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31
악녀는 두 번 산다 외전
“웡!”
아르티제아는 반쯤 잠든 채로 강아지가 짖는 소리를 들었다.
“웍! 오오옹.”
꼬리를 길게 빼는 소리에 이어 침대 매트리스가 푹 눌렸다. 아르티제아는 잠결에 손을 뻗었다.
버둥대며 침대 위로 기어 올라온 강아지가 그 손 안에 머리를 비볐다.
“음.”
아르티제아는 작게 소리를 냈다.
곧 뒤따라 들어온 레티샤가 소리를 질렀다.
“아아앙! 빨강아! 엄마 깨우면 안 돼!”
“꾸우우웅.”
“아빠만 깨울 수 있단 말이야!”
강아지는 그 소리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르티제의 어깨를 밟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할짝할짝 보드라운 혀가 뺨을 핥아와, 더 자려야 잘 수가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손으로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밀어내며 몸을 뒤척였다.
“엄마! 일어났어?”
레티샤가 환호성을 지르면서 달려왔다. 그리고 강아지처럼 침대 위로 기어올랐다.
“엄마! 엄마!”
안겨들려는 것인지, 몸 위로 점프하려는 것인지 모를 기세로 레티샤가 그녀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뒤따라 달려온 헤젤이 기겁하며 레티샤를 붙잡았다. 숨이 헐떡헐떡했다.
헤젤도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지만,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는 것이지 복도를 전력 질주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니, 아직 다섯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뭐 이렇게 빠른가. 속도 자체는 잡힐 듯 말 듯한데, 마치 독수리에게 노려진 토끼처럼 손만 뻗었다 하면 피해서 날렵하게 빠져나갔다.
강아지가 온 뒤로 더해졌다. 매일 정원을 달려 다니면서 놀더니, 몸이 튼튼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민첩성이 훈련되는 모양이었다.
“안 돼요, 티샤 님. 그러시다가 어마마마 다치시면 어떻게 하려고.”
헤젤은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했다.
요즘의 레티샤는 도무지 헤젤이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심지어 보모를 봐가면서 움직였다.
「미이 언니는 약하니까 내가 지켜줘야 돼!」
쪼끄만 게 어디에서 그런 말을 배워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조만간 보모를 기사 출신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헤젤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키쇼어 부인도 키쇼어 경이 돕지 않았다면 벌써 백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제 남은 희망은 리시아뿐이었다.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리시아는 일단 서부로 돌아갔다. 맡았던 일이 많으니, 일단 정리해서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돌아오기로 한 것이었다.
아르티제아가 아직 졸음에서 다 깨지 못한 채로 레티샤와 빨강이를 한꺼번에 껴안고 중얼거렸다.
“우리 티샤, 약속 어겼네? 엄마 깨우지 말라고 했는데.”
“나 아냐. 빨강이가 그런 거야.”
레티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책임감을 느끼는지 목을 움츠리고 슬금슬금 아르티제아의 팔 안에서 빠져나갔다.
그 틈을 탄 것처럼 빨강이가 아르티제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별반 돌봐주지도 않는데, 레티샤에게 영향을 받은 탓인지 이 강아지는 아르티제아를 몹시 좋아했다.
“웡!”
빨강이가 일어나라는 듯이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아르티제아는 보드라운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레티샤와 눈을 맞췄다.
“글자 공부는 다했어?”
“웅…….”
“빨강이랑 놀았어?”
“그래두 했어.”
레티샤가 자신없이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다 못 외웠어도.”
“진짜? 아빠가 검사한댔는데.”
“우리 티샤, 글자 공부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아니잖아. 그림책 하루 이틀 늦게 읽게 되면 어때?”
“응!”
레티샤가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생에게 읽어주려면 빨리 배우셔야…….”
헤젤이 무심코 말실수를 했다.
레티샤는 곧바로 반응하지는 않았다. 헤젤은 얼른 입을 막고 아르티제아에게 죄송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르티제아의 팔을 베고 누워 눈을 깜박깜박하던 레티샤가 갑자기 펄쩍 몸을 일으켰다.
“동생?”
“아, 아니에요.”
