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09
악녀는 두 번 산다 외전
레티샤가 아르티제아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평소에 늘 앉는 소파 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쳤다.
“어머.”
유니스 백작 부인이 웃었다.
아르티제아가 그녀에게 난처한 미소를 보이고 레티샤가 시키는 대로 앉았다.
그러자 레티샤는 쿠션을 끌고 와 아르티제아의 무릎 위에 놓고 소리쳤다.
“엄마, 책!”
유니스 백작 부인이 생글거리면서 말했다.
“어마마마께서 책 읽으시면, 고모는 할 일 없는데, 집에 갈까요?”
저번만 해도 간다고 하면 레티샤는 울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레티샤는 또 한 번 성장했다.
아기는 보드라운 손으로 유니스를 잡아 소파에 끌어다 앉혔다. 그리고 협탁에 놓여 있던 책을 낑낑거리고 들어올렸다.
아르티제아의 책은 대개가 장정이 무거운 것이라, 레티샤는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안 돼요, 레티샤 님. 잘못하면 발가락에 꽁 해요.”
미엘르가 얼른 와서 책을 대신 들어주며 말했다.
“고모도 책.”
레티샤가 두 팔을 높이 들고 말했다.
“읽을 때는 여기에 있는 거야!”
유니스 백작 부인이 에구에구, 하고 웃었다. 미엘르가 어색하게 웃으며 책을 넘겨주었다.
《톨드의 방패 성자 토마스 나단 시대의 언어문화》
아까 것보다는 그래도 첫 페이지를 펼 만하게 생긴 제목이었다. 물론 유니스 백작 부인은 조금도 그런 내용에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평생 독서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시키는 대로 얌전히 책을 무릎에 놓자 레티샤가 만족한 듯이 “흠.”하고 소리를 냈다.
대놓고 소리 내서 웃으면 토라질 것이라 어른들의 웃음은 잔물결처럼 시선들 사이로만 오갔다. 레티샤는 도로 제 자리로 기어 올라가 옆자리를 팡팡 쳤다. 미엘르가 그 곁에 앉아 그림책을 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그것을 보고 에휴 한숨을 내쉬었다.
“황녀님은 어쩌면 이렇게, 책도 좋아하시고.”
“아직 글자 읽을 줄은 몰라요. 그림을 보는 게 재미있는 것이겠지요.”
“그건 황후 폐하께서 잘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우리 애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책만 보면 깜짝 놀라도망을 갔어요.”
유니스 백작 부인이 토달거렸다.
“종이는 접을 때와 찢을 때 말고는 아무 쓸모도 없었다니까요. 라르니야 워낙에 어려서부터 밖을 쏘다니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지만, 피오나는 집에 가만히 앉아서도 절대 책 같은 것은 안 읽는다니까요.”
“그랬군요.”
“하긴, 남편이나 저나 독서와는 담을 쌓았으니 아이들에게 뭐라고 할 일이 아니네요. 황후 폐하처럼 이렇게 어릴 때부터 모범을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글쎄요.”
아르티제아가 부드러운 얼굴을 했다.
“학업에 재주가 있다는 게 꼭 행복을 담보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 말에 유니스 백작 부인은 모호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릴 때에야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하고 생각되긴 하지만요. 자라고 나면 또 그런 것만도 아니랍니다.”
“그렇군요.”
아르티제아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했던 말이었으므로,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잠깐 생각에 잠긴 얼굴이 되었다. 아르티제아는 그녀가 말하려고 하는 내용을 짐작하고 앞질러 말했다.
“피오나 영애나 라르니 영애를 시녀로 받을 마음은 없어요.”
“황후 폐하!”
유니스 백작 부인이 불만 어린 목소리를 냈다.
“페셔 자작 영애가 시녀로 들어왔다는 소문은 저도 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오셨군요.”
“아니, 그런 것만은 아니고요.”
속내를 다 드러내 놓고서도 마치 아니라는 듯이 유니스 백작 부인이 헛기침을 했다. 레티샤가 똘망똘망하게 눈을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침 그때 노크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지금 화제에 오른 페셔 자작 영애였다.
“차를 가져왔습니다, 황후 폐하.”
“거기 두고 가렴.”
페셔 자작 영애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를 따라 들어온 하녀가 차 쟁반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페셔 자작 영애가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 데웠다. 아르티제아는 조용한 눈으로 그 손짓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에는 퍽 긴장해서 손이 벌벌 떨리곤 했다. 잔도 몇 개나 깨뜨려 서 하녀장이 다기 세트를 적당한 것으로 따로 가져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페셔 자작 영애도 꽤 익숙해졌다.
어차피 진짜로 가르치거나 그럴 생각은 없었다. 딱히 그럴 만한 일도 없었다. 귀족으로서의 교육이라
면 황태후가 이미 충분히 시켰다.
시녀로 맡아 데리고 있는 것은 아마 한두 달 가량의 일일 것이다. 황태후는 결혼 전에 페셔 자작 영애에게 황후의 시녀라고 하는 이력 한 줄을 추가해주기를 바랐다.
아르티제아 자신이 황태후의 시녀로서 결혼했으니 거절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잘하게는 황태후의 품에서 벗어나 아르티제아의 곁에서 몇 달 머무름으로써 낯선 곳에서도 당당한 귀부인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도 했다.
