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21
악녀는 두 번 산다 외전
근래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지금 황후궁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세드릭은 얌전히 본궁의 회의실에 있었다.
대외적으로 북부에서 온 가신단은 정무에 관계된 일로 온 것이 아니라 에브론 대공에게 예방을 온 것이었다. 사적인 일에 가까웠다.
하지만 회의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관료들은 황제가 이 자리에서 중요한 이권을 쪼개어 북부 귀족들에게 줄까 염려하며 날을 세웠다.
그들의 뒤에는 각각 연줄 있는 귀족들이 있을 것이다.
혹은, 에브론 대공 시절의 가신 중의 몇 명을 골라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갖는 고위직을 주지 않을까 하는 것도 염려했다.
세드릭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자신이 앞으로 별일 없이 20년을 산다고 해도, 결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집을 부수는 데에는 반나절이면 충분하지만, 세우려면 기반을 다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제국의 기반을 다시 다지는 데에, 한 사람이 일생을 바치는 정도로 가능할지 어떨지 몰랐다.
시간을 아끼고 싶었다. 그래야 레티샤에게 과중한 부담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대에서 소수의 힘으로는 변화를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시대의 흐름을 끌고 와야 한다. 후대의 황제가 폭거를 저지르더라도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체제도 갖추어야 했다.
그는 한 명의 폭군이 얼마나 단시간에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지를 이미 목격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니 정과 신뢰가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요직에 앉힐 작정은 아예 없었다.
아니라고 말해도 진심으로 믿는 이가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사실 신뢰할 수 없는 자일수록 믿지 않았다.
동부의 행정 제도를 다시 잡는 것에 관한 회의였지만, 마음이 북부에 가 있으니 온전히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그래도 세드릭은 인내심 있게 해야 할 말을 모두 마치고, 참석자들에게 다음 회의 전까지는 제대로 된 보고서와 제안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오후 내내 걸린 실속 없는 회의를 마치고 나왔을 무렵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실속이 없는 건 아니지.’
시선을 돌린다는 아르티제아의 목적은 확실히 달성했다.
이제 사제들이 성녀를 만나러 조용히 다니는 일 같은 것에 관심 가질 자는 거의 없을 것이었다.
설령 누군가가 알아챈다고 하더라도, 사원 내에서 북부 출신 사제들의 발언권이 강력해지는 것에 관한 문제이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세드릭으로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그러나 설득으로 해결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카람에게는 자신보다 더욱 시간이 없다. 수명은 차츰 길어질 것이나, 아푸아만큼 이해와 영향력을 동시에 갖춘 이가 세드릭의 치세 안에 또다시 나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지금 같은 조건을 갖출 수 있다는 보장도 말이다.
「지금이 적기예요. 아푸아 왕자의 영향력을 생각해봐도 그렇지만, 지금은 크게 민생에 문제를 주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을 만한 소재가 많으니까요.」
치세가 완전히 안정된 후라면, 지금처럼 북부에서 사람이 왔다는 것만으로 눈가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아르티제아는 자신이 살아 있을 동안에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는 듯했다.
결국 카람 문제는 어떻게든 사원과 결착을 봐야 했다.
세드릭은 마음이 안 좋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염려하실 필요 없어요. 실무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대주교님에게 협력을 구하는 것 정도인데요. 대주교님은 일단 끌어들이기만 하면, 자기 보신을 위해서라도 수습 열심히 할 테니까요.」
「당신이 읽어대는 책의 양을 생각하면 걱정 안 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도 절반 정도는 취미예요. 세드릭 님이 전날 자정이 넘어서까지 서류를 보고서도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칼을 휘두르러 나가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요.」
「…….」
「후세에 남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걱정 마세요. 죽자사자 배우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통 역이나 학술 사제들이 수작 부리지 못할 정도로만 보고 있는 거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르티제아가 성격상 그 정도에서 그칠 리 없다는 것을 세드릭도 알고 있었다.
건강에 해가 되거나 피곤하면 바로 그만두기로 약속하긴 했지만, 그것도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르티제아에게 의존하고 있는 정도가 높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세상에 둘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어딘가에 있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서, 결국 마음만 무거워진 채 계속 해서 의지하고 만다.
세드릭이 옷을 갈아입으려고 본궁의 처소에 들렀는데, 레티샤가 와 있었다.
“티샤, 언제 왔니?”
그런데 반응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아빠를 부르며 품으로 뛰어드는 대신에 거실 한중간에 제 의자를 갖다놓고 문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대답이 없었다.
시종들은 자세를 반듯하게 유지하고 있었지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얼굴로 온갖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키쇼어 부인이 말없이 그에게 절을 올렸다. 세드릭은 입을 다문 채 레티샤를 가리키며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키쇼어 부인이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숨바꼭질.
-아.
세드릭도 입모양으로만 탄식했다.
어제 저녁에 레티샤에게 밥을 다 먹고 나면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 놀자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레티샤는 디저트가 나오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렸다. 깨울 것인가 말 것인가 아르티제아와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밖에서 급한 보고가 있었다.
깨어 있다면 설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 잠들어 있으니 그냥 재워 놓고 나왔다.
