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29
악녀는 두 번 산다 외전
미엘르의 뒤에서 리시아가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오랜만이야, 소피. 나중에 다시 올까?”
“안녕하셨어요?”
소피는 반가운 얼굴로 리시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르티제아가 침대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리시아가 그러지 말라고 손짓하고, 앨리스가 얼른 등에 쿠션을 더 괴어 몸을 세워 주었다.
소피가 얼른 문을 열었다. 리시아가 침실 문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
그리고 잠시 동안 말없이 침실을 둘러보았다.
아르티제아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으로 리시아가 감상을 흘려보내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황궁에 있을 때와는 가구도, 꾸밈도 다르다. 하지만 이곳은 리시아가 눈 감았던, 바로 그 침실이었다.
“괜찮아요.”
리시아가 눈을 또렷하게 뜨고 쾌활하게 말했다.
앨리스와 소피, 미엘르는 리시아가 왜 그러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르티제아가 리시아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괜찮으니, 물러가 있으렴.”
“네.”
아르티제아가 리시아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앨리스도, 소피도 잘 알고 있었다.
조용히 문이 닫혔다. 침실 안에 두 사람만 남았다.
리시아가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와 침대 옆에 앉았다. 머리가 단발이 되어 있었다.
“머리를, 자르셨네요?”
“자른 지 좀 됐어요. 어때요? 어울려요?”
리시아가 머리를 한 번 흔들었다. 구불구불한 머리칼이 날듯이 가볍게 움직였다.
“어울려요. 조금 아깝기도 하고…….”
“머리는 또 자라니까요. 기분전환이었어요. 이왕 자르는 김에 좋은 일도 했어요.”
화상으로 머리가 더 이상 나지 않게 된 아이에게 주었노라고 말하며 리시아가 웃었다.
아르티제아는 이번에도 미소만으로 대답했다. 역시 다시 생각해도 아까웠지만, 리시아가 좋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짧은 머리도 활달한 차림새에 썩 어울렸다.
사교계에서라면 꾸밈새 때문에 이런저런 말이 나올 테지만, 이제 그녀는 내키지 않을 때에는 전혀 그런 일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쪽에서 지내시는 게 힘들지는 않으세요?”
“힘든 점이 있죠. 세드릭 님이 요구하는 기준은 높고 시간과 인력은 부족하고.”
“네…….”
“예산은 늘고 있지만, 오히려 재정이 풍족한 건 제대로 투입할 능력이 없어서에요. 서부에는 교육 시설이 부족하니까요. 그런 점에서는 북부보다 더 못하죠.”
“북부에서는 계속해서 세드릭 님이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요.”
“네. 하지만 서부에서 교육 시설이라고 할 만한 건 오로지 수도원뿐이에요.”
리시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차차 나아지겠죠. 환곡창에서 곡식을 내주는 조건으로 아이들에게 기초 교육을 받게 하고 있어요.”
“훌륭하세요.”
아르티제아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리시아가 하는 일 자체도 그렇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그녀가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나타나면 쉴 거예요. 한 3년쯤. 세드릭 님도 제게 더 이상 고생하라는 말씀은 못하시겠죠?”
“3년이라고 딱 집어 말씀하시는 것 보니, 뭔가 계획이 있으신가요?”
“여행하려고요.”
리시아가 미소를 지었다.
“남부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니까요. 별장을 빌려주세요, 티아. 저도 그 아름답다는 바다에 발을 담그고 누워 있어 보고 싶어요.”
“그것도 좋네요.”
“그렇지만 맡길 만한 사람이 나타나면 세드릭 님이 탐내시겠죠. 환곡창에도 사람이 필요한데, 좀 쓸 만하다 싶어서 발굴해놓으면 금세 쏙쏙 빼가신단 말이죠.”
“이제 환곡창의 우선순위는 상대적으로 낮아졌으니까요. 풍작이 계속되었잖아요.”
“아까부터 자꾸 세드릭 님 편만 들고 있는 거 알고 있어요?”
리시아가 짐짓 쌍심지선 얼굴을 했다.
“포브 경을 빼앗긴 건 진짜로 뼈 아팠다고요.”
아르티제아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리시아는 아마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런 농담을 하는 것이리라.
이제 웃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몸은 좀 괜찮아요?”
“이래저래 힘들긴 하지만, 아마 이게 보통인 거겠죠. 레티샤는 뱃속에 있을 때가 훨씬, 훨씬, 얌전한 아이였으니까.”
리시아가 약간 소리를 내서 웃었다. 먼 서부에까지도 레티샤의 혁혁 한 공로가 알려져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의사는 뭐라고 했어요?”
“어렵겠다고요.”
임신을 유지하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출산을 버텨낼 체력이 없었다.