붉은 찻물이 꽃받침처럼 생긴 잔에 가득 찼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페셔 자작 영애의 손에서 찻잔을 받아 들었다.
“향기가 좋네요.”
“감사합니다.”
페셔 자작 영애가 마지막으로 설탕 그릇 뚜껑을 열고 물러갔다. 설탕은 각설탕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인 설탕 결정이었다.
“어머, 예쁘네요.”
“남부에서 보내온 거예요. 이게 또 새로운 유행이 되려는 모양이더군요.”
유니스 백작 부인은 설탕 조각을 집어 찻잔에 넣었다. 레티샤가 버둥댔다.
“나도! 나도!”
“안 돼요. 떨어져요, 레티샤 님.”
미엘르가 잡으려고 했지만, 레티샤는 소파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차 쟁반 앞으로 달려왔다.
아르티제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보다시피, 애들도 좋아하고요. 상으로만 하나씩 주는데…….”
레티샤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유니스 백작 부인의 무릎에 매달렸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레티샤를 보고, 아르티제아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레티샤를 보았다.
“주면, 안 되겠죠?”
“고모오오.”
레티샤가 유니스 백작 부인의 무릎을 잡은 채 그녀의 다리에 몸을 밀어붙였다. 아르티제아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황녀님.”
“이잉.”
유니스 백작 부인이 말하자 레티샤가 애절한 목소리를 냈다. 미엘르가 끼어들었다.
“레티샤 님, 그러면 우리, 과일 먹으러 갈까요?”
“과일?”
“네. 주방에 가 봐요, 우리. 아침에 새 과일이 들어왔을 거예요.”
레티샤가 팔짝 뛰어 일어섰다. 그리고 신이 나서 미엘르의 손을 잡았다가 생각난 것처럼 아르티제아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엄마는 고모랑 여기서 이야기할 거니까 미엘르 언니랑 가서 보고 오렴.”
“나 책 읽어야 되는데…….”
“이따가 저녁에 읽으면 되니까. 엄마가 읽어줄게.”
“진짜? 약속!”
“약속.”
손가락까지 걸고 나서야 레티샤는 덩실거리고 엉덩이 춤을 추며 미엘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아르티제아가 그 뒷모습을 보고 후, 하고 작게 웃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말했다.
“어쩜 저리 착하신지. 우리 피오나 같으면 벌써 열두 번은 울면서 바닥에 드러누웠을 거예요.”
“피오나 양도 이제 곧 약혼할 텐데, 그런 말씀을 계속 하시면 서운해할 거예요.”
“제 딴엔 다 컸다고 주장해봤자, 어른스럽게 행동을 해야 어른으로 대접해주죠. 그런데 정말로…….”
“안 돼요, 황후궁에는.”
아르티제아가 다시 말했다.
“복잡한 일에는 더 얽히지 않고, 편안히 황실의 친척으로서 부귀를 누리는 게 가장 바라는 일 아니셨나요?”
그 말에 유니스 백작 부인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로 황후궁에서 뭔가 일이 벌어질 건가.
하긴, 그동안 아르티제아가 너무 조용하게 지냈다.
의전 외에는 공식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은 바뀌지 않았지만, 아르티제아가 조용히 궁 안에만 머물러 있다고 해서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이었던가.
귀하게만 자라온 철없는 딸들이 눈치 있게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기회를 잡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표정으로 웅변하는 유니스 백작 부인을 보고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지었다.
“무엇을 상상하시는지는 몰라도, 아마 아닐 거예요.”
“그럼요. 아니고말고요.”
유니스 백작 부인은 무작정 대답했다. 아르티제아는 부드럽게 말했다.
“조만간에 북부에서 사람을 몇 불러들일 거예요.”
“아, 에브론에서요?”
“네. 레티샤의 시녀를 몇 사람 뽑을까 해요. 호위를 겸할 것이기도 하고, 이번에 에브론 대공령을 직할령으로 편제하면서 사람도 여럿 바꿀 필요가 있어서요.”
“아하. 그러고 보니 남편도 그 이야기를 했어요. 폐하께서 이제 에브론 대공령의 거래를 영지 관리가 아니라 상단에게 맡기려고 한다고…….”
“네. 조만간에 총독을 파견하기로 됐어요. 가신에게 대리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요.”
“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에브론 본성의 관리역도 황후 폐하의 시녀 장이 맡고 있었지요?”
“네. 이번에 불러들일 작정이에요. 레티샤에게는 마침 안성맞춤인 호위 역이니까요.”
유니스 백작 부인의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그것에 따라 얼굴 근육도 몹시 바빠졌다.
아르티제아는 차를 한 모금 머금으며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직할령으로서 파견된 관리들이 적응하게 될 때까지 조르딘 가문을 비롯하여 오래된 가신들은 수도에 머물게 될 것이다.
드디어 귀족들이 불안해하던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북부 귀족이 내려와 기득권을 차지하는 일 말이다.
물론 그들이 걱정하는 것 같은 일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눈가림용으로는 딱 좋지.’
아르티제아는 유니스 백작 부인에게서도 시선을 뗐다.
풍파가 생기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는 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