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28
악녀는 두 번 산다 외전
그다음에 둘은 페셔 자작 영애 셀린의 혼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황태후는 원래 페셔 자작 영애에게 명문 출신의 배필을 구해줄 작정이었다.
새로 혼맥을 잇고 귀족 가문들과 교류를 두텁게 한다. 한 번 무너졌던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꼭 그래야 할까 싶어졌어.”
“남부에 쓸 만한 가문이 없던가요?”
“없다고 말하자니 내 얼굴에 침 뱉는 느낌이긴 하다만.”
황태후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작가라고만 생각하면 부족함 없는 상대일 텐데, 내 마음이 그렇지가 않구나. 그렇다고 야심가를 들이면 애들이 마음고생을 하게 될 테지.”
“네.”
“이렇게 말하긴 그렇지만, 그레고르가 사람을 정말 잘 골랐어. 암만 생각해봐도 유니스 백작이나 조시아 백작 같은 사람 찾기가 힘들더구나.”
“저도 좀 생각해볼게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가문의 전통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더욱 찾기 쉬울 테고요. 페셔 자작가의 위광을 필요로 하는 신분이거나, 작위가 아예 없는 평민이라면 더더욱 낫겠지요.”
황태후가 미묘한 얼굴을 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신하로서 신분 낮은 이를 받아들이는 것과 수양딸의 남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달랐다.
“네 말뜻은 안다. 하긴, 사람이 중요하지. 가문은 어차피 그 아이가 페셔 자작가를 잇게 될 테니, 그거면 충분하고.”
“그리고 셀린의 삶이 더 중요하고요.”
“그래……. 그렇지.”
황태후가 애련한 눈빛을 숨기기 위해 잠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황태후가 최후에 쥔 것은 승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처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짓밟혀 있지 않았다.
모든 문은 열려 있었고, 죽은 이들이 묻힌 납골당의 문만을 닫았다.
그러니 이제 모든 것이 다 흘러가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삶은 허무한 것이니 주어진 시간을 행복하게 살 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할무니, 할무니.”
어른들이 대화를 멈추자마자 레티샤가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나 선물 뜯으면 안 돼?”
“응? 아아니, 뜯어도 되지, 그럼.”
황태후가 웃으면서 테이블에 놓여 있던 것 중에 하나를 집어 들어 레티샤의 손에 쥐여 주었다.
“티샤 선물인데.”
“감사합니다.”
아르티제아가 대신 말했다. 황태후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가져온 기념품은 따로 맡겨 두었단다. 뭐 별다른 것도 없고. 이건 이언츠 왕세자비가 보낸 것이란다.”
레티샤가 선물에 달린 리본을 잡아당기다가 종이로 접은 꽃술 장식을 찢고 말았다.
“할무니, 나, 흑, 이거, 흑, 예쁜 건데.”
레티샤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황태후는 선물상자를 빼앗아서 얼른 포장지를 마저 뜯었다. 안에서 리본을 잊어버릴 만큼 예쁜 것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상자에서 나온 것은 무지개 색으로 빛나는 주먹만 한 광석이었다.
“와!”
레티샤는 한눈에 그 돌멩이와 사랑에 빠졌다.
황태후는 무게를 가늠해보고 힘껏 뻗어 달라고 졸라대는 레티샤의 손에 그것을 쥐여 주었다.
“와! 엄마, 이거 달팽이야! 달팽이 껍질!”
레티샤가 호들갑을 떨며 그것을 아르티제아에게 보여주었다. 오팔화 된 화석이었다.
그렇게 값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모양이 하나도 깨지지 않고 예쁜 색을 가진 것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딱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이었다.
“떨어뜨리면 깨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서 가지고 놀아야 한다.”
“응!”
레티샤가 신나서 소리쳤다.
“엄마, 나 이거 켄에게 보여주러 갈래.”
“그래.”
레티샤가 화석을 쥔 채로 황태후의 무릎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다가 테이블에 이마라도 박을까 봐, 황태후가 얼른 잡아주었다.
레티샤는 그러든가 말든가 뛰어나갔다. 황태후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티제아는 테이블에 놓인 다른 선물상자를 뜯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작은 보석 머리장식이었다.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 핀은 옛날에 나탈리아가 그녀에게 주었던 머리장식과 같은 모양이지만, 아이 것이었다.
편지가 들어 있었다.
『친애하는 황후 폐하께.
어머니께 최근에 자갈을 여러 개 선물 받고 황녀님 생각이 떠올라 만들어 보냅니다. 벌써 많이 자라셨겠지요? 요즘에 이언츠에서는 모녀가 이렇게 같은 장신구를 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답니다.
모쪼록 몸 건강히 지내시길. 언젠가 다시 뵐 날이 있기를 빌겠습니다.
나탈리아.』
나탈리아답게, 미사여구 없이 용건만 간단한 편지였다. 이것도 그녀가 몇 번이나 고심 끝에 썼을 것이 눈에 보여,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 말고도 최고급 남서해 투어 멀린으로 만들어진 목걸이 상자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나탈리아가 아니라 베르나트의 이름으로 온 것이었다.
물론 딸린 편지도 휘황찬란했다.
“이 보석은 제법 훌륭해. 국보로 삼기에는 모자라도, 족히 딸에게 물려줄 만하구나.”