그것에 화가 나서 이러고 있는 모양이었다.
“티샤.”
세드릭은 다정한 목소리로 레티샤를 불렀다.
레티샤의 어깨가 크게 들썩거렸다. 하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마치 “흥.”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화났니?”
“흥.”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소리를 냈다.
세드릭은 난처한 얼굴로 키쇼어 부인을 쳐다보았다. 키쇼어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마음대로 하라는 신호였다.
세드릭은 일단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지금 입고 있는 옷에는 뾰족한 모서리가 있는 장식이 달려 있었다. 아기를 안을 때에는 피해야 할 옷이었다.
원래는 느긋하게 몸을 씻고 황후궁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레티샤가 기다리고 있으니 간단히 손과 얼굴만 씻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거실로 나오자 레티샤가 이번에도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다.
옷방은 침실 안쪽에 있고, 그리 통하는 문은 복도로 통하는 문과 반대 방향에 있었다.
요컨대 그가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사이에 레티샤는 의자를 반대로 돌려서 다시 등을 보이고 앉았다는 말이었다.
시종들의 입가에서 웃음이 도무지 사라질 줄을 몰랐다.
세드릭은 손바닥으로 입가를 쓸었다. 웃어버리면 화를 낼 것이다.
그는 실은 레티샤가 화낼 때에 귀여워서 웃어버리는 바람에 울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오늘은 절대 그런 실책을 저지를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입가에 생기려는 웃음 주름을 눌러 펴고 세드릭은 엄숙하게 말했다.
“레티샤 모린, 억울한 일이 있으면 와서 고하라.”
물론 세드릭은 그런 말투를 써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레티샤에게 읽어주는 동화책 속의 왕들은 꼭 이런 식으로 말했다.
레티샤가 움찔했다. 세드릭은 “어흠.”하고 헛기침도 한 번 해주었다. 레티샤는 이번에는 깜짝 놀라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레티샤의 시종들이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비틀었다. 본궁의 시종들은 그것보다 좀 더 감정을 억제하는 데에 익숙했지만, 입꼬리를 누르지 못했다.
세드릭은 레티샤 쪽으로 다가가 몸을 구부리고 시선을 마주쳤다.
“뭐가 그렇게 억울합니까?”
레티샤가 앵돌아진 얼굴을 팩 돌렸다. 세드릭은 또다시 입가를 끌어 내리느라 얼굴 근육에 힘을 주어야 했다.
“말해주지 않으면 아빠는 몰라요.”
레티샤와 세드릭의 신경전은 잠시 더 이어졌다. 그렇지만 결국 레티샤가 졌다.
“아빠 미워어!”
레티샤가 발딱 일어나면서 의자를 팍 밀쳤다. 세드릭은 한 손으로는 의자를 받고 다른 한 손으로는 레티샤가 넘어지지 않게 보듬어 안았다.
번쩍 안아 올리자 레티샤가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고사리손이 주먹을 꽉 쥐고 세드릭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어제도, 어제도, 으흑, 같이 숨바꼭질, 흐아앙!”
“미안. 아빠가 너무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랬어.”
“후웅, 맨날 그래, 흐엥!”
세드릭이 레티샤의 등을 도닥도닥 두드렸다.
“미안.”
“아빠 나빠. 흐윽, 엄마가 약속 어길 땐, 흐으응, 으아앙!”
레티샤는 마지막까지 말을 하지 못하고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미안. 꼭 설명하고 가려고 했는데, 티샤가 잘 자고 있어서 깨우기 미안해서 그랬어.”
“그러면, 그러며언, 아침에는?”
레티샤가 울먹거리면서 세드릭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왜 인사 안 하고 갔어?”
세드릭은 레티샤가 일어날 시간보다 3시간은 먼저 일어난 데다가 도무지 시간을 뺄 수가 없어서 아침식사를 함께하러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기에게 그렇게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그는 솔직하게 사과했다.
“아빠가 레티샤랑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용서해줘.”
레티샤는 용서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고, 두 팔로 세드릭의 목을 껴안고 옷깃 사이에 얼굴을 비볐다.
세드릭은 레티샤의 등을 몇 번 더 쓰다듬고 말했다.
“엄마한테 같이 갈까?”
“응.”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고.”
“진짜?”
레티샤가 울먹이던 것을 뚝 그치고 고개를 홱 들었다. 세드릭이 말했다.
“아침에 요리사한테 들었어. 딸기가 들어왔으니까 얼음 저장고에 넣어둘 거라고.”
“딸기! 아이스!”
레티샤가 외쳤다가 갑자기 내려간다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세드릭이 내려주지 않자 말로 호소했다.
“나 빨리!”
“지금 간다고 주는 거 아닌데?”
“아이스크리이임!”
황실에서도 아무 때나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긴 했다.
세드릭은 할 수 없이 레티샤를 내려주었다. 레티샤가 그의 손을 잡고 제 딴에는 속보로 걸었다.
그래봤자 안겨서 가는 것이 훨씬 빠를 텐데 말이다. 어차피 레티샤는 아직 황후궁까지 자기 발로 갈 수 없다.
‘이렇게라도 기운을 빼야지.’
세드릭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