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24
악녀는 두 번 산다 외전
헤일리는 찌그러진 얼굴을 애써 폈다. 눈가에는 주름이 세 배로 잡혔지만, 입꼬리는 어찌저찌 올라갔다.
14년 만에 만나는 가족이었다. 식탁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율리는 말만 앞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사람은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살아왔다.
4년 전에도 율리는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러다 늦겠다고.
하지만 헤일리가 웃으면서 적당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면, 자기가 소개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한탄하는 것으로 대화를 끝내곤 했다.
율리의 기준으로는 헤일리에게 어울리는 상대가 좀처럼 없기도 했다.
헤일리도 관리로서 일하고 있고 조르딘의 딸이니, 남편은 내조하는 쪽이 좋다. 그렇지만 신분이 적절한 젊은 남자 중에 그럴 듯한 상대가 좀처럼 없었다.
율리의 낮은 신분도 약간 장벽이 되었다.
나중에 멜이 조르딘 백작이 되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 율리가 가문의 안주인이 된다. 셋째의 남편이 율리보다 신분이 높으면, 가내의 질서가 흐트러질 수 있었다.
율리는 둘째 피오나의 남편에게 자기가 부족해서 헤일리가 짝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말한 적도 있었다.
그것을 피오나에게 전해들은 헤일리는 눈을 꽉 감았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문제는, 아니라고 말해도 큰 형부가 절대 알아듣지 못하리라는 거지.」
헤일리는 귀를 꽉 막는 흉내를 내면서 그렇게 호소했다. 그러나 피오나는 헤일리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모르는 체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형부가 걱정하는 부분이 완전히 없는 일도 아니잖니.」
「삼녀의 남편에게 무슨 권리가 있어서 미래의 안주인에게 덤빈다는 거야?」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되니? 여태까지 서로 모르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고, 솔직히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그야 넌 똑똑하니까 그런 일로 분쟁 만드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되겠지.」
마지막에 말한 문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더러 들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생각을 떠올리고 헤일리는 다시금 되새겼다. 가족은 역시 멀어야 애틋했다.
그런 점에서 헤일리는 자신이 가정을 꾸리는 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도, 자매들도 사랑했다. 멜을 존경했으며, 조카들도 좋아했다. 하지만 같이 있으면 열감이 있을 때처럼 숨쉬기가 답답해지곤 했다.
“에브론 안에 있을 때에는 네게 어울리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또 다르지 않니? 황후 폐하께서 널 무척 총애하신다고 들었다.”
“네에……. 그렇죠…….”
헤일리가 열없이 대답했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멜의 장남 이스딘이 킥킥거렸다. 헤일리는 식탁 밑에서 이스딘의 발목을 걷어찼다.
멜이 입을 열었다.
“그만해요.”
“하지만 멜 님.”
“오랜만에 만나서 잔소리만 하면 미움 받습니다.”
율리가 입을 다물었다. 헤일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다음 말에 등골이 서늘했다.
“알아서 잘 처신하겠죠. 만날 남자가 없는 것도 아니니.”
그 말이 처신 조심하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씹고 있던 빵조각이 모래알로 만든 것처럼 느껴졌다. 헤일리는 슬그머니 눈치를 보다가 율리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아아, 그랬군요! 전 그것도 모르고. 하긴, 우리 헤일리가 워낙 똑똑하니 좁은 본성에서야 만날 사람이 없었겠지만, 수도는 또 다르고.”
“너무 부담주지 마십시오, 율리.”
“하하, 부담 주려고 그러는 건 아니에요. 기뻐서 그런 거죠.”
율리는 진심일 것이었다. 적어도 피오나보다는 확실히 헤일리를 위해서 하는 말이었다.
이것을 대환장이라고 하던가.
헤일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니?”
“전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지금은 그런 일에 관심 둘 때가 아니라고요. 게다가 아무래도 결혼하면 행동의 제약이 생기는데 지금은 황후 폐하를 보좌하는 데만도 바빠서…….”
“그럴수록 배우자가 있는 쪽이 생활이 안정돼, 헤일리.”
헤일리는 입술을 찌그러뜨리고 웃었다. 결혼이 안정? 그러려면 율리 같은 남자를 만나서 내조를 받아야 되는데, 자신은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이다.
그때였다. 구원자가 왔다.
식당의 문을 두드린 시종이 조심스럽게 들어와 헤일리에게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잠깐 봐요.』
달랑 그것뿐이었지만, 누구인지 알기에는 충분했다.
헤일리는 냅킨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저 일이 있어서 좀 나가볼게요.”
“헤일리.”
“식사 맛있게들 하세요. 형부,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한동안 같이 살 건데요.”
답답해 돌아버릴 지경으로 말이지.
헤일리는 내심으로 그렇게 덧붙이고, 식당에서 나왔다.
밤에는 아직 쌀쌀한 날씨라지만, 북부인에게는 여름밤 같은 느낌이었다.
헤일리는 숄 하나 챙기지 않고 얇은 실내용 드레스차림 그대로 빈손으로 밖으로 나섰다. 스트레스로 홧홧해서 바람이 시원했다.