레티샤 때에는 지금보다 비교적 상태가 좋았다. 심적으로 극도로 예민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기는 했다. 그러나 전에 없이 잘 먹었고, 체력도 그럭저럭 붙어 있었다.
그런데도 진통을 견뎌내지 못했다.
경산은 초산보다 쉽다고 하지만, 어차피 둘 다 불가능한 것이라면 쉽고 어려움을 따질 필요도 없었다.
황실의 후예가 사실상 레티샤 하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어의는 노력해 보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죽여주십시오, 황후 폐하. 그러나 이 땅의 어느 의사가 오더라도 감히 황후 폐하와 아기씨를 함께 살릴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비통한 얼굴로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알았다고 말하고 그를 물러나게 했다.
“세드릭 님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은 거지요?”
“네. 아마 아기를 포기하자고 하겠죠.”
굳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레티샤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그가 아기를 낳아달라고 말했던 것을 후회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리시아 님에게 먼저 여쭤 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이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티아……. 나는 의사가 아니에요.”
리시아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알고 있잖아요. 내 치유력은 외상과 질병을 고칠 수 있지만……, 쇠약해진 것을 낫게 할 순 없어요. 성력으로 생기를 보충한다고 해도 임시방편에 불과해요.”
아르티제아의 편지를 받았을 때부터 무어라고 말할지 고민했다. 말을 달리는 동안에도 계속.
아르티제아는 실망한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제 수명을 더 줄이진 않겠죠?”
“그것과는 상관없을 거예요. 마법이나 신성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니까. 당신은 살아 있고……,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걸요.”
“하긴……. 아기는 제가 치러야 할 대가와 아무 상관이 없죠.”
아르티제아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리시아를 바라보았다.
“제가 레티샤를 어떻게 낳았었는지는 들으셨죠?”
“티아, 몸에 칼을 댈 작정이에요?”
“출산을 버텨낼 힘이 없는 거라면, 아예 그때처럼 하면 게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리시아 님이 치유해주신다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리시아의 얼굴이 약간 변했다. 그녀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치유는 충분히 가능했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살릴 수 있고, 외상이라면 흔적도 없이 회복시킬 수 있었다.
지금도 아르티제아의 배에는 그때 댄 칼자국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가능, 해요. 가능은 하지만, 일단은 몸에 큰 상처를 만드는 건데…….”
리시아가 숨 막히는 얼굴로 말했다.
“수명에 영향이 가는 건 아니라지만, 그건 더 이상 마법에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 당신 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뜻이 아니에요.”
“저도, 목숨을 버려서까지 낳을 생각은 없어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만일에 임신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거나 상태가 나빠지면, 흘려 보낼 수밖에 없게 되겠죠. 그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만약에 가능하다면.”
아르티제아는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면 낳고 싶어요.”
“티아…….”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숙였다.
“이상하죠? 레티샤 때에는 그렇게 무서웠는데.”
“이상하지 않아요.”
“이번에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르티제아는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레티샤를 사랑했다. 낳았을 때보다, 한 달을 키웠을 때보다, 1년을 키웠을 때보다, 지금 더 사랑하고 있었다.
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겨우 남들만큼 제 자식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사랑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벌써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아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아기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도 된다는 것도.
자신이 아주 좋은 엄마는 아닐지라도, 밀라이라와는 다른 부모일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은 죄악도, 잘못도 아니라 사랑하는 시간들의 결과였다. 그녀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아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전 제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껴요, 리시아 님. 도와주세요.”
아르티제아가 고백하듯이 말했다.
리시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네요. 도와달라고 직접 말한 거 처음이니까. 그걸 거절할 순 없죠.”
리시아가 미소를 지으며 잡고 있던 손에 더 꽉 힘을 주었다. 손바닥 안에서 녹색의 축복이 피어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약속해요. 의사가 위험하다고 하면 바로 포기하겠다고.”
“네.”
아르티제아는 조금 안심한 기분으로 그녀를 따라서 웃음을 머금었다.
“힘들면 세드릭 님 머리를 쥐어뜯어요. 걷기 힘들면 발 대신 사용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전부 세드릭 님 책임이니까.”
아르티제아가 웃었다.
“그래야겠어요. 레티샤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생기다니.”
“기적이 두 번이라면, 좋은 일이죠.”
“네.”
아르티제아는 리시아의 손을 놓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기적은 여기에 또 있었다. 비록 서로 위치는 달랐지만, 모든 것을 포기했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 방에서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 뒤에 둘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전해 듣지 못한 사람들의 안부를 나누었다.
리시아가 헤일리가 율리에게서 도망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막 웃기 시작했을 때였다.
쿵쿵.
거세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리시아가 일어섰다.
“제가 보고 올게요.”
어차피 올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문 밖에 세드릭이 서 있었다. 웃음기 없는 얼굴이었다.
“리시아.”
반갑게 포옹하고 인사를 나눌 표정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