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1
악녀는 두 번 산다. 31화
밀라이라가 처음부터 화를 내려고 먼 길을 달려온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구슬릴 작정이었다.
로렌스의 처지가 많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염려가 되기도 했고, 아르티제아 이 멍청한 것이 잘할 수 있을지도 걱정되었다.
아르티제아에게는 평생 남자 같은 것은 접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다.
별 볼 일 없는 계집애이다. 결혼도 시키지 않고 저택 밖에 나갈 일도 없게 끼고 살 작정이었다.
돈은 죽을 때까지 쓸 만큼 있다.
그러니 그냥 집안일이나 돌보고 자수나 놓으면서 사는 게 최고다.
그렇지만 로렌스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르티제아를 잘 구슬려 달래고, 세드릭이 로렌스 편을 들도록 말을 잘해보라고 할 작정이었다.
세드릭이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래봤자 남자였다.
계집을 알기 전의 남자와 알고 난 후의 남자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세드릭이 자신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밀라이라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보아라. 제 딸에게 빠지기도 하지 않는가.
남녀 관계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래 가리라고 밀라이라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쯤 딸년은 남자 하나를 홀렸다고 자기 매력에 도취해서 정신 못 차리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런 연정은 오래 가지 않는 법이다. 밀라이라의 경험에 따르면 젊은 남자는 더했다.
그러니 허락을 하되 잘 달래어 단물만 빨아 먹히고 버려지지 않도록 주의시킬 작정이었다.
필요하다면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도, 오랫동안 총애를 유지하는 방법도 직접 가르쳐줄 작정이었다.
이왕 하려면 잘해야 한다.
아르티제아는 정부가 아니라 대공비가 될 수 있다. 밀라이라 자신이 그런 신분으로 낳아서, 사생아가 아니라 후작 영애로 키워주었다.
에브론 대공비, 제법 멋지지 않은가. 황제의 말처럼 로렌스에게도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온 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저택이 완전히 변해 있는 것을 보자 눈이 뒤집혔다.
아르티제아는 나비로 변태한 것처럼 달라져 있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알맹이가 같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밀라이라는 눈이 좋지 못했다.
그녀에게 보인 것은 얼마 전까지 고분고분하고 촌스러웠던 딸이 하루 아침에 남자가 사준 옷으로 갈아입고 고와진 채 남자가 보낸 꽃들 사이에 파묻혀 있는 것뿐이었다.
“미친 년!”
밀라이라는 눈이 시뻘겋게 뒤집혀 고함을 지르며 다짜고짜 아르티제아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꺅!”
손님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눈을 빛내며 지켜보던 사람도 이 도를 지나친 폭거에 경악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 내가 뭐라고 했어? 너 같이 이쁘지도 않고 멍청한 년은 집구석에 얌전히 들어앉아서 살림이나 하고 자수나 놓으며 살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
머리에 꽂은 은핀이 바닥에 흩어졌다.
아르티제아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밀라이라가 잡아당기는 대로 질질 끌려 갔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저항한 적이 없었다. 저항하면 밀라이라는 더 발광했다. 맞는 시간이 길어질 뿐이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다리가 풀렸다.
같이 미친 사람처럼 싸우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그녀는 수천, 수만의 죽음을 손바닥 위에서 굴리던 천하의 악녀였다. 그러나 어머니 앞에서는 피부가 벗겨지도록 꼬집히면서도 안아달라고 손을 내밀던 두 살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모처럼 애비도 없이 낳아줬으면 고마운 줄을 알아야지! 잠깐 눈 돌린 틈에 사내놈과 배가 맞아서 엄마 뒤통수를 쳐?”
“참으세요, 마님!”
“참아? 내가 참아야 해? 내가 내 딸한테까지 참아야 해?!”
“아악!”
밀라이라가 고함을 지르면서 팔을 잡는 하녀장을 후려갈겼다. 하녀장이 바닥에 주저앉으면서도 밀라이라의 다리를 잡았다.
