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16
악녀는 두 번 산다 외전
그 순간 헤일리가 취했어야 할 올바른 반응은 “그게 무슨 소리예요?”라고 태연하게 오리발을 내미는 것 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은 사람이 없었던 탓이다.
산통이 다 깨졌다는 것을 헤일리는 깨달았다. 황후궁의 실세이고 뭐고 간에 멜 앞에서는 나이 차이 많은 동생에 불과했다.
“언니가 상관할 일 아니잖아.”
결국 헤일리는 새빨개진 채로 그렇게 대꾸했다.
자신이 실수했구나 하고 주위를 돌아보자 시종들의 시선이 샤샤샥 사방으로 흩어졌다.
헤일리는 지금 사교계에서 제일 유망한 며느릿감이었으며, 프레일은 제일 유망한 사윗감이었다.
둘 다 황제의 공신이었으며, 자기 힘으로 황제와 황후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가문을 상속하게 될 후계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결혼으로 자기 가문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그 영향력을 고스란히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헤일리에게는 조르딘 백작가와의 혼맥이라는 덤이 따라왔다.
그것을 이점이라고 생각하는 자도 있었고, 그러니 프레일이 낫다고 생각하는 자도 있었지만, 어쨌든 적어도 열일곱 이상 스물다섯 아래의 아들을 가진 모든 부모가 군침을 삼키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황후궁에서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중요한 정보를 제외하고 이것이 돈이 되는 정보임에 틀림없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재미난 이야기였다. 이런 소소한 재미라도 없이 고된 시종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헤젤과 미엘르에 이르러서는 숨길 생각도 없이 흥미진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헤일리는 얼굴을 찡그렸다.
헤일리가 그러든가 말든가 멜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언니로서 네가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교제를 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어.”
“그런 거 아니야! 대체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듣고 온 거야?”
“네가 쓰는 편지만 봐도 알겠더구나. 어머니는 아직 반신반의하시는 것 같지만.”
헤일리는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녀는 편지에 그런 이야기를 쓴 적이 없었다. 애당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적는 성격도 아니었다.
멜은 대체 편지의 어느 문맥에서 눈치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도 않고 딱딱하게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북부는 지금 아주 중요한 기로에 서 있어. 네 절도 없는 연애 때문에 폐하의 북부 정책을 망칠 수는 없지 않니.”
“언니, 그런 거 아니라고!”
“절도 없는 교제가 아니라면, 슬슬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려도 되겠구나.”
그때였다.
하필이면 프레일이 반대쪽 복도 꺾어진 쪽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헤일리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시종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쫘악 몰려갔다가 폭탄이라도 맞은 듯이 분분히 흩어졌다.
“풋.”
헤젤이 결국 터뜨렸다. 미엘르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렸지만, 그러는 그녀의 입가에도 참지 못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멋모르는 프레일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먼저 멜에게 군례부터 올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멜 경. 수도까지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별말씀을. 경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네.”
멜은 군례로 인사를 받는 대신에 보통의 예법대로 인사했다. 아르티제아의 시녀장이 되면서 군의 보직은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프레일이 말했다.
“폐하께서 내일 오후 시간을 전부 비워두셨습니다. 그전에 먼저 저와 브리핑 준비를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찾아뵈었습니다.”
“그렇군.”
“보안에 대해서 의논드려야 할 것도 있고요. 혹시 제가 너무 일찍 왔습니까?”
프레일이 헤일리 쪽을 쳐다보았다. 헤일리가 웅변적인 눈썹을 했지만, 프레일은 그녀가 왜 그러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멜을 다시 바라보았다.
“가족 간의 대화를 하실 예정이셨다면…….”
“아니, 별 이야기 아닐세.”
멜이 대답했다.
프레일은 수상하다는 눈으로 다시 헤일리 쪽을 돌아보았다.
헤일리는 이제 시선을 돌리고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서 헤젤은 여전히 싱글벙글거리고, 미엘르는 애써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멜만이 변함없는 얼굴이었다. 프레일은 무언가 신변의 위협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종들의 시선이 흉흉할 정도로 날카롭다고 느꼈을 때에 복도를 돌아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헤젤이 살짝 끼어들어 물었다.
“저어, 프레일 경과 멜 님은 친하신가요?”
헤일리의 눈길이 따가웠지만, 그런 시선에 굴해서야 어찌 벨몬드의 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멜은 덤덤한 얼굴이었지만, 프레일의 눈동자는 데구르르 굴러갔다. 별 거 아닌 신변담에 불과한 질문인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하지만 대답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라, 그는 침착하게 사실관계를 말했다.
“제가 견습 기사였을 때에 멜 경의 부대에 있었습니다.”
“어머어~, 악!”
헤젤이 입을 막으며 신나 했다. 미엘르가 헤젤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헤일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해요. 보안 이야기를 할 거라면, 우리는 이만 갈게요.”
“황후궁 안의 일이니 헤일리 님이 도와주셔야,”
“시녀장은 언니니까요. 결정하시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시키시면 돼요.”
헤일리는 멜에게 하는 것인지, 프레일에게 하는 것인지 불분명하게 말했다. 그리고 헤젤과 미엘르에게 돌아가자고 손짓하고 홱 돌아섰다.