헤젤이 얼른 수습하려고 했다. 아르티제아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헤젤은 자기 입을 손끝으로 찰싹찰싹 쳤다. 아버지가 생각한 것을 입 밖에 내는 버릇을 고쳐야 너는 비로소 큰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충고를 몇 번이나 했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레티샤가 눈을 반짝반짝거리면서 아르티제아를 내려다보았다.
“엄마, 나 동생 생겨?”
아르티제아는 잠시 망설였다.
조만간에 이야기할 작정이긴 했다. 공식 발표는 훨씬 더 뒤로 미룰 생각이었지만, 황후궁 안에서 굳이 계속 감출 필요는 없었다.
입덧이 가볍지 않았다. 전속 요리사에게만 귀띔해 두었더니, 사정 모르는 다른 주방 일꾼들을 통해 황후의 건강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말았다.
게다가 안정기가 될 때까지 가능한 한 누워 있으려 하다 보니 더욱 그랬다.
공개할 시기가 된 것일지도 몰랐다. 레티샤에게는 미리 말하는 것이다.
교육적으로 옳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음.”
“아냐?”
레티샤가 울망거리는 눈으로 물었다.
‘같이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아르티제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강아지가 그녀의 무릎 쪽으로 뱅글 돌아 배를 보였다.
“꾸우웅.”
“앗, 빨강이. 엄마만 좋아하고! 나도 배 만지고 싶은데!”
레티샤가 하던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투정부렸다.
헤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어나실 건가요, 황후 폐하?”
“잠은 다 깼어. 바람을 좀 쐬고 싶구나.”
“네. 테라스에 자리를 준비시킬게요. 뭔가 드시고 싶은 건 없으세요?”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저었다. 심하게 울렁거리지 않는 것만 해도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를 가져왔다. 아르티제아는 침대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가볍게 세수를 하고 손을 씻는 발 밑에 딸과 강아지가 달라붙었다.
아르티제아는 긴 방한용 가운을 걸쳐 입었다.
“멍!”
빨강이가 흥분해서 한 번 짖고 앞 장서서 뛰어나갔다. 레티샤가 엉덩이춤을 추며 그 뒤를 쫓아 복도 저편으로 꺾어 사라졌다.
“아빠!”
곧 레티샤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빨강이가 달려서 되돌아왔다. 한 팔에 레티샤를 앉힌 세드릭이 그 뒤를 따라왔다.
시종들이 황급히 무릎을 굽히고 절을 올렸다. 헤젤도 허리를 굽혔다.
아르티제아가 의아하게 물었다.
“세드릭 님, 아직 일과 시간 아닌가요?”
“잠깐 왔습니다. 오후 휴식 시간이라서요.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는 있겠죠.”
“그건 세드릭 님이 결정하실 게 아니라 비서에게 물어봐야 할 일인 것 같은데요?”
아르티제아의 말에 세드릭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애당초 스스로도 추측형으로 말했으니까.
미리 소식을 보내지 않고 그냥 온 것도 시간이 없어서였다.
아르티제아는 굳이 그를 쫓아 보내지 않았다. 세드릭이 레티샤를 내려놓고, 다른 쪽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쥐여 주었다.
“이거 엄마한테 줄 선물이니까 티샤가 들고 와.”
“웅…….”
“떨어뜨리면 안 돼.”
그러자 레티샤가 두 팔로 상자를 껴안았다.
“저게 뭔데요?”
“깨지는 거 아닙니다. 나무 상자니까 괜찮아요.”
세드릭이 그렇게 말하고, 빈손이 되자 아르티제아를 훌쩍 안아 올렸다.
“세드릭 님!”
“어의가 누워 있는 게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잠깐 테라스까지인데요.”
“나 말고는 안아서 옮길 사람도 없는데 그냥 가죠.”
세드릭이 그렇게 말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테라스에는 안락의자가 나와 있었다. 세드릭이 아르티제아를 그 자리에 앉히고, 레티샤를 전용 의자에 올려주었다. 곧 시종이 차 쟁반을 가져왔다.
빨강이가 테이블 밑에서 몇 바퀴나 돌다가 레티샤의 의자 밑에 자리 잡았다.