“로산 후작 부인, 로산 후작 부인!”
미엘르가 말려보려고 애절하게 불렀지만, 밀라이라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본래부터 병약하고 성품도 심약한 미엘르는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주르륵 미끄러지듯 주저앉으며 쓰러졌다.
헤젤이 놀라 미엘르를 부축했다.
“의사! 의사를 불러와요! 미엘르, 미엘르?”
“로산 후작 부인, 그만두세요!”
뒤늦게야 깜짝 놀란 손님들 중에서도 말리려는 사람이 끼어들었다.
밀라이라는 상대를 손으로 밀쳐내고 아르티제아를 테라스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로비에 내동댕이쳤다.
“내가 뭐라고 했어! 계집 노릇하지 말라고 그랬지! 미친 년, 이 멍청한 년!”
밀라이라가 닥치는 대로 아르티제아의 머리를 쥐어뜯고 꼬집다가 주먹으로 얼굴을 쳤다.
그리고 나동그라지는 아르티제아의 머리를 다시 잡아 흔들었다.
“계집 노릇하면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니? 남자한테 옷 받아 입고, 꽃다발 받고, 보석 선물 받으니 네가 뭐나 된 것 같니? 응? 그딴 거 다 한철이야! 남는 건 결국 핏줄뿐이야!”
퍽!
걷어차는 소리가 로비에 울렸다. 고용인들이 모두 벌벌 떨며 달아났다.
로비에 남은 것은 밀라이라와 아르티제아뿐이었다. 말리던 하녀장조차도 도망치고 말았다.
“목숨 걸고 낳아준 게 누군데? 후작 영애로 만들어준 게 누군데! 감히 뒤통수를 이렇게 후려쳐? 넌 아무데도 못 가! 도망가고 싶으면 내가 준 목숨 도로 내놓고 가!”
“아가씨!”
뒤늦게 뛰쳐나온 앨리스가 웅크리고 앉은 아르티제아를 감쌌다.
아르티제아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도 앨리스를 밀어냈다.
밀라이라가 잡히는 대로 바구니로 앨리스를 두드리고 끌어내서 확 뒤로 밀어버렸다.
그 꼴이 되어도 앨리스는 손 한 번 들지 못했다.
실수로 할퀴거나 때려서 밀라이라의 몸에 생채기 하나라도 나면 그거야말로 황제에게 죽여달라고 비는 꼴이었으니까.
그때 현관이 벌컥 열렸다.
“빨리요!”
재촉하며 들어온 리제가 로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숨을 멈췄다.
황급히 그녀를 뒤따라온 세드릭이 눈을 크게 떴다.
리제는 눈치가 빨랐다. 밀라이라가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에브론 대공가로 구원을 요청하러 갔었다.
그리고 때마침 집에 있던 세드릭과 마주친 것이었다.
“아가씨!”
얼어붙은 세드릭보다 리제가 먼저 반응했다. 그녀는 달려가 앨리스를 껴안았다.
앨리스가 소리치며 울었다.
“우리 아가씨 좀 살려주세요!”
밀라이라가 이를 악물고 아르티제아의 팔을 잡아끌었다.
세드릭이 성큼성큼 다가가 밀라이라의 손목을 잡아챘다.
“이 손 놓으시오.”
“누가 초대했다고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세요? 나가요! 당장 나가!”
밀라이라가 새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나가란 말이야!”
“이 손 놓으라 하지 않았소.”
세드릭이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밀라이라가 그에게 침이라도 뱉을 듯한 혐오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미가 딸자식을 가르치는데 남이 왜 간섭하고 난리예요?”
“이게 무슨 교육이오.”
“아니면 또 어떤데요! 내 딸을 내가 어찌하든 내 맘이에요! 아악!”
