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11
악녀는 두 번 산다 외전
“아빠, 아빠!”
레티샤가 소리치며 세드릭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세드릭은 다리를 들어올렸다.
“꺄하하! 붕부웅!”
몸이 공중에 뜨자 레티샤가 신나서 외쳤다. 세드릭은 미소를 짓고, 그녀를 안아 올렸다.
“아빠, 또! 나 또!”
“안 돼, 들키면 아빠가 혼난다.”
“붕붕할래!”
어쩔 수 없이 세드릭은 레티샤를 가볍게 공중에 던졌다. 레티샤가 까르르르 웃었다.
“폐하.”
황급히 레티샤를 뒤따라 나온 키쇼어 부인이 책망하는 목소리를 냈다.
“자꾸 위험한 놀이를 가르치시면 안 됩니다.”
“조심하겠네.”
세드릭이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황제에게 감히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어 보고만 있던 시종들만 괜히 죄송하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너무 엄해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요.”
미엘르가 말했다. 세드릭이 웃음기 어린 얼굴로 레티샤에게 말했다.
“그것 봐, 아빠 혼났지.”
“힝.”
레티샤가 세드릭의 목을 껴안고 투정 부리는 소리를 냈다. 뺨에 간질간질한 숨이 닿았다. 세드릭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무게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었던 아기가 이제 제법 묵직했다. 그걸 생각하면, 조른다고 이렇게 던져 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겠냐 싶었다.
매일 끼고 기르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세드릭은 레티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시간을 내어 함께 있으려고는 하지만,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보니 레티샤가 조르면 엄하게 대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
“고모 왔어.”
“샬럿 고모?”
“응. 엄마랑 이야기하고 갔어. 나랑 그림책 안 읽어줬어.”
“아빠가 읽어줄게.”
“엄마가, 저녁에 읽어준다고 그랬어. 아빠도 같이 읽어줄 거야?”
“그래.”
세드릭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레티샤가 토달거렸다.
“그런데 오늘 피이 언니는 안 왔어.”
“피오나가 보고 싶니?”
“응. 피이 언니 예뻐.”
레티샤가 볼을 발그레하게 하고 말했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피오나가 각별히 미인은 아니었다. 레티샤에게 잘하려고 애쓰기는 하지만, 그다지 잘 돌봐주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기의 시선에서는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는 결혼 적령기의 언니만큼 예쁜 여자도 없는 듯했다.
“다음에 놀러가도 되냐고 물어볼까?”
“응!”
황후궁 밖으로 나가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아기는 까르르 웃으면서 세드릭에게 볼을 부볐다.
어릴 때도 잘 웃던 성격이 어디 가지 않아서, 지금도 레티샤는 입에 웃음을 달고 살았다. 그 웃음에 이끌린 것처럼 시종들 사이에도 웃음이 퍼져 나갔다.
“아빠, 오늘 그러며언, 로산 집에 가도 돼?”
“거기 가서 뭐 하려고?”
“멍멍이 있어. 멍멍! 멍멍!”
레티샤가 팔을 휘두르며 멍멍 소리를 몇 번이나 냈다. 그리고 토라진 얼굴로 세드릭한테 말했다.
“저번에 아빠한테 말했는데!”
“미안.”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으므로 세드릭은 깔끔하게 사과했다.
미엘르가 설명했다.
“정원사가 기르는 개가 4주 전에 새끼를 낳았어요. 보러 간다고 야단이셔서…….”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갔었구나. 아빠는 네가 마커스를 보러 간 줄 알았는데.”
“마크도 볼 거야.”
레티샤는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을 쏙 숨기고 말했다. 당당하게 가슴을 폈지만, 어른들 눈에는 전부 보였다.
세드릭은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었다. 노인의 곁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강아지와 뒹구는 쪽이 훨씬 더 기억에 남을 나이였다.
“오늘이라. 오늘 가도 되려나?”
세드릭은 그렇게 물으면서 키쇼어 부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아빠이기는 해도 주양육자는 보모인 키쇼어 부인이었다. 키쇼어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로산 저택인걸요.”
“오후에 달리 할 일은 없고?”
“황녀님은 하루를 즐겁게 보내시는 게 하실 일이니까요.”
키쇼어 부인이 부드러운 낯빛으로 말했다.
“그러면 오랜만에 부인과 미엘르 양의 부담을 덜어줄 겸, 데리고 다녀오도록 하지.”
“모시고 가도 괜찮아요.”
“미엘르 양도 가끔은 푹 쉬어주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세드릭이 레티샤의 손을 잡아 흔들며 물었다. 레티샤는 그게 정확히 어떤 뜻인지도 모르면서 쾌활하게 대답했다.
“응!”
“그러면 엄마한테 물어보고 같이 가자.”
세드릭이 레티샤를 추어 올려 안았다. 레티샤가 말했다.
“엄마느은, 자구 있어.”
“주무시고, 라고 해야지.”
“주무시고 있어.”
잘했다고 세드릭은 레티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디서?”
“웅.”
레티샤가 있는 힘껏 목을 돌려 미엘르를 돌아보았다. 미엘르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비 전하께서는 남쪽 테라스에 계세요.”
“알겠네. 이제 돌아가 쉬도록 해.”
“네. 물러가겠습니다, 폐하.”
키쇼어 부인이 먼저 말하고 절을 올렸다. 미엘르도 뒤이어 절했다.
