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43
악녀는 두 번 산다. 43화
돌아오는 길에 둘은 결혼식 이야기를 조금 더했다.
“세드릭 님에게 일을 부탁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편안하게 해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요.”
“제가 그렇게 무능합니까?”
“사람한테는 어울리는 분야가 있고, 아닌 분야가 있으니까요. 카타샤 백작 부인과 파엘란 백작 부인이 왜 둘 다 황갈색 드레스를 입고 오겠다고 편지를 써서 보냈는지 이해하실 수 있어요?”
짐작도 가지 않았으므로 세드릭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사교계에서 서로 경쟁하는 사이에요. 드레스를 두고도 서로 상대방이 자신을 따라했다며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지요. 이번에도 미리 저한테 소식을 알려둠으로써 우위를 선점하려는 거예요.”
“그런 걸 신경 써야 합니까?”
“조금만 신경 쓰면 분란을 막을 수 있는데, 쓰지 않을 이유도 없잖아요.”
“음……. 아마 제 부하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면, 규칙대로 하고 나서 싸움이 생기면 자기들끼리 해결하라고 할 것 같군요.”
“세드릭 님이라도 그러실 건가요?”
“저는 분란을 미리 막는 쪽이 좋습니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그가 경청하겠다는 얼굴로 아르티제아를 쳐다보았다.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지었다.
“같은 테이블에 배석시키지 않고, 각자 테이블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다른 상대를 같이 앉혀 주면 되겠죠.”
아르티제아는 정답을 알려주었다.
물론 실제로 어느 자리에 배치할 것인가는 지금부터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세드릭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안스가르가 잘 도와주니까 염려 마세요. 이런 잡무까지 세드릭 님에게 부탁할 수는 없죠.”
“무엇을 생각해봐도 전 수도에서는 쓸모가 없군요. 당신의 춤 연습 시간을 줄여 준다는 정도밖에.”
“서로 발을 밟고 모르는 척해주자던 분이…….”
다시 생각해도 사기 당한 기분이 들어서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를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뺨이 붉어졌다.
“별로 사교 모임에는 참석 안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춤은 언제 또 그렇게 연습하셨어요?”
“리듬감이 있는 편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쉽게 배웠어요. 댄스 교사에게 칭찬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잘 춘다는 걸 스스로 알고 계시긴 했군요?”
세드릭도 세드릭대로 얼굴을 붉혔다.
“놀리려고 그렇게 말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진심으로 했던 말입니다.”
“놀리려고 그러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고마웠어요. 무도회에서 그렇게 춤을 춰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러자 세드릭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아르티제아는 평범하게 대답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드릭이 어색해하자 자기도 공연히 어색해져서 고개를 숙여 버렸다.
그대로 각자 다른 곳을 쳐다보는 채로 둘은 말없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아가씨! 늦으셨어요!”
소피가 허둥지둥 뛰쳐나오다가 세드릭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황망히 무릎과 허리를 구부렸다.
“죄, 죄송합니다, 대공 전하.”
“아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
“아가씨, 진짜 이러시면 안 돼요. 오늘 웨딩드레스 가봉일인 거 깜박하셨어요?”
“잊은 건 아닌데. 마담 에밀리가 벌써 와 있니?”
“네. 솔직히 지난번 가봉일도 빼먹으셨는데, 오늘이라도 제대로 해야죠. 시간이 모자라다고요.”
아르티제아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번거로웠다.
무심결에 눈을 슬쩍 들자 세드릭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드릭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뜸을 들였다. 상당히 오래. 그만큼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같이 볼까요?”
“웨딩드레스 가봉을요?”
“음. 일단 제가 신랑이지 않습니까?”
아르티제아는 난처한 얼굴을 했다. 어색한 공기가 둘 사이에 흘렀다.
투왈렛 룸에 남편이나 약혼자를 초대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연애결혼이라면 더더욱, 웨딩드레스 정도는 함께 볼 법도 했다.
하지만 한 집에 살면서도 아직 둘은 그 정도까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차라리 정견을 나누거나 실질적이고 진지한 의논을 할 때에는 벽 없이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개인적인 이야기가 되면 어색해서 입도 뗄 수 없었다.
세드릭은 옷을 갈아입을 때가 아니라도 투왈렛 룸에 들어갈 때에 머뭇거렸다.
아르티제아도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세드릭이 약간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괜한 말을 해서 미안합니다. 혹시 당신이 난처할까 봐 그랬습니다.”
“아, 아뇨.”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먼저 들어가십시오. 저는 도로 나가봐야 해서요.”
“네. 다녀오세요.”
아르티제아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세드릭이 나가볼 일정이 있었던가.
기억을 뒤져봤지만, 생각이 안 나는 건지, 아니면 원래 몰랐던 건지 분간이 안 갔다. 머릿속이 잠깐 하얗게 변한 것처럼 텅 비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르티제아는 기계적인 발걸음으로 투왈렛 룸으로 향했다. 아직 등 뒤에 서 있는 세드릭의 시선이 느껴졌다.
왼발 오른발을 내미는 것마저 의식되어서 자기가 제대로 걷고 있기나 한 건가 의심이 들었다.
소피가 아르티제아의 뒤를 총총 따라오며 소곤소곤 물었다.
“아가씨, 왜 그러셨어요?”
“내가 뭘?”
“대공 전하께 봐달라고 하면 좋잖아요!”
“세드릭 님이 보신다고 뭐 옷 디자인이 달라질 것도 아닌데.”
“그래도요. 제가 얼핏 봤는데, 진짜 예쁘더라고요. 입으면 분명히 공주님 같으실 거예요.”
