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26
악녀는 두 번 산다 외전
3
올봄은 서부의 행정관들에게 몹시 바쁜 시기였다.
위에서 토지 장부 정리와 더불어 휴경제가 도입되었다. 농업 독려관 중 하나가 제안한 내용이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동부에서는 당연하게 하는 일이지만, 서부에서는 처음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서부에서는 중부에 가까운 일부 지역을 빼고 지력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몬스터 웨이브 때문에 주기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부의 농민은 대부분 자영농이다. 땅은 1년 농사를 지어야 겨우 먹고 살 만했고, 재물을 조금이라도 모으면 몬스터 웨이브에 대비해야 했다.
그러니 의도적으로 땅을 쉬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작년 겨울에 몬스터 웨이브가 있었으나, 그 대부분이 강과 성벽을 넘어오지 못하고 막혔다.
“애당초 성벽이 무너질 것을 기준으로 정책을 만들어서야 안 될 일이지. 지금처럼 쉬지 않고 계속 경작하면, 지력의 한계가 닥쳐오지 않겠는가?”
세드릭은 그렇게 말하고 서부 관리들에게 널리 의견을 모아들였다. 그리고 보고서를 탑처럼 쌓아 각 부처에 돌린 다음에 회의를 소집했다.
“서부는 풍요하니 당분간은 문제 없을 겁니다. 경제가 돌기 시작한 지 아직 몇 년 되지도 않았습니다.”
“요즘에 봄밀과 겨울밀을 한 땅에서 연이어 심고 있다고 하더군요. 요즘에는 돈이 되니까.”
“곡물상들이 어마어마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도로 수리를 할 정도라 큰 도움이 됩니다.”
“대부분의 농민들이 지금 딱히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생각하며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어 다음 몬스터 웨이브를 대비할 생각밖에 없습니다. 우리까지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무조건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낼 작정을 하고,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해야지요. 10년 후에 밀의 수확량이 줄어버리면, 그다음에는 또다시 멜번으로 연명시킬 작정입니까?”
“10년 후를 생각하면 지금이야말로 재정을 마련해서 기반 시설을 확충해야 합니다. 마침 말씀 잘하셨습니다. 몬스터 웨이브를 막으려면, 서부군에 투자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급로와 건축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농사 잘되는 방법만 신경 쓰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지금 군무부의 일을 의논하자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황궁 회의실에서 재무부와 농무부가 격돌했다. 린 재상은 좋은 회의라며 싱글벙글했다.
어떻게 해야 최소한의 예산으로 아슬아슬하게 서부군을 유지하고, 성주들에게 군사력을 짜내면서 세금을 가져올 것인가만 의논할 때에 비하면 너무나 건전해서 행복했다.
농업 독려관 포브는 꿔다놓은 밀 포대처럼 구석자리에 앉아 멍하게 오가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멜번을 발견한 공적으로 그는 크게 치하를 받았고, 세드릭이 황제가 된 후에 남작위까지 수여받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평생의 영광이었다. 고향에서는 잔치를 열었고, 지인들은 그에게 온갖 선물을 주었다.
그 무엇보다도 자식들의 미래가 환하게 열렸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었다.
그는 아내와 의논하여 포상으로 받은 재물을 모두 고스란히 모아두었다. 손자들을 모두 대학까지 교육시킬 작정이었다.
