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04
악녀는 두 번 산다 303화
“무얼 쓰고 있었습니까?”
세드릭은 흘끗 아르티제아가 내려놓은 종이를 바라보았다.
“로산 후작가에 대한 서류예요. 대관식을 치르기 전에 정리해야 하니까요.”
황후는 다른 작위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러니 대관식을 치르기 전에 로산 후작위는 레티샤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물론 젖먹이인 레티샤가 작위 승계식을 할 수는 없으니, 서류만 처리해두는 것이었다.
“당신이 로산 후작이 아니게 되는군요.”
세드릭은 이상한 감정을 느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아르티제아는 제 할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이름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로산 후작의 작위는 그저 할 일을 위해 필요한 재력과 권력을 얻을 수단에 불과했다.
애착도, 긍지도 없었을 것이니 이제 그게 필요없으면 언제든 남에게 넘겨주리라.
세드릭은 잠시 예전에 결혼 계약서 문제로 싸웠던 것을 생각했다.
결국에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정리될 일이었다.
“앉으세요.”
아르티제아가 자리를 권했다.
세드릭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선 채로 마치 남은 일을 처리하듯이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앉아서 마저 이야기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소파에 앉았다.
아르티제아가 뒤따라 앉았다.
세드릭이 오면 가져오라고 미리 명령해둔 듯, 곧 하녀가 찻주전자와 찻잔을 가지고 들어왔다.
아르티제아가 손수 차를 우렸다. 세드릭은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손목에 걸려 있곤 했던 다이아몬드 팔찌도 지금은 없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르티제아의 얼굴은 화평해져 있었다. 심정적으로 여러 가지를 정리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녀는 괜찮아 보였다. 써버린 생기가 보충되지 않아 아직 얼굴에 주름이 남아 있었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세드릭은 아르티제아의 손이 찻잔을 데운 뜨거운 물을 버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마도 이 상태야말로 본래 그들이 종착했어야 할 모습이었으리라.
“시간은 충분했습니까?”
세드릭은 그녀의 손끝을 바라본 채로 물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가능해지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네.”
“…….”
“은퇴하고 싶어요.”
세드릭은 허무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가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조용하게 말했다.
“전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일을 했어요. 두 번이나 그랬었지요.”
마치 채찍질당하는 사람처럼 쫓기듯이 미친 듯이 달렸다.
“제가 저지르는 일은 마치 경사진 길에서 눈덩이를 밑에서 받치면서 굴리는 것과 비슷했으니까요. 잘 굴러간다면, 순식간에 영향력을 키울 수 있지만, 잘못하면 산사태가 일어나 제일 먼저 자신이 깔려 죽었을 테지요.”
세드릭이 몇 차례 끼어들어 도와 주지 않았다면 위험한 순간이 이번에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것이 아마 자신이 가진 결함일 것이다.
“이제 지쳤어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습니까…….”
“네. 그러니 이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은 삶을 보내고 싶어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세드릭이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쉬어도 괜찮아요.”
“무책임한 일이 되어서 죄송합니다.”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숙였다.
“제게 더 나은 생각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었지요. 전 제가 올바른 치도에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말씀에 크게 위로받았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됐습니다.”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신은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이 말한다고 해서, 그게 지금 아르티제아에게 큰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닐 것이었다.
세드릭은 복잡한 기분으로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이게 옳은 일이었다.
아르티제아의 말이 옳았다. 그녀는 지치고도 남을 만큼 지독하게 살았다.
그러니 남은 시간만이라도 자기 욕심으로 어지럽히지 말고 편안하게 지내도록 보내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발목이 늪에 빠진 듯했다.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남은 삶은 저 자신을 위해서 살아보려고 해요.”
“…….”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세드릭은 의아하게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가 어색하게 손을 꼼질거렸다. 귓불과 뺨이 붉어져 있었다.
“전 제가 머리를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러니 이제 쓸모가 없다는 것도.”
“티아……?”
“딱히 예쁜 것도 아니고, 건강하지도 않고, 또다시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몸도 아니고, 아마 황후로서의 역할은커녕 세상 사람들이 배우자로서 다해야 한다는 의무도 하지 못할 테고.”
세드릭은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르티제아는 잠깐 숨을 멈췄다가 한꺼번에 나머지 말을 쏟아냈다.
“심지어 여생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모르고, 아마 앞으로도 슬픔만 남기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티아.”
“그래도 저를, 다른 그 아무것도 아닌, 당신의 아내로 있게 해주시겠어요?”
그 말의 의미는 세드릭의 귀로 들어와 잠시 귓속에만 머무르다가 천천히 의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치 혈관을 타고 돌듯이 몸을 타고 퍼졌다.
