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7
악녀는 두 번 산다 37화
6. 포석을 마치다
아르티제아가 들어가면서 썰렁하던 에브론 대공저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세드릭에게 ‘집’은 대공가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저택이나 성 자체에 정을 붙이고 머무른 적이 거의 없었다. 천성이 집기나 분위기에 세심하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었다.
저택을 총괄하여 보살펴야 할 안스가르도 늘 세드릭을 따라 군영을 오갔다.
집에 머무르는 사람이 없으니 저 택은 자연히 황폐해졌다. 수도의 대공저는 1년 중 한두 달 정도 세드릭과 기사들이 잠만 자고 가는 공간에 가까웠다.
아르티제아는 그 분위기를 일신했다.
“소후작님 덕분에 아주 온 집안에 생기가 돌아요.”
집사와 하녀장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에브론 대공가로서는 거의 20년 만에 안주인감을 맞이한 셈이다.
그녀를 위해 새로 하녀를 고용하고, 꽃이 장식되었다. 식당에는 골동 품 같은 낡은 은식기 대신 고운 새 그릇을 들였다.
옷장이 가득 채워지고 침방이 활기를 띠었다.
하인들은 빈방의 문을 열고 낡은 가구를 광냈다. 응접실과 침실을 비롯하여 몇몇 장소에 간단한 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 공사의 진정한 목적은 비밀통로를 뚫고 집음기를 설치하는 등 저택을 권모가의 저택으로 꾸미는 일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새로운 안주인을 위해 장식품을 설치하거나 벽지를 바꾸는 일처럼 보였다.
세드릭은 허락을 청하는 아르티제아에게 흔쾌히 대답했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저택의 예산도 마음대로 쓰면 됩니다. 꼭 일에 필요한 것만 생각지 말고, 당신이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얼마든지 마련하세요.”
“고맙습니다.”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고요. 이런 일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약간 멋쩍어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 당신의 집이 될 것이지 않습니까?”
아르티제아는 마음 써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지 말이 혀를 타고 매끄럽게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당신의 집이라니.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르티제아에게는 작전을 위해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드릭은 이곳이 정말로 그녀의 집이 될 거라고 말한다.
2년의 기간을 둔 계약에 불과한데도, 마치 그게 진짜 결혼인 것처럼.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 결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그냥 세드릭의 옆에 자연스럽게 붙어서 대공가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할 때마다 얼굴이 홧홧해지고 가슴이 울렁거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르티제아의 얼굴을 보고 세드릭이 어색한 얼굴을 했다.
그는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몇 번 아르티제아를 쳐다보았다가 헛기침을 하고는 그냥 방 밖으로 나갔다.
아르티제아는 그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뺨을 손으로 문질렀다. 자기가 이상한 태도를 취했나 싶어 염려스러웠다.
하녀장 로아는 아르티제아의 서재 앞에서 후우 하고 긴장한 숨을 들이쉬었다.
“소후작님, 로아입니다.”
아르티제아는 좀처럼 대공저의 고용인들을 직접 불러 일을 시키거나 하지 않았다.
어쩐 일일까?
아르티제아는 관대한 주인이었다.
세탁이나 청소 같은 일상적이고 자질구레한 일은 아직 결혼 전이니 손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 침방에서 만들고 있는 물건들에도 좀처럼 간섭하지 않았다.
저택의 하녀를 휘어잡으려고 하는 시도도 없었다. 새로 하녀를 고용하는 데에 직접 관여하여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으려 하지도 않았다.
처음에 로아는 세드릭의 약혼녀가 로산 후작 영애라고 해서 걱정이 컸었다. 안목이 높고 사치스러울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했었다.
로산 후작가가 아니라 다른 중앙 귀족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수도의 귀족 영애들은 단순하고 소박한 에브론 대공가의 기질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조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안목은 높았지만, 간섭은 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낭비하지 않았지만, 하녀들에게는 관대했고, 대부분의 일을 맡겨두었다.
오히려 그러니 로아는 불안해졌다. 그녀는 안주인을 모셔본 적이 없었다.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많은 일을 멋대로 처리한 게 아닐까?
서재로 부름을 받고 나니 더럭 염려스러워졌다.
문을 두드리자 서재의 문이 달칵 열렸다.
“들어오세요.”
앨리스가 생글거리고 웃으면서 로아를 맞이했다. 로아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르티제아는 서재의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로아는 공손하게 그녀에게 절했다. 아르티제아가 앨리스에게 손짓했다.
앨리스가 아르티제아의 앞에 놓여 있던 상자를 열어 안에 들어 있던 주머니를 로아에게 주었다.
“커튼과 침구를 교체하는 데에 보태 쓰게. 레이스도 만들고.”
“너, 너무 많습니다.”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은화가 아니라 금화라는 것을 알고 로아는 깜짝 놀랐다.
“이것의 절반만 되어도 충분히 다 할 수 있습니다.”
“일부러 넉넉하게 주는 거야.”
다른 귀족가의 고용인이라면, 넉넉한 예산의 의미를 알고 알아서 잘 처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브론 대공가의 고용인들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나긋하게 말했다.
“할 일이 많은데 일일이 집사를 통해서 말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겠는가? 필요하면 이 돈으로 임시로 사람을 고용해서 쓰고, 또 의 상하지 않도록 남는 돈은 일하는 사람끼리 잘 나누어 쓰도록 해.”
