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45
악녀는 두 번 산다 45화
7. 황후 알현
황후를 알현할 날이 되었다.
앨리스가 아침부터 소란을 떨었다.
“어쩌죠? 아가씨, 이게 예뻐요, 이게 예뻐요?”
“둘 다 너무 밝은색이구나.”
앨리스의 손에는 아이보리색 드레스와 하늘색 드레스가 들려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저었다.
“전 하늘색이 아가씨한테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어두운 색으로 입을 거야. 그 옷은 도로 가져다 놓으렴. 멋 부릴 이유가 있는 자리도 아닌데.”
“그래도요. 황궁에 이렇게 ‘로산 소후작’으로 가시는 건 처음이시잖아요. 황후 폐하께 에브론 대공의 약혼녀로서 처음 인사하러 가시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조용히 황후 폐하만 알현하고 나올 거니까 그럴 것 없어. 황후 폐하의 궁에서 있었던 일은 밖으로 말이 새어나오지도 않고, 남들의 눈에도 띄지 않을 거야.”
18년 전, 황후는 자식을 모두 잃었다.
그 직후에 가장 친한 친구인 페셔 자작 부인이 남편과 함께 자결했다.
하지만 황후의 불행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가 비탄에 빠져 바깥일을 외면한 사이에 황제는 남부 귀족의 권력 구도를 재편했다.
황후의 친정인 리아간 공작가를 칠 준비를 완료해놓은 것이다.
황후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리아간 공작 부부는 그 직후에 사고로 죽었다. 그것이 진짜 사고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황후는 황후궁의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18년 동안 한 번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그것은 자식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친구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겉으로는 마치 삶을 포기해버린 사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황후를 경계한다. 그게 가장 큰 지표야. 절대로 껍질만 남은 사람은 아니지.’
황후가 절망하며 비탄한 18년 세월 동안 그레고르 황제는 밀라이라와 로렌스를 품에 안고 행복한 가족 놀이를 했다.
황후의 마음에 분노와 원한이 쌓이지 않았을까?
그럴 리가 없다. 그녀는 성녀가 아니다.
젊은 시절의 한때에는 황제를 신뢰했던 때가 있었으리라.
그 신뢰 안에 사랑도 있었는지 어땠는지, 아르티제아로서는 알 수 없다.
사랑이 있었는 없었든 그녀가 그레고르 황제를 지금의 자리로 올리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힘은 아직도 남아 있다. 황제는 황후를 폐위하지도, 죽이지도 못했다.
황후는 그레고르 황제의 황좌에 상당한 양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한껏 화사하게 꾸미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는 쪽이 좋다. 낭만적인 꿈에 취해 있는 소녀는 황후에게 쓸모가 없으니까.
아르티제아는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전략을 다듬었다.
그날 뜬금없는 시간에 프레일이 투왈렛 룸을 방문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췄습니다.”
프레일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막 옷차림새를 마친 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프레일이 이런 시간에 방문해야 할 급한 용건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프레일이 들고 있던 상자를 내밀었다.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상자를 받아들었다.
“으앗! 보기보다 무겁네요, 프레일 경?”
앨리스가 아르티제아의 앞에 있는 화장대까지 상자를 가져다 놓고 상자 뚜껑을 열었다.
소피가 흘깃 들여다보고 감탄사를 흘렸다.
“우와, 보석이에요?”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팔뚝만 한 크기의 푸른색 결정체였다. 남쪽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깊은 군청색이었다.
삐죽삐죽 솟구친 모양을 보고 아르티제아가 무심결에 미소를 지었다.
“남해의 특산 소금이로군. 이렇게 아름답고 큰 결정체는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소금이요?”
“그래.”
남해에는 좋은 소금이 많이 난다.
제국 서부와 북부의 낙후된 지역이 아니라면 어디든지 남해 소금을 썼다. 소금 전매로 벌어들이는 세수는 제국 재정의 2할 가까이나 되었다.
“남해 소금의 대부분은 바닷물을 끓여서 만들지만, 리아간 지방에 있는 어떤 바닷가에서는 소금이 바닥에서 이렇게 수정처럼 자란다고 하더구나. 그래봤자 소금이라 비싼 건 아니지만.”
“하지만 엄청 예쁜 걸요.”
“리아간 지방에서는 평민들도 원하면 가져다 장식할 수 있는 물건이란다.”
“수도까지 가져오는 거 엄청나게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경이 가져온 게 아니라 상인이 가져왔을 게 아닌가?”
아르티제아의 말에 프레일이 정색했다.
“가져오게끔 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죠.”
“수고했네. 하지만 내가 말한 기한은 아마 한 달은 후였을 텐데.”
“정말입니까?”
프레일이 좌절한 얼굴을 했다.
“나쁘지 않아. 오늘 가져갈 수 있다면 훨씬 좋지. 한 달 후를 기한으로 잡았던 것은 이렇게 선명한 푸른색 결정을 구하는 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서였네.”
“서두르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뛴 게 억울합니다.”
“경은 꼭 한 가지씩 빠뜨리고 듣는 버릇이 있지. 신중하지 못해서 그래. 이런 작은 일이야 상관없지만, 자칫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걸세.”
“무슨 목숨까지. 소후작님은 걱정도, 과장도 심하십니다.”
아르티제아는 빙긋 웃었다.