세드릭이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목적이 있어서 결혼했었다. 이제 세드릭은 아르티제아가 그 청혼으로 그렸던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단기적으로는 황제와 로렌스를 오해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중부 귀족인 로산 후작가와 혼맥을 이음으로써 북부인이라는 인상을 희석시킨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에브론 대공가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얻어 당장 쓸 수 있는 인력을 얻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모략을 위해 결합했으니, 그 결혼은 정치와 떼어놓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다시 청혼하면서, 주군과 신하이기 이전에 부부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애초의 목표를 달성한 후에도 결혼이 이어졌으나 반려라기보다는 여전히 군신 관계였다.
그것은 최종 목표인 황좌를 손에 넣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한순간이었던 그 밤을 제외하고, 아르티제아는 한 번도 온천히 그의 아내였던 적이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반려라서 에브론 대공비인 것이 아니라, 에브론 대공비의 지위가 필요해서 그와 결혼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그녀는 황후의 자리를 책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을 위해서, 남은 삶을 자신의 곁에 있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세드릭은 반신반의하며 아르티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가 엉거주춤 일어서며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세드릭은 그 손을 잡았다가 한 번 놓았다. 그리고 다시 꽉 잡아 제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아!”
치맛자락이 테이블을 쓸어가며 찻주전자를 쓰러뜨렸다. 다행히 차는 이미 미지근해져 있었다.
잔이 테이블 밑으로 떨어져 카펫에 얼룩을 남겼다. 아르티제아의 치맛자락에도 찻물이 번졌다.
슬리퍼가 벗겨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르티제아는 세드릭의 무릎 위에 앉혀진 채로 눈을 꼭 감았다.
세드릭은 키스하지 않고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진짜 당신 때문에 미치겠어.”
세드릭이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르티제아는 머뭇거리다가 눈을 떴다.
“사실 이미 미친 것 같기도 하고. 진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세드릭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아르티제아의 얼굴로 떨어졌다.
아르티제아는 머뭇머뭇 그 얼굴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검지로 세드릭의 눈가를 쓸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조심스럽게 머금었다.
세드릭이 큰 손으로 그녀의 등을 더듬었다. 마치 거기에 아직 아르티제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한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다음 순간 세드릭은 그녀를 꽉 부둥켜안았다. 아르티제아의 입술이 먼저 열렸다.
세드릭은 그 안으로 미친 사람처럼 파고들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아르티제아가 버둥거렸다.
세드릭이 팔에 조금 힘을 풀며 물었다.
“팔찌 어디 갔습니까?”
아까부터 초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그대로 질문으로 나왔다.
입술이 여전히 거의 닿아 있었기에, 말소리가 입술에 거의 그대로 섬세하게 전달되었다.
“침실에요.”
아르티제아가 여전히 눈을 꽉 감은 채 대답했다. 가쁜 숨이 세드릭의 인중을 간질였다.
세드릭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사람을 자꾸 지옥불에 담갔다 뺀다고 해서 담금질이 되는 게 아닙니다.”
원망하는 듯, 한탄하는 듯한 탄식이 길게 내쉬어졌다.
그러나 망설임은 없었다. 그는 아르티제아를 안은 채로 일어섰다. 아르티제아가 그의 목에 팔을 감은 채 귀에 입술을 댔다.
그리고 세드릭이 기대한 적 없는 말을 속삭였다.
27. 대관식
대관식이 치러지는 날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한 차례 군란이 있었는데도, 황태자 책봉식 날의 희망과 행복에 가득 찬 분위기가 이어졌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 군란이 황제가 황태자에게 패배한 것이라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레고르 황제의 부보는 아직도 없었다. 퇴위식도 치르지 않았다.
이것이 진짜로 양위라면, 황제가 직접 자기 머리에서 관을 내려 황태자의 손에 관을 전해 주어야 했다.
하지만 황제가 대관식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황태자에게 관을 전달하는 역할은 대주교가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황제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담 에밀리가 애석함 가득한 탄식을 흘렸다.
“이건 아닌데.”
옷이 몸에 꼭 맞지 않고 조금 헐렁했다.
원래도 오래된 형식의 드레스라 세련미가 부족하다고 에밀리는 생각했다.
자수는 너무 많았고, 보석도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자수는 진짜 금을 씌운 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호화롭고 사치스럽기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의 대세는 그것이 아니었다.
자수에 쓰는 실은 이언츠 산으로 가장 섬세한 명주실이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실루엣이었고, 다채로움이었다.
무엇보다도 옷이 사람을 짓눌러서는 안 되었다.
보석도 초대 황제 시대의 것을 그대로 꺼낸 것이라, 요즘과는 광채가 달랐다. 세공 기술에 차이가 나는 탓이었다.
소피가 에밀리에게 눈총을 주었다.
“위엄 있고 좋으신데요.”
가장 안에 입는 드레스 자체 말고 옷 위에 걸치는 망토부터 장신구까지 모두 국보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