“그, 그래도 과분합니다. 지난번에 하녀들에게 모두 새 옷과 신발을 장만하라고 주셨던 것도 다 쓰지 못했는걸요.”
로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티제아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로아가 그 돈에서 제 몫을 따로 챙기지 않았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면, 사람을 더 쓰거나 휴식 시간에 쓸 만한 괜찮은 다구를 사는 것은 어떤가?”
“하지만…….”
“아랫사람을 위해 돈을 꺼냈는데, 그 돈이 다시 금고로 들어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이렇게 말하니, 로아는 감히 아랫사람으로서 다시 거절할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내 나이가 어리고 아직 대공가의 사정에 밝지 못하니, 앞으로도 자네에게 많이 의지하게 될 걸세.”
이 신뢰에 대해서 로아는 감격했다. 그리고 금화주머니를 조심스럽게 챙겨서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자 앨리스가 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또 시험하실 필요가 있나요?”
“왜 시험이라고 생각하니?”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띠며 물었다.
“과분한 권한을 받고 나서 어떻게 할지 보실 거잖아요. 지난번에는 하녀장님이 1할 이상 빼돌리지만 않으면 됐다고 하셨는데.”
“하나도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았으니 오히려 더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겠니? 어떤 가치로 움직이는 사람인지.”
“그냥 정직한 사람일 수도 있죠.”
“그렇다면 일을 다 맡겨버릴 수 있으니까 오히려 좋지. 하녀나 하인을 다스리는 일에 소모할 만한 시간이 없어. 큰 권한을 줘 보고, 잘못하면 빨리 바꾸는 게 편해. 하녀장이 뭐 좀 잘못한다고 큰일이 생길 것도 아니잖니?”
“그렇지만요. 아가씨가 얼마나 힘들게 로산 후작가의 재산을 되찾으셨는데……. 쓰는 거 너무 아까워요.”
앨리스가 투덜거렸다.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염려 말렴. 돈 같은 건 도구에 불과해. 어차피 푼돈이기도 하고.”
“네.”
“혹시 하녀들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돌면 알려주고.”
“네, 걱정 마세요! 그게 제 역할인 걸요.”
앨리스는 기운차게 말했다. 그녀는 이미 대공가의 하녀들 절반 가까이에게 뇌물을 건넨 다음이었다.
아르티제아가 앨리스에게 제일 우선순위로 두고 생각하라고 한 일이 그것이었다.
대공저의 고용인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을 수집하는 것 자체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과연 어디까지 공작이 통하는가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외출 준비를 해야겠구나.”
“아, 네! 소피에게 금방 이야기하고 올게요!”
앨리스가 발딱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아르티제아는 잠시 차를 마시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두 번째 손님을 맞이할 시간이었다.
똑똑.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
“들어오세요.”
아르티제아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프레일이었다.
그는 아르티제아에게 정중하게 경례를 올리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브론 대공 전하의 부관을 맡고 있는 프레일입니다.”
“오랜만입니다, 프레일 경. 로산 후작 저택에서 뵈었던 이래 처음이지요?”
“경황없는 때였는데도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감사의 뜻을 담아서 프레일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물론이지요. 사원에서도 뵈었었잖아요.”
“예. 그때에도 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상상하는 것보다, 아르티제아는 훨씬 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이전의 생에서 프레일을 암살한 것은 아르티제아였으니까.
프레일은 정략이나 음모 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야가 넓고 경계심이 강했다.
아르티제아가 세드릭을 대상으로 뭔가 음모를 꾸미면, 가장 먼저 눈치 채는 것이 프레일이었다.
그녀는 프레일이 성가셔서 죽여 버렸다.
에브론 대공가의 사람들이 그녀를 저주하고 증오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아주 강력한 아군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아르티제아에게는 세드릭의 지지 말고도 에브론 대공가 안에서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다른 동지가 필요했다.
비밀을 지키며, 이득과 상관없이 세드릭을 위해 함께 목숨도 걸어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리고 프레일이라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약간의 감흥을 느꼈다.
하지만 프레일에게 살아 있는 당신과 대화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눈을 내리깔자 관찰하는 듯한 프레일의 시선이 닿아왔다.
“오늘 외출의 수행기사로 지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소후작님께서 직접.”
“네.”
“저 스스로 당당히 말씀드릴 만한 일은 못 됩니다만, 제 실력이 에브론 대공가의 다른 기사들에 비해 못 합니다. 알폰스에게는 당연히 비교할 수도 없고요.”
“수도 안에서 위험한 일이 있을까 봐 동행을 요청하는 것도 아닌 걸요. 알폰스 경을 동행하기에는 좀 부적절한 일이라서요.”
아르티제아가 눈을 들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실 텐데요. 요청에 바로 응한 것은 그 때문이시겠지요.”
“대공 전하께서 선택하신 안주인이십니다. 제가 감히 판단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이번에는 프레일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의 마음속을 읽은 듯이 말했다.
“제가 아는 것은, 대공 전하께서 아시는 것과 똑같습니다.”
프레일은 세드릭에게 숨길 일은 제게도 말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건 일이 끝난 후에 결정하세요.”
프레일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