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13
악녀는 두 번 산다 외전
근위대가 먼저 저택의 담장에 늘어서고, 길목을 통제했다. 그로부터 반시간쯤 후에 마차가 저택 앞에 멈춰 섰다.
마커스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정원에서 서성거리다가 마차를 보고 벙긋 웃었다.
시종이 문을 열자마자 뛰어 내리려는 레티샤를 세드릭이 낚아챘다. 레티샤가 허공에 뜬 발을 달랑달랑 흔들었다.
“네가 이 높이를 어떻게 혼자 내려간다고 그래?”
“내릴 거야!”
레티샤가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세드릭은 레티샤를 들어 올린 채 마차에서 내렸다.
바닥에 발을 대게 하자마자 레티샤가 공처럼 뛰어나갔다. 그 뒤에서 아르티제아가 세드릭의 손을 잡고 내리면서 말했다.
“저애는 하루 종일 뛰어다녀요. 세드릭 님도 어려서 그러셨어요?”
“기억 안 납니다.”
“안스가르 말로는 입맛도 똑같다고 하던데.”
“레티샤처럼 과일을 찾진 않았습니다.”
세드릭이 대답해놓고, 덧붙였다.
“아마.”
네댓 살 때 일 중에 간간이 기억나는 것이 있긴 해도,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떠올릴 수는 없었다.
“티샤보다는 얌전했을 겁니다.”
“그것도 ‘아마’죠?”
세드릭은 웃었다.
아르티제아도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었다. 그 나이 때에 세드릭이 레티샤처럼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닐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제 처지를 잘 아는 법이니까.
레티샤도 그랬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기가 막히게 알아보았다.
“마크!”
레티샤가 달려가면서 팔을 벌렸다. 마커스는 아기를 안아 올리면서 “어이쿠.”하고 휘청했다.
“우리 아기님.”
“마커스, 무리하지 말게.”
“아직 안아드릴 만합니다.”
마커스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세드릭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황제 폐하. 만찬 전에 가볍게 간식을 드실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습니다.”
“고맙네.”
세드릭은 대답하고, 아르티제아와 팔짱을 끼고 마커스의 뒤를 따라 로산 저택으로 들어갔다.
마커스가 로산 저택으로 돌아온 것은 대관식 직후의 일이었다.
아르티제아는 황자궁이 습격당했을 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커스를 불러들였다. 레티샤는 황태후가 손수 지키고 있었고, 마커스는 근신 중이었다.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무사했으니 공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커스가 에브론을 의심하여 한 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르티제아의 시녀를 제외하면, 레티샤 주위의 유모부터 하녀들까지 대부분 에브론 출신이었다. 다행이었다고 말하면서도 껄끄러운 기류가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가 진심으로 레티샤를 위해서 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네. 모친으로서, 또 로산 후작으로서, 자네의 충심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고.」
아르티제아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결국 폐하의 명을 거역하고 미리 세워진 작전을 계획적으로 망쳤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네.」
「예……. 제가 에브론과 로산의 화의를 무너뜨린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도 압니다.」
아르티제아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황자궁을 습격한 병력이 조금이라도 더 많았거나, 나탈리아가 돕지 않았거나, 레티샤가 계속 울었거나, 미엘르가 쓰러졌거나, 그 어느 한 가지만 맞지 않았어도 레티샤를 빼앗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나쁜 상황에 빠졌을 수도 있었다. 애초의 계획대로 기사 들 손에 맡겨두는 쪽이 확실했을 것이다.
아무 일 없었으니 된 거라고 세드릭은 말했다. 어찌 보면 그런 운조차도 제왕의 자격일 수도 있는 거라고.
하지만 아르티제아의 입장에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미엘르와 나탈리아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니, 남은 것은 마커스뿐이었다.
마커스는 눈시울을 적신 채 말했다.
