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03
악녀는 두 번 산다 302화
아르티제아가 수도에 도착한 것은 대관식 사흘 전의 일이었다.
황후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아르티제아를 맞이했다.
대관식은 중요한 일이다. 몸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아르티제아가 서둘러야 했다고 황후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얼굴을 대면하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세드릭에게서 미리 설명은 들었다. 성력의 과용으로 생명력을 일부 잃어서 그게 용모에 드러났다고.
시간이 지나면 정상이 될 것이라고 했고, 세드릭도 차근차근 돌아오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그것보다 조금 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일단 머리가 새하얘진 것이 확 눈에 들어왔다.
“화장에 신경을 많이 써야겠구나.”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후우.”
황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 부처가 될 사람이 모두 이렇게 책임감이 없어서야. 너야 그레고르가 보냈으니 어쩔 수 없었다지만, 세드릭도 말이다.”
“그것도, 죄송하다고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군란 직후에 세드릭이 수도를 비웠으니, 황후의 마음 고생이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황후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 그 이야기를 접었다.
이 일은 이미 세드릭에게 충분히 말했다. 그는 이미 황제였으니, 더 이상 잔소리할 수 없었다.
황후는 천천히 거실을 둘러보았다. 거실에 있던 자잘한 소가구를 이미 실어내어서 상당히 썰렁해져 있었다.
“이제…… 여기를 비워줄 때가 왔구나. 원래 황후궁에 딸린 게 아니라도, 혹시 남겨두었으면 하는 가구나 장식 같은 게 있다면 마르타에게 말해두려무나.”
“……여기를 떠나서 어디로 가실지 계획을 세워두신 게 있으신가요?”
“이미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황후가 의아하게 물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정치적인 문제일 터이니, 굳이 알아보지 않았다. 이제 아르티제아가 관심 가질 만한 일이 아니었다.
프레일이나 헤일리가 잘 챙기고 있을 것이었다.
“고향에 다녀오려 한다.”
황후가 후, 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걱정은 하지 말거라. 거기 눌러앉으려는 게 아니라, 옛집과 가묘를 둘러보고, 부모님께 오랜만에…… 인사도 드리려는 것이니.”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러는 사이에 여기 있는 저택을 수리해서 들어갈 작정이란다.”
그것은 수도에 있는 리아간 공작저를 말하는 것이었다.
좋은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페르난도 리아간 공작이 한때 손대기까지 했으니, 벽과 바닥까지 몽땅 들어엎어 갈아버리고 싶다고 마르타 백작 부인이 이를 갈고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황후에게 굳이 황궁에 남아 있으라고 권유하지 않았다.
이곳도 그녀에게는 괴로운 기억만이 남아 있는 곳일 터이니 말이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하실 작정이신가요?”
“페셔 가 아이들이 사교계에 데뷔하고 그럴 때까지 보살펴 줘야지.”
“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또 하고 싶은 일이 생기겠지.”
아르티제아와 싸울 작정은 없노라고 덧붙이고 황후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세요.”
“……성녀 올가상을 돌려주지 않겠니?”
아르티제아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셔야지요.”
그것은 황후에게는 추억의 물품이지만, 아르티제아에게는 별달리 의미 없는 물건이었다.
나중에 마르타 백작 부인을 통해서 리아간 공작저로 보내두면 될 것이었다.
나탈리아는 아르티제아의 얼굴을 보고도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비 전하께서 나이가 들면 지금보다도 더 미인이실 거라는 것만 알게 되었네요.”
“나탈리아 전하께서 말솜씨가 좋다는 것을 제가 이번에 알게 되었고요.”
그렇게 대답하고서도 아르티제아는 그냥 웃었다. 나탈리아가 그냥 위로 삼아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탈리아는 거짓말을 잘 못합니다.”
옆에서 그렇게 말하는 베르나트 왕세자의 얼굴은 활짝 피어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띠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야 안색이 펼 법도 했다. 지금 시점에서 베르나트는 세드릭에게 가장 먼저 줄을 댄 타국인이었다.
레티샤의 은인이며, 세드릭에게 감사의 인사를 들었다는 것은 앞으로도 그의 정치적 행보에 큰 이득이 될 것이다.
제국과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 적대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당장 지금도 그들 부부는 황후궁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손님이다시피 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손익을 따져 그정도로 충분히 이익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새삼스럽게요, 비 전하.”
“나탈리아 전하께 황자궁에 머물러 달라고 부탁드렸던 것은, 만약의 만약을 대비한 것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사전 예방에 가까운 것이었어요. 설마 진짜로 검을 뽑으실 일이 있게끔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그때 거기 있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나탈리아가 미소를 지었다.
“세상 일이 항상 계산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럴 때에 거기에 맞는 힘이 있는 사람이 나서야 하는 것이고요.”
