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5
악녀는 두 번 산다 35화
남이 엿듣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르티제아는 손수 응접실 주위의 사람을 모두 물렸다.
에브론 대공가의 사람들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주의해두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생각 없이 흘리는 정보도 충분히 위험할 수 있었다.
반면, 안을 살펴볼 수 있는 설비가 하나도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당장 오늘 안스가르에게 이 문제를 의논하기로 결정했다. 최소한 집음기와 렌즈가 붙은 눈구멍 정도는 설치해야 했다.
어쨌든 나중 일이다.
아르티제아는 작게 숨을 들이켜고 응접실 문을 열었다.
“…….”
로렌스는 응접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아르티제아와 달리 밀라이라를 빼닮은 용모였다.
매혹적인 외모는 모든 소녀들이 꿈꾸는 왕자님처럼 달콤했고, 뺨은 밤새도록 어디에서 춤이라도 추다 온 사람처럼 발그레하게 고왔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그가 당장에라도 터질 듯한 울분을 애써 눌러 넣고 그 위에 뚜껑을 덮어놓은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기척을 내면서 들어왔는데도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과거에 아르티제아는 로렌스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한 적이 있었다.
「로렌스 오라버니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에요. 정치 감각도, 판단력도 있습니다. 다만, 황제 폐하로부터 오만함을 물려받았고, 어머니로부터는 병적으로 흥분하는 기질을 물려 받았지요.」
그 두 가지는 그의 이성을 쉽사리 짓밟았고, 종종 흉포하게 만들었다.
어떤 훌륭한 자질이 있다 하더라도 모조리 그 결점으로 인해 상쇄될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미친 황제냐, 아니면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황제냐.
로렌스와 로이가르를 재어보는 일은 그것을 결정하는 일이다. 과거에 린 재상이 선택하지 않고 그만둬 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티제아는 로렌스가 자신의 결점을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반대로 말하 자면 아르티제아의 결점이다. 혈연에 눈이 어두워 내린 판단이었다.
결국 로렌스는 억압하는 사람이 없어지자 완전히 자기를 통제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는 아니었다. 아직 그에게는 황제라고 하는 통제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분노를 아르티제아에게 쏟아내지도 못할 것이다. 이제 그녀는 세드릭의 약혼녀였으니까.
로렌스는 정치가 섬세하고 복잡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황제의 자리가 절대 권력처럼 보여도, 그것이 여러 세력의 균형 위에 놓여 있는 옥좌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지금은 에브론 대공가에 부드러운 목소리를 낼 것이다.
황제의 충신들만이 아니라 황제 자신이 직접 그에게 세드릭을 포섭하라고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하나도 모르는 듯한 목소리로 아르티제아는 조심스럽게 로렌스를 불렀다.
“오셨어요, 오라버니?”
아직은, 무력한 계집애로 생각되는 것이 좋다.
로렌스가 눈을 떴다. 아르티제아는 그에게 공손히 절했다.
그는 마주 인사하는 대신에 가만히 아르티제아의 얼굴을 살폈다.
눈썹 위에 멍이 들어 있고, 관자놀이와 턱 언저리에도 긁힌 상처가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나풀나풀한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목에도 맞은 자국이 선연했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는 더 많은 상처가 있을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돌리지도, 상흔을 가리지도 않았다.
핏기 없는 아르티제아의 안색을 보고 로렌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앉아라.”
“네.”
아르티제아는 상석을 피해서 로렌스의 건너편에 앉았다.
“그간 별궁에 안 계셨다고 들었어요.”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었다.”
“소식은, 들으셨죠? 집에는 다녀오셨어요?”
“그래. 네 짐을 정리했더구나.”
“네. 에브론 대공 전하께서 결혼식 전이라도 대공저에 머무르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요.”
“그렇구나.”
결혼 전에 먼저 동거를 시작하는 게 옳은 일일 리 없었다. 더군다나 아르티제아는 아직 열여덟 살이다.
하지만 로렌스는 그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세드릭이 여자의 얼굴이 저렇게 된 것을 보고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약혼녀를 상대로.
이 일은 이미 로렌스의 손을 떠난 일이었다.
“어머니는 좀 어떠세요?”
“여전하시지. 히스테리로 발작하다가 누우셨다더라.”
그 한 문장에 들어 있는 모든 과정을 아르티제아는 알 수 있었다.
저택은 비 맞은 피난행렬처럼 처참하게 늘어져 있을 것이고, 하녀들은 겁에 질린 채 말없이 돌아다닐 것이다.
밀라이라는 지금쯤 침대에서 우울감에 빠진 채 훌쩍이고 있으리라.
분노는 에너지를 쓰는 일이다. 그녀는 한 차례 발작적으로 울분을 터뜨리고 아르티제아를 때리고 나면, 다음날에는 지쳐서 상냥해졌다.
슬퍼하거나 미안한 얼굴로 죽을 사람처럼 굴었다.
「너한테밖에 의지할 수 없어서 그래.」
라고 말하면서.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숙이자 로렌스가 물었다.
“마음이 쓰이면, 잠깐이라도 보러 와.”
“아뇨. 당분간은 어머니를 보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어머니와 이번 기회에 연을 끊을 생각이에요.”
로렌스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진심이냐?”
“네.”
