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18
악녀는 두 번 산다 외전
그 뒤에 아르티제아는 손님들을 후원으로 안내했다.
황후궁의 후원에는 잘 쓰이지 않는 별채가 있었다. 선선대에는 황후의 개인적인 공간이었다고 했다.
황후의 애인들이 기다리는 장소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럴 만큼 외진 자리였고, 일부러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것처럼 사람 키를 훨씬 넘는 나무로 잔뜩 심었다.
그래서 후원을 거닐어도 건물의 지붕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황태후 카트린은 이 별채를 사용한 일이 없었다. 그나마 그녀가 위세 있는 황후였을 때에는 정원의 구석구석까지 관리되었다.
하지만 황후궁의 문이 닫힌 뒤로는 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건물은 낡았고, 주위의 나무는 더욱 무성해졌다.
아르티제아가 황후궁에 입성했을 때에 다시 한 번 관리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건물 자체는 수리했지만, 정원은 무성한 채로 두었다. 오히려 그 바깥쪽에 울타리를 쳤다.
겉으로는 황후궁에 올 손님이 없으니 낭비라고 말했다. 울타리를 친 것은 혹시라도 레티샤가 들어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고 핑계를 댔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니다. 오늘을 위해서였다.
자신을 바일이라고 소개한 카람이 키가 커다란 단풍나무 앞에 넋을 놓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나무그루를 만져 보기도 하고, 막 피어난 새 잎을 만져보기도 하며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케사가 말했다.
“이렇게 잎이 큰 나무를 처음 보셔서 그렇습니다. 저희 땅에서 큰 나무는 철처럼 단단하고 잎도 바늘처럼 뾰족하거든요. 새순이야 연둣빛이지만, 이렇게 아기 손처럼 보드랍고 어여쁘지는 않지요.”
바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뭐라고 혼잣말을 했다. 케사가 미소를 지었다.
“죽기 전에 이런 나무를 보게 될 줄 상상도 못하셨다고 합니다. 이곳에 오는 동안에는 보안 때문에 배에서 거의 내리지 못했으니까요.”
〘바일 님은 쇠 부리 부족에서 가장 대단한 목수입니다.〙
아푸아가 말했다.
카람의 기술은 인간보다 뒤떨어진다. 여기에는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장인이라면, 그 사실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아직 여러분의 정체를 드러낼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계시는 동안에 알아보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가능한 한 경험해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하다고 합니다.”
바일이 대답하고, 케사가 통역했다.
“사실 이렇게 따뜻한 날씨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넓어지는 것 같은 큰 경험입니다. 제법 남쪽까지 다녀본 저도 이렇게까지 따뜻한 날씨는 상상도 한 적 없습니다.”
“북부는 정말 추웠지요.”
아르티제아는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났다.
케사는 그녀의 하얀 안색과 털망토 안에 입은 봄 드레스를 보고 새삼스럽게 감동한 얼굴을 했다.
“제국에는 1년 내내 한여름인 땅도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황후 폐하의 차림새를 보니 지금보다 더 더워지는 모양이로군요?”
“인간의 몸에도 더워서 아주 얇은 옷감을 이용해서 옷을 만드니까요.”
“손수건용 천 같은 것 말씀이지요?”
“그래요. 그런데, 더우시겠군요.”
아르티제아가 살짝 다른 카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케사와 아푸아는 얼굴을 깨끗하게 면도하고 있었다. 덕분에 머리칼에 해당하는 부분이 지나치게 뻣뻣하고 숱이 많다는 것을 제외하면 인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팔과 세 번째 눈만 가리면 누가 보더라도 어딘가 다른 먼 지방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생김새가 특이하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었다.
목덜미도 드러나 있는 것을 보면 등으로 갈기처럼 이어지는 털도 잘라낸 듯했다.
하지만 다른 카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 털을 정돈하고 일부 자르기도 했지만, 깔끔하게 밀어버린다는 선택은 그들에게는 있을 수 없었다.
더워 보였다. 실제로도 더울 것이다. 옷을 벗어던지지 않는 것만 해도 예의를 차리고 있는 것이었다.
케사가 하하 웃었다.
“배에서 깎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자업자득이지요.”
“실은 차를 대접하려고 했지만, 보아하니 더워서 안 되겠네요. 두 분은 괜찮으신가요?”
“좀 덥긴 하지만 견딜 만합니다.”
〘이번에는 첫 번째 방문이니 여러 가지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봄에 찾아뵈었지만, 두 번째 기회가 있다면 가을에 미리 톨드 관문을 넘어서 겨울에 뵙고 싶군요.〙
케사가 그 말을 통역했다. 아르티제아는 케사의 통역과 자신이 이해한 것을 비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무리해서라도 단어부터 머리에 욱여넣은 것은 중간에 통역이 수작을 부릴 것을 우려한 탓이었다.
“네. 이곳은 너무 덥고, 또 북방은 한여름에도 인간의 발이 묶이기 쉬운 곳이니까요.”
카람과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다.
설령 한겨울에 카람이 남하하더라도 여름이 되면 다시 북부로 올라가야만 한다. 카람과 인간의 거주지는 일부밖에 겹치지 않는다.
아르티제아는 따뜻한 차 대신 서늘하게 식힌 맥주를 가져오게 했다.
케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식량이 부족한 북부에서 곡물로 만든 술은 꽤 귀한 것이었다.
바닥에 무릎 꿇고 흙을 만져 보고 있던 바일이나, 거대한 황궁을 멀리서 바라보고 이것저것 신기한 얼굴로 건물을 살피던 다른 카람들도 술 냄새를 맡고 코를 움찔거리며 모여들었다.