“나탈리아 전하……”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했고, 그에 대한 감사도 충분히 받았어요. 미안하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나탈리아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미엘르 영애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니 너무 꾸짖지 마세요.”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티제아는 그날 황궁에서 만나 인사해야 할 사람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레티샤를 데리고 에브론 대공저로 돌아갔다.
프레일은 그 소식을 전하면서 눈치를 보았다.
세드릭은 “그렇군.”이라고만 대답했다.
결국 프레일은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실 말씀이 그것뿐입니까?”
“황후궁은 지금 어수선해. 거기 머무르지 않고 에브론 대공저로 간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잖나.”
세드릭이 대꾸했다.
황자궁은 아직 수리되어 있지 않았다. 화재가 난 직후에는 워낙 큰일이 많았고, 세드릭은 수도를 떴다.
게다가 레티샤도 황후 슬하에 있었다. 황태자 부부와 황손이 모두 황자궁에 머무르지 않고 있으니, 먼저 처리해야 할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세드릭은 돌아온 후에 거기에 재정을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곧 본궁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황자궁은 레티샤가 장성한 다음에나 열릴 것이었다.
20년을 놀릴 궁이었다. 지금은 최소한의 보수만 하고, 차라리 그때 가서 전체적으로 수리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
그동안 세드릭은 본궁과 에브론 대공저를 오가며 지냈다.
레티샤의 양육자와 측근으로서 황후궁에 따라간 이를 제외하고 다른 에브론 대공가의 식구들이나 고용인들은 에브론 대공저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니 아르티제아가 레티샤를 데리고 에브론 대공저로 돌아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아니, 이상하지.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아르티제아는 이상하지 않아도 세드릭은 이상했다.
프레일은 가슴을 쳤다.
주군 부부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아르티제아가 왔다는데 세드릭이 이렇게 일이나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어제 아르티제아가 수도에 거의 가까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그랬다.
그런데 세드릭은 입을 다물기로 하면 돌처럼 굳은 사람이고, 아르티 제아에게 말을 시키면 오히려 박을 쓸 상대였다.
그 와중에 헤일리까지 화를 내고 있었다.
오전에 답답하여 보낸 전령은 한줄짜리 답장을 가지고 왔었다.
『할 이야기는 그게 다예요?』
비효율적이기 이를 데 없는 답장이었다.
황망했다. 그래도 헤일리가 서부에 있었고, 돌아오는 길에도 아르티제아를 시중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을 뿐인데.
다른 때 같으면 불평을 하면서도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었을 헤일리가 말이다.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합니까?』
이전 편지에 서부까지 다녀오느라 고생했다고 위로도 했고, 그동안 걱정했다는 말도 했는데 말이다.
프레일은 그 답장을 보내지는 않았다.
보냈다가는 여러 모로 잘못될 거라는 촉이 왔다.
안 보내도 잘못될 것 같긴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주군은 묵묵히 소처럼 일하고 있었다. 주군이 소처럼 일하면 부하는 연자맷돌에 갈려야 하는 법이었다.
세드릭이 그날의 일을 마친 것은 해가 지고 반달이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갈 무렵이었다.
아무리 있는 일을 전부 꺼내도 그 이상 집무실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아랫사람들도 쉬어야 했다. 그가 반백이 되어 돌아온 탓에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때쯤에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본궁에서 잠잘 수도 없었다. 대관식을 사흘 앞두고 아르티제아와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그는 에브론 대공저로 향했다.
저택의 정문 앞에서 세드릭은 잠시 말을 멈추어 선 채 저택을 바라보았다.
안주인의 처소에 불이 켜져 있었다.
세드릭은 그것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던 때가 있었다고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아르티제아가 제 집에서, 제 아내로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꿈처럼 느껴졌었다.
고작해야 1년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벌써 수십 년 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마치 이제는 사라진 그 옛날에, 황궁의 무도회장 벽에 그림자처럼 붙어 서 있던 소녀에게 말을 걸어 청혼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세드릭은 왼쪽 가슴에 손을 대어 보았다. 그 안에서 심장은 찢어지도록 맥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안에 가까웠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세드릭은 멈춰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는 하인에게 말고삐를 던져주고 걸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잠들지 않고 있었던 고용인들이 모두 공손히 그에게 절을 올렸다.
안스가르가 그의 겉옷을 받아주며 말했다.
“마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세드릭은 그녀가 불을 켠 채로라도 잠들어 있기를 바랐는데, 그러지 않은 모양이었다.
“피곤하지 않은 모양이군.”
“피곤하실 겁니다.”
안스가르가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세드릭은 무성의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거실 문고리를 손수 잡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였다가, 결심을 세우고 문을 열었다.
“……오셨어요?”
아르티제아가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섰다. 책상 앞에 있는 것을 보니, 무언가를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세드릭은 그녀를 외면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로 말했다.
“이야기는 내일 해도 괜찮았을 텐데.”
“전하께서는 내일도 밤늦게까지 일하실 테지요.”
그렇게 말하는 것에 세드릭의 가슴이 비수로 찔린 듯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