세드릭이 레티샤를 안은 채 남쪽 테라스로 향했다. 그 뒤를 호위 기사 몇 명만 따랐다.
좀처럼 얻기 힘든 가족 간의 시간이니 방해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젊은 부부에게만 맡겨두기가 불안하긴 했다.
하지만 레티샤가 워낙 귀한 몸이니 바람에 날아갈세라 주위에서 벌벌 떨어서 그렇지, 부모도 키우면서 익숙해지는 게 맞긴 했다.
미엘르가 살짝 키쇼어 부인의 팔짱을 끼었다.
“그럼 엄마, 우리도 데이트하러 갈까?”
“지금?”
“싫어? 나 메이슨 의상실에 가 보려고 했는데.”
“메이슨 의상실? 거기 남자 옷 파는 곳 아니니?”
“헤젤이 그러는데, 모자를 엄청 잘 만든대. 아빠한테 하나 사드리려고.”
“어머.”
키쇼어 부인이 놀란 눈으로 미엘르를 쳐다보았다. 미엘르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왜? 내가 아빠한테 모자 사드리는 게 뭐가 어때서?”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걸 챙겼다고 그러니?”
“저번에 아빠랑 이모부랑 같이 오셨는데, 아빠가 너무…….”
키쇼어 부인이 웃어버렸다.
“그건 네가 이해해야지. 네 아빠는 평생 제복만 입고 살았던 사람인데.”
“그래도 모자 하나 없어서 보기 그렇더라고.”
미엘르가 말했다.
“나 돈 많이 모았어, 엄마.”
“그런데 선물은 아빠 것밖에 없어?”
“엄마 것도 있지. 뭔지는 아직 비밀.”
미엘르가 새살새살 웃었다.
키쇼어 부인은 따라 웃으면서도 이상한 기분으로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엘르를 살려준 것은 아르티제아이다. 은혜를 갚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엘르가 레티샤를 사랑하여 목숨을 걸었던 것도 스스로 한 일이었다.
하지만 원망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감히 입 밖에 꺼내어 말하지는 못했지만, 몸도 약한 아이를 그런 자리에 두었다고 생각했었다.
아기 돌보기도 미엘르가 스스로 원하기는 했어도 기껏해야 까꿍이나 하고 놀아줄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레티샤의 보모로 청해졌을 때에도 미엘르를 바로 곁에서 도와줄 작정으로 입궁했다. 딸이 아기를 돌보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딸과 아기를 같이 보살필 작정이었다.
하지만 미엘르는 놀랄 만큼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침대에 앉아서 꿈만 꾸고 있던 때보다 마음이 즐거운 만큼 몸도 잘 움직이고, 책임감이 생긴 만큼 의지도 강해졌다.
키쇼어 부부는 10년의 시간을 하루 하루 세고 있었다. 미엘르는 그 사실은 모른다.
하지만 남은 모든 날을 자라는 아이와 함께 의미 있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남쪽 테라스 앞에서 세드릭은 레티샤를 일단 내려놓았다.
“와아…….”
그는 소리 지르려는 레티샤의 입술 앞에 검지를 세웠다. 레티샤가 얼른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엄마를 깨우면 안 돼.”
속삭이는 듯한 소리로 레티샤가 말했다.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티샤는 다시 말했다.
“엄마를 깨워도 되는 건 아빠뿐이야.”
“우리 티샤 똑똑해.”
레티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것은 아르티제아가 휴식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혹시라도 아기가 해서는 안 될 경험을 하게 될까 봐 염려한 것이기도 했다.
세드릭은 레티샤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작게 말했다.
“아빠가 엄마 깨워 올 테니까, 저기 가서 놀고 있을래?”
“응.”
속삭이는 게 재미있는 놀이라도 되는 듯 레티샤가 속닥속닥하고 모래 놀이터 쪽으로 번개 같이 달려갔다.
아르티제아는 테라스 앞의 소파에 반쯤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눈가에 햇살이 들까 염려한 앨리스가 얇은 숄을 소파에 걸쳐 차양처럼 드리워 놓았다.
세드릭은 앨리스에게도 아무 말 하지 말라고 손짓했다. 앨리스는 조용히 일어서서 공손히 그에게 인사하고 레티샤 쪽으로 갔다.
세드릭은 가만히 아르티제아를 지켜보았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확인하고야 조금 마음이 풀린다.
남쪽에 테라스를 크게 낸 것은 레티샤를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볕을 자주 쬐면 좀 좋아지지 않을까, 나가는 게 쉬워지면 조금이라도 더 걷게 되지 않을까 싶어 한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효과는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여전히 병약했고, 쉽게 지쳤다.
그래도 잠든 얼굴은 세상 모든 일을 잊은 듯이 평온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떠나게 될지 몰랐다.
몸이 먼저 아프고, 쇠약해진 다음 병석에 누워 떠난다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삶을 정리하고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꼭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잠들었다가 그대로 떠나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예요.」
아르티제아는 고요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다만, 잠들었다가 그대로 떠난 그 마지막을 레티샤가 마주하게 될까 봐,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아르티제아가 잠들면 아무도 깨우지 못하도록 했다. 푹 쉬는 것도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떠난다면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세드릭 자신이었다.
“티아.”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아르티제아를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세드릭은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가볍게 건드렸다.
몸은 따뜻했고, 숨소리는 고요했다. 그는 고개를 더 깊이 숙여 뺨에 입술을 댔다.
“으음.”
아르티제아가 작은 소리를 내고 몸을 뒤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