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8
악녀는 두 번 산다 38화
아르티제아는 저택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외출했다.
옷은 귀족의 것이되 상복이었다. 이런 드레스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다.
눈에 띄는 백금발은 가느다란 갈색 실로 촘촘하게 짠 그물로 싸서 가렸다.
모자챙에는 입술 끝까지 가리는 검은 베일이 붙어 있었다. 애당초 상복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었다.
프레일은 견장을 떼었다.
아르티제아가 왜 알폰스는 동행시키기에 부적절하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알폰스는 지나치게 그림 같은 기사라서 누더기를 입혀도 태가 날 것이 틀림없었다.
프레일 외에는 마부 하나가 수행원 전부였다. 앨리스도 따라오지 않았다.
프레일은 놀라서 물었다.
“자주 이렇게 외출하십니까?”
“이제까지는 이런 일로 외출할 일이 별로 없었지만요. 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외출할 일이 있다면 이게 기본이 될 거예요.”
프레일은 문장 하나 박히지 않은 검은 이륜마차를 바라보았다.
아무 곳에도, 아무런 특징이 없었다. 아르티제아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구별해내지 못할 것이다.
현장에서 싸움이라도 나지 않는 한 위험할 일은 없다.
그리고 그런 일은 건장한 마부를 거느리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프레일은 아르티제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영민하다는 것은 자신의 결혼과 서부군 문제를 엮어서 계약 결혼을 제시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올가의 심장이 이츠 남작 사건으로 연결되었을 때에는, 그녀가 두렵기 때문에 놓쳐서는 안 된다고 세드릭에게 조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경험의 영역이 아닌가?
프레일은 자신이 세드릭의 밀행을 준비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레일은 아르티제아에게 경계심을 품었다.
에브론 대공가에는 단순하고 선량한 북방인이 많다.
처음에는 주인이 밀라이라의 딸과 약혼했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사람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모두 아르티제아가 밀라이라에게 심한 일을 당한 것을 알고 경계를 풀었다.
그녀가 로산 후작가 안에서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알고는 동정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아르티제아가 이 저택으로 와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자 호감은 쑥쑥 자라났다.
아르티제아는 스스로는 소박한 차림새를 하면서도 고용인들에게는 너그러웠다.
귀족적이면서도 친절했다.
가리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안목이 높았다. 아랫사람들에게 큰 권한을 맡기면서도 거의 모든 일을 파악하고 있었다.
에브론 대공가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바라던 안주인 그 자체였다.
하지만 프레일은 밀라이라의 사건도 아르티제아가 꾸며낸 일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올가의 심장에서부터 시작된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실제로도 아르티제아는 이번 일로 황후에게서 초대장을 받지 않았는가.
그녀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티제아가 하는 일이 어디까지 연결될지, 그녀가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프레일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프레일은 자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차는 번화가를 지나 오래된 거리로 접어들었다.
이 거리는 제국 수도가 세워진 창기부터 성문 안에 있었다. 하지만 지리적 이점을 띠지 못해 중심부에 편입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건물이 새로 지어지지도 못하고, 농촌처럼 결속 강한 공동체를 만들지도 못하여 슬럼화가 진행 되는 중이었다.
주민의 대부분은 오래 전부터 살아온 시민이 아니라 도시에 몸 비비기 위해 무작정 찾아온 날품팔이와 도둑들이었다.
그 한중간에 술집이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그중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프레일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내심으로 아르티제아가 이런 장소를 알고 있다는 것에 그는 당혹했다.
아르티제아는 망설이지 않고 바텐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매발톱주 1병을 사러 왔다고 라이 피젯에게 이야기하게.”
바텐더의 얼굴이 굳었다.
말소리를 들은 다른 점원이 당황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 이름을 어디에서 들으셨습니까?”
“라이? 잘 아는 사이이니까.”
아르티제아는 여유로운 태도로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숨도 쉬지 못할 듯한 긴장이 가게 안에 내려앉았다.
라이 피젯은 해결사이고, 정직한 악당이었다.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했으며, 먼저 돈을 준 사람에 대한 신용을 지켰다.
「저는 돈에 인간성을 판 놈입니다. 그러니까 돈에는 의리를 지켜야죠.」
아르티제아는 그의 그런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녀는 돈으로 라이의 조직을 키웠다. 검은 손이 필요한 일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아르티제아의 밑에서 그는 신용 있는 악당으로 개화했다.
문서의 위조부터 협박, 납치, 고문, 나쁜 소문을 흘리는 것까지 못 하는 게 없는 유용한 부하였다. 사실 아르티제아와는 아주 잘 맞는 주종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르티제아를 배신했다.
아르티제아는 그가 위조문서와 암살의 증거를 들고 재판정에 나왔던 것을 기억했다.
「죄송합니다, 후작님. 저는 돈에 인간성을 판 놈입니다.」
고문으로 한쪽 눈을 잃고 코뼈도 뭉그러진 얼굴로 라이는 그렇게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신의와 충성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으니까.
반역죄를 뒤집어쓴 옛 주인과 황제의 사이에서는 갈등할 필요조차 없다.
그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보호해 줄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물론 그것과 별개로 이번에는 돈이 아니라 다른 안전장치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오래지 않아 라이가 창백한 안색을 하고 가게로 나왔다.
