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6
악녀는 두 번 산다. 36화
제아무리 권세 있는 귀족이라도 세례, 혼례, 장례의 3가지에 대해서는 사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원은 신성한 결혼서약의 증인이자 수호자로서 사생아의 상속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재산은 살아 있는 동안 양도할 수 있다. 작위 중에도 양도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가문 자체에 속한 작위는 양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생아는 절대 물려받을 수 없었다.
설령 자식이 수백 명 있다 하더라도 가문을 상속받을 적자가 없으면 가문의 작위와 그에 따르는 재산이 황실로 환수되었다.
그것을 피하는 방법은 배우자가 양자로 삼아 주는 방법뿐이다.
자식을 낳지 못한 배우자가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리이기도 했다.
“폐하께서는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시던가요? 황제 폐하 당신께서도 그렇게 황제가 되셨으니, 귀띔해주실 법도 한데.”
아르티제아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지금의 후계 다툼은 사실상 선황의 시기에 씨가 뿌려진 것이다.
선황은 첫 번째 황후와의 사이에서 오래도록 자식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혼외자 중 하나를 황후의 양자로 삼아 황태자로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의 그레고르 황제이다.
하지만 말년에 황후가 죽자 선황은 딸뻘의 어린 여자와 재혼을 했다.
그 계후와의 사이에 태어난 첫째가 세드릭의 어머니이고, 둘째가 지금 차기 황제로 거론되고 있는 로이가르 대공이었다.
제국 정계는 크게 뒤흔들렸다.
그러나 이미 세워진 황태자의 자리를 뒤집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였다.
장성한 황태자는 이미 자기 세력을 탄탄하게 일구고 있었으며, 선황은 이미 나이가 싶도 넘었다.
게다가 계후의 친정은 한미한 곳이었다.
반면, 그레고르 황제는 죽은 선황 후의 친정 가문도 등에 업고 있었다.
그랬음에도 그레고르 황제는 즉위 초기에 정통성 문제에 시달렸다.
그리하여 세드릭의 부모를 역모죄로 몰아넣어 숙청함으로써 황권을 강화했다.
하지만 그때 제기된 정통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레고르 황제에게 적자가 있었다면 후계 구도는 복잡해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미 그는 황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황실에는 황후 소생의 자녀가 없다. 법적으로 그레고르 황제의 가장 가까운 혈육은 로이가르 대공이다.
사원은 2대에 걸쳐 결혼서약이 무력화되는 것을 막으려 들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여전히 선황의 적황자로 남아 있었다.
이 계승권은 사실 그레고르 황제와도 다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다.
그러니 로렌스가 황태자의 자리를 원한다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황후의 양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정통성을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아르티제아가 그를 성녀와 결혼시켰던 것처럼.
이것은 모두 진실이다.
독은 진실일 때에 가장 무서운 것이다. 독을 당하는 자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논리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로렌스는 아르티제아의 말뜻을 이해할 만큼 현명했다.
동시에 아르티제아의 말이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만큼 어리석었다.
‘오라버니는 오만하고 이기적이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로렌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변덕스러운 황제의 총애가 오로지 제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로렌스의 오만이다.
자기에게 조금의 손해라도 될 것 같으면 사람을 버리는 것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황제에게는 로렌스 말고도 혼외자가 몇 명 더 있다.
하지만 황제가 그중에서도 유난히 로렌스를 골라 총애하는 것은, 로렌스가 아들이라서도, 생모의 신분이 높아서도 아니다.
황제가 밀라이라를 사랑하고, 밀라이라와 함께 가족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그 가족놀이에 금이 가면 황제의 총애는 여름 서리 녹듯 사라질 것이다.
망가진 가족에 매달릴 만큼 황제는 책임감이 강하지 않았고, 그 틈을 파고들려는 사람은 숱하게 많았다.
밀라이라조차 아는데, 로렌스는 몰랐다.
밀라이라가 이제껏 황제의 분노를 막아주고 그에게 총애를 끌어다 주었던 일들도 이미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은 그에게는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르티제아는 로렌스의 안에서 음울한 생각이 요동치는 것을 지켜보면서 독이 든 숨결을 불어넣듯 한 마디를 더 속삭였다.
“어쩌면 어머니가 일부러 말씀 못 하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어머니는 오라버니에게 집착하고 있으니까.”
“……티아.”
“전 너무 불안해요. 폐하가 오라버니를 총애하니 모두가 오라버니를 미래의 황태자로 여기고 있지만, 당장 내일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제위를 계승하는 것은 로이가르 대공이잖아요.”
“티아, 불길한 소리를 함부로 하지 마라. 그런 말만으로도 역모가 될 수 있어.”
“네. ……죄송해요.”
“네가 왜 그렇게까지 불안해하는지 모르겠구나.”
로렌스가 초조감에 약간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
“전 오라버니의 동생이니까요. 오라버니의 안위는 제 안위와 직결되어 있잖아요.”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숙였다. 이 말은 그가 에브론 대공가를 쉽게 포섭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주었다. 동시에 아르티제아의 걱정을 진실한 것으로 만들어 불안을 전염시켰다.
로렌스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와 인연 끊는다는 말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겠니?”
그리고 곧 다시 말했다.
“하지만 네 말에도 일리는 있구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티제아는 마음속으로 안심했다. 독은 제자리에 들어갔다.
이간질하여 세력을 쪼개는 것은 약한 자가 강대한 세력을 상대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본적인 술책이다.
로렌스를 거꾸러뜨리기 위해서는 우선 밀라이라부터 떼어내야 했다.