“농으로 하는 말은 아닌데. 어디 가서 독이라도 마시고 후회하기 전에.”
“누가 저 같은 일개 기사를 독살합니까?”
“…….”
아르티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흉험한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독살이라니.”
세드릭이 말했다.
그러고는 아차 하고 그 자리에 서서 문을 노크했다.
“훔쳐 들으려던 건 아닙니다. 문이 열려 있어서…….”
“아, 전하.”
프레일이 그에게 경례했다. 아르티제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오세요.”
“준비는 끝나셨습니까?”
“네.”
소피가 이미 아르티제아의 머리에 작은 모자를 씌워 핀으로 고정까지 완료한 다음이었다.
“독살이 어쩌고 하는 거 같던데…….”
“농담이었어요.”
“그건 뭡니까?”
“아, 네. 프레일 경이 준비한 선물이에요.”
“프레일이 선물을요?”
프레일은 세드릭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비록 모태 솔로, 평생 싱글이었으나 프레일은 눈치를 지적 능력과 바꿔먹은 사람은 아니었다.
세드릭의 미간에 실금이 그어졌다.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냥 자기 손으로 미간을 한 번 만지작거렸을 뿐이다.
아르티제아가 대답했다.
“네.”
좌절한 프레일의 뇌세포가 곡을 했다.
그녀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진짜 모르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소후작님께서 리아간 지방의 소금 결정이 필요하다고 하시기에 구해다드렸을 뿐입니다. 이건 백 프로 거짓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프레일이 재빨리 말하고 그 자리를 도망치듯 떴다.
세드릭은 그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는 검지로 자기 미간을 다시 쓰다듬었다.
“선물이라는 게, 황후 폐하를 위해 준비한 거였습니까?”
“네. 왜요?”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세드릭이 피식 웃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좀 의외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가 팔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그 팔에 손을 얹었다.
“생각하지 않았던 물건이기는 하지만, 일단 진상하는 게 좋겠어요.”
앨리스가 그 말을 듣고 상자 뚜껑을 닫아 들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마차에 실어두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한 발 늦게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세드릭이 아르티제아를 에스코트하여 마차에 태워주었다. 아르티제아는 자리를 잡고 나서 마차 문이 닫히자 물었다.
“황후 폐하는 어떤 분인가요?”
“지금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늦지 않았습니까?”
“객관적인 정보 말고, 그냥 세드릭 님이 갖고 있는 인상이 궁금해서 그래요. 굳이 같이 오겠다고 말씀하신 것도 그렇고, 녹록한 분이 아니라고는 하셨지만.”
처음에 아르티제아는 황후를 혼자 알현할 작정이었다.
세드릭과 함께 가면 그냥 친척 어른에게 인사드리러 가는 게 된다. 그럴 거라면 진즉 알현했을 것이다.
올가의 심장도 그냥 세드릭을 통해서 전해 주면 된다. 그러면 황후는 훌륭한 보석을 예물로 진상한 것에 대해 적당한 고마움의 표시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쉬운 길을 두고 빙빙 돌아온 것은 그 때문이다.
올가의 심장을 얻었음을 사교계의 모든 사람이 알게 했다.
그로부터 일어나는 사건에 자신이 개입되어 있음을 흘려 보였다. 그러면서 욕망과 빈틈을 드러냈다.
자신이 밀라이라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리라고 생각할 만한 개연성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황후의 흥미를 이끌어냈다. 자신이 거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르티제아 로산》이라고 단독으로 이름을 적은 초대장을 받았다.
하지만 세드릭은 그녀가 혼자 황후를 만나는 것을 반대했다.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제 약혼녀로 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저는 놔두고 혼자 간다는 게.」
「귀족 소녀가 황후 폐하를 혼자 알현한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단순히 친척으로 인사를 드리려는 게 아니라 다른 청을 올리러 가는 거예요.」
「제가 당신이 세운 책략을 아는 게 걱정됩니까?」
아르티제아는 난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세드릭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말이다.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같이 갑시다. 당신이 하려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겠습니다.」
세드릭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황후 폐하는 녹록하지 않은 분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황후궁의 문은 엄중히 닫혀 있었습니다. 당신이 혼자 알현하면, 분명히 사교계의 시선을 모을 겁니다.」
그것은 원치 않는 일이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로렌스가 황태자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황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티제아는 황후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지 못했다.
황후를 언급하기만 해도 밀라이라가 발광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황후궁이 너무 폐쇄적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황후궁에 남은 고용인은 모두 황후에게 목숨을 바친 충성스러운 자 뿐이다. 드나드는 얼마 안 되는 손님도 모두 황후의 아주 친한 친구들 뿐이었다.
돈으로 매수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시간을 들여 가족을 협박하거나 미인계 같은 것으로 약점을 만드는 것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수고하는 대신에 간편하게 해결했다. 황제의 묵인 아래 황후궁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성녀의 신탁이 나온 뒤의 일이었다. 이제 황후가 아니라도 로렌스가 정통성을 획득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었다.
황후는 궁에서 나오지 않고 죽었다. 혹시라도 황후가 살아 나올까봐 대기시킨 암살자는 아무도 칼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그때가 되어서야 아르티제아는 황후가 정말로 병이 깊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세드릭 님은, 용서하지 않겠지.’
집사를 죽이는 것과 달리, 그렇게 큰일은 숨어서 할 수 없다.
아르티제아는 세드릭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