그러나 작위 수여식에 왔다가 황궁에 눌러 앉혀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서부 출신의 고위직은 대부분 군무부에 있어. 물론 목숨을 잃으면 아무것도 없으니 방어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긴 하네. 하지만 결국 민생의 근본은 입에 있는 법이 아니겠나?」
「예, 예.」
「심지가 곧으면서 실무에도 능한 경 같은 사람이 필요해. 부디 수도에 머물러서, 짐을 위해 일해 주게.」
포브는 황제와 독대한다는 과분한 영광에 감격해 있었지만, 이 말이 의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황제로서 경의 공훈을 기껍게 생각하지만, 그 이상으로 북부가 고향인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네.」
「예?」
「짐이 아무리 애써도 해내지 못한 일, 지혜로운 사람이 힘써주어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 어려웠을 일이 이삼 년 사이에 성사된 것은 경이 평생 쌓아온 인품과 신뢰에 바탕한 것이니까. 북부를 구원한 것은 절반은 경의 힘이라네.」
여기까지 오자 포브는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조건 신명을 다 바쳐 충성하겠노라고 외치고 나왔지만, 흥분이 가시고 나니 미쳤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아내가 기다리는 호텔로 돌아와 벽에 머리를 박았다.
「내가 미쳤나보오. 평생 이 밭 저 밭 흙이나 만지면서 지내던 주제에 황궁에서 어떻게 일을 해? 그 똑똑하고 높으신 분들이랑.」
「폐하께서 그저 치하하시느라 해 주신 말씀이겠지. 안 그렇소?」
「아, 그런가?」
「솔직히 이녁도 이제 다 늙어서 일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소? 그러니 뭐 명예직 같은 거라도 주시는 거겠지. 이렇게 열심히 살아라, 하고 본보기도 보일 겸.」
「그러면 다행이고. 휴,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소.」
「이 기회에 우리도 수도에 집을 장만합시다. 애들 공부 배우는 것도 아무래도 여기가 낫지 않겠소?」
「그것도 그러네, 그래.」
하지만 부부가 거처를 마련하기 전에 하사품으로 집이 내려왔다. 귀족의 저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법 훌륭한 정원이 딸린 아담한 이 층 주택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기 할 일에 충실하면 보상을 받는다고 알려주시기 위한 거겠지.」
포브는 대강 그렇게 납득했었다.
설마 진짜로 재상이 주관하는 회의에 들어와 있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자잘한 정책이 아니라 서부의 농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큰 결정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같은 사람이 끼어도 되는 회의가 아니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입이 근질거려서 참기 힘들었다.
포브가 말을 참고 있는 것을 린 재상이 눈치챘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포브 경?”
“아, 예? 예. 그것이…….”
포브는 더듬거렸다. 벼락출세하고서 높으신 고위 관료님들과 회의를 하자니 식은땀이 났다. 그렇지만 그는 할 말은 해야 했다.
“서부인 대부분은 휴경지가 뭔지 잘 모릅니다.”
농무부 관료들이 당황한 얼굴을 했다. 포브는 더듬거리며 시작했지만, 말하다 보니 너무 당연히 해야만 할 이야기들이라 목소리가 점점 당당해졌다.
“그게 그냥 농사를 안 짓고 땅을 방치하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몬스터 웨이브로 피난하는 것 대신 땅을 놀리라고 하면, 다들 황폐화된 밭을 다시 개간하는 것부터 생각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 늘 있는 일이었죠. 경작지의 경계선 분쟁 이야기도 늘 듣고.”
서부 출신의 관료 하나가 중얼거렸다. 그는 부유한 집 아들이었고, 일찌감치 수도로 유학을 와서 눌러 앉았기 때문에 직접 경험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포브의 말처럼 될 것이다. 짐작이 갔다.
“저항이 보통이 아닐 겁니다. 농민들이 제일 괴로워하는 일 중 하나이니까요. 그러니까 지력 고갈을 염려하기 전에 교육을 먼저 해야 합니다.”
좌중이 경청했다. 포브는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리고 지력 고갈을 염려한다면 휴경이 아니라 개간에 대한 법제도 정리해야 합니다.”
“개간을?”
“지력이 부족해서 수확량이 모자라게 되면, 농지를 버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땅을 개간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서쪽에서는 한 번 몬스터 웨이브가 지나가면 어차피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굳이 관리하지 않았던 걸로 압니다.”
“아아, 토지 장부가 동부와 다른 이유로 엉망이 되겠군.”
