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01
악녀는 두 번 산다 300화
돌아가는 길은 떠나올 때보다도 훨씬 느렸다.
헤일리와 소피가 합류했다. 헤일리는 절반은 피로에 찌든 채였고, 나머지 절반은 화가 난 채였다.
그러나 아르티제아의 얼굴을 보고는 하려던 말을 전부 삼켜 버렸다.
소피도 그랬다.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혼자 방에서 나갔다가 퉁퉁 부은 눈으로 돌아왔다.
“이 기회에 아주 화끈하게 예쁜 색으로 염색해요. 연하늘색으로 시작해서 머리끝에서 연분홍색으로 끝난다거나.”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헤일리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니면, 붉은색과 검은색도 좋아요.”
“최소한 하나로 통일해.”
“색깔별로 뭘 못 모아서 안달이더니 이젠 그걸 다 마님 머리에 들이부으려고?”
“지금이 아니면 그럴 기회 없잖아.”
“검은색 염색은 언제든 할 수 있어.”
“그렇지만 마님 원래 머리는 손대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걸.”
“그런데 염색약 몸에 안 좋지 않아?”
시녀와 하녀들이 입씨름하는 것에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밝게 하려는 노력이 느껴져서 아르티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날 소피는 옷의 치수를 새로 재었다.
대관식용 드레스를 위해 수도로 보낼 예정이었다. 아르티제아가 그 사이에 또다시 야위었기 때문에, 예전 치수로 만들면 수선하는 것만으로는 몸에 제대로 맞출 수 없을 것이었다.
“수도에서는 벌써 대관식 준비가 거의 다 끝났대요.”
“황태자 전하께서 당도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양위 조서는 이미 내려졌으니까.”
헤일리가 말했다.
“황후 폐하께서 미리 준비를 시키셨다고 들었어. 황제 폐하의 환후가 워낙 좋지 않은 모양이라서.”
“그렇군요.”
“어제도 스쳐 지나갔잖니? 대관식에 참석할 성주하고.”
“네. 솔직히 무슨 일 난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소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관식이 있으니 각 지역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자들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발했다.
서부에는 역병 문제가 있으니 신중하게 움직이라는 조서가 전달되었다.
하지만 몇십 년 만에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사였다. 행정 실무자라면 모를까 정치에 관여하고 있는 자라면 관심을 끊을 수가 없었다.
제국이 뒤집힐 것이다.
지금까지 몇 달 동안 이미 황태자가 대리청정을 했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야 비로소 정권 교체가 된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
“동부 귀족 중에서도 오는 사람이 있다고 해.”
헤일리가 미리 받아 본 편지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중에 브레넌 백작이 섞여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헛웃음을 쳤다.
그리고 세드릭이 그런 타협까지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자신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조롱하고 실망하는 동안에 세드릭은 이미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황태자 책봉식 때문에 왔던 사절 중에 돌아간 사람이 아직 거의 없는데, 대관식까지 보고 가게 되겠네요.”
“무슨 소리. 다시 사절을 보내야지. 축하 선물도, 국서도 다시 보내 와야 해.”
“힘내야겠어요.”
소피의 말에 헤일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뭘?”
“책봉식날에 우리 마님이 얼마나 예뻤는데요. 근데 대관식날에 그것보다 못하면 안 되죠.”
소피가 힘있게 말했다. 헤일리의 입가에 쓴웃음이 돌았다.
아르티제아는 그런 이야기를 멀거니 듣다가 문득 일어섰다.
헤일리가 따라 일어섰다.
“아, 비 전하. 어디 가시려고요?”
“잠깐 바람 좀 쐬러.”
앨리스가 아르티제아를 부축했다. 아르티제아는 괜찮다고 손을 내젓고 지팡이를 들었다.
“어차피 오래 걸을 거 아냐.”
“마님.”
앨리스가 안타깝게 말했지만, 아르티제아는 지팡이를 짚고 느릿한 걸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앨리스가 베일이 달린 모자를 들고 그녀를 뒤따랐다.
바람을 쐬러 간다고 했지만, 실은 콜튼 수사와 약속이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오웬의 호위를 받으며 정원으로 나갔다. 거기에서 콜튼 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시게 했군요.”
“아닙니다. 막 도착했습니다, 성녀님.”
콜튼 수사가 정중하게 절을 올렸다.
“이제 저는 성녀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신탁을 받으셨으니 성녀이십니다.”
이 대화도, 재회하고 나서 세 번째 하는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사원 쪽에 서한을 보냈다.
자신의 성녀로서의 역할은 끝났고, 신이 새로운 신탁을 리시아에게 내렸다는 서한이었다.
그러니 앞으로 사원은 리시아를 성녀로 섬기고, 총력을 다해 역병 치유에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과거와 달리 실질적인 권력이 뒷받침할 테니, 리시아는 사원과 싸울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보다 먼저 떠난 리시아는 벌써 세 곳의 마을을 치유했다고 들었다.
베냐는 리시아를 따라갔다. 그전에 고향 마을에 한 번 들렀다고 했다.
리시아는 짤막하게 편지를 보내어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전했다. 시간이 지나면 베냐의 마음도 누그러질 거라고.
그러니 그녀가 실망하지 않도록, 좋은 통치자가 되어 달라는 부탁도 적혀 있었다.
