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19
악녀는 두 번 산다 외전
육식이 주식인 카람의 입장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사냥에 따라갈 수 없는 어린 것들이나 늙은이들의 일이었다.
아푸아는 위대한 족장의 아들이었고, 한때는 설원을 달리는 전사들의 선봉장이었다.
그는 뛰어난 사냥꾼이었었다. 사냥을 나가면 빈손으로 돌아온 적이 없었다. 새끼 달린 순록을 산 채로 사로잡아와 그 젖을 아버지에게 바친 적도 있었다.
그러니 그가 자기 손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은 노인과 함께 살면서부터였다.
고기를 보존식으로 만들기 위해 소금을 뿌리고 훈제하거나, 눈에 파묻어 얼려두는 것은 카람들도 쓰는 방식이다.
그러나 예전의 아푸아는 언제나 사냥감을 가져다가 다듬는 자들에게 던져주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는 그런 일이 사냥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막연히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기술을 필요로 했다.
노인은 툭하면 그에게 욕을 했다. 손이 섬세하지 못한데 힘은 강하니, 농기구를 망가뜨리거나 소금을 낭비하기 일쑤였다.
땅에서 처음으로 작물을 캐냈을 때에는 감격으로 눈물이 맺혔다.
굶주림과 추위는 카람의 지배층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혹한이 닥쳐온 해나 때로는 주기적으로 오는 금렵기에는, 극도로 식사를 줄이고 굶주린 채 이웃 부족과 싸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제 손으로 먹을 것을 만들어 창고에 쌓는 것은 전혀 다른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부족 회의에서 식량 문제에 관해 논의할 때나 아버지의 걱정을 나눌 때와는 전혀 달랐다.
먹을거리들은 이제 노동 계급에게 명령하면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쉬지 않고 신경 쓰며 준비한 결실이었다.
아푸아는 15년 동안 오로지 노인과 둘이 살았다. 그러나 그의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
노인은 현자가 아니었다. 그는 글도 몰랐고, 인간 세상이 이제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아푸아는 전사 계급이었던 자신이 인간과 함께 살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노인이 사용하는 오래된 물건과 기술은 그를 늘 놀라게 했다.
때때로 방물장수가 가져오는 양초, 식물에서 짜낸 기름으로 만든 냄새 나지 않는 등잔은 강철로 만든 보습이나 수레바퀴 축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노인은 그에게 그림책과 색연필을 주었다. 노인은 글을 몰랐다. 손자들에게 주려고 샀던 것이라고 했다.
일이 일찍 끝난 날이면, 노인은 그림책의 그림을 펼쳐놓고 거기에 그려진 물건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림 밑에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아푸아는 그렇게 글자를 배웠다.
상인들이 나무판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자기 나름대로 거래 내역을 표시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림으로 기억을 보조하여 부족의 역사를 구전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있는 말을 그대로 종이 위에 남긴다는 것은 몰랐다. 혼혈들이 인간 쪽 부모에게서 배워 오는 일이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카람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다.
지배층도 마찬가지였다. 카람 안에서 상인은 천시되었고, 혼혈이 상위 계급이 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전사가 되는 것만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으며, 패배하지 않기 위해 서는 쉬지 않고 육체를 갈고닦아야 했다. 인간은 교류의 대상이 아니라 약탈하고 짓밟을 상대였다.
아푸아는 몰락한 카람의 지배 계급이었으며, 문자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역사가 남고, 기술을 전한다.
실패를 정리하고,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떠올려 기록해둔다.
카람이 보기에 마치 마술처럼 보이는 인간의 기술들은 이렇게 해서 발전한다.
그들이 진짜로 배워야 할 것은, 늘 카람들이 원하던 강철의 제련법이나 대포 제조법 같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푸아는 깨달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이미 밀려난 신세였다. 돌아가 보았자 살해당하는 결과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가 세상에 다시 나온 것은 노인이 죽은 뒤의 일이었다.
그때는 아푸아도 이미 마흔을 넘은 나이였다. 카람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오래 산 나이였다.
아푸아를 적대시할 만한 동년배는 대부분 죽고 없을 것이니, 쇠 부리 부족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장애가 있는 노인을 환영하지는 않겠지만, 쫓아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 아이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전해주고 싶었다.
『산 속에 사느라 몰랐습니다만, 그 시점에서 이미 카람이 북부에 진입한 뒤였습니다.』
아르티제아는 그 종이를 받아 천천히 읽고, 화로에 넣었다.
아푸아의 표현은 아르티제아가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 톨드 관문이 뚫리고 북부의 방어가 무너졌다. 그러니 그것은 카람이 에브론을 정복한 것이었다.
『잘못 알고 계십니다. 요새의 문을 연 것은 군주 자신입니다.』
“네?”
아푸아가 써내려가는 문장을 거꾸로 보고 있던 아르티제아가 무심결에 놀라 되물었다.
『왕이 돌아가신 뒤로 카 에르사의 부족들은 계속해서 다투다가, 아홉 개의 세파로 나뉘어 연맹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군주는 에브론 세력으로서 그 세파 중 하나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아르티제아는 너무 놀라 멍하게 그 문장을 보고, 아푸아를 쳐다보고, 시선을 내려 다시 문장을 보았다.