“어린애도 아니고, 공주가 되고 싶은 게 아닌걸.”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2층으로 올라오자 에밀리가 환한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소후작님. 대공 전하께서는 함께 안 오셨나요?”
아르티제아는 약간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생각해도 짧은 시간 안에 굉장히 멋진 드레스를 만들었거든요. 대공 전하께서도 틀림없이 만족해하실 거예요.”
“같이 안 오셨어요.”
아르티제아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기척을 눈치 채고 소피가 소곤소곤 알렸다.
에밀리가 눈에 띄게 실망한 얼굴을 했다.
“자네는 나보다 세드릭 님에게 바가지를 씌우기 쉬우니까 그러는 게 아닌가?”
“서, 설마요.”
에밀리가 격하게 부정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웨딩드레스인 걸요.”
“내 옷이야. 나만 만족하면 됐지, 세드릭 님에게까지 번거로움을 끼칠 생각 없네.”
“그런 말씀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다른 것도 아니고, 웨딩드레스인 걸요.”
에밀리가 아르티제아의 몸에 맞추어 재봉 핀을 꽂아가면서 말했다.
“바쁘신 건 이해해요. 하지만 소후작님은 너무 관심이 없으세요.”
옷을 만드는 그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드레스야말로 결혼식의 알파이자 오메가, 시작과 끝이자 꽃이 아닌가.
“시간이 없어. 다른 준비할 것도 많아서.”
“그건 그래요. 너무 촉박하죠. 두 달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여기까지 한 저를 칭찬해주셔야 해요. 그나마 마침 제가 흰 옷감을 여러 가지로 들여오고 있었던 참이라서 다행이었죠.”
“수고를 끼치는군.”
“전에 치수를 재었을 때보다 팔과 어깨 쪽에 살이 조금 붙으셨네요. 훨씬 보기 좋아요. 허리도 이제는 좀 괜찮고.”
지금까지는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면서 에밀리가 허리에 딱 맞춰서 핀을 꽂았다. 소피가 끼어들었다.
“집사님과 주방이 한마음이 되어서 전하를 압박하고 있으니까 곧 좀 더 보기 좋게 되실 거예요.”
“에브론 대공 전하를요?”
“네에. 전용 간식 심부름꾼이 되셨다니까요?”
소피가 자기 이야기처럼 콧대를 잔뜩 세웠다.
“그만하렴. 세드릭 님도 어색하니까 자꾸 간식을 가져오시는 거지.”
“집사님이 세드릭 님 손에 야식을 들려주시는 건 제가 직접 봤다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게 뭐 별일이라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떠드니?”
아르티제아가 소피를 꾸중했다.
하지만 에밀리에게는 심각한 이야기였다. 그녀가 고민스럽게 물었다.
“혹시 살이 조금 더 붙으실까요?”
“한두 달 사이에 그렇게 살이 찌기야 하겠는가?”
“조금 더 살이 올라야 보기 좋으실 거예요. 그렇긴 한데, 이 상태로 가봉했다가 혹시 맞지 않게 될까 봐요.”
에밀리가 으음, 하고 고민스러운 얼굴을 했다.
“정 난처해지면 허리부분만 코르셋으로 조일 수도 있으니까……. 자, 거울 봐주세요.”
아르티제아는 에밀리가 시키는 대로 거울 쪽을 돌아보았다.
“어떠세요?”
“잘 만들어졌군.”
“그건 당연하고요!”
에밀리가 말했다.
드레스는 상체가 꼭 맞고 허리부터는 얇은 옷감으로 자잘한 주름을 넣어 풍성하게 퍼지게 만든 디자인이었다.
“요즘 최신 유행 스타일은 아니지만요. 소후작님은 몸매가 전체적으로 슬림하시니까 몸매의 곡선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이런 청초한 디자인이 더 어울리실 거예요.”
아르티제아는 말라비틀어졌다는 말을 참 우아하게 돌려 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좀 더 있다면 제대로 빛나도록 보석을 달았을 텐데, 그럴 만한 시간적인 여유는 없어서요. 그래도 비단실로 자수를 놓은 원단을 구했어요.”
에밀리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르티제아의 허리 쪽에 원단을 둘러 보여주었다.
흰색 자수실로 흰 원단에 수를 놓았으니 눈에 띄지는 않았다. 하지만 빛이 닿을 때마다 반짝반짝 빛났다.
“로산 후작이자 에브론 대공비가 되실 분의 웨딩드레스로는 너무 소박하지만, 지금 구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최선이라서요.”
“와! 하지만 엄청 예쁜 걸요!”
“잘 어울리세요!”
하녀들이 환성을 터뜨렸다. 에밀리의 콧대가 1센티만큼 솟았다.
아르티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렇게 해주게.”
어차피 이 결혼식의 주인공은 아르티제아가 아니었다.
지금이야 신부의 옷이 어떠니, 예물이 어떠니, 하고 사교계가 온통 그들의 결혼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스캔들이다.
친딸의 뺨을 때리고 짓밟은 밀라이라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결혼식에 참석할 것인가.
이 결혼식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황제가 밀라이라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한순간에 집안의 천덕꾸러기에서 후작 가문을 되찾은 소녀가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만만한가, 그렇지 않은가. 이용할 만한가, 그렇지 않은가. 에브론 대공은 타락했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런 것들이 진짜 관심사이다.
어차피 참석자가 모두 밝혀지는 순간 신부의 웨딩드레스 따위는 지나가는 화제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가슴 안쪽이 이상하게 움직거리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불안한 것 같기도 하고, 긴장으로 심장이 콩콩대는 것 같기도 했다.
똑똑.
그때 투왈렛 룸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