“티아. 섣불리 결정할 일이 아니다. 넌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니?”
“사랑해요.”
아르티제아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지금 하는 말 중에 오로지 그것 하나만은 진심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평생을 바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세드릭 님과 행복해지고 싶어요. 이게 제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행운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니 최선을 다할 거예요. 칭송받는 대공비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세드릭 님의 아내로서 제대로 인정받고 싶어요.”
“티아.”
“하지만 밀라이라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될 수는 없잖아요. 무엇을 해도 세상의 비난만 받을 테니까요. 아시잖아요?”
이때까지 솔직히 로렌스는 이 일을 크게 여기지 않았다.
세드릭이 보았다는 것 쪽이 큰일이지, 아르티제아가 당한 일 자체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닐 뿐더러 다른 때보다 각별히 더 심한 것도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의 각오는 단단해 보였다.
로렌스는 그녀에게 그런 의지가 있는 줄도 몰랐다.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세드릭 님 앞에서 이런 비참한 꼴은 다시 보이고 싶지 않아요.”
“그래. 그렇게 해라.”
로렌스는 수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로산 후작가의 권리는 아르티제아에게 있다.
결혼하면 작위도 상속받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로렌스가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다.
애초부터 밀라이라와 달리 로렌스는 로산 후작가에 미련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네.”
“그러면 저택은 어떻게 할까? 내게도 저택이 몇 채 있지만, 그쪽을 정리해서 이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저택은 어머니에게 남길 거예요. 저택 유지비와 이제까지 쓰시던 것보다 모자라지 않을 만큼 연금도 드릴 생각이에요. 오라버니도 지금까지처럼 지내시면 돼요.”
“그래. 알았다. 생각보다 이르지만, 결혼 축하한다. 약혼을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로렌스가 그제야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내심으로 씁쓸한 기분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웃었다.
“이런 식으로 일이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면, 별궁에서 돌아오셨을 때에 약혼 발표를 했을 거예요.”
“……그래. 그렇겠지.”
로렌스는 이때 어떤 이상한 직감에 사로잡혔다.
과연 아무 일도 없었을까?
아르티제아가 이런 애였던가?
위화감이 들었다. 문득 로산 후작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빌이 하소연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전부터도 티아 아가씨가 좀 기색이 이상하긴 했어요. 절대 마님께서 체면을 상하게 하셨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분명히 계략을 꾸민 게 틀림없어요.」
아르티제아가 그런 술수를 부릴 줄 안다고 로렌스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당초 빌은 신용할 만한 놈이 아니다. 밀라이라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 능하여 그대로 두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냥 들어 넘겼다.
하지만 모든 일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번 일이 생기기 전부터 아르티제아가 고용인을 바꾼 것도 그렇다.
그 덕분에 로산 후작가의 가산은 벌써 전부 파악되어 소유권이 넘어 가고 있었다.
황제의 인증만 있다면 끝날 것이다. 미리부터 준비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티아가……?’
로렌스가 아는 아르티제아는 늘 무력하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머리 나쁜 애가 아닌 줄은 알았다. 하지만 늘 눈치를 보면서 애정을 갈구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르티제아도 그렇게 보였다. 말씨는 조심스러웠고, 태도도 전과 다르지 않았다. 매 맞은 흔적이 남은 얼굴은 초췌했다.
제 나름 결의를 다진 듯 무릎 위에 놓인 두 손이 새하얗게 되도록 깍지를 끼고 있었다.
그런 각오로 밀라이라와 인연을 끊는다고 말한 것도 그녀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만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창백하면서도 냉정하게 보였다.
내리깐 눈꺼풀 아래의 눈동자가 심해처럼 깊었다. 얇은 피부 아래의 혈관에 도는 것이 푸른 피일 것 같았다.
그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었다. 회의실의 그늘진 곳에 앉아 마른 손마디로 지도 위를 짚던…….
“오라버니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생각을 끊어놓듯이 아르티제아가 말을 걸었다.
로렌스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렴풋이 떠올랐던 심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
“네.”
아르티제아가 그때까지 내리깔고 있던 눈을 들었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언제까지 어머니에게 매여 계실 건가요?”
“무슨 말이냐, 그게?”
“아마 아무도 이런 말씀 못 드리겠지만요. 이건 제가 어머니의 친딸이고, 또 오라버니의 친누이이니 드릴 수 있는 간언이에요.”
아르티제아는 일부러 단어를 골랐다. 충고나 충언 대신 간언이라고. 마치 그가 주군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와 인연을 끊어야 하는 건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니라 오라버니예요.”
“무슨 뜻이냐?”
“어머니는 확실히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고 계시지만, 오라버니한테 필요한 것은 총애가 아니잖아요. 오라버니는 오라버니 혼자로서도 폐하의 아드님이니까.”
“그래서?”
“오라버니가 황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폐하의 총애가 아니라 적법한 권리예요.”
로렌스의 안색이 조금 변했다.
사생아로 태어난 그에게 적법한 권리라는 말은 항상 역린이었다.
그가 화를 내기 전에 아르티제아가 먼저 말했다.
“오라버니에게 그걸 주실 수 있는 분은 황후 폐하뿐이시죠. 혼외자가 상속권을 인정받는 유일한 방법은 배우자의 양자가 되는 것뿐이니까요.”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