전혀 알지 못했다. 아마도 본토의 그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세드릭이 용케도 무사히 기사단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은 했었다. 북부인들이 돕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미 근거지를 잃은 상황에서 비공식적으로 도움을 받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카람에게는 국가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니, 비어 있는 땅을 기사단을 이끌고 헤집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푸아의 말대로라면 그는 한 번도 에브론의 군주이기를 놓은 적이 없었던 셈이다.
아르티제아는 눈을 내리깐 채로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정보가 부족했다. 애당초 아르티제아는 에브론 내부에 쓸 만한 정보 조직을 만드는 데에 실패했었고, 그 시점에서는 정보 조직을 해산하고 있기까지 했다.
아푸아와 협상 과정에서 북부가 카람과 싸우고 있다고 여기게 만들었었다. 패배했다고 알려지게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톨드 관문은 뚫리지 않았었다는 말인가요?』
아르티제아는 질문했다. 아푸아는 정말로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약간 당혹한 얼굴을 했지만, 망설이지 않고 답을 적었다.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으나 위태로워졌던 것은 맞습니다. 빛을 품은 여자를 빼앗기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이 죽지 않았으리라고 인간들이 원망했습니다.』
카람은 톨드 관문을 뚫었다.
몇십 년에 한 번 찾아올 만한 혹한기였다. 카람도 필사적이었고, 보급을 받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던 북부의 사정은 이미 최악이었다.
제일 먼저 군량이 떨어지고, 그다음 화약이 끝났다. 줄어든 군사는 보충될 가망이 없었다. 수리하지 못한 성벽은 기어이 무너졌다.
그때에 카람에게는 지금의 왕과 같은 구심점이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살기 위해 내려오는 것이었다.
세드릭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때에도 자기 자신의 무용뿐이었다.
그는 톨드 관문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단신으로 카람의 대전사와 싸워 이긴 후 협상을 제안했다.
『카람은 위대한 전사를 존경합니다. 사실 왕을 죽인 전사라면 이미 전설적인 존재였을 겁니다.』
카람에게는 이미 한 세대가 지나간 후의 일이었다.
아푸아가 세상에 나갔을 때에 카람들은 전대의 전설이 살아서 또다시 대전사를 쓰러뜨렸다는 사실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렇게 협상은 성립되었다. 어차피 카람도 막대한 희생을 치른 다음이었다.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고 남쪽으로 내려가 적당한 땅을 차지하고 식 량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았다.
연맹체를 구성하는 아홉 세파 중 하나는 인간인 셈이었다.
카람의 생활습속 상, 완전히 약탈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세드릭의 영항력은 1/9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간은 노예가 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공존이 시작되고, 대규모 거래가 발생했다. 서로 처음 접하는 식료품을 교환했다. 카람은 굴뚝의 제작법과 시비법을 배웠다.
북부는 카람에게는 풍요하고 따스한 땅이었다. 약탈도, 싸움도 줄어들었다. 노동 계급이 대규모로 경작을 하는 땅도 생겨났다.
그 결과 수명이 늘어났다. 아푸아가 젊을 때에 그만큼 살았던 노인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건강한 채로 경작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 계급의 노인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아푸아는 숨어 사는 동안에도 어떻게 해야 공존하며 인간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곤 했었다.
생각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는 다시는 쇠 부리 부족의 전사가 될 수 없으니까.
그래도 그가 계속해서 고민했던 것은, 여전히 쇠 부리 일족의 족장 아들이었던 때의 마음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고민만 하던 일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을 북부의 변화를 둘러보는 데에 사용했다. 사람들은 비누와 양초가 든 보따리를 멘 방물장수가 한때 위대한 전사의 아들이자 그 자신도 위대한 전사였던 카람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눈을 감았을 터인데, 어느 날 눈을 떠보자 젊은 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이제 카람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다.
방법까지는 생각해낼 수 없었다. 어쨌든 톨드 관문을 넘어 인간과 직접 접촉하지 않으면 변화는 시작되지 않을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전쟁을…….”
왕이 살아 있을 때에 카람은 톨드 관문을 넘은 적이 있었다.
지금 아푸아가 있으니 이번에는 구심점을 잃지 않는 것도 가능할 것이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승리해서 정복하는 것으로는 의미가 없었다. 약탈하고 노예로 삼아 지배하면, 인간이 아홉 세파 중 하나일 때처럼 대등하게 교류할 수 없다.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아푸아는 먼저 문을 두드려보기로 했다.
책에서 얻은 어설픈 지식으로 만든 공성 병기는 서툴렀고, 게릴라전이라는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만일에 저쪽에 아푸아와 같은 미래를 겪은 자가 있다면, 분명히 반응이 있을 것이다.
에브론 대공은 아푸아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교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만나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험이라고는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종이를 건네주는 아푸아의 얼굴에 미소가 담겨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 대부분은 이제는 생각해도 의미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세드릭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화로에 마지막 종이를 넣고, 재를 흐트러뜨린다. 아르티제아는 마지막 한 톨까지 모두 부숴 없앤 다음에 아푸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계실 텐데요.”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소문은 들었지만, 겪은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세상에는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모르는 일도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까요.〙
아푸아가 노인답게 말했다.
케사가 의아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말은 알아도 글은 몰랐으므로, 아푸아의 곁에 앉아 있으면서도 필담으로 오간 내용이 무엇인지 몰랐다.
“들으신 소문이 전부가 아닐 거예요. 어찌 생각하면, 그 전부보다 오히려…….”
아르티제아는 마치 변명하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황후 폐하, 대주교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울타리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 하나가 들어와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