라는 것도.
온갖 복잡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베냐에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두려움 같은 것을 말해도 변명에 불과했다. 그러니 그는 그냥 베냐의 말을 모두 긍정했다.
“그래도…… 미안하다는 것은 거짓말은 아니다. 네가 오래도록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베냐는 한 번 더 침을 뱉고, 침묵했다.
세드릭은 그녀를 뒤에 두고 나왔다.
그가 아르티제아와 대면한 것은 그녀가 깨어나고도 이틀 뒤의 일이었다.
잠들었을 때에만 몇 번 보고 나왔다. 숨을 쉬는지 코 밑에 손을 대보고, 목덜미에서 맥을 짚었다.
얇은 이불 밑으로 팔다리의 형상을 확인하고, 그것으로 만족해서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회피할 수 없을 때가 왔다.
아르티제아는 쿠션을 등에 대고 앉아 있었다. 몸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아직 팔다리가 자유롭지 않았다.
눈을 뜬 채로 얼굴을 마주보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나이가, 드셨네요.”
아르티제아가 먼저 말했다.
세드릭은 씁쓸하게 웃었다. 어찌 보면 익숙하기도 한 얼굴인데, 매일 아침 면도할 때마다 낯설었다.
주변에는 제방의 붕괴를 막은 성력에 휘말려 그렇게 되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그 말이 진짜로 통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성력이 왜 사람을 그렇게 만드느냐고 의구심을 품은 자도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대놓고 의문을 말할 만큼 성력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이곳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용모가 돌아온다는 리시아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는 당분간 화장으로나마 얼굴에 생긴 문제를 가릴 작정이었다.
세드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문간에 선 채로 말했다.
“이 얼굴로 시작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세드릭 님.”
“몸은 좀 어떻습니까? 손가락과 발목의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제 팔까지 움직일 수 있어요. 조금씩 돌아오고 있으니, 아마 다음 주라면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르티제아가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아르티제아에게는 해야 할 말이 무척 많았다. 그렇지만 지금 이대로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고맙다? 죄송하다?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
그 어떤 말도 적당하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세드릭이었다.
“나는 오늘 수도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아르티제아는 무심코 이불을 움켜 쥐었다.
“네……. 자리를 비우시면 안 될 때였으니까요.”
“당신은 몸이 회복되고 나면 천천히 따라오십시오.”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도착하면 대관식을 할 겁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정무를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양위 조서를 받는 데에는 아무 문제도 없을 겁니다.”
“네.”
“그러고 나면……, 당신은 뜻대로 하십시오.”
세드릭이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당혹하여 그를 바라보았다. 세드릭은 눈을 내리깔고 아르티제아의 백발만 바라보았다.
“은퇴하여 떠나겠다고 해도 잡지 않겠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 어딘가…… 조용한 시골의 장원에서 요양하면서 지내는 것도 좋겠지요.”
“……세드릭 님.”
“내 욕심으로 당신을 잡으려고 했어서 미안합니다.”
세드릭이 그렇게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음속이 한순간 너무 어지러워진 탓이었다.
“그래도 사라지지는 말아요. 레티샤가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도록.”
그 말은, 그 자신은 편지를 쓰지 않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세드릭이 눈을 들었다. 아르티제아는 본래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세드릭이 본 것은 아르티제아의 얼굴에 휘몰아치는 복잡한 감정뿐이었다.
“그러면……, 보중하도록 해요. 그건 명령입니다.”
세드릭은 그렇게 말하고 아르티제아를 뒤로 하려 했다.
아르티제아는 황급히 소리쳤다.
“제게, 시간을 주세요!”
세드릭이 움찔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돌아보지는 않았다. 실망하는 것이 두려웠다.
아르티제아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수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세드릭이 대답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