한나가 나무로 된 맥주조끼를 하나씩 돌렸다. 황후궁에서 쓸 만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손이 섬세하지 못하고 도자기나 유리 제품을 거의 만져본 경험이 없는 카람에게는 이쪽이 안전하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편안히 계시도록 하세요. 옷은 좀 더 얇은 것을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푸아가 말했다.
그의 발음은 여전히 불분명했지만,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흉내만 내는 느낌은 아니었다.
케사와 아르티제아가 나누는 대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는 글씨는 서투르지만 글을 읽고 쓰는 데에 거의 지장이 없었다. 제국어의 문법까지 거의 완전하게 익히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르티제아는 그를 바라보았다.
지난 2년 동안 편지를 교환하면서도 풀지 못했던 의문이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면서 심장을 긁었다.
그가 ‘돌아온 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연유로 이 같은 일을 시작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푸아는 쇠 부리 부족 족장의 아들이었고, 카람 안에서 쇠 부리 일족은 언제나 가장 강성한 부족 중 하나였다.
금대의 부족장에 이르러서는 더욱 성하여, 일대의 부족을 모두 아우르고 ‘불씨를 지키는 자’라는 경의를 얻었다.
사실상 왕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런 부족은 굳이 인간과 교류할 필요가 없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다른 약소 부족을 약탈하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에 에브론이 교류한 카람은 케사가 소속된 푸른 곰 일족을 비롯하여 산맥까지 밀려난 약소 부족 출신들이었다.
카람은 계급을 상속하지 않는다. 족장의 아들이 반드시 족장이 된다는 법은 없으며, 아푸아의 형제자매는 모두 합쳐 열여덟이나 된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왕이라고까지 불리는 족장의 아들이라면 보통의 카람보다는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을 게 분명했다.
실제로도 인간과의 교류라는 전례 없는 일을 주도하여 여기까지 왔다.
그런 그가 어째서 인간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이렇게까지 공부한 것일까?
공존하면서 상호간에 문화가 침투했다고 해도, 지배층에까지 단기간에 그렇게 되었을 리는 없다.
아르티제아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그러고서도 혹시나 싶어 케사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종이에 글로 적었다.
『어떻게 제국어를 배우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제가 겨우 2년을 공부했을 뿐이지만, 카람과 인간 사이에는 글을 배우는 것이 말을 배우는 것보다 차라리 쉽다고 여겨집니다.』
카람에게는 글이 없으니, 기록하기 위해서, 또 책을 읽기 위해서 배웠다면 납득이 간다.
하지만 단어와 문법의 차이는 발음의 차이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개 짖는 소리나 꿀벌의 날갯짓과 달리 구별하여 알아들을 수 있긴 했다.
연구하면 아마 친연성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케사처럼 양쪽의 말을 다 할 수 있는 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능숙하게 말을 알아들으려면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 할 것이다. 지금도 아르티제아는 아주 주의를 기울여 마음속으로 들은 소리와 외운 단어를 맞춰봐야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무척 노력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만 덧붙였다.
아푸아의 입술이 흐린 미소를 머금었다. 그가 펜을 들었다.
『군주 덕분입니다.』
그가 군주라고 부르는 것은 세드릭이었다. 돌아오기 전에 카람이 정복한 북부에서, 그를 그렇게 불렀던 모양이었다.
아르티제아는 그가 긴 글을 쓰는 동안 화로를 가져오게 했다.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될 글을 태우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아푸아는 종이 한 장을 쭈욱 채웠다.
『황후께서는 군주가 전쟁 중에 별동대를 이끌고 기습하여 왕을 죽인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아르티제아가 곡가를 올려 에브론 대공령의 보급이 중단되었을 때의 일이다.
아르티제아는 약간 호흡을 다스렸다. 당시에 죽은 왕이 지금의 쇠 부리 부족장이었으니, 바로 아푸아의 아버지였다.
아푸아는 아르티제아의 기색을 살피고 적었다.
『위대한 전사가 더 위대한 전사에게 패배한 일일 뿐입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명예로운 싸움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바로 쇠 부리 부족이 약화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 뒤에 족장의 자리를 놓고 싸움이 벌어졌었습니다. 암습을 당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팔을 두 개 잘린 채 톨드 산맥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톨드 산맥 인근에 혼자 살고 있던 노인이 불쌍하게 여겨 구해 주었다.
살고 있던 마을은 카람에게 약탈당해 흔적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각자 의지할 수 있는 친척을 찾아 흩어지거나 유민이 되어 남쪽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노인은 마을에 남았다.
딸 부부는 마을이 약탈당할 때에 죽었다고 했다. 전쟁터에 병사로 끌려갔던 아들은 한쪽 팔을 잃고 돌아왔었다가 결국 산짐승에게 물려갔다. 손자들도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아푸아를 불쌍히 여겼다.
「내 새끼도 팔이 한쪽 없었어.」
노인은 아푸아의 빈 어깨를 보며 중얼거리곤 했다.
「나쁜 건 그 마귀 같은 년이야. 너도 그냥 불쌍한 놈이지.」
아푸아가 그 말을 완벽하게 알아 듣는 데에는 몇 년이나 걸렸다. 그 말에 들어 있는 의미까지 다 이해하는 데에는 더 오랜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팔을 보면서 제 자식을 잡아간 자들을 욕하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노인이 잃어버린 자식들 대신에 장작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렸다. 팔이 두 개 없어도, 우월한 신체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짐승을 사냥해오면, 노인이 불을 피워 그것을 훈제했다. 아푸아는 그에게서 뿌리식물을 키우는 법도 배웠다.
톨드 산맥도 카람의 땅에 비하면 따뜻하고 농사도 잘 되었다. 아푸아는 그곳에서 15년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