두 사람은 머뭇머뭇거렸다. 멜이 시녀장이니, 둘 중 한 사람을 따라야 한다면 멜이었다.
하지만 헤젤은 헤일리를 따라다니는 것에 익숙했고, 미엘르는 이제 레티샤에게 가 봐야 했다. 프레일의 용건에 자기들이 끼어들어도 될 것 같지 않았다.
멜이 별말 없이 그녀들에게 헤일리를 따라가라고 손짓했다. 헤젤이 공손히 물었다.
“정말로 저희가 헤일리 님을 따라가도 될까요?”
“아까 헤일리에게도 말했지만, 기존에 너희들이 하던 일에 간섭할 생각은 없어. 마음 편히 행동하도록 해. 그리고 지금은 자리를 피해주었으면 한다.”
헤젤과 미엘르가 얼른 나란히 인사를 올리고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멜은 시종들도 물렸다. 그리고 나란히 프레일과 후원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낯선 부분이 많으실 겁니다. 눈도, 귀도, 입도 많은 곳이니까요.”
“각오는 하고 있네. 하지만 해내야겠지.”
“짐은 후원 쪽에 푸셨지요? 부군과 자녀분들은 불편해하지 않으십니까?”
“애들은 황후궁 안에 거처를 따로 마련해 주더군. 아기 방 쪽에.”
“거기가 제일 안전하지요. 그래도 부군께서 걱정하시겠습니다.”
“이제 애들도 떼어놓을 나이가 되지 않았나. 황녀님과 가까이 있는 것은 영광이기도 하고.”
“하지만 보수적인 분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도까지 오는 데에 별일 없으셨습니까?”
“잔걱정이 좀 많을 뿐이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남자는 아니니까.”
멜이 희미하게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북부는 자네가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다네.”
마치 누군가가 계기를 주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몇십 년간 정체되어 있던 사회가 폭발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흐름은 고집스러운 노인들의 염려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프레일도 그녀를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4년 전에 이렇게 될 거라고 말했다가는 헛소리 말라고 아마 한 대 맞았을 겁니다.”
“에브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명받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예.”
“그래서, 자네는 결정을 내렸나?”
“절 북부 총독으로 추천한 게 멜 경이십니까?”
“폐하께서 적임자를 추리실 수 있도록 몇 가지 말씀을 올렸네. 조르딘과 무관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폐하께서도 원래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고.”
“음…….”
멜이 걸음을 멈추고 프레일을 바라보았다.
“상황이 꽤나 복잡해.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해도 에브론의 배타성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야. 새로운 북부 총독은 앨리아 장성과 톨드 관문을 동시에 개방하면서, 에브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본토에는 적당한 수준까지 숨겨야 할 걸세. 불만 있는 자들을 다독이는 것은 덤이지.”
“말만 들어도 사람이 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그게 우리 주군이 원하시는 일이니까. 에브론을 위해서.”
프레일은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자네는 북부를 이끌 마음이 있나?”
야망이 있느냐고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권력은 자기 한 몸 자유롭게 건사할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 된다.
부귀는 있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희생해가며 이룰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프레일이 바라는 삶은 적당히 일하고 해지기 전에 퇴근해서 읽고 싶은 책을 끼고 맛있는 안주에 술 한 잔 걸친 다음 잠드는 삶이었다.
‘잠깐, 눈물 좀 닦고.’
황제의 총신이 되어 권력자가 된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인생도 건사 못 할 일 노예가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이거.
그러나 에브론은 그의 고향이었다.
헤일리가 과거에 에브론을 사랑하면서도 답답해하고, 희망을 품으면서도 혐오했던 것처럼 그에게도 여러 가지 상념이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그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보좌관에 머물러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은 앞서 이끄는 자가 아니다. 세상이 어떤 형태로 변하는 게 옳다는, 그 궁극적인 이상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는 주어진 목표에 전략을 세우고 성패를 가늠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러나 목표를 자기 손으로 세울 수는 없었다. 된다는 확신이 없었다.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목표를 의지만으로 굳게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다.
하지만 직할령 총독은 아마도 그런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경은 생각이 너무 많아.」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프레일은 그녀처럼 자신을 완전히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에브론이었다.
프레일은 세드릭의 목표에 전략적으로 자신이 적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브론은 그의 고향이었으며, 생각해온 바가 이것저것 없지 않았다.
완전히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는 법이다. 자기가 사는 땅에 대한 이상을 조금도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어쩌면.
번뇌가 얼굴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멜이 말했다.
“망설여진다면, 하지 않는 게 옳아.”
“……예.”
“뭐,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숙고해 보게.”
프레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예.”
“헤일리 눈에 눈물이 나면 자네는 땀구멍에서 핏방울이 나오게 될 테니 그런 줄로 알고 있게.”
멜이 조금 전까지 했던 이야기와 다르지 않은 어조로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뱉었다.
프레일의 다리가 머리보다 그 말을 먼저 이해했다. 걸음이 저도 모르게 멈췄다.
“예?”
되물었지만, 멜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집이 덜컹거렸다.
프레일의 땀구멍에서 핏방울은 아직 나지 않았지만, 식은땀이 죽죽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