레티샤가 소중히 껴안고 온 상자를 다시 세드릭에게 내밀었다.
“뭔데 그래요?”
아르티제아가 다시 물었다.
“별거 아닙니다. 티샤 때에 당신이 설탕을 먹고 싶어 했던 게 생각나서요.”
세드릭이 상자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붉은색으로 물든 설탕 결정이 들어 있었다.
“그때는 아기가 너무 커지면 출산할 때 힘들다고 제한하라고 했었으니까요. 지금은 뭐라도 먹어야 하고.”
세드릭이 뒤늦게 변명했다.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띠었다.
“그런 걸 신경 쓰고 계셨어요?”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르티제아가 설탕 한 알을 집어 들었다. 사탕과 달라서 설탕은 입 안에서 곧바로 바삭 부서졌다.
새콤달콤한 체리향이 확 퍼졌다. 계속해서 울렁거리던 속이 좀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그게 표정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세드릭이 안심한 얼굴로 말했다.
“뭐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맛있어요.”
아르티제아가 한 알을 더 입에 넣었다. 시종들이 눈치 빠르게 쿠키와 마들렌을 가지고 왔다.
아르티제아는 기꺼이 오렌지 마들렌을 쪼갰다. 상큼한 향이 났다.
“이번 아기는 아무래도 단 것을 좋아할 모양이에요. 티샤는 고기에 일편단심이었는데.”
“엄마! 엄마!”
레티샤가 두 팔을 번쩍 들며 부모의 주의를 모았다. 으레 설탕을 달라고 할 줄 알고 세드릭이 먼저 상자를 방어했다.
하지만 레티샤는 똑똑하게 물었다.
“아기가 어디 있어?”
“아.”
아르티제아가 세드릭을 쳐다보았다. 세드릭이 의아하게 레티샤를 쳐다보고, 아르티제아를 다시 바라보았다.
“뭐, 이야기하긴 해야겠죠.”
세드릭이 헛기침했다. 아르티제아가 그에게 말하라고 손짓했다.
“아빠?”
“아기, 엄마 배 속에 있어.”
“아니야! 아기가 엄마 배 속에 있으면 이렇게 커지는데?”
유모가 만삭일 때에 한 번 경험한 적이 있기에 레티샤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직 아기가 이만큼 작아서 그래.”
세드릭이 말했다. 레티샤가 눈을 크게 떴다.
“동생 생기는 거야, 티샤.”
아르티제아가 쐐기를 박았다. 레티샤가 고함을 질렀다.
“동생!”
레티샤가 벌떡 일어서려고 했다. 의자에서 떨어질 뻔해서 세드릭이 얼른 레티샤를 받아 내려주었다.
“동생 생겨? 진짜? 진짜?”
“우리 티샤, 동생 생기면 잘해줄 거야?”
“응! 내가 맨날맨날 우유도 주고, 놀아주고, 그림책도 읽어줄 거야!”
“그림책 읽어주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
아르티제아의 말에 레티샤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세드릭이 웃으면서 레티샤를 훌쩍 안아 무릎에 앉혔다.
“괜찮아. 티샤도 아기니까 천천히 배워도. 그치만 엄마는 몸이 약하니까, 티샤랑 동생이랑 둘이 같이 엄마를 잘 지켜줘야 해.”
“응!”
“약속.”
레티샤가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설탕에 손을 뻗었다.
“아기한테 이거 줄래!”
레티샤가 제 것처럼 설탕을 집었다가, 어떻게 줘야 할지 몰라서 “웅.”하고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의 배 쪽으로 손을 뻗었다.
“지금은 엄마가 먹어야 아기도 건강해지니까, 엄마한테 줘.”
세드릭이 말했다. 레티샤가 힘껏 손을 뻗었다.
아르티제아는 그 보드라운 손가락에서 설탕을 받아먹었다. 레티샤가 까르르 웃었다.
테라스에는 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한참 꽃이 만발할 늦봄이라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 왔다.
시선을 돌리면 가지가 축 쳐지도록 커다란 꽃송이가 가득 매달린 희게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의자 밑에 넣은 화로를 빼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세드릭이 그녀의 잔에 찻물을 따라주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외전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