“티샤가 이런 목걸이를 걸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네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순식간에 자라버릴 게다.”
“네.”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지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르티제아는 레티샤에게 또 무슨 일이 있으려니 하고 들어오라고 일렀다.
페셔 자작 영애가 손수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한입 크기로 잘린 샌드위치와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구운 라비올리가 소담스럽게 담겨 있었다.
“오늘 황후 폐하께서 점심을 거의 잡수시지 않으셔서, 주방에서 만들어 올려 보냈어요.”
페셔 자작 영애가 공손히 말하고 테이블 위에 간식을 차렸다.
황태후는 흐뭇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숨겨 키우다시피 하느라 신경 써 주지 못한 부분이 많았는데, 이렇게 의젓한 숙녀가 되어 품위 있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좋았다.
아르티제아의 안색이 나빠졌다. 황태후는 샌드위치를 집으려다가 그것을 깨닫고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라비올리 냄새가. 욱.”
아르티제아가 헛구역질을 했다. 황태후는 쟁반을 치우게 했다. 페셔 자작 영애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쟁반을 시종에게 맡기고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황후 폐하. 그래도 어제는 간단한 음식은 조금 드셨는데.”
“괜찮다. 물러가렴. 욱.”
좀처럼 토기가 가라앉지 않아 아르티제아가 힘들게 말했다. 그리고 비틀비틀 일어섰다.
앨리스가 얼른 와서 부축했다. 아르티제아가 현기증을 참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황태후 폐하. 제가 요즘 계속해서 음식이 잘 받지 않아서요.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티아, 너…….”
황태후는 아르티제아의 창백한 얼굴과 눈 밑에 짙게 드리워진 그늘을 보고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살도 좀 빠진 듯했다.
“셀린을 불러와 황태후 폐하를 모시게 해라.”
“예, 황후 폐하.”
시종이 공손히 답했다. 황태후는 서둘러 물러나가는 아르티제아를 잡지 않았다.
주위 분위기를 슬쩍 살폈지만,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페셔 자작 영애는 염려스럽게 말했다.
“요즘에 식사를 통 잘 못하세요.”
“황제는 아무 말도 없고?”
“황제 폐하께는 함구하라는 명이 내려져 있어서요. 어의가 신경 쓰고 있는 것 같긴 하더라고요.”
페셔 자작 영애는 중요한 일에까지 관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기에, 그렇게만 말했다.
“늘 위가 안 좋으시니까요. 요새는 좀 심하시긴 해도.”
“그렇구나.”
황태후는 소파에 편안히 몸을 기대었다.
아르티제아가 잘 먹지 못하는 것이 언제나 있는 일이라고 해도, 냄새만 맡고 구역질을 참지 못해서 상태를 숨기지 못하고 자신의 앞에서 저렇게 떠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조만간에 좋은 소식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선물을 준비해야겠군.”
황태후는 흐뭇한 기분으로 말했다. 몸이 아픈데 왜 선물을 준비한다고 하나 싶어 페셔 자작 영애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구토를 하려고 해도 먹은 것이 없어서 신물밖에 올라오지 않았다.
아르티제아는 한참 고통을 겪은 끝에 겨우 진정하고, 침대에 누웠다. 앨리스가 파래진 입술을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황태후가 귀경했는데 맞이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만나기는 했지만, 어지간해서는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레티샤 님 때에는 그래도 잘 드시고 잘 주무셨는데.”
앨리스가 한탄했다. 아르티제아는 애써 웃었다.
“그때야…… 배부르기 전까진 몸 편했지.”
“레티샤 님이 영양분 혼자 다 드신다고 원망했더니, 이번 아기씨는 황후님을 닮았나 봐요.”
“아기를 원망도 못하겠구나.”
그래도 이삼일 전까지는 좀 나았다. 좀 울렁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럭저럭 음식이 넘어갔다. 세드릭의 앞에서도 태연한 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아닌 척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소피가 따뜻한 물에 설탕에 절인 레몬을 넣으며 말했다.
“폐하께는 말씀 안 하실 건가요?”
“할 거야. 좀 더 확실해진 뒤에.”
“더 확실해질 게 뭐가 있어요?”
“내가 아기를 낳을 수 있을지 어떨지.”
아르티제아는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렸다.
처음 임신을 확인한 것은 3주 전이었다. 여전히 월경은 없는 달이 더 많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두 번째가 되니 스스로도 조금은 의심할 수 있었다. 어차피 거의 매주 의사를 보기에, 진단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어의는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출산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아르티제아는 섣불리 결정하지 않았다. 일찍 알았으니,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앨리스와 소피는 몰래 자기들끼리 시선을 마주쳤다.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르티제아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신분이어서가 아니다. 그녀가 고민하는 이유가 황족의 수가 너무 적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살짝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르티제아에게 레몬수를 주고 문 옆에 서 있던 소피가 문을 빼꼼 열었다.
미엘르가 고개를 내밀고 소곤거렸다.
“황후 폐하께서는 주무시고 계셔?”
“아뇨.”
“아, 잘됐다. 리시아 님이 도착하셨어.”
소피가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리시아 님이 오셨대요.”
아르티제아가 물컵을 앨리스에게 건네주고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