어쨌거나 그래도 콜튼 수사는 아르티제아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저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
“수사님께서야 신탁이라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시겠지만,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수사님과 같은 의미로 성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요.”
아르티제아의 말에 콜튼 수사는 직접 대답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면, 신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
아르티제아는 가만히 콜튼 수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아르티제아의 나이 든 얼굴을 보고서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것이 성력에 의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르티제아는 내심으로 그가 그 사실을 부정할까 봐 염려했었다. 하지만 조용한 얼굴로 말했을 따름이었다.
「결국 성녀님 자신을 믿지 않으셨군요.」
아르티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루어졌어요. 어떤 관점에서는요.”
“이루어졌다는 것은 꼭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황태자비 전하.”
“그래요. 호칭은 그 정도로 하죠.”
아르티제아는 대꾸했다. 콜튼 수사는 또다시 미소를 지었다.
콜튼 수사가 마차 문을 열었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에스코트를 받아 마차에 올라탔다.
앨리스가 그녀의 뒤를 따라 탔다.
콜튼 수사가 마지막으로 올라타서 문을 닫았다. 오웬이 말에 올라 출발 신호를 보냈다.
문장을 다 뗀 수수한 마차는 평복한 기사 넷에게 단출하게 호위받으며 움직였다.
목표로 하는 수도원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성을 벗어나 한 시간 정도 벌판을 달리자 묵중하고 어두운색의 오래된 석조 장원이 보였다.
장원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거친 갈색 옷을 입은 수사들이 마차를 보고 놀라 이리저리 흩어졌다. 앨리스가 의아하게 말했다.
“왜 도망을 치죠?”
“묵언 수행을 하거나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는 방식으로 수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후원자나 귀족이 말을 걸면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곤란해집니다.”
콜튼 수사가 대신 대답했다.
아르티제아는 베일을 내렸다. 그리고 손목에서 다이아몬드 팔찌를 풀어 손에 쥐었다.
마음이 어지러워 그대로 마음 밑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르티제아는 팔찌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미리 말을 전해둔 덕에 마중이 나와 있었다.
마찬가지로 갈색 삼베 수도복을 입은 수사가 아르티제아를 보고 공손히 절을 올렸다.
콜튼 수사가 말했다.
“부인께서는 어떠신가?”
“요즘에는 발작을 일으키시는 일은 없습니다만, 우울하신 듯하여…….”
수사가 슬그머니 아르티제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베일에 가려진 귀부인의 안색은 알 길이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콜튼 수사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분의 부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세드릭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 부적절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거기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수도원에서 나온 수사는 그녀의 감정이 상했을까 봐 적지 않게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마음이 상한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세드릭이 그런 것까지 신경 썼다는 것을 알면 자신의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사가 아르티제아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수도원은 규모가 제법 컸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있는 중앙 예배당은 3층 높이에 가까웠다.
수사가 설명했다.
“모든 수도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이곳에서 새벽 대예배를 봅니다. 자발적으로 들어온 수도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모두 똑같습니다.”
“점호 시간이군요.”
아르티제아의 중얼거림에 수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다음에는 아침식사를 하고, 일과를 하러 흩어집니다. 농사를 짓거나 목공을 하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도시에서 꽤 가까운 수도원이지만, 자급자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다른 곳과 차이가 없노라고 수사가 설명했다.
“새벽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예배가 있습니다. 원한다면 누구라도 참가할 수 있고요. 저녁 9시의 마무리 대예배를 보고 나면 그 뒤는 수도원 안에서는 자유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기도하거나, 필사를 하거나, 연구회 같은 것을 하기도 하지요.”
물론 유배당하여 이곳에 보내진 이가 그런 것에 관심 있을 리 없었다.
환경이 구속적인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의식주에는 문제가 없는, 괜찮은 수도원으로 보였다.
수사는 도중부터 머뭇머뭇 걸음을 망설였다.
“부인께서는…… 주로 그…… 세탁을 많이 맡아 하셨습니다.”
“…….”
“자급자족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먹을 것을 나누지 않는 게 저희 수도원의 규칙이라서요.”
“칼과 불을 가까이하게 할 수는 없으니 주방은 안 되고, 농사를 시키자고 해도 밭의 잡초를 구별하지 못하고, 필사를 할 정도로 글씨에 능한 것도 아니고, 신학과는 더더욱 인연이 없고.”
아르티제아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송구한 듯 수사의 고개가 수그려졌다.
“책망하려는 게 아닐세.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어떤 상태가 되었더라도, 자네들 책임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네.”
“……기력이 별로 없으십니다.”
마침내 수사가 변죽만 울리기를 그만두고 하지 못하고 있던 말을 했다.
“몸을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하천까지 오가게 했지만, 심병이 낫질 않고…….”
아르티제아는 손을 들었다.
수사가 입을 다물었다. 벌써 방문 앞이었다.
앨리스가 숨을 멈추었다.
아르티제아는 육중한 문을 노크했다. 대답이 없었으므로 그녀는 그 문을 그냥 열었다.
방은 좁았다. 침대 하나에 책상 하나와 의자. 그리고 작은 창문이 있었다.
보통의 수도자가 머무르는, 꼭 그런 방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그 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그녀를 불렀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