「아기님이 무사하시니 저는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벌해 주십시오.」
「그럴 마음은 없네. 폐하의 명을 거역한 것은 폐하께서 자네를 벌하지 않음으로써 사면된 것이나 다름 없으니, 여기에서 내가 또 자네를 벌하면 에브론의 눈치를 보는 꼴이 되고 말지.」
레티샤도 세드릭과 입장이 달랐다. 그녀는 에브론의 딸도, 로산의 딸도 아니라 크라테스 제국의 황녀였다.
에브론 대공가의 충성심을 모르지 않았다. 그것은 미래에 레티샤에게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에브론 대공가가 레티샤를 자기들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은 곤란했다. 그렇게 되면 주종이 뒤바뀌고 만다.
아르티제아는 정치에서 손을 떼기로 했지만, 이것은 아기를 양육하는 일이기도 했다. 세드릭을 에브론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자신이 해야 했다.
「벌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나 보부 자리에서는 물러나게. 앞으로도 자네가 계속 양육을 맡으면 레티샤가 로산에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비난을 에브론에서 하게 될 테니.」
「예…….」
이 시점에서 아르티제아는 새 보모의 인선을 어느 정도 좁히고 있었다.
이제 에브론 공녀의 보모라는 위험을 감수하는 게 아니라 황녀의 보모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보다 중립적인 사람을 선정할 수 있을 것이었다.
마커스는 슬픈 얼굴을 했지만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것이야말로 그에게는 벌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아르티제아는 표정에 미동도 없이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손을 완전히 떼라는 것은 아니야.」
「예?」
「레티샤에게는 친척이 너무 적어. 에브론 쪽에는 그나마 가신도 많고 영지 자체가 남아 있지만……, 외가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사랑해줄 친척은커녕 뿌리에 대해 들려줄 만한 이야기조차 없었다. 어린아이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막아야 할 판이었다.
「로산 후작은 레티샤가 성인이 되면 가장 먼저 갖게 될 작위야. 그 때까지 자네가 레티샤의 후견인으로서, 로산 후작가 전반을 관리했으면 좋겠군.」
「아기씨의 후견인이라니요. 주인님께서 계시는데 제가 어찌…….」
「로산 저택으로 돌아가게. 레티샤에게 외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로산 저택에 좋은 추억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마커스가 거기에서 여생을 보내고, 또 추억하던 대로 저택을 다시 꾸미고, 아기에게 옛이야기들을 곱게 꾸며 들려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해서 마커스는 로산 저택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곳에 ‘돌아간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마커스밖에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는 아르티제아의 기대를 좋은 의미로 배신했다. 그는 옛 로산 저택의 모습을 남김없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았다.
로산 저택이 화려한 것은 밀라이라가 이 집에서 여왕으로 군림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본래의 로산 후작 일가도 부유했으며, 사치하는 것을 좋아했다.
부귀를 드러내면서도 천박할 정도로 과시하지 않는 것에 마커스는 익숙했다.
하지만 그는 저택을 옛 모습으로 되돌리는 대신 모두 아이들을 위한 것으로 꾸몄다.
가구 모서리는 모두 둥그런 것으로 바꾸고, 절대 망가뜨려서는 안 되는 고가구는 창고에 가져다 넣었다.
계단에는 아이가 잡을 수 있는 높이의 난간을 따로 설치했다. 바닥에는 모두 넘어지거나 떨어지더라도 다치지 않도록 푹신한 카펫을 새로 깔았다.
날카로운 장식은 모두 치우고, 화병도 나무를 조각한 것으로 바꾸었다. 창문에는 온 집안에 빛살이 무지개처럼 흐트러지도록 수정 구슬을 달았다.
연회장에서는 바퀴 달린 목마를 타거나 장난감 칼을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요정 집처럼 조그맣고 예쁜 집도 만들어 넣었다.
아이들이 기뻐하도록.