자다가 바로 나온 듯 머리는 헝클어지고 셔츠는 구겨져 있었다. 오래 간만에 젊은 얼굴을 보자 새삼스러웠다.
아르티제아는 정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라이는 당황했다.
“누구십니까?”
그렇게 물으면서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곳에서 라이라고 하는 그의 본명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동료들 뿐이다. 이름이 너무 귀여워서 자주 얕보였기 때문에, 그는 도시로 오면서 이름을 아예 와트라고 바꿨다.
굳이 라이라는 이름을 동료에게 알려놓은 것은 고향에서 오는 우편물 때문이었다.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찾아올 리가 없었다. 하물며 매발톱주를 언급하면서는.
매발톱주라는 것은 이 일대에서 살인을 의미하는 은어였다.
‘누구지? 어려 보이는데, 몸짓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행하는 남자는…… 기사인가?’
아르티제아가 짧게 말했다.
“생각은 내 제안을 들은 뒤에 하도록 해, 라이. 지금으로서는 머리를 굴린다고 해도 알 수 없을 테니.”
라이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물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게 중요한가?”
베일 너머에서 얇은 입술이 생긋 미소 지었다.
“나는 매발톱주를 사러 왔어. 그리고 자네는 돈이라면 무엇이든 팔지.”
“알겠습니다. 팔 만한 자와 연결해 드리죠.”
“나는 자네가 직접 맡아서 처리해 주기를 원해. 물론 자네가 직접 손까지 쓰기를 바란다는 뜻은 아닐세.”
이 여자는 위험하다. 라이는 자신의 직감을 신뢰했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았는지는 궁금했다. 그렇지만, 연을 맺지 않는 편이 좋다.
돈에 무엇이든 파는 놈이라는 말은 맞다. 그렇지만 자신의 목숨과 가족은 팔지 않았다.
아르티제아가 라이에게 검은 종이로 싼 작은 뭉치를 내밀었다.
라이는 그것을 받아 손으로 가늠해 보았다. 두께와 감촉을 보니 금화 열 개인 것 같았다.
10골드면 평민 가족이 한 달 동안 넉넉하게 먹고 살고도 남을 정도의 액수였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라이는 그것을 손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아르티제아가 두 번째 뭉치를 내밀었다. 라이가 이번에도 밀어냈다. 그러자 세 번째 뭉치가 나왔다.
라이는 이번에는 잠깐 움찔했다. 네 번째 뭉치를 내밀면서 아르티제아가 물었다.
“아직 인간성을 팔 정도의 액수는 아닌가?”
“젠장, 그만두십시오.”
아르티제아는 거기에 두 개의 뭉치를 더 얹어 총 60골드를 만들었다.
라이가 눈을 굴렸다.
금액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궁금해졌다. 팔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액수에 따라서는 팔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곱 번째로 나온 것은 금화뭉치가 아니라 편지봉투였다.
아르티제아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금화뭉치 위에 얹었다.
라이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봉투를 낚아채어 열었다.
『라이 오빠에게.
이번에 보내준 의사선생님이랑 돈 덕분에 막내 상태가 무척 좋아. 걸어 다닐 수도 있게 되었어.
남은 것으로는 올 겨울 땔감을 마련하려고 해. 덕분에 여유가 많이 생겨서 잘하면 겨울 되기 전에 벽에 댈 천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고마워.
그런데 이렇게 큰 돈 보내줘도 괜찮은 거야? 위험한 일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수도의 의사까지 보내주다니. 돈이 엄청나게 들었을 텐데.
막내도 중요하지만, 오빠도 중요하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 그리고 내 본심 같아서는, 그냥 오빠가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밑에 좀 더 길게 안부를 적은 글이 있었지만, 라이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편지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의사와 돈을 보내준 적이 없었다. 이 여자가 그런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게 협박이라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라이는 멍청하지 않았다.
“으아아!”
그는 고함을 지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프레일이 가로막으려 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저어 프레일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신호했다.
라이는 아르티제아에게 주먹을 뻗었지만, 감히 손대지 못했다.
이 여자는 귀족이다. 그리고 그의 가족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동생의 경계심도 풀어두었다.
라이가 돈을 필요로 하는 이유도 알고 있다.
어디까지 알고, 어디까지 수작을 부려두었을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너무 위험했다.
아르티제아는 마지막으로 작은 카드를 꺼내서 라이에게 건넸다.
라이는 카드를 읽어보고 털썩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체념한 어조로 물었다.
“이 일만 하면 되는 겁니까? 이런 시시한 작자를 상대하는 것에는 굳이 저까지 찾을 필요도 없을 텐데. 아무 주정뱅이한테나 이 돈의 십분의 일만 찔러주어도 할 테니까. 낭비입니다.”
“나는 완벽한 결과를 원해. 그리고 자네를 수중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낭비가 아니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아르티제아는 카드를 도로 받아 자신의 핸드백에 넣었다.
라이는 손바닥으로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모레까지는 소식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로산의 소 후작님.”
그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아르티제아가 누구인지 알아챘다는 것을 밝혔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동요하지 않았다.
카드 안에는 처리해야 할 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고서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만큼 멍청하다면 라이와 거래를 트지도 않을 것이다.
“연락은 따로 주지 않아도 괜찮아.”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으로 나오자 프레일이 물었다.
“무엇을 요구하신 겁니까?”
“흔적을 없애는 것을.”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하고 마차에 올랐다. 다음 행선지는 안전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