“십여 년만 지속되어도 문제가 아주 심각해질 겁니다. 동부보다 서부의 평야가 훨씬 넓습니다.”
재무부와 농무부 관료들은 순식간에 공통의 문제점에 합의했다. 그리고 포브에게 감사를 표했다.
“포브 경께서 지적해주시지 않았다면 제일 중요한 문제를 놓칠 뻔했습니다.”
“지적 정리와 농지 관련 교육을 한꺼번에 통합해서 해야겠군요. 말씀하신 것처럼 휴경제도도 일부 지역부터라도 선행해서 시행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회의는 일차적으로 결정이 났다.
회의실에서 나오는 포브의 다리에 들어갈 때와 달리 힘이 들어갔다. 어깨가 으쓱했다. 오늘은 제법 자신도 유능하게 굴지 않았는가?
“포브 경.”
린 재상이 그를 불렀다.
포브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뭔가 실수를 저질렀나 싶어 심장이 콩닥콩닥했다.
그는 어젯밤에 잠도 못자고 외웠던 예법을 후루룩 되짚었다. 나오기 전에 재상에게 다시 절을 했어야 했던가.
하지만 린 재상은 그런 게 아니라 정중하지만 친절한 태도로 권했다.
“나이든 사람끼리 쉴 겸 휴게실에서 차나 한 잔 하고 해산할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제, 제가 재상 각하와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늘어나니까, 다들 열심히 일해서 좋긴 한데 늙은이가 따라가기엔 좀 지치지요. 중간중간 쉬어줘야지.”
린 재상이 허허 웃었다. 포브는 그를 따라 어색하게 웃었다.
“무척 보기 좋습니다.”
“볼 때만 좋다는 걸 경도 곧 아시게 되실 겁니다.”
그 말의 진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포브는 재상과 티 타임이라니 평생의 영광을 또 갱신한다고 생각하면서 기꺼이 린을 따라갔다.
그렇게 해서, 서부의 관리들은 막대한 양의 일을 떠맡게 된 셈이었다. 윗선에서 지침과 예산을 내렸다고 해도 결국 실무는 밑에서 해야 했다.
“그래서 협조를 부탁한다고 합니다, 리시아 님.”
비서 라니에가 보고했다.
서부의 자영농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에서는 환곡창이 빠질 수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상당한 수의 관리를 새로 채용했다. 그러나 아직도 행정력은 서부 전역에 미치지 못했다.
호적도, 지적도 새로 작성 중이었다. 협조를 얻지 못하는 관청보다는 차라리 환곡창 쪽의 장부가 정확할 정도였다.
역병이 진정된 다음에도 리시아는 서부에 남았다.
안타까운 마음이 북부에 더 많으냐, 서부에 더 많으냐, 하면,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실제로 리시아가 필요한 곳은 서부였다. 북부는 세드릭의 명령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지만, 서부에는 달리 영향력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서부 총독 자리를 맡지는 않았다. 리시아는 자신에게 행정적인 능력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징으로 남아 있는 쪽이 좋다.
서부에서 그녀는 역병을 몰아낸 작은 성녀였다. 리시아는 성녀의 대리인을 자처했고, 수해를 막아낸 기적을 일으킨 것이 황후임을 알면서도 서부인들은 그녀를 숭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환곡창은 상징으로서도, 실질로서도 성녀가 맡고 있기에 딱 좋았다. 황후가 환곡을 통해 서부를 보살핀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긍정적이었다.
리시아는 다 읽은 채로도 몇 시간이나 들고 있던 편지를 접어서 봉투에 넣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정도 중요한 안건으로 사람이 방문하면 대개 리시아가 직접 만나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편지를 받고는, 한동안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래서 라니에가 대신 만난 것이었다.
라니에는 책상 위에 놓인 편지봉투를 살짝 훔쳐보았다. 오늘 가져다드린 여러 통의 편지 가운데에 특별한 것 없었던 것 같은데.
특별히 리시아의 심금을 울린 탄원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