세드릭이 손에 힘을 주었다. 팔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밀라이라가 비명을 질렀다.
밀라이라의 손에서 힘이 풀리며 아르티제아의 팔이 아래로 떨어졌다.
세드릭은 그대로 밀라이라를 집어 던지듯 밀쳐냈다.
“……안 돼요.”
고통을 참으려고 애쓰는 듯 가쁜 숨소리 사이로 아르티제아가 속삭였다.
“어머니가 다치면, 큰일 나요.”
세드릭은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어서 그녀를 머리부터 덮었다.
머리를 쥐어뜯기고 얼굴은 시뻘겋게 맞은 흔적이 남았다. 드레스도 찢겨나갔고, 어깨와 팔은 피범벅이었다.
그는 망토를 여며 아르티제아의 몸을 숨겼다.
키 차이가 있었기에 그에게는 종아리 근처까지 오는 망토라도 아르티제아의 몸이 쏙 들어가기에 충분했다.
“전하.”
“가만히 있어요.”
세드릭은 그대로 아르티제아를 안아들었다.
춤을 출 때에 들어봐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말라빠진 그녀의 몸은 보기보다도 더 가벼웠다.
밀라이라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내려놔요. 내 딸이에요.”
“…….”
세드릭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그녀를 피해서 움직이려 했다. 밀라이라가 표독하게 그를 붙잡으며 외쳤다.
“죽이든 살리든 갠 내 거라고요!”
“이제는 아니오.”
세드릭은 낮게 대답했다. 그리고 밀라이라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밖으로 향했다.
뒤에서 밀라이라가 발작적으로 질러대는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세드릭은 걸음을 빨리해서 밖으로 향했다.
그를 따라온 기사들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세드릭은 명령했다.
“소후작은 오늘부터 거처를 옮길 것이다. 저택은 전부 장악해. 나중에 소후작이 직접 처분할 수 있도록 사소한 것 하나도 남김없이 압수해 둬.”
“예.”
황제가 개입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프레일은 굳이 군말을 붙이지 않았다.
세드릭에게 결심이 서 있다면 됐다.
어차피 로렌스가 대형 사고를 친 지금은 황제도 밀라이라를 무작정 비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레일의 대답을 듣고 나서 세드릭은 그녀를 안은 채로 말 위에 올 랐다. 이 저택의 것이라면 마차 하나 쓰고 싶지 않았다.
아르티제아가 헐떡이며 애써서 말했다.
“앨리스, 앨리스가…….”
“염려 마십시오. 프레일이 잘 챙길 테니.”
“집에, 손님이 있었어요. 미엘르 양은 몸이 약한데…….”
“그것도 프레일이 알아서 할 겁니다.”
세드릭은 이를 악물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나 신경 쓰십시오.”
그의 팔 안에서 아르티제아는 한동안 몸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축 늘어졌다. 긴장이 풀리자 기절해버린 것 같았다.
세드릭은 망토 안에 웅크린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꼬집힌 자리는 피부가 벗겨지고 긴 손톱에 살점이 떨어져 나간 곳도 있었다. 멍과 피 때문에 엉망진창이었고, 의식을 잃은 얼굴은 새파랗게 창백했다.
아르티제아는 로산 후작가를 상속 받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적당한 남자를 고를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세드릭은 이제야 진짜로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그녀의 손을 잡은 것이 자신이 아니었다면, 아르티제아는 분명 살해되고 말았을 것이다. 재산이나 작위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미친 모친의 분노 때문에.
왜 맞서 싸우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녀는 틀림없이 겁에 질려 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제아무리 현명하고 고결한 사람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은 있다. 세드릭은 의지의 힘을 믿었으나 의지력이 모든 걸 다 해결해준다고 믿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아르티제아에게는 자신이 필요했다.
가슴 밑바닥이 비틀어져 갈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 사실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무언가가 목구멍까지 찰랑거렸다. 세드릭은 그것을 토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