“너무 염려하지 마라. 황제 폐하께서는 아직 정정하시니까.”
“네……. 공연히 불길한 말씀을 드려서 죄송해요.”
아르티제아는 소극적인 태도로 말했다.
로렌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르티제아는 그를 따라 일어섰다.
“나오지 않아도 된다. 배웅은 집사가 해주겠지.”
“오라버니.”
“빨리 깨끗한 얼굴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구나. 그때에는 에브론 대공도 함께.”
“네.”
아르티제아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절했다. 로렌스는 그녀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고 큰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멀찍이에서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르티제아는 피곤한 기분으로 잠시 소파에 푹 파묻혀 앉아 있었다.
이것으로 로렌스는 결혼식에 밀라이라가 나서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마커스였다. 은쟁반 위에 한 통의 편지를 공손히 받쳐 든 채였다.
아르티제아는 난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심부름을 직접 할 필요는 없어요.”
“기다리시던 소식입니다. 혹 로렌스 님의 눈에 띄는 일이 생길까 봐 염려되어 제가 직접 가져왔습니다.”
그가 쟁반을 내밀었다. 그 위에 놓인 것은 황금을 녹여 해룡의 문장으로 봉인한 편지였다.
황후의 초대장이었다.
“드디어.”
손님들 앞에서 몸을 내던졌을 때에 기대한 마지막 목적물이 당도했다.
아르티제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 * *
로렌스는 머릿속이 복잡하여 마차 문이 열릴 때까지 집에 도착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짐이 네 아비라 하나 무조건 널 후계자로 삼을 생각은 없다. 그러지도 못해.」
새삼스럽게 황제의 말이 떠올랐다.
「세드만 수중에 넣어라. 그러면 나머지는 짐이 알아서 해주마.」
그때에는 울분에 차서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충분히 함의가 있는 말이었다.
황제의 충신 아말리아 하퍼가 그에게 충고한 적이 있었다. 아르티제아와 세드릭 사이에 대해서 처음으로 말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였다.
「에브론 대공은 황실의 적계 혈통입니다. 그의 충성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로렌스 님의 정통성은 크게 보충됩니다.」
그것은 로렌스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말이었다.
그가 불쾌감을 숨기지 않자 하퍼가 냉랭하게 말했다.
「황제는 이 제국의 오롯하고도 유일한 권위입니다. 로렌스 님은 황제가 되고자 하면서 에브론 대공 하나 포용할 자신이 없으십니까?」
하퍼의 말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볼 것을 그랬다.
어쩌면 황제는 이미 로렌스를 위해 여러 일을 안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에게는 부황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로렌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싸늘한 로산 후작 저택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밀라이라가 저택 로비까지 그를 서둘러 마중 나왔다.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얼굴이었다.
“로렌스, 로렌스, 왔어? 티아는 뭐라고 그래? 돌아온대?”
“어머니 생각에는, 약혼자와 손님들 앞에서 머리채를 잡히고 얻어맞는 모습을 보였는데 돌아올 것 같아요 ?”
“걔 집은 여기야. 당연히 돌아와야지!”
“에브론 대공이 그렇게 둘 리 없잖아요.”
“말도 안 돼. 그 남자가 뭐라고? 걘 내 딸이야! 게다가 아직 어리잖니? 에브론 대공이 뭐라고 자기 마음대로 해? 난 결혼 허락 안 했어!”
밀라이라가 로렌스에게 매달리며 소리쳤다.
절대 로렌스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밀라이라로서는 드문 태도였다.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하지만 로렌스는 냉랭한 태도로 그녀를 밀쳐냈다.
“어머니, 제 미래를 망치고 싶어서 작정을 하셨어요?”
로렌스의 한 마디에 밀라이라가 겁먹은 듯 딸꾹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니?”
“아바마마가 티아가 에브론 대공과 인연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어머니도 같이 들으셨잖아요. 그런데 왜 이러세요?”
“그, 그게……, 그게 아니야. 티아가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어떻게 이러니? 내가 일부러 티아 체면을 상하게 하려고 그랬겠니? 너도 알잖니? 내가 걜 어떻게 낳았는데? 어떻게 키웠는데?”
“그러게요.”
로렌스가 온기 한 점 없는 냉혹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주 힘들게 낳으셨죠. 이번이 두 번째네요. 그렇죠?”
“뭐, 뭐가 두 번째라는…….”
“어머니가 제 앞길을 막는 거요. 티아를 낳은 것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렇고, 어머니, 절 죽이고 싶으세요?”
로렌스는 밀라이라가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어루만져 바로잡아 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밀라이라는 겁을 먹고 목을 움츠렸다.
“그, 그게 무슨 말이니? 내가 널 왜 죽이고 싶어 해?”
“황제의 자리를 넘본 자는, 죽든가 황제가 되든가 둘 중 하나밖에 할 수 없죠. 어머니, 제발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로렌스가 으드득 어금니를 악물었다.
“어차피 어머니는 황후를 폐위시킬 능력도, 저를 황태자로 만들어줄 수도 없잖습니까? 그러니 가만히라도 계시라고요.”
“로렌스, 너도 알잖니? 황후는…….”
밀라이라가 비참한 얼굴로 웅얼거렸다. 로렌스가 휙 몸을 돌렸다.
“아니다, 아니야. 로렌스, 엄마는 절대 너 실망 안 시켜. 다시는 안 그럴게. 다시는 실망 안 시킬게. 로렌스, 로렌스!”
밀라이라는 그의 뒤를 황급히 따라가 팔을 잡았다. 로렌스는 그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다시 한 번 저택을 나섰다.
밀라이라는 주저앉아 오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