마커스는 레티샤가 조금 더 자라 친구가 생기면, 이 저택으로 함께 놀러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만한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귀족의 저택다운 품위는 잃었다. 하지만 화려하고 고상하지만 주인이 없는 집보다는 그쪽이 좋았다.
그리고 레티샤가 좋아하니, 아르티제아도 자연히 자주 찾아오게 되었다. 저택 분위기가 바뀐 덕에 마음 저리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마커스는 만족하고 있었다. 사실, 은퇴하는 게 정상인 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상을 받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마크, 멍멍이. 멍멍!”
“그렇잖아도 보고 싶어 하실 것 같아서 본채에 있게 했습니다.”
마커스가 다정하게 말했다. 그리고 레티샤를 안은 채 홀 쪽으로 향했다.
세드릭과 아르티제아도 그 뒤를 따랐다.
해가 잘 드는 테라스 쪽에 울타리를 치고 싶을 푹신하게 깔아놓았다. 거기에 태어난 지 한 달 된 강아지들이 올망졸망 뒹굴고 있었다.
울타리 앞에 앉아 있던 정원사가 벌떡 일어나서 굽실거렸다.
“제, 제국의 태양을 뵈, 뵙습니다요. 그, 그리고…….”
“편하게 있게.”
세드릭이 손을 내저었다.
레티샤가 온몸으로 버둥거렸다. 마커스가 말했다.
“함부로 만지시면 안 됩니다. 아직 아가들이니까 아플 수도 있어요.”
“응.”
“어미도 괴롭히지 말고요. 꼬리를 잡거나 털을 뜯으면 안 됩니다.”
“응!”
마커스는 약속을 받고 나서야 레티샤를 내려놓았다. 레티샤는 단걸음에 울타리까지 종종종 뛰어갔다.
레티샤와 낯이 익은 어미가 훌쩍 울타리를 뛰어넘어 왔다. 그리고 레티샤의 뺨을 할짝 핥았다.
세드릭이 염려한 것을 미리 알아챈 듯이 정원사가 말했다.
“레아는 아주 순한 놈입니다. 절대 황녀님을 다치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괜찮고. 오히려 티샤가 강아지들을 괴롭힐까 봐 걱정이 되는데.”
“아빠, 아빠. 쟤 봐봐. 빨강이.”
레티샤가 세드릭의 손을 조그만 두 손으로 잡아끌었다.
“빨간 리본 매고 있는 쟤?”
“응, 빨강이. 빨강이 예쁘지. 젤 예뻐.”
한배에서 태어난 강아지라 모두 똑 닮아 있건만, 레티샤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세드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빨강이 예쁘다.”
“빨강이 예뻐. 제일 예뻐.”
“저번에 왔을 때에도 그 강아지가 예쁘다고 노래를 했어요. 데려가는 건 안 된다고 했는데도.”
“엄마아아.”
“아직 아가잖니. 엄마한테서 떼어 내서 데리고 가면 안 되지.”
레티샤의 입이 댓 발이나 튀어나왔다. 세드릭이 그것을 보고 웃었다.
“레아한테는 물어봤어?”
“레아한테?”
“레아가 빨강이 엄마잖아. 레아한테도 물어봐야지.”
레티샤가 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세드릭의 다리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고 있는 레아의 얼굴을 잡았다.
“레아, 나 빨강이랑 같이 살면 안 돼?”
레아가 레티샤의 얼굴을 정면에서 크게 핥아 밀어냈다. 대신 마커스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어미한테서 떨어져 다른 집에 가려면 석 달은 더 있어야 합니다.”
“석 달?”
“열 밤을 아홉 번 더 자면 된다는 거야.”
레티샤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어 보고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숫자를 10까지밖에 못 세는 레티샤에게 이건 세지도 못할 엄청난 시간이었다.
“흐아아앙, 싫어, 빨강이 키울래! 으아아앙!”
레티샤가 목을 놓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딱히 울릴 작정으로 말한 게 아니라서 아르티제아는 난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