정원으로 나서자 프레일이 등불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겉옷은요?”
“잠깐이라면서요. 춥지도 않은데 뭘 겉옷씩이나. 아니면, 어디 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등불은요?”
“있잖아요. 거기.”
프레일이 자기 손에 든 등불을 쳐다보았다. 이거 하나면 된다는 의미인 모양이었다.
“저 본궁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뭐야. 나 안 데려다줄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닌데요.”
“아니면, 소등 시간 넘어서까지 시간 필요해요?”
“아뇨, 그것도 아니고.”
프레일이 대답했다. 헤일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둘은 잠깐 정원을 산책했다. 딱히 갈 만한 곳도 없었다.
벽과 바닥에까지 눈이 붙은 황궁, 뭔가가 숨겨지리라고 생각하는 게 어리석은 일이다.
‘가끔 그런 멍청한 짓을 스스로 한다는 게 문제지만.’
헤일리는 멍하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날이 워낙 맑은 탓에,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었다.
“어땠습니까? 가족을 만난 건 오랜만이실 텐데.”
“뭐 오랜만이라고 다를 게 있나요? 만날 땐 반갑고, 큰언니는 무섭고, 잔소리는 싫고. 아, 조카가 너무 커버려서 깜짝 놀랐어요.”
“집에서 잔소리 듣습니까?”
“안 들어요?”
“저희 할아버지는 밥이랑 침대는 줄 테니 크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분이셔서.”
“아…….”
프레일은 어려서 부모님과 할머니를 모두 잃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엄청나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뭐……. 언니도 언닌데, 형부가요.”
프레일이 측은한 눈으로 헤일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율리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르딘 가의 맏사위에 대해서, 남들이 아는 만큼은 알고 있었다.
“뭐, 됐어요. 무슨 이야기 하려고 그러는데요?”
헤일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물었다.
프레일이 잠깐 망설였다. 세드릭은 생각났을 때에 말을 꺼내야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그 충고를 듣기로 결심하고 왔지만, 대뜸 말을 꺼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멜 경이 제게 북부 총독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내일 폐하와 그 일에 대해 다시 말씀 나누실 예정인가 봅니다.”
“…….”
헤일리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도 프레일이 북부 총독으로 부임하는 것에 얽힌 문제를 알고 있었다.
사실 프레일 개인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순전히 정치적으로만 따진다면, 그는 결혼을 하고 부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상대는 중부 관료 출신으로 새로 명문이 되고 있는 계층의 딸이 가장 좋다. 그것이 어렵다면 그다음은 북부의 기사 계급이어야 한다.
헤일리는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가라든가, 말라든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까?”
“내 의견이 중요해요? 우리 사이가 뭔데요?”
헤일리는 저도 모르게 적대적으로 대답했다. 조금 전에 결혼 이야기로 실컷 잔소리를 들은 탓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프레일이 청혼하기를 바란다는 뜻은 아니었다.
결혼은 그녀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남편의 뒤에 가족으로 따라오고, 그 이후에도 친족 관계가 계속 확장되는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어머니나 둘째 언니는 그녀가 유별나다고 말했다. 그게 정상인 거고,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관계들이 삶을 서로 떠받치는 거라고.
그 모든 것을 책임질 입장에 있는 멜은 미소를 짓곤 했다.
「책임이 무겁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그 책임이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들기도 한단다.」
역시 큰언니와 자신은 종족이 다른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한순간 어떤 충동에 사로잡혔던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그때를 놓쳤다.
이제 헤일리는 안정되어 있었다. 아르티제아가 전면에서 물러남으로써 황후궁을 다스리는 입장이 되었다.
그녀가 수도 생활에 잘 적응하고, 권력을 위해 움직일 수도 있으리라는 아르티제아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헤일리는 지금 만족하고 있었다. 보람도, 실속도 있었다. 몇 년 지나면 헤젤에게 책임을 분담하고, 관료로 나아갈 계획도 갖고 있었다.
공적인 상황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도전을 생각해보면, 사생활 정도는 안락한 방에서 햇볕을 쬐며 차를 마시는 정도가 딱 좋았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율리가 말하곤 하는 ‘적절한 때’라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헤일리가 도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프레일이 손을 잡았다. 헤일리는 당황하며 그를 다시 돌아보았다.
“저는 북부로 가려고 합니다.”
헤일리의 어깨에서 힘이 탁 풀렸다. 그 바람에 그녀는 자기가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손을 탁 뿌리치자 프레일이 순순히 놓아주었다.
“잘됐네요. 폐하께서 기뻐하시겠어요.”
“헤일리 님.”
“왜요?”
헤일리는 자기가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러 두 손가락으로 자기 입꼬리를 쭉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축하해요.”
“축하할 일입니까?”
“사실, 그거야말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잖아요. 당신의 야심은 고작해야 권력을 갖고 싶다거나 금화로 쌓인 산에서 헤엄치고 싶다거나 하는 것 정도의 크기가 아니니까.”
프레일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권력은 됐지만, 금화로 쌓인 산은 갖고 싶은데요.”
“그럼 북부 총독으로는 무리겠네요. 남부로 보내달라